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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과거의 책임을 어디까지 물릴 것인가?

도덕론에서는 ‘충직의 딜레마’라는 이름으로 인간 사회에 어려운 질문을 던진다. 어떤 집단의 잘못에 책임을 물릴 때 어느 범위까지 물릴 수 있느냐는 질문이다. 예를 들어 침략 전쟁을 자행한 일본의 책임은 어디까지 물을 수 있을까?

지금의 일본 정부는 과거 일본 정부를 계승한 주체이므로 당연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런데 2019년 도쿄에 사는 나카무라 씨는 어떤가? 나카무라 씨는 “우리 조상은 농사짓고 살았고, 제국주의 침략과 관계가 없다”고 항변한다. 나카무라 씨는 과연 일제의 침략 전쟁에 책임이 있는가?

미국의 인종 차별 문제는 어떤가? 실제 이 문제는 내년 미국 대선에서 중요한 쟁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경제학자들에 따르면 미국 백인들이 흑인들을 노예로 부리면서 착취한 금액은 무려 2000조 원에 이른다. 정신적 고통과 육체적 피해까지 고려하면 보상액이 1경 6000억 원으로 치솟는다.

강력한 민주당 대선 후보 중 한 명인 엘리자베스 워런(Elizabeth Warren) 상원의원은 “당장 배상에 관한 논의를 시작하자”고 주장한다. 반면 공화당의 미치 매코널(Mitch McConnell) 상원의원은 “현재를 사는 우리 중 누구도 150년 전 일에 책임이 없다”며 맞선다.

수학 문제처럼 딱 떨어진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이런 종류의 딜레마에 대한 논쟁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그런데 기자 개인적으로 이 문제에 적용하는 기준이 하나 있다.

우리는 당파성의 세상, 즉 필연적으로 누군가의 편을 들 수밖에 없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헤비급과 플라이급이 싸움을 하는데 그걸 지켜보며 “나는 중립이에요”라고 말하는 것은 결국 힘 센 사람의 폭력을 용인하는 행위다. 미국의 사상가 하워드 진(Howard Zinn)이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You Can't Be Neutral on a Moving Train)”고 목소리를 높인 이유이기도 하다.

딜레마를 해결할 때 이 개념을 적용하면 문제가 좀 쉬워진다. 나카무라 씨에게 책임을 물릴 수 있을 것인가? 그 답을 듣기 위해서는 나카무라 씨에게 “지금 이 순간, 당신의 입장이 무엇인가?”를 물어야 한다.

만약 나카무라 씨가 “과거 일제의 침략 전쟁은 잘못이고 나는 기꺼이 그 침략 세력에 맞서겠다”고 답한다면 나카무라 씨는 무죄이며 우리의 신실한 동지다. 하지만 나카무라 씨가 “독도는 일본 땅이고 일본 아베는 파이팅입니다요”라고 답을 한다면 그는 조상들과 공범이다. 침략 전쟁을 옹호하는 세력이기 때문이다.

한발 더 나아가보자. 만약 나카무라 씨가 “나는 정치는 잘 몰라요”라고 발뺌한다면 어떤가? 그렇다 해도 그는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그는 겉으로는 중립을 표명하고 있지만, 당파성의 관점에서 그것은 결국 일본 제국주의 침략을 용인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노예제에 책임이 없다고 생각하는 미국 백인들도 답해야 한다. “그래서 당신들은 지금 이 순간, 전 세계에 만연한 인종차별에 맞서 함께 투쟁하겠느냐?”라고 말이다. “그렇다”고 답한다면 그들은 무죄이며 우리와 동지다. 하지만 “그게 나랑 뭔 상관이냐? 트럼프는 파이팅입니다요”라고 답한다면 그들은 착취자의 편에 선 공범들이다. 조상이 저지른 죄에서 벗어나려면 최소한 지금 조상이 저지른 잘못이 반복되지 않도록 싸워야 한다.

다른 질문을 던져보자. 16일 검사 출신 이연주 변호사가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검사들의 스폰서 문화를 폭로했다. 내용이 글로 다 적기가 처참할 정도로 지저분하고 악랄했다. 이번 일이 아니더라도 검사들의 스폰서 문화에 대한 폭로는 과거부터 계속 이어졌다. 검찰 스스로 수사를 하지 않았을 뿐,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게 공무원인지 동네 양아치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의 내용이 수두룩하다.

그런데 어떤 검사가 “나는 안 그랬는데? 그게 왜 내 잘못이야?”라고 말한다면 어떤가? 이 딜레마에 대한 답이 있다. 그 검사에게 다시 묻는다. “그래서 당신은 동료들의 그 추악한 스폰서 문화에 맞서 싸우겠습니까?”라고 말이다. “그렇다”고 답하면 나는 그 검사를 동지라고 생각하겠다. 하지만 눈 감고 있다면? 그 또한 그들이 저지른 범죄의 공범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에게도 묻는다. 나는 윤 총장이 “건설업자와 어울릴 정도로 대충 살지 않았다”라고 한 발언을 믿는다. 그는 그런 종류의 검사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검찰의 수장으로서 그는 이 질문을 피할 수 없다. “검찰총장은 지금 이 순간, 후배 검사들의 그 추악한 스폰서 문화를 낱낱이 파헤쳐 불법을 저지른 자들을 모조리 처벌하겠습니까?”라는 질문이다.

나는 지금부터 그 답을 기다리겠다. 검찰의 스폰서 문화가 잘못된 것이라 믿는다면, 지금 우리와 함께 싸워야 한다. 하지만 윤 총장이 아무 답도 하지 않고 은근슬쩍 넘어가려 한다면, 그 역시 검찰의 스폰서 문화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검사들의 범죄에 눈을 감는 검찰총장은 법의 수호자도, 민중의 벗도, 우리의 동지도, 뭣도 아니다. 그냥 검찰을 지키려는 기득권 수호자일 뿐이다.

이완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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