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보기
댓글보기
[만민보] 대형서점 ‘비인기 종목’ 사진 책, 독립서점 ‘고래’에서 인싸되다
없음

근래 유독 부산했던 광화문역과 경복궁역, 청와대 앞길을 지나 걷다 선물 같은 공간을 마주했다. 지하로 연결된 계단을 따라 손잡이를 덜커덕 돌리는 순간, 편안한 책 냄새가 한 가득 마중 나와 감정이 설레었다.

아늑한 조명이 조용해 좋았고 자연스럽게 흩어져 있는 책들이 걱정 없어 좋은 공간, 서울의 사진책방 ‘고래(古來)’였다.

사진책방 ‘고래’ 차윤주 대표가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운동 류가헌 지하 책방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했다. 2019.10.17
사진책방 ‘고래’ 차윤주 대표가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운동 류가헌 지하 책방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했다. 2019.10.17ⓒ김철수 기자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동에 위치한 사진책방 ‘고래’에서 대표 차윤주 씨를 만났다. 여느 책방과 달리 책장이 온통 사진 책들로 꽉 차 있었다. 각기 다른 이야기가 담긴 사진 도서들이 시선을 끌었다.

‘고래’의 분위기는 특별했다. 이 공간을 꾸민 윤주 씨의 매력도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 고래에 놓인 책 하나하나에는 모두 윤주 씨의 시간과 생각이 닿아 있었다. 수많은 책 중 어느 하나 주인장의 애정을 못 받는 것이 없었다.

‘고래’에는 한국 사진작가들의 사진집이 많았다. ‘한국 책방에 한국인이 낸 책이 많은 게 무슨 특별한 일이냐’ 생각할 수 있겠지만, 최근 국내 오프라인 대형서점에서도 한국 사진작가들의 사진 책을 찾아보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윤주 씨는 “외국은 시장·도서관에 가도 사진 책을 쉽게 볼 수 있는데 한국에는 없다”며 “대형서점의 사진 코너는 처참한 수준이다. 관리도 안 돼 있고 순서도 없다. 주요 판매대에 사진집은 올라오지도 않는다. 악순환의 반복”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윤주 씨는 마이너 사업으로 꼽히는 ‘독립책방’ 중에서도 가장 비인기 서적으로 꼽히는 ‘사진 책’을 판매하는 주인을 자처했다. 전국에 4개 있는 사진책방 주인 중 한 명이 윤주 씨다. 독립책방 안에서도 관심 밖으로 밀리는 게 사진 책이었지만, 꾸준히 쏟아붓는 정성이 언젠가는 사람들에게 통할 것이라고 윤주 씨는 믿었다.

사진책방 ‘고래’ 차윤주 대표가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운동 류가헌 지하 책방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했다. 2019.10.17
사진책방 ‘고래’ 차윤주 대표가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운동 류가헌 지하 책방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했다. 2019.10.17ⓒ김철수 기자

잊고 있던 ‘사진’이 떠오른 날
“좋아하는 일을 다시 하고 싶었다”

윤주 씨는 사진을 정말 좋아했다. “사진이 아니면 알 수 없는 것이 있다. 사진을 보면 이상할 만큼 ‘상상 못 할 장면들’이 많이 나온다”고 말했다.

그는 본래 영화영상학과에서 연출을 전공하던 학생이었다. 이후 편입해 들어간 학교에서 운명처럼 ‘사진 수업’을 만났다.

당시 교수님은 꼭 수동카메라를 사용해 수업을 진행했다. 매 수업 시간마다 필름 한 롤을 꽉 채워 사진을 찍고, 충무로에 현상하러 가기를 반복. 자연스럽게 사진의 매력에, 필름카메라의 매력에 쏙 빠져 살던 시간이었다.

윤주 씨는 “그때부터 사진이 너무 재밌었다”고 했다. 하루는 필름카메라로 졸업 영화를 찍던 중 스태프인 선배와 기술적인 측면에서 마찰이 생겼다. 이후 윤주 씨에게는 ‘좋아하는 사진’에 대해 더 제대로 알고 싶은 욕구가 샘솟았다.

사진을 더 좋아하기 위해 윤주 씨가 찾아간 곳은 ‘사진 찍는 동호회’였다. 사람들과 둘러앉아 사진집을 보기 시작했고 그제야 좋은 장비보다 ‘많이 찍고 좋은 사진집을 보는 것’이 좋은 사진을 찍는 법이라는 것을 배우게 됐다.

2005년, 막연히 사진이 좋았지만 사진집과는 가깝지 않았던 윤주 씨의 시선은 자연스레 ‘사진 책’으로 옮겨갔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또 다른 일상에 안착했고, 사진을 좋아했던 지인들과는 자연스럽게 흩어졌다. 윤주 씨는 사진을 잊은 채 몇 년을 영어 강사로 일했다. 그러다 최근 ‘그때 순수하게 사진 찍기를 좋아했던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과 좋아하는 일, 재미있는 일을 다시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몰려와 다시 사진 책을 집었다고 한다.

윤주 씨는 “사진 찍는 시대가 다시 와 신기하다”고 말했다. 사진을 보는 방식이 변했고 카메라의 유행도 수시로 변하고 있지만, 사람들이 다시 사진을 즐기기 시작한 것은 윤주 씨에게 반가운 현상이었다.

그는 사진을 찍었던 옛사람들과 사진 책 관련 협동조합을 만들고자 했다. 사진 책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고, 잘 팔리지 않고, ‘사진 책의 악순환’이 더 극심히 진행 중이던 와중에 윤주 씨는 “협동조합을 만들면 조합원들이 소비자이면서도 사진 책 공급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한다.

함께 협동조합을 만들길 권유하기 위해 예전에 사진을 찍었던 인연들에게 연락했다. 그중 한 지인이 ‘현상소를 운영 중이다’라는 소식을 전했고, 윤주 씨는 지난 2017년 6월 해당 지인의 권유로 현상소 한 켠에서 사진 책 팝업스토어 운영을 시작했다. ‘고래’의 시작이었다.

모든 게 처음이었던 윤주 씨에게 팝업스토어에 물건을 들이기는 어려운 과제 중 하나였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사진가를 지원하는 갤러리 ‘류가헌’과 인연을 맺은 것도 그때였다. 류가헌의 책을 윤주 씨 팝업스토어에 입고하고자 문을 두드리고 관계를 어렵사리 쌓았던 것이 이후 ‘류가헌의 지하에 책방을 열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행운 같은 역제안으로 돌아왔다. 2017년 12월, 윤주 씨가 청운동으로 이사와 ‘고래’를 열게 된 계기였다.

사진책방 ‘고래’ 차윤주 대표가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운동 류가헌 지하 책방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했다. 2019.10.17
사진책방 ‘고래’ 차윤주 대표가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운동 류가헌 지하 책방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했다. 2019.10.17ⓒ김철수 기자

책방 주인으로 살아남기 위해 다시 시작한 영어 강사 일
“일단 뛰어들었지만 쉽지 않다”

좋아하는 사진 책이 가득한 책방을 여는 일은 설레었지만, 운영은 난관이었다. 윤주 씨는 “올해 초부터 영어 강사 일을 그만두고 책방에 전념했지만 다시 영어 강사 일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윤주 씨는 “독립책방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직업이 2개”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책방의 수입으로 책방을 운영할 수는 있지만, 인건비는 거의 남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윤주 씨는 ‘하루에 손님이 얼마나 오냐’는 물음에 “매일 파도 타는 기분”이라고 답했다. 그는 책방을 열길 바라는 사람들에게 “책방 아르바이트를 일주일이라도 해보는 것을 권한다”며 “저는 일단 뛰어들었지만 쉽지 않다”고 고백했다.

사진책방이 물건을 매절하기는 어렵다. 대형서점은 큰 할인율로 많은 수량의 물건을 사들일 수 있지만, 윤주 씨의 책방에 들어오는 물건은 수량도 적고 자연스레 할인율이 낮아져 매절은 쉽지 않다. 출판사에서 동네 책방에 물건을 위탁하는 경우도 거의 드물다. 근래 ‘고래’가 입소문을 타 조금씩 위탁을 받을 수 있는 점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부분이다.

외서는 위탁도 불가능해 “도박하는 기분으로 구매한다”고 한다. 해외 사이트를 통해 꼼꼼히 찾아보고 몇 개의 사진이 좋아 직감적으로 책을 사기도 하지만, 역시 비싼 배송비는 해결할 수 없는 지점이다. 판매처에 빠른 배송 대신 좀 더 ‘느린 배송’으로 책을 보내 달라고 부탁하는 게 최선책 중 하나다. 거대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이 굳건히 자리를 지키는 점도 책방에 적잖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진 책 한 권을 책방에 비치하는 것도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부분 중 하나다. 손실액을 감안해 포장지를 벗기고, 더 많은 사람이 책을 만나주길 기다릴 뿐이다. 이렇듯 운영 과정이 순탄치 않음에도 종종 책방에 찾아와 “왜 할인해주지 않냐”고 묻는 손님을 마주할 때면 참 난감하다.

윤주 씨는 요즘도 종종 “내가 왜 책방을 냈지”라는 생각에 잠긴다고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좋음’은 부정할 수 없는 가치이다. 아울러 최근 책방을 꾸준히 찾는 손님이 늘어난 것도 좋은 일이다.

사진책방 ‘고래’ 차윤주 대표가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운동 류가헌 지하 책방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했다. 2019.10.17
사진책방 ‘고래’ 차윤주 대표가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운동 류가헌 지하 책방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했다. 2019.10.17ⓒ김철수 기자

꼭 이루고 싶은 꿈,
신생 사진작가 ‘책 출간’ 진입장벽 낮추기

윤주 씨는 가능한 한국 작가들의 사진 책을 책방에 많이 비치해두려 노력하고 있다. 외국 사진집이 이익도 높고 잘 팔리지만, 여유 있지 않은 상황에도 한국 사진집에 애정을 담뿍 주고 싶은 게 그의 마음이다. 윤주 씨는 “사진 책을 인쇄하는 방식, 색을 여러 번 덧입히는 구조에 따라 한 권을 만들기까지 정성이 상당히 많이 들어간다. 외국 사진 책은 10만 원이 넘어가도 팔리지만, 한국 사진 책은 4만 원도 비싸다고 느끼는 소비자가 많다”며 아쉬워했다.

그는 “사진을 찍고, 인쇄하고, 입고하기까지 독립책방에 오는 책들이 전부 귀하게 만들어진다. 여기 있는 책이 비싸고 싸고를 떠나 작가들이 한 권의 사진 책을 만들 때까지 얼마나 많은 사진을 찍고, 그에 맞는 종이를 고르고, 인쇄소 아저씨와 싸우기도 하고, 재고를 안고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만나왔을까 생각하면 ‘귀하게 팔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강조했다.

윤주 씨는 “사람들의 만족도를 충족시킬 수 있는 책 선별을 늘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제가 좋아하는 책에 진심을 담아 정성스럽게 소개하면 그 또한 반응이 좋다. 신기하게 화답하는 느낌이 있다”며 사람들이 사진 책을 가깝게 느낄 수 있는 방법, ‘필름 카메라 체험’과 같은 사진 관련 이벤트로 소비자와 접촉면을 늘리는 방법들을 고안하고 있다.

앞서도 언급했듯 책방을 운영하기 전 영어 강사로 일했던 윤주 씨는 최근 다시 영어 강사 일을 시작했다. 그는 “지난 7~9월, 이러다 책방 문을 닫을 것 같아 다시 시작했다”며 “걱정을 좀 덜 해보려 다시 영어 강사 일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래도 윤주 씨는 책방을 너무나도 사랑하고 있다. 그는 “좋은 사진을 마음껏 볼 수 있어 좋고, 사진집을 한 번도 사본 적 없는 분이 올 때 같이 고민하는 재미도 좋다. 예상할 수 없는 손님들이 찾아오는 반가움도 좋고, 책방이라는 공간에는 늘 즐거움이 있다”며 “많은 분이 오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책으로 보는 사진, 전시회로 보는 사진, 휴대전화로 보는 사진 모두 느낌이 다르듯 사람들이 한 번쯤 직접 책으로 사진을 보고 그 매력을 같이 공유하길 윤주 씨는 바라고 있다.

아울러 ‘고래’에는 윤주 씨의 현재진행형 꿈이 하나 더 녹아있다. 그는 본래 ‘고래’ 운영을 시작할 때 사진책방으로 등록하며 ‘고래 사진관’이라는 출판사로도 함께 등록했다. 윤주 씨는 “제가 등록한 출판사 ‘고래 사진관’에는 로망이 하나 있는데, 어느 작가든 그의 ‘첫 번째 사진집’을 우리가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윤주 씨는 “다 똑같이 경험치가 부족한 상태에서 사진 책을 만들려면 맨땅에 헤딩해야 한다. 다들 같은 어려움을 겪고 같은 고민을 하고 있지만, 서로 공유가 잘 안 되다 보니 정보는 또 사라지기 마련”이라며 “사진 책을 만들기까지 진입장벽을 조금이라도 낮추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첫 번째 사진집만 만들어주는 작업을 언젠가 꼭 출판사로서 진행하고 싶다”고 말했다.

윤주 씨는 “고래는 한자 옛 고(古)에 올 래(來)자를 쓴다. 앞으로 올 것을 함께 보자는 ‘고래’의 의미처럼 우리가 이제까지 보았던 사진들, 좋았던 사진들, 앞으로 만날 사진들, 발견하고 싶은 사진들을 함께 생각해보면 좋겠다. 이 마음을 계속 지키고 싶다”며 “우선, 장사를 잘하는 책방 주인이 돼야겠다”고 웃어 보였다.

김도희 기자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작은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이시각 주요기사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카카오스토리2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