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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보] “당신의 결혼생활은 행복하신가요?” 힘들다면, 꼭 봐야 할 ‘졸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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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연애의 ‘끝’은 결혼일까. 그럼, 그렇게 한 결혼은 행복할까

이 질문에는 정답이 없다. 행복할 수도 있고,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 ‘행복하다면?’ 행복하게 결혼생활을 이어가면 된다. 그렇다면 행복하지 않다면? 나아가 ‘불행하다면?’

이 질문과 관련해 “행복하지 않은 결혼이라면 과감히 인생에서 남편을 빼버리겠다”며 자신의 ‘졸혼’ 이야기를 담은 책 <내 인생에서 남편은 빼겠습니다>이 출간됐다. 방송작가로 일하다, 결혼으로 인해 경력 단절된 지 13년 차, 아이 셋을 키우고 있는 40대 여성이자 에세이 작가 겸 동화작가 아인잠(필명) 씨를 31일 서울역 인근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책 '내 인생에서 남편은 빼겠습니다' 표지
책 '내 인생에서 남편은 빼겠습니다' 표지ⓒ제공 = 유노북스

그녀가 졸혼을 선택한 이유
폭력·폭언으로 얼룩진 결혼생활...“전쟁상태와 같았어요”

“왜 졸혼을 선택하셨나요?”

‘경력단절 13년 차’, ‘아이 셋’ 이 두 조건에서 그녀의 선택은 ‘졸혼’이었다. 졸혼이란, ‘결혼을 졸업한다’는 의미로 부부가 이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서로 간섭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혼이 재산상 분할, 위자료 청구 등 경제적 의미를 담고 있다면 졸혼은 이를 포함하지 않는다. 때문에 아인잠 씨에게는 졸혼보다 이혼이 적합할 수 있다. 당장 아이 셋을 데리고 나가 키우려면 ‘돈’이 필요하지 않을까. 걱정부터 앞서 나온 질문이었다.

이에 대해 아인잠 씨는 뜻밖의 답을 내놓았다. “죽을 것만 같은데 남편이 이혼을 해주지 않아서요” 남편의 폭력과 폭언 속에서 이혼을 결심한 그녀는 가정법원에도 몇 차례 찾아갔었다. 하지만, 남편은 쉬이 이혼해주지 않았다. 번번이 ‘일이 있다’는 핑계를 대며 이혼을 피해 다녔다.

“이혼은 쌍방의 합의가 필요해요. 합의가 안 되면 소송을 해야 하죠. 당장 생활비도 없는 사람이 변호사 비용을 지불할 수 있을까요? 속된 말로, ‘돈 없는 사람은 이혼 못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녀는 차선책을 택했다. 우선 ‘남편에게서 독립’하는 것, 졸혼이었다.

아인잠 씨는 어떤 결혼생활을 했을까. 그녀는 결혼생활에 대해 “전쟁상태”라고 표현했다.

잠시 말이 없던 그녀는 이야기 하나를 풀어 놓았다. 아인잠 씨가 치과에 갔을 때의 일이다. 치과에 오신 한 할머니께서 우시며 하소연을 하셨다. 매 끼니마다 밥상을 차리면, 남편은 밥공기부터 살폈다. 밥 한 공기에 담기는 밥의 양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면, 남편은 어김없이 밥상을 뒤엎었다. “내가 오십 평생을 그렇게 살았수” 할머니는 서럽게 울었다. 할머니의 눈물에 그간 결혼생활의 고통이 담겨 있었다.

할머니·할아버지 세대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지금도 밥상을 뒤엎는 남편이 있다. 아인잠 씨의 남편도 그랬다. 아인잠 씨 남편의 경우, ‘친구에게 쌀을 줬다’는 이유에서였다. 결혼한 지 1년 무렵, 아인잠 씨를 보기 위해 멀리서 온 그녀의 친구는 바리바리 선물을 싸 들고 왔다. 그런 친구를 빈손으로 보내기 미안했던 아인잠 씨는 자취하는 친구를 위해 쌀을 담아 줬다. 이 이야기를 들은 아인잠 씨의 남편은 밥상부터 뒤엎었다. ‘시댁’에서 보내준 쌀을 ‘함부로’ 친구에게 줬다고 받아들인 듯 했다고 아인잠 씨는 설명했다.

여성인권영화제 ‘이야기 The Tale’ (자료사진)
여성인권영화제 ‘이야기 The Tale’ (자료사진)ⓒ‘이야기 The Tale’ 스틸컷

‘밥상 뒤엎기’ 뿐만 아니었다. 경찰이 출동했을 만큼 위협적이었던 폭력, 끼니를 챙겨 먹을 ‘때’가 아닌, 자신이 먹고 싶은 ‘아무 때나’ 밥을 먹겠다는 남편의 일방적 습관(물론 그 밥상은 아인잠 씨가 차린다), 그녀의 질문·이야기에 대한 반복적 무시, 폭언 등 신체적·정서적 폭력 상황들이 이 책에 담겼다. “차마 이 책에 담지 못한 이야기가 너무 많아요. 누가 칼 들고 위협하면 사회에서는 처벌(특수협박죄 혹은 살인미수죄)받죠. 하지만 가정에서는 칼 들고 위협하는 등의 범죄들이 버젓이 일어나요. 그리고 가정에 일어났다는 이유로 누구 하나 처벌받지 않아요”

그러면서 아인잠씨는 “저한테 ‘어떻게 이런 일을 겪고 살았냐’고 그러시는데, 제가 겪은 일은 ‘새 발의 피’에 불과해요. 책을 낸 이후에 정말 많은 여성들이 ‘나도 그렇게 살았다’고 메일을 줬어요” 메일에 담긴 여성들의 고된 결혼생활 이야기가 생각났는지 아인잠 씨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불행한 부부생활은 초등학생인 아이들에게도 영향을 줬다. 남편의 폭력으로 경찰차도 왔던 날, 아인잠 씨의 아이들은 불안 증세를 보였다. 이 모습이 걱정됐던 아인잠 씨는 경찰차를 타고 심리상담센터로 향했다. 상담가는 아이에게 ‘부모님이 싸울 때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아이는 “책상 밑으로 얼른 숨어요. 저는 숨바꼭질을 잘하거든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아이에게 ‘책상 밑’은 어떤 의미일까. 그 아래에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상담가의 말에 아인잠 씨의 마음이 저릿했다.

한 초등학생. (자료사진)
한 초등학생. (자료사진)ⓒ민중의소리

아인잠 씨의 ‘졸혼 선언’ 그리고 ‘독립’의 여정

아이들의 한 마디가 아인잠 씨를 바꿨다.

대한민국에서 홀로 육아를 담당하는 여성들이 그렇듯, 아인잠 씨도 스스로를 돌볼 시간이 없었다. 설거지를 하고 나면, 청소기를 돌려야 했고, 청소를 마치고 나면 아이들 밥 차려줄 시간이 됐다. 그날도 아인잠 씨는 아이 셋에게 밥을 차려주고 아직 남은 일을 마무리했다. 늦은 식사를 시작한 아인잠 씨는 아이 셋이 먹다 남긴 밥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고춧가루 등 반찬 일부가 밥 여기저기에 묻어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이를 물끄러미 보던 아이들은 아인잠 씨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은 하얀 밥을 새로 떠다 줬다. “엄마도 대접받았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의 말에 아인잠 씨는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봤다고 했다. 목이 늘어난 티셔츠, 헝클어진 머리, 독박 육아와 집안일에 거칠어진 손, 불행한 결혼생활에 홀로 숨죽여 울던 나날들…. 문득, ‘나는 왜 이렇게 살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아인잠 씨는 털어놓았다. “저도 꿈이 있고, 하고 싶은 게 있었어요” 아인잠 씨는 변화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시작은 ‘독서’였다. “독서는 끊임없이 저에게 ‘너는 어떻게 생각해?’라고 물어보고 생각하게 만들어요. 그 물음에 스스로 답하다 보면, 나의 삶의 방향이 명확해지더라고요” 아인잠 씨의 눈이 빛났다.

아인잠 씨에게 꿈을 되찾아준 ‘책의 한 문장’도 있다. 바로 <고독의 위로>의 ‘창의적 천재는 상실을 겪을 때 내면의 재능을 이끌어내며 이 재능을 발휘해 오래도록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작품을 만들어낸다’라는 문장이다. 아인잠 씨는 이 문장을 소개하며 “제가 작가였기 때문에 와닿은 문장 같아요. 이 문장을 보고 ‘나처럼 힘든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는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기 위해서 ‘나부터 살아야겠다’라고 힘을 얻었어요”

동시에 아인잠 씨는 ‘지금처럼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도 했다. 남편에게 ‘졸혼’을 통보한 이유였다. 그녀의 졸혼 선언에 남편은 “이혼이면, 이혼이지 졸혼은 또 뭐냐. 말 장난치느냐”라고 따져 물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아인잠 씨는 남편에게 꾸준히 ‘졸혼 선언’을 했다. 매 순간 진심을 담아서 말이다. 남편으로부터 ‘정서적 독립’을 시작한 시점이었다.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한국여성노동자회와 수도권지역 여성노동자회, 전국여성노동조합 공동주최로 제3회 성별임금격차 해소를 위한 임금차별 타파의 날 기자회견이 개최됐다. (자료사진)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한국여성노동자회와 수도권지역 여성노동자회, 전국여성노동조합 공동주최로 제3회 성별임금격차 해소를 위한 임금차별 타파의 날 기자회견이 개최됐다. (자료사진)ⓒ김철수 기자

졸혼을 위해서 또 다른 ‘독립’이 필요했다. 바로 경제적 독립이다. 경력단절 13년 차인 그녀는 어떻게 경제적 독립을 이뤘을까. 이에 대해 아인잠 씨는 “저의 경우, 지인들이 많이 도와줬어요. 제가 해준 것도 그리 많지 않은 거 같은데, ‘내가 더 많이 받았다’, ‘너한테 이렇게라도 빚 갚을 수 있어서 고맙다’며 돈을 보내주셨어요”라고 울먹였다. 십시일반으로 모은 금액은 1천만 원에 달했다. 그녀가 살고 있는 세종시는 보증금 1천만 원에 월 60만 원이면 괜찮은 아파트 월세를 구할 수 있었다. 운도 따라, 아인잠 씨는 60만 원보다 싼 금액을 내고 지금의 집에 살고 있다고 했다.

“저는 자가(자신의 온전히 소유한 집)에서만 살아봤어요. 졸혼을 한 이후, 처음으로 남의 집에 사는 거죠. 그런데요. 남의 집에 사는데도 자가에서 살 때보다 마음이 편하고, 행복해요” 아인잠 씨는 평온히 웃었다.

아인잠 씨는 현재 살고 있는 집에서 독서토론 및 논술 교육, 에세이 작가 등의 일을 하며 생계비를 벌고 있다고 했다. 책 읽기 좋아하고, 글을 잘 쓰는 특기를 살린 일이었다. 그녀는 독서토론 및 논술 교육에 유능해 제법 많은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특히 힘들었던 결혼생활 속 아이 셋을 교육시킨 경험을 바탕으로, 가정으로부터 상처받은 아이들에게 독서토론 치유도 함께 하고 있다.

문득, 불안 증세를 보였던 아이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했다. 아인잠 씨는 당장 웃음부터 터뜨렸다. “많이들 물어보세요. 근데 정말 잘 지내요. 아이들 얼굴이 너무 편안해져서, 저도 놀랐어요. 공부도 잘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아주 착하고 밝은 아이들로 자라고 있어요. 남편도 떨어져 있다 보니, 아이들에게 엄하고 굴지 않고 오히려 잘해주려 해요. 그래서인지 아빠와 아이들의 관계가 전보다 좋아졌어요” 아인잠 씨의 얼굴은 행복해 보였다. 마지막으로 아인잠 씨는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고 했다.

“당신의 결혼생활은 행복하신가요? 불행하다면, 잠시 멈춰도 돼요. 본인이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한 번쯤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아인잠 씨는 방긋 웃었다.

장윤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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