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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이재용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스스로부터 돌아봐야

뇌물 액수를 지나치게 적게 산정했다는 이유로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재판에서 재판장이 이례적인 훈계를 늘어놨다. 서울고법 형사1부의 정준영 재판장은 재판 말미에 “재판 진행이나 결과와는 무관함을 분명히 한다”는 전제를 깔고서는 이 부회장에게 “심리 기간 중에도 당당하게 기업 총수로서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정 부장판사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사례를 언급하면서 “1993년 당시 51세의 이 회장은 낡고 썩은 관행을 모두 버리고 사업의 질을 높이자는 ‘신경영’을 선언했다”며 “2019년 똑같이 만 51세가 된 삼성그룹 총수의 선언은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하는지” 생각해보라고도 했다.

재판장이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이 부회장에서 무슨 ‘충고’를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선고 시점에 나오는 ‘훈계’도 아니고 재판의 시작 단계에서 이런 주문을 하는 이유는 도무지 짐작하기 어렵다. 이 부회장이 ‘당당하게’ 기업 총수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인식도 황당하기만 하다. 이 부회장은 현재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지만 파기환송된 2심의 결과로도 그는 유죄를 선고받고 집행유예 상태에 있다. 이것만으로도 ‘당당’이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 총수’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봐야 한다.

재판에 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한 말도 나왔다. 정 부장판사는 “기업 내부에 실효적인 준법감시제도가 작동되고 있었다면 이 사건 범죄를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미국의 연방양형기준 제8장을 거론했다. 이 기준은 기업 내 준법감시기구가 제대로 작동하면 고위 임원이 위법 행위에 가담했더라도 형량을 감경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누가 봐도 ‘앞으로 잘하겠다고 하면 봐주겠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우리사회에는 재벌의 범죄에 대한 비난 여론 만큼이나 사법부에 대한 불신도 크다. 이른바 ‘화이트칼라’ 범죄의 경우에 횡령·배임액의 규모가 커질수록 형량 감경이 많고 집행유예가 남발된다는 분석도 있다. 재벌에게만 유독 법의 잣대는 허술하게 적용되어 왔다는 의미다.

정 부장판사는 관련된 발언을 시작하면서 “이 사건에서 밝혀진 위법행위가 다시는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지 않도록 해달라는 국민적 열망도 크다”고 말했지만, 그간 사법부가 재벌 범죄에 대해 엄격하게 처벌해 왔다면 정 부장판사가 거론한 ‘국민적 열망’은 이미 실현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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