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보기
댓글보기
[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참 순하고 선한 노래
여유와 설빈
여유와 설빈ⓒ여유와 설빈

음악에는 각각의 쓰임이 있다. 용도가 있다. 어떤 음악은 마음을 끌어올리기 위해 듣고, 어떤 음악은 마음을 내려놓기 위해 듣는다. 어떤 음악은 생각하기 위해 듣고, 어떤 음악은 생각하지 않기 위해 듣는다. 어떤 음악은 이미 알고 있는 감정을 확인하기 위해 듣고, 어떤 음악은 미처 알지 못한 세계를 만나기 위해 듣는다. 사람들은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에 따라, 자신이 필요로 하는 에너지에 따라 순간순간 음악을 선택한다. 음악은 그 중 일부를 담지한 채 태어나 사람들의 귀를 통과해 마음으로 스며들기를 기다린다. 독주(毒酒)처럼, 실바람처럼, 겨울햇살처럼.

혼성 포크 듀오 여유와 설빈의 음악은 마음을 내려놓기 위해 듣는 음악이다. 마음을 멈추고 생각하기 위한 음악이며, 때때로 생각조차 멈추고 마음과 생각의 바닥을 들여다보는 음악이다. 부글부글 끓고 터지고 넘치는 마음 가운데 가장 순하고 선한 마음을 찾아내는 음악이다. 그 마음에 말 거는 음악이고, 당신에게도 그 마음이 있다고 알려주는 음악이다. 그러니 괜찮다고 위로하는 음악이다. 달래주는 음악, 그럼에도 언젠가는 떠나보내고 헤어질 수밖에 없다고 멀리멀리 눈길 던지는 음악이다.

여유와 설빈의 두 번째 음반 ‘노래는 저 멀리’
여유와 설빈의 두 번째 음반 ‘노래는 저 멀리’ⓒ여유와 설빈

마음을 내려놓기 위해 듣는 여유와 설빈의 음악

보컬을 맡은 여유와 설빈의 목소리부터 순하고 선하다. 고음과는 먼 목소리는 좀처럼 달아오르지 않는다. 화를 내지 않고 들뜨지 않는다. 좌절하거나 절망하지도 않는다. 멋을 부리지 않는 목소리는 소박하다. 예민함을 드러내거나 강인함을 내비치는 목소리가 아니다. 그렇다고 안으로만 숨고 감추는 목소리가 아니다. 여유와 설빈은 자신의 노래가 향하려는 곳을 분명히 안다. 여유와 설빈은 “어두운 마음에 노래를/그리운 사람에 노래를”이라고 노래하며 절망과 그리움으로 고개를 돌린다. “버려진 것들”과 “지워진 일들”을 노래하겠다고 이야기 한다.

노래가 물처럼 흐르고, 불처럼 태우고, 꿈처럼 깨우고, 비처럼 내리고, 눈처럼 쌓이고, 꽃처럼 피우기를 바라는 태도는 이들의 노래가 최소한 1970년대 초 이후 한국 포크 뮤지션 가운데 다수가 공유하고 지향했던 태도를 이으려는 마음을 보여준다. 노래가 히트해서 인기를 얻고 돈을 벌면 좋겠다는 마음이 없을까만은 여유와 설빈은 그보다 노래가 할 수 있는 최선이자 최대의 태도를 지향한다. 그런데 노래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래하면서도 이들의 목소리에서 반드시 그 꿈을 이루고 말겠다는 투지를 찾기는 어렵다. 여유와 설빈은 그저 자신은 노래할 뿐, 그 꿈이 이루어지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는 담담한 태도로 노래한다. 그래서 노래를 저 멀리 날리면서도 노래를 잠시 멈추고 기다릴 수 있다.

물, 불, 꿈, 비, 눈, 꽃을 비롯한 메타포를 사용하고 꿈꾸는 태도는 다른 노래들로도 계속 이어진다. 자연으로부터 멀어진 세상에서 여유와 설빈은 초록을 좋아한다고, 지금 평화롭다고 어린이 노래처럼 노래한다. 잠시도 진지한 태도를 잃지 않지만, 자칫 엄숙해질 수 있는 어조를 여유와 설빈은 자연의 초록빛에 감도는 생동감과 순수함으로 녹인다. 오래전부터 많은 이들이 사용해서 새롭지 않은 말들은 이렇게 해서 새싹처럼 새로워진다. 당연하게 생각하고 뻔하다고 생각하는 존재와 가치가 현재의 세상에서 다시 살아 움직인다.

소멸과 질문의 아득함으로 끝나는 여유와 설빈의 두 번째 음반

여유와 설빈은 낭만이나 저항 중 하나였을 포크 음악의 태도 가운데 저항은 아닐지라도 사색과 성찰 쪽에 조용히 선다. 두 사람의 보컬과 어쿠스틱 기타에 슬며시 끼었다 사라지는 드럼 같은 몇몇 악기의 사운드만으로 자신을 들여다보며, “나는 너무 유치하고 뾰족한 사람”이라고 정직하게 고백한다. 그럼에도 “나는 너를 위해 살거야”라고 다짐한다. 이렇게 해서 포크 음악을 비롯한 여러 예술들이 지향해온 진정성과 진지한 시선은 사라지지 않는다.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게 가치 있게 남아 마음을 울리고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여유와 설빈의 음악은 고전적인 예술가의 태도를 고수하면서 가장 순하고 선하며 수수하고 꾸밈없는 음악으로 듣는 이들을 무장해제 시킨다. “조그만 마음속에 울고 있는 아이”를 달래는 노래 ‘선인장’에서도 여유와 설빈은 최소한의 악기로 조심조심 노래한다. 일부러 쉽게 만든 억지가 없고, 순수함을 가장하는 클리쉐가 없는 노래는 나이와 관계없는 본질을 담아낸다.

어쩌면 “하늘과 땅의 소리를 들어”보라고, “땀 흘린 날에 바람은 불어”온다고 노래하는 일이 세상 모르는 이들의 속편한 이야기처럼 들릴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여유와 설빈의 목소리에 배인 허허로움과 수줍음과 조심스러움은 이들의 노래가 고통을 모르는 이들의 이야기가 아님을, 함께 견디고 버티는 이들의 노래임을 알게 한다. 더 화려하고 정교하게 만들 수 있는 음악을 절제하면서도 편안함을 잃지 않은 어쿠스틱 사운드의 태도에 배인 배려 때문이다. 육성과 다르지 않은 창법 때문이며, ‘이리랑’ 같은 곡에서 공들여 연출한 사운드 때문이다. 여유와 설빈은 자신들의 지향과 태도를 소리로 외화하면서, 음악이 음악으로 완성되기 위해 필요한 매력을 놓치지 않았다. 어쿠스틱한 사운드로도 터트려야 할 때 터트림으로써 음반의 균열을 만들고, 그 균열의 마디에서 서로 다른 여유와 설빈의 스타일을 쌓았다. ‘동아줄’에서 일렉트릭 기타로 선보인 펑키하면서도 사이키델릭한 사운드와 내적 갈등의 서사는 혼성듀엣의 매력을 극대화하면서 음악 사이의 차이를 만든다.

그리고 ‘잠시 쉬어 가’, ‘길고 긴 밤’, ‘바다라는 평화’로 이어지는 음반의 후반부 곡들은 듣는 이들을 쉬고 평화롭게 한다. 어쿠스틱 기타로 낮게 노래하는 ‘길고 긴 밤’이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노래와 연주와 노랫말이 같은 곳을 바라보기 때문이며, 이미 함께 쉬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함께 하는 꿈속의 풍경을 리듬에 실어낸 ‘길고 긴 밤’은 늘어질 수 있는 음반에 잠시 활기를 불어넣는다. 음반의 톤을 흐트러뜨리지 않는 일렉트릭 기타의 톤과 보컬의 앙상블이 인상적이다. ‘바다라는 평화’에서는 여유의 허허로운 보컬과 담백한 연주가 음악의 안식에 정박할 수 있게 해준다. 설빈의 코러스를 비롯한 편곡의 힘이며 자연스러운 멜로디의 결과물이다.

여유와 설빈의 두 번째 음반은 ‘노래는 저 멀리’에 담은 소멸과 질문의 아득함으로 끝난다. “슬픔 없이 기뻐하고 웃음 짓는 곳이 어딜까” 묻는 끝없는 질문을 남겨두고 사라지는 노래는 이별과 소멸의 슬픔을 넘어 영원으로 발을 디딘다. 그렇게 노래함으로써 노래는 스스로 까마득해져버린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이렇게 묻고 나아가고 사라지는 일뿐. 오직 그리워하는 일 뿐이다. 이것이 인간의 삶이다.

필자의 사정으로 예정보다 늦게 연재됐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양해 부탁드립니다.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작은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이시각 주요기사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카카오스토리2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