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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화 칼럼] 영어그림책에서 숨은 그림 찾기

‘Hide and Sheep’
얼마 전부터 마을에서 영어그림책 모임에 재능기부를 하고 있다. 자신의 자녀가 글로벌 시대에 뒤처지지 않도록 엄마들이 열심이다. 반촌반도인 이곳도 예외는 아니다. 한 엄마가 그룹을 만들어 내게 수업을 맡아달라고 부탁을 해왔다. 참가자들은 유치원, 초등학교 저학년 학부모들이다. 아이에게 영어 그림책을 읽어주면서 아이들에게 영어에 대한 흥미를 주고 싶다는 취지였다. 물론 자신들도 글로벌 시대에 필요한 영어 실력을 늘리고 싶어 했다.

도서관마다 영어 도서가 늘어나고 있다. 해외에서 직접 구입해온 책들이 꽤 넓은 서가를 차지하고 있다. 나도 따뜻한 그림들과 생생한 표현에 흥미가 생겨 재능기부하기로 했다. 어떤 책을 같이 읽을까 찾다가 ‘Hide and Sheep’(2011)을 골랐다. 농장을 도망쳐 온 양무리가 마을의 이곳저곳, 동물원, 서커스, 극장, 야구장 등을 다니며 즐겁게 사고를 치는 이야기다. 보고 있으면 얼굴에 저절로 미소를 짓게 하는 책이었다.

미국에 있는 오랜 지인과 SNS로 잡담을 나누다가 내가 보고 있는 그림책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내게 돌아온 지인의 즉각적 반응은 책에 대한 비판이었다. 물론 그 친구는 이 책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보내준 몇 장의 그림을 보고는 화를 낸 것이었다. 요지는 양들과 함께 나오는 마을의 많은 사람이 모두 백인이라는 것이다. 내게는 그저 마을사람으로만 보였는데, 그 친구의 지적에 다시 보니 그랬다.

만약 그림책에 나오는 사람이 전부 남성이었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그림책을 집어 던졌을 것이다. 아마도 그 친구의 즉각적인 반응과 같았을 것이다. 그러나 인종에 대해서는 난 그렇지 못했다. 나도 한국사회에서는 이주자, 난민에 대하여 적극적 수용 자세를 취하고 있다고 자부했는데, 다수자, 주류로서의 의식에 젖어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인종 문맹자였다. 결국 친구 덕분에 ‘Hide and Sheep’을 그림책 읽기 목록에서 제외했다.

그림책(자료사진)
그림책(자료사진)ⓒpixabay.com

위험한 어린이 도서
‘Hide and Sheep’을 보는 한국의 아이들은 어떨까? 책의 주인공들은 양들에 섞여 있는 많은 사람들 중 자신과 같은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릴까? 아이들은 미국 사회의 주인은 백인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주류사회 중심의 의식으로 자연스럽게 젖어 들 것이다. 도서를 지도하는 어른도 그림 사회 속에 숨은 자, 보이지 않는 자가 있다는 의식이 미약하여, 그런 편견을 지적해주지 못하니 더 그럴 것이다. 남의 나라 사정이니 신경 쓸 일이 아니라고 무시할 문제가 아니다. 아이들이 즐겨 읽는 문학책의 상당부분이 남의 나라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러한 이야기를 통해 세상에 대한 정서와 감수성을 키운다. 또한 우리도 해외에 나가면 소수자가 되기 때문에 자신이 가진 관점에 도전받게 된다.

2011년 출판된 책이 이런 사정이니, 아주 오래전에 나온 동화를 읽고 자란 나는 말할 것도 없이 일방적 사고에 젖어 있었다. 내가 어릴 적 읽은 미국 아동도서 대부분이 백인 이야기였다. ‘톰 아저씨의 오두막’, ‘허클베리 핀의 모험’ 등이 있었지만, 아주 특이한 사례에 불과하다. 더 심각한 것은 인디언에 대한 왜곡된 태도를 보여주는 문화를 수용했다는 것이다. 내가 어릴 적 본 서부개척시대 관련 영화와 도서는 바로 백인 대 인디언이란 구도로 만들어진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 속에서 인디언은 착한 사람이 없었다. 어렸을 때 TV에서 많이 보았던 서부 영화에서 백인은 ‘우리 편’이었고 인디언은 우리 편이 무찔러야 할 적이었다.

톰 소여의 모험
톰 소여의 모험ⓒhttps://www.abebooks.co.uk

이는 마크 트웨인의 작품도 예외가 아니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 소년을 통해 노예제의 문제를 소극적이나 보여주었던 마크 트웨인은 ‘톰 소여의 모험’에서 인디언에 대한 부정적 의식을 노골적으로 보인다. 인디언인 인저 조는 톰 소여의 모험에 등장하는 인물 중 유일한 악당이다. 톰 소여는 공동묘지에서 인디언 조를 보는 순간부터 그를 “혼혈아 조, 살인마 조”로 불린다. 왜 그런 별명을 가지게 되었는지 설명이 없다. 그것은 개인적 별명이라기보다, 그저 인디언 일반에게 붙는 수식어였다. 인디언 피가 흐르기 때문에 악마적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마크 트웨인이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 책을 통해서 그 당시 인디언들이 어떤 위치에 있었는가를 살필 수 있다. 인디언 조는 마을 판사에게 복수를 하겠다는 말을 계속한다. 무고한 자신을 공공장소에서 채찍질 하고, 부랑자로 몰아 감옥에 가게 했다는 것이다. 마을 사람과 섞여 살지 못하게 된 인저 조는 결국 사람을 죽이고, 도둑질을 하고 도망 다니다가 동굴에 갇혀 죽는다. 물 한 모금 없는 동굴에서 그는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죽은 후에야 마을 사람이 모여 그를 애도한다. “좋은 인디언은 죽은 인디언이다.”라는 그 당시의 속설을 증명한 셈이다.

최근에 미국에서 발간된 어린이 도서에서 긍정적 변화가 보인다. 알라딘, 모아나, 코코 등 다양한 문화를 보여주는 것들이 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변화가 아쉬운 것은 다인종 사회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분리된 사회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 자기 문화, 인종이 따로 자기 이야기를 한다. 고학년용 미국 그림동화책에는 일상사 속에서의 섞여 있는 모습이 보이기는 하는데, 주인공 백인 어린이를 중심으로 한 배경으로 취급된다. 그래도 Hide and Sheep보다는 낫다.

글로벌 시민의 조건
미국사회와는 배경을 달리하지만 한국사회도 다민족 다문화 사회로 향하고 있다. 한국정부가 다민족 다문화사회로의 이행을 선언한 지 10년이 넘었다. 내가 살고 있는 횡성군은 인구 5만이 되지 않는다. 서울의 한 동(洞) 인구보다 적다. 이도 최근 몇 년 사이에 증가한 수이다. 5만도 안 되는 작은 곳에도 다문화지원센터가 있다. 그들의 주요 업무는 결혼 이주자를 지원하는 것이다. 도서관에도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등의 언어로 된 다문화 도서가 비치되어 있다.

농어촌에서 결혼이주자뿐만 아니라 이주노동자들도 심심치 않게 만난다. 시골에서 농번기에 일일 노동자로 트럭을 타고 단체로 이동하던 할머니 농부의 수가 줄어들었다. 농번기에 우리와 피부색이 다른 수줍은 얼굴의 이주노동자가 농가에서 할머니들 일손을 대신하고 있다. 이제 농업과 어업은 이주노동자가 없이는 불가능하게 되었다.

우리보다 빨리 해외 인력을 받아들이고, 우리가 겪는 고령화, 저출산, 고령화, 노동인력 부족을 먼저 겪고 있는 일본이 지난해 말 출입국관리법을 개정했다. 그동안 소수의 고급 인력에게만 부여했던 영주권을 단순노동자에게도 부여하기로 하는 내용이었다. 여성의 사회진출 확대나 정년 연장 등 고령자의 근로환경 개선으로도 부족한 일손을 메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그러면서 외국인 유입이 가속화되어 ‘이민국가’로 전환을 하는 신호로 받아들이는 여론도 있었다. 이 변화가 일본사회로 그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변화에 발맞추어 어린이 독서 교육 그리고 영어교육이 되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읍에 있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앞에 제법 큰 영어학원이 있다. 학원은 전국 체인 학원 중의 하나이다. 학원이 있는 건물의 한 면에 백인 어린이들이 즐거운 얼굴로 공부하는 모습으로 채워진 사진이 걸려있다. 그 학원을 보면서 무심한 마음을 갖기 힘들다. 글로벌 글로벌하면서 모두 분주한데 그 준비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영어그림책모임 회원들과 이야기해봐야겠다.

김애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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