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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아동 성 착취’ 사이트 운영자 이름 공개 안 한 법원의 속내
문제의 다크웹 사이트 현재 상황
문제의 다크웹 사이트 현재 상황ⓒ기타

세계 최대 규모의 ‘아동 성 착취’ 사이트 운영자, 한국인 23세 손 모 씨. 외신에서 그의 이름이 대서특필됐지만, 한국 언론은 그를 ‘손 모 씨’라고 부른다. 한국 법원이 손 씨에 대해 “신상 공개 명령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손 씨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1심 재판부는 손 씨가 관할 기관에 신상정보 등록·제출 의무는 있지만, 공개·고지 명령의 대상은 아니라고 봤다. 그 이유에 대해 재판부는 “손 씨의 죄는 ‘아동·청소년 대상 성폭력범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지난 5월 손 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한 2심은 이에 더해 “13세 미만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가 아니”라고 덧붙였다.

법원은 손 씨의 범행을 ‘성범죄’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손 씨의 혐의는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음란물 제작·배포),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음란물 유포)이다. 손 씨는 사이트를 운영하며 포르노를 배포했을 뿐, 직접 아동을 학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법원의 시각에서 보면, 손 씨는 가벼운 처벌을 받을 수밖에 없다. 사이트 운영자인 손 씨도 징역 1년 6개월인데, 최근 붙잡힌 이용자 310명 중 한국인 223명은 벌금형이나 집행유예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는 현실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법원이 ‘아동 성 착취’가 아니라 단순 ‘음란물 배포’에 초점을 맞췄다는 비판이 거세다. 아동 포르노는 아동에 대한 성 착취·성 학대를 통해 만들어진다는 점을 간과했다는 지적이다. 대규모 아동 성 착취 시장을 조성해 막대한 이득을 취한 손 씨가 아동 성 착취를 부추겼다거나 최소한 방조했다는 점을 짚었어야 했다는 것이다.

W2V 홈페이지에서 아동 포르노를 요청하는 한국인들
W2V 홈페이지에서 아동 포르노를 요청하는 한국인들ⓒ미국 법무부

“아동·청소년 성적 소비 일상적”
“아동 포르노, 성 착취 사이클에서 제작된다”

전문가들은 손 씨의 범행도, 이를 대하는 법원의 태도도 아동·청소년을 성적 소비하는 데 거리낌 없는 사회 분위기에서 비롯됐다고 입을 모았다. 아동 포르노는 손 씨가 사용한 ‘다크 웹’(특정 프로그램을 이용해야만 접근 가능한 인터넷 사이트로 주로 범죄에 이용된다)에만 있지 않았다. 누구나 이용하는 포털 사이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등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조진경 십대여성인권센터 대표는 “일상에서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이 제작되고 있다”라며, 2017년 즈음부터 성행한 ‘사적 영상 유포 협박→성폭행→성매매’라는 성 착취 사이클을 그 원인으로 지목했다.

착취 사이클은 이렇다. 가해자는 피해 아동·청소년의 SNS에서 관심사를 파악해 접근한 뒤 신뢰 관계를 형성하는, 이른바 ‘그루밍’ 과정을 통해 사적인 사진이나 영상을 받아낸다. 이후 돌변한 가해자는 학교·부모에 해당 이미지를 보내겠다며 ‘유포 협박’을 한다. 가해자는 이 과정에서 더욱 수위가 높은 이미지를 요구하고, 겁에 질린 아동·청소년은 더욱 종속돼 버린다.

가해자는 ‘유포 협박’을 통해 또 다른 성범죄를 저지른다. 가해자는 해당 영상을 지워주겠다며 아동·청소년을 수시로 불러내 성폭행한다. 피해 아동·청소년은 죄책감에 주위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혼자 속앓이하다 집을 나간다. 가해자는 가출한 아동·청소년을 가족·친구들로부터 고립시킨 뒤 성매매시킨다.

수사 기관은 아동에 대한 성 착취를 지켜만 봤다. 조 대표는 “(피해자 지원 단체가 아동 포르노 사이트 등을 신고하면) 경찰은 ‘피해자가 없다, 서버가 해외에 있다, 증거 불충분하다’며 수사를 안 한다. 이런 환경들이 아동 성 착취 산업을 조장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피해자 연령과 함께 가해자 연령도 점점 낮아지는 추세다. 체포 당시 23살이던 손 씨가 약 2년 8개월 동안 영업했다면 20, 21살 때 (운영을) 시작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경찰이 아무것도 안 하니까 (해당 사이트가) 엄청난 규모로 발전했다”라고 꼬집었다.

없음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솜방망이 판례 쌓이니 갑자기 중형 선고도 난감
“성 착취 반영해 양형기준 설정하자”

아동 성 착취 근절을 위해 우선 가해자에 대한 형벌부터 정상화돼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손 씨에게 합당한 처벌을 내려달라는 국민청원은 25만 명을 넘어섰다. 청원인은 “아동을 성적 대상으로 학대하며 이윤을 만들었다는 반인류적 범죄가 어째서 한국에서는 ‘별 것 아닌’ 것처럼 여겨지며 범죄자가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 것이냐”라고 따져 물었다.

손 씨에게 가벼운 처벌이 내려진 이유는 법 규정 때문이 아니다. 현행법은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 관련 범죄에 엄격한 태도를 보인다. 아청법은 영리 목적으로 아동 포르노를 제작·배포하는 행위를 징역 10년 이하로 처벌하고, 아동 포르노를 소지하는 것만으로 처벌하고 있다.

문제는 성 착취의 관점을 배제한 채 아동 포르노 관련 범죄를 가볍게 판단한 판례가 쌓였다는 것이다. 한 판사는 “(해당 범죄에 대해) 벌금형이 난무하는 가운데 갑자기 중형을 선고하기도 어렵다”라고 토로했다.

이에 아동 포르노 관련 범죄의 성 착취 성격을 반영한 양형기준을 통해 형량 범위를 정하자는 의견이 제시됐다. 양형기준이란 법관이 형을 선고할 때 참고할 수 있는 기준이다. 원칙적으로 법관은 양형기준에 구속되지 않지만, 양형기준보다 가볍거나 무거운 형을 선고할 때 판결문에 양형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합리적 사유 없이 형량 범위를 정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현재 아동 포르노 관련 범죄의 양형기준은 없어서 새롭게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양형기준은 보통 기존 판례의 7~80% 형량으로 설정한다. 솜방망이 처벌을 막기 위해선 성 착취 인식을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 장임다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대법원 양형위원회에서 사회적 요구나 기존 판례 경향뿐 아니라 성 착취 인식을 반영해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 관련 범죄) 형량을 입법 의도에 맞도록 조정할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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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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