검색보기
댓글보기
[홍수정의 농업수다] ‘WTO 개발도상국 지위 포기’는 통상주권 포기
농민들이 문재인 정부의 농업 정책 전환을 요구하며 행진하고 있다.
농민들이 문재인 정부의 농업 정책 전환을 요구하며 행진하고 있다.ⓒ민중의소리

지난 10월 7일, 정부청사 본관 앞에서 20여 명의 농민들이 모여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WTO 개발도상국(개도국) 지위 유지와 농산물 가격 폭락 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문재인 정권에게 투쟁을 선포하기 위한 자리였다. WTO개도국 지위가 무엇이길래 이렇게 농민들이 우려하는 것일까?

위기에 몰린 ‘농민 소득 안정장치’

지난 7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선진국이 WTO에서 개발도상국 지위에 따른 혜택을 받지 못하도록 모든 수단을 강구하라”며 “90일 이후까지 WTO 논의에 진전이 없으면 부적절한 국가를 골라 개도국 처우를 없애라”라고 지시했다.

대한민국은 1996년 OECD에 가입할 당시, 선진국임을 선언하라는 요청을 받았으나 농업분야에 미칠 영향을 우려해 농업을 제외한 나머지 분야에서는 개도국 우대혜택을 주장하지 않기로 하고 지금까지 농업분야는 WTO 개도국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면 가장 크게 영향을 받는 것은 감축대상보조(AMS)다. WTO는 가격지지와 생산량에 영향을 미치는 농업보조금을 ‘감축대상보조(AMS)’로 정하고 감축 비율을 달리 적용해 국가별로 연간 지급 상한액을 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연간 1조 4,900억 원이다.

그리고 이 감축대상보조금은 쌀 변동직불금에 대부분 사용되고 있다. 쌀 변동직불금은 쌀값 평균가격이 쌀 목표가격(현재 목표가는 188,000원)에 미달하는 경우 국가가 농가에 소득보전으로 지급하는 보조금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는 농민들에게 최소한의 소득 안정장치이다. 그런데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면 이런 감축대상보조금을 현행보다 50% 삭감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주요농산물 가격지지 정책에도 투여할 수 있는 AMS가 반절이나 삭감된다면 쌀값 안정과 농산물 가격 지지에 투여될 예산은 대폭 축소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개도국 지위를 포기해도 쌀 관세율에 별다른 변화가 없을 것이라 말하는 안일하고 무책임한 태도를 보여 농민들의 불안을 더 키웠다. 이미 FTA체결로 관세율 인하가 진행되고 있는 품목도 관세인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정부의 ‘WTO 개발도상국 지위 포기’를 우려하는 농민들이 청와대 앞에서 농업 정책 전환을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정부의 ‘WTO 개발도상국 지위 포기’를 우려하는 농민들이 청와대 앞에서 농업 정책 전환을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정부, 미국 압력 극복하고 통상·식량 주권 위해 나서야

대한민국은 식량자급률 24%, 농업소득 20년째 정체, 도농간 소득격차 60%, 농산물 값 연쇄폭락을 반복하고 있다. 농업선진국이라 말할 수 없는 지표들이다. 매년 평균 1만 4천 ha 농지가 사라지고, 농민 60%가 소작농이며, 농지 50%가 부재지주인 현실, 읍면동 지역 40%가 향후 30년 내에 소멸될 것이라는 전망은 농업농촌농민의 현실을 웅변한다.

대기업 중심 수출 지향 경제, 낮은 임금체계의 기반이 된 저 농산물 가격 정책으로 농업은 무너졌다. 농지는 대기업의 종합투기처가 되었다. 우루과이라운드(UR), WTO, FTA 등 농업은 언제나 희생을 강요당했다. 1889년 쇠고기 등 농산물 수입 자유화율은 99%에 달했다. 1992년 미국산 쌀 수입부터 개방의 역사는 미국의 한국농업 잠식과 파괴의 역사다. 전농은 “문재인 정부는 쌀 관세화 개방 이후 의무가 사라진 국별 쿼터를 재배정하는 사대굴욕 협상을 진행하더니 이제는 미국의 개도국 지위 포기 협박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있다”며 “통상주권을 팽개친 배알 없는 정부라는 비판을 면키 어려울 것”이라 성토했다.

문재인 정부는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도 독자적으로 결정하지 못하고 미국의 눈치를 보고 있다.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도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다. 이제는 WTO 개도국 지위도 포기할 요량이다. 미국과 삼성의 치마폭에 쌓여서 옴짝달싹 못하는 정부라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WTO 개도국 지위포기 방침을 철회해야 한다. 이건 주권문제다. 광우병쇠고기 수입을 반대한 촛불은 검역주권에 대한 전 국민의 항쟁이었다. 미국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정권의 말로는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뒷모습을 보면 된다. “자국의 이익을 우선 고려해서 판단한다”는 정부의 판단 근거의 핵심은 우리의 식량주권, 통상주권이어야 한다.

홍수정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부장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작은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이시각 주요기사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카카오스토리2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