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보기
댓글보기
[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연영석이 아니라면 들을 수 없는 노래들
연영석 4집 ‘서럽다 꿈같아 우습다’
연영석 4집 ‘서럽다 꿈같아 우습다’ⓒ연영석

정말 오랜만이다. 정규 3집을 2005년에 내놓았으니 14년만에야 새 음반을 냈다. 대개 3~4년에 한 번씩 새 음반을 내는 걸 감안하면 음반이 세 장은 더 나왔어야 할 시간이다. 그렇다고 연영석이 노래를 멈추지는 않았다. 그는 2007년 빵 컴필레이션 3집에 참여했고, 지난해에는 [제주 4.3 항쟁 70년만의 편지 – 서울 민중가수들이 띄우는 노래] 컴필레이션 음반에도 참여했다. 2016년 겨울부터 2017년 봄까지 이어진 촛불집회 시절에는 개사곡 ‘그네는 아니다’를 불러 사랑받기도 했다. 사실 연영석의 노래를 듣고 싶다면 매주 월요일 저녁 서울 명동성당 앞으로 가면 된다. 민중가수 박준과 함께 들불장학회의 이름으로 거리에서 노래한지 20여년째다.

그 사이 그의 삶도 많이 달라졌고, 그를 둘러싼 세상도 달라졌다. 대통령이 바뀐 것만이 아니다. 민중가요만큼 민중이 보이지 않게 되어버린 세월. 민중은 이제 하루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산재사고 소식에서 겨우 단말마의 비명처럼 등장하고 사라진다. 아니면 1:99, 혹은 10:90의 숫자 속에서만 가까스로 존재한다. 화려하고 근사한 인스타그램 속 라이프 스타일에서 찾을 수 없는 민중의 모습은 우리 자신이 민중이라는 사실조차 잊게 한다. 사모펀드가 뭐가 문제냐는 이들의 항변 속에도 민중은 없다. 우리는 이제 영화와 드라마, 책으로 안전하게 민중을 감상하고 예술성을 평가한 후 민중을 잊는다.

연영석 4집 ‘서럽다 꿈같아 우습다’
연영석 4집 ‘서럽다 꿈같아 우습다’ⓒ연영석

힘들이지 않고 훨씬 편안해진 연영석 4집

연영석은 지난 2000년, 2001년, 2005년 연달아 내놓은 세 장의 음반에서 기존 민중가요와는 다른 록과 포크의 어법에 게으르고 해학 넘치면서도 신랄하고 정직한 태도를 노래했다. 그의 노래는 한마디로 팔뚝질하며 부를 수 없는 노래였다. 율동을 하면서 부를 수도 없는 노래였고, 합창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의 노래는 노동자와 민중의 목소리로 노래하면서도 신념과 낙관을 외화하기보다는 절망과 비참을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간절히 고스란히 토해냈다. 민중가요의 태도와 세계관을 유지하면서도 전형적이지 않고 정형적이지 않았던 그의 노래는 조직되지 않은 노동자와 빈민, 이주노동자, 장애인의 정체성에 더 가까웠다. 바로 2000년대 운동의 핍진한 현장 기록이자, 당시 민중가요의 유일무이한 성취였다. 그가 민중가요에서부터 음악을 시작하지 않았던 점이나, 록을 선호했다는 점뿐만 아니라 기타리스트 고명원이 함께 했다는 사실, 그리고 흔히 밑바닥이라고 부르는 민중들을 향한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을 뿐 아니라 그 자신이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았다는 사실이 연영석 음악의 차이와 깊이를 만들어 냈다. 결의하기보다는 막무가내로 외치고 버티게 하는 노래의 힘은 강력했다.

그런데 이번 음반에서 연영석의 노래는 과거와는 조금 다르다. 그의 노래는 훨씬 편안해졌으며 힘들이지 않고 부르는 것처럼 느껴진다. 2집과 3집에서 선보였던 록킹한 사운드를 기대했던 이라면 아쉬움을 느낄 수 있을만큼 연영석 4집의 사운드는 포크 록에 가깝다. 그는 소리를 지르지 않고, 악기의 볼륨과 데시벨도 올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번 음반에 사회적인 메시지가 없지 않다. 그는 여전히 일하는 노동자와 일하다 죽는 노동자를 노래한다. 장애인과 월남 참전 용사를 노래하고, 4.3 항쟁 진압 피해자의 삶을 고통스럽게 기록한다.

하지만 이번 음반의 주인공은 바로 자신이다. 연영석 자신이 아닐지라도 연영석 자신이 쓴 노랫말로 직접 노래하는 노래 속 주인공은 50대 남성의 이야기로 들리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는 “비틀비틀거리다 털썩 주저앉는” 사람이고, “문득 서럽다” 고백하는 사람이다. “밖을 꿈꿔 왔었”던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고, “나의 알몸을 보”면서, “고개를 숙여 눈물도 흘”리는 사람이다. “후회와 환멸을 쌓고/인정할 수 없는 날 위해/앙상한 내 마음 뒤로 나는 숨네”라고 쓰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연영석의 새 음반 수록곡들이 모두 자조적이거나 비관적이지는 않다. 첫 번째 곡 ‘서럽다, 꿈같다, 우습다’는 “나는 숨을 쉬고 해는 다시 뜨고/들판에 핀 이름 모를 꽃을 바라보리라/창문 활짝 열고 가슴 활짝 펴고/바람부는 언덕 위를 걸어보리라”는 적극적인 태도를 노래한다. ‘문당리 789’에서는 “이모님이 담가주신 된장국 끓여/고추장을 듬뿍 넣고 비벼 먹으니/아 배부르다”라는 단순 명쾌한 즐거움을 노래한다. 세 인물의 삶을 노래하는 ‘인터뷰’도 가볍지 않은 노랫말에 비해 코믹한 톤이 돋보인다. 힘을 빼고 더 자연스럽게 노래한 것이 이번 음반 사운드의 가장 큰 특징이다. 이 과정에서 ‘발가락 끝에’와 ‘인터뷰’ 등에서 사용한 일렉트로닉한 비트도 효과적이다.

바깥만큼 안을 들여다보는 시선이 드러난 음반

사실 매번 힘을 주고, 새로운 스타일과 방법론으로 노래하기는 쉽지 않다. 때로는 호흡을 고르고, 쉬어가기도 해야 한다. 그래야 오래 노래할 수 있고, 다르게 노래할 수 있다. 삶에 굴국이 있듯 노래 역시 굴곡이 있다. 어쩌면 흔들거리고 비틀거리는 굴곡이 삶의 본질에 더 가까운지 모른다. 무엇보다 삶은 혼자 살 수 없어 자신의 뜻과 의지대로만 살 수 없다. 연영석은 예전에도 그러했듯 폼 나지 않고 멋지지 않은 모습까지 노래함으로써 삶의 실체를 온전히 보여준다. 그 고백이 가능한 정직한 자세와 정직함에 배어 있는 해학과 낙관은 예술의 본질인 태도와 세계관을 드러낸다. 음과 리듬, 사운드, 노랫말의 결합으로 노래는 완성되지만 노래의 밑바닥에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의 시선과 정체성이 있다.

이번 음반에서 드러난 시선은 바깥만큼 안을 들여다보는 시선이다. 그 시선으로 드러난 자신의 내면을 숨기지 않는 태도이다. 당장 어찌할 수 없는 자신과 현실을 부정하지 않고 견디는 힘은 저항과 투쟁만큼 단단하다. 그래서 이번 음반에서 가장 사적이면서 단출하게 노래하는 ‘흔들리는 방’은 이번 음반을 대표하기 충분하다. 이어지는 ‘긴다’에서도 그의 끈질긴 의지에 배인 서러움과 투지가 어떠한 투쟁가보다 질기다. 연영석은 서럽다고, 꿈같다고, 우습다고 말하지만 자신을 속이지 않으며 멈추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다. 이 또한 민중이 버티고 나아가는 방식이다. 여전히 연영석은 낮고 끈질기며 정직하다. 연영석이 아니라면 들을 수 없는 이 귀한 노래들. 노래만큼 귀한 삶을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작은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이시각 주요기사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카카오스토리2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