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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노동자 보호법 1년 “고객 폭언 변함없어...직장 괴롭힘까지 이중 피해”
감정노동전국네트워크 회원들이 2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시행 1주년 맞이 기자회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민주노총, 한국노총, 한국여성민우회 등이 참여한 감정노동자 연대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감정노동자 보호법이 연착륙하기 위해 고용노동부의 책임있는 감독을 촉구한다" 고 밝혔다. 2019.10.24.
감정노동전국네트워크 회원들이 2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시행 1주년 맞이 기자회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민주노총, 한국노총, 한국여성민우회 등이 참여한 감정노동자 연대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감정노동자 보호법이 연착륙하기 위해 고용노동부의 책임있는 감독을 촉구한다" 고 밝혔다. 2019.10.24.ⓒ뉴스1

고객 응대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폭언이나 폭행 등으로부터 감정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제정된 ‘감정노동자 보호법’이 발효된 지 1년이 지났지만 현장은 전과 비교해 변함이 없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조사에 참여한 노동자의 절반은 해당 법 자체를 모르고 있었고, 사업장에선 법으로 명시된 사업주의 의무도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이를 감독해야 할 고용노동부조차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어,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24일 감정노동전국네트워크는 병원, 백화점, 콜센터, 정부기관, 가전 및 인터넷 설치업체 등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 2765명을 대상으로 올해 9월 15일부터 30일까지 약 2주간 진행한 ‘2019년 감정노동자 보호와 직장괴롭힘’에 관한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에는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 개발하여 표준화한 ‘감정노동 평가지침’(KOSHA GUIDE H-163-2014)과 노르웨이 버겐 대학의 ‘세계 따돌림 연구소’에서 개발한 ‘부정적 경험 설문지’(NAQ-R) 등이 사용됐다.

오히려 악화된 감정노동자 노동환경
“고객 폭언, 직장 괴롭힘 이중 피해”

감정노동전국네트워크 “조사결과, 여성노동자의 경우 최대 62%가 감정노동으로 인한 고통 때문에 심리적 치유가 필요한 상태였고, 남성 노동자는 최대 42%가 치유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어 “이 값의 모집단은 다르지만, 2018년 보호법이 작동하지 않던 시기에 진행했던 조사결과와 비교해서 전혀 나아지지 않았고, 오히려 더 악화된 결과도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실태조사에서 ‘공격적이거나 까다로운 고객을 상대해야 한다’ 등의 이유로 건강장애를 호소하는 여성 노동자는 40%에 이르렀고, 남성 노동자는 20%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조사에서 여성은 37%, 남성은 22%였던 것과 비교하면 별로 변함이 없는 수치다.

또한 ‘조직의 지지 및 보호체계’ 영역에서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조직의 지지와 보호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답했다. 특히 ‘직장은 고객응대 과정에서 입은 마음의 상처를 위로받게 해준다’ 문항에 22.2%가 “매우 그렇다”거나 “약근 그렇다”라고 답한 반면, 77.7%가 “약근 그렇지 않다” 또는 “매우 그렇지 않다”라고 답했다. 이를 근거로 감정노동전국네트워크는 “여성응답자의 62%, 남성응답자의 57%는 심리적 지지가 필요한 위험집단”이라고 지적했다.

그뿐만 아니라, 실태조사에선 노동자들이 감정노동을 겪으면서 ‘직장 내 괴롭힘’에도 노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주1회 이상의 빈도로 6개월 이상 괴롭힘 경험이 있는지 묻는 조사에서 ‘직장 괴롭힘’ 피해자로 분류될 수 있는 사람은 38.2%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18년(27.8%)보다 10%p 가량 높은 수치로, 서비스노동자들이 고객으로부터 고통을 받는데 그치지 않고 직장 내부에서도 고통을 받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이다.

감정노동전국네트워크 관계자는 “국제 연구에서 나타나는 피해율이 10% 초반인 것을 감안하면 4배에 가까운 수치이며, 고객에 의한 괴롭힘과 직장 내 괴롭힘 등 2가지 이상의 괴롭힘 겪고 있는 집단의 비중도 약 30%에 가까워 관리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또 조사에 참여한 노동자 중 50%가 관련 법 자체를 모르고 있으며, 70%의 노동현장에서 피해 노동자에게 제공해야 할 치료 및 상담 등의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안전보건법 제26조의2에 따르면, 사업주는 고객의 폭언이나 폭행 등으로 노동자에게 건강장해가 발생하거나 그럴 우려가 있는 경우 업무를 중단 또는 전환해야 한다. 또 휴게시간을 연장하고 치료 및 상담을 지원해야 한다. 이같은 감정노동자 보호법의 핵심인 ‘사업주의 예방조치’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감정노동자 보호법의 또 다른 핵심은 ‘가해 고객으로부터 피할 권리’다. 그런데 현장에선 회사 조직문화 등으로 이런 권리가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조사에 참여한 노동자들의 62%는 ‘고객 컴플레인이 정당하냐 아니냐를 따지기보단 컴플레인 그 자체를 갖고 문제를 삼기 때문에, 컴플레인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피할 수 없다’고 답했으며, 60%는 ‘내 업무를 대체해 줄 상사나 동료가 없어 피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한편, 감정노동전국네트워크는 이날 국회 앞에서 연 실태조사 발표 기자회견에서 “최근 1년간 감정노동자 보호법 관련 신고 건수가 9건이고, 과태료를 부과한 경우는 2건이라고 한다. 이는 신고하지 않으면 조사하지 않고, 조사해도 80%는 과태료 대상조차 안 된다는 처분을 내리고 있는 것”이라며 “사업주는 법을 지키지 않고, 고용노동부는 감독하지 않는다면 불법이 판치는 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오랜 기간 공을 들여 어렵게 탄생한 소중한 법률이 현장에서 이렇게 실종되어선 안 된다. 노동부는 즉각 일제 점검을 실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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