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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자라는 아빠] 육아도 ‘품앗이’가 되나요?
어린이집 마당에서 열린 영화제
어린이집 마당에서 열린 영화제ⓒ필자 제공

금요일 퇴근 무렵 창밖을 보니 벌써 어두워져 있습니다. 주말을 잘 보내라는 인사를 동료들과 느긋하게 나누고 어린이집으로 향합니다. 벌써 어두워졌다니, 이전의 어린이집 같았으면 다급한 마음에 떠밀려 걸음을 재촉했겠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새로 옮긴 이곳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는 아이가 혼자 남아 부모를 기다리는 일이 없습니다. 하원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도 친구들과 어린이집 1, 2층을 오가며 놀거나 모래 마당, 넓은 텃밭 곳곳에서 놉니다. 오늘도 그렇게 놀고 있겠죠.

게다가 오늘은 저녁 식사 메뉴를 고민할 필요도 없어 마음마저 한결 가볍습니다. 어린이집 소모임 '금요미식회' 채팅방에서 미리 이야기를 나눴기 때문이죠. 이곳에는 부모 취향에 따라 문학 모임, 텃밭 모임, 손뜨개 모임, 아빠 캠핑 모임(‘엄마에게 자유를’이라는 모토를 갖고 있음) 등 다양한 소모임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 중 '금요미식회'는 금요일 저녁을 함께 먹는 모임입니다. 나처럼 퇴근이 늦는 맞벌이 부부들에 대한 깊은 배려가 담긴 무척 고마운 모임이죠. 늦게 어린이집에 도착해서 보면, 내 아이도 예닐곱 가구 속에서 함께 밥을 먹고 있습니다.

오늘 저녁에는 풀잎의 제안으로 ‘마당 영화제’도 열립니다. 풀잎은 6세 엄마의 별명입니다. 별명 사용은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 내가 좋아하는 특징 중 하나입니다. 아이들은 교사와 부모에게 별명과 반말을 사용합니다. 어른에 대한 긴장감과 거리감을 느끼기 보다 평등하고 자유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게 합니다. 아이들이 자기 표현을 충분히 할 수 있는 바탕이 된다는 점에서 무척 만족하는 부분입니다. 살구라는 별명이 아닌 오창열이라는 본명을 그대로 사용한다면 그 어떤 아이도 나를 부르지 않게 될 것입니다. 아이들이 거리감을 느끼는 어른으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네요.

“오늘 저녁에는 마당 영화제를 열자”는 풀잎의 한 마디 짧은 제안에 여러 엄마, 아빠들의 적극적인 자원으로 빔프로젝터, 스크린, 그늘막 텐트 등의 물품들이 순식간에 마련되었습니다. 또 다른 6세 엄마 올리브가 고기를 구워 먹자고 하자 또 금세 숯불 그릴과 전기 그릴이 5개가 모였습니다. 그러는 동안 유통업에 종사하는 3, 5세 아빠 무지개가 벌써 인원수를 계산해서 돼지고기 10kg을 주문했군요. 고구마와 김치, 쌀까지 필요한 것들이 모두 준비되었습니다. 어린이집의 넓은 앞마당에서 영화를 함께 보며 캠핑 분위기를 내는 일이 처음이 아니었기에 준비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습니다. 익숙했지만, 당연한 일은 아니었기에 새삼 놀랐습니다. ‘내 아이를 우리의 아이로 키운다’는 유대감과 부모들의 자발성이 없었더라면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일뿐더러, 누구도 이것을 희생이나 부담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이토록 특별한 한 끼가 평범한 일상이 된 사실에 대하여, 그리고 이런 다정한 이들과 아이를 함께 키울 수 있다는 것에 대하여 감사하고 다행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열려있는 어린이집 대문 밖으로 소란스럽게 노는 아이들 목소리가 쏟아져 나옵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내용의 대화에 미소가 지어집니다. 현관 앞에는 아이와 어른들의 신발이 잔뜩 뒤엉켜 있습니다. 많은 신발 속에서 우리 아이의 신발을 찾아봅니다. 어디에 날아가 있는지 보이지도 않습니다.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이는 이곳에서 잘 놀고 있을 테니까요. 나는 현관에서 뒤엉킨 여러 켤레의 신발을 보면 마음이 놓입니다. 아이가 아빠가 데리러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지는 않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어떤 부모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남모를 상처를 회복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곳에서는 어떤 아이와 부모도 혼자 힘들어하지 않도록, 모든 부모와 교사가 힘이 닿는 한 함께 도와주려 하니까요. 우리집처럼 하원이 늦는 가정을 위해 자체 결성된 금요미식회 모임이 그렇듯 말이지요. 아이에게 '미안하다'는 고백을 혼자 삼킬 일이 없는 곳에, 드디어 도착입니다.

현관에서 뒤엉킨 신발들
현관에서 뒤엉킨 신발들ⓒ필자 제공

현관의 신발 더미에 내 신발을 보태고 실내로 들어섭니다. 아이들이 와글와글 놀고 있습니다. “도연아 안녕!”하며 아이를 가볍게 안아주었습니다. ‘내 아이가 아닌, 제일 먼저 본 아이를 안아주기’라는 부모들 간의 느슨한 약속이 몸에 자연스럽게 배었습니다. 이어서 아이들이 우르르 모여들며 "살구 왔어?"라고 환대합니다. 아이들에게 '살구'라는 나의 별명이 불리는 순간, 수현이 아빠가 아닌 하나의 동등한 존재가 됩니다. 아빠를 발견한 수현이가 방금 완성한 그림을 들고 와 설명을 해주려고 합니다. 아이 말에 귀를 기울이려 허리를 숙이는 순간, 다른 아이는 “누구게~”하며 제 등에 기어 올라와 업힙니다. 일부러 틀린 이름들을 부르면 “아닌데~”하며 까르르 웃습니다. 아이들이 새로운 장난을 놓칠 리 없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양쪽 다리에 각각 매미처럼 철썩 매달립니다. 아이들의 격하고 묵직한 환영 인사에 기분이 좋습니다. 뒤뚱뒤뚱하며 그림 해설을 짧게 마저 들은 후 아이들을 하나씩 떼어냅니다. 다음 타자는 다음에 오는 아빠겠죠. 그제야 주방과 거실에서 저녁 준비를 하느라 분주한 부모들에게 인사를 합니다.

아이들에게 한바탕 고기를 구워 먹인 후 빔프로젝터로 만화영화를 틀어주었습니다. 수현이가 어디에 있나 보니, 5세 엄마 반지의 품에 안겨 스크린을 보고 있습니다. 아이에게 들키지 않게 슬그머니 시선을 피합니다. 부모들에게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우리들은 후식으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두런두런 대화를 나눕니다. 아이들이 친구들과 놀 수 있는 충분한 장소가 있고, 육아를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생겼다는 사실이 새삼스럽습니다. 전혀 그렇지 못했던 예전의 일이 생각났기 때문이죠.

배우자 없이 혼자 육아하는 것을 독박육아라고 부릅니다. 한편 배우자와 함께 있어도 어쩐지 외로운 육아는 고립육아라고 불러도 될 것 같습니다. 양가 부모나 형제가 있는 고향을 떠나 맞벌이 육아를 하는 사람이 피할 수 없는 숙명 같았습니다. 육아 품앗이를 함께 할 주변 사람이 없는 우리 부부는 망망대해의 돛단배처럼 고립된 양육을 했습니다. 외동인 아이에게는 함께 놀 친구가 없고, 놀러 갈 곳도 마땅치 않았습니다. 유일한 나들이 장소가 동네 공원이었습니다. 키즈 카페는 떠들 수 있었지만 비쌌고, 어린이 도서관은 무료이지만 아이는 조용히 놀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습니다. 동네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가끔은 또래 친구를 만났습니다. 그러면 아이는 친구와 놀 수 있었고, 양쪽 부모들은 쉴 수 있었습니다. 즐거웠던 마음에 서로 다음을 기약하지만, 굳이 연락처는 주고받지는 않습니다. 그 정도의 거리감을 유지한 채로, 각자 고립된 육아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겨우 2년 전의 일이었습니다.

어린이집 '마당 영화제'
어린이집 '마당 영화제'ⓒ필자 제공

영화가 끝나자 아이들이 각자 부모들을 찾아갑니다. 슬슬 집에 갈 시간이 되었군요. 누구는 내일 친정에 간다고 하고, 누구는 가족 여행을 떠난다고 합니다. 아내도 없고, 할 일도 없는 나는 6세 아빠 로짱과 함께 놀이방 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는 먼 거리의 찜질방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놀기로 계획합니다. 사실은 아이들을 실컷 놀게 한 후, 돌아오는 길 차에서 아이들을 재우겠다는 검은 속셈이었습니다(으흐흐).

외로운 육아를 하던 우리에게 공동육아는 외로운 돛단배가 항구를 만난 느낌입니다. 협동과 배려, 좋은 관계를 맺는 법에 대해 일부러 가르치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되는 환경이었습니다. 부모는 아이의 즐거운 모습을 보며 기쁨과 만족을 느끼고, 아이들은 부모들이 서로 함께하는 모습을 보며 자랍니다. 삶과 배움이 한 자리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입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남은 2년여 시간을 충분히 즐기려고 합니다. 다른 부모들이 내 아이를 함께 키워주었듯, 나도 이곳을 찾게 될 또 다른 아이들과 양육자들에게 내가 받은 것을 나눠주고 싶습니다.

오창열 정신건강사회복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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