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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남호 교육칼럼] 대통령의 교육철학

2019년 10월 21일 대통령이 정시비중을 확대하겠다는 발언을 계기로 교육계에 또 파문이 일고 있다. 이달 11월 중에 정시 상향비율을 발표하겠다고 한다. 대통령으로서 이른바 '조국 사태'로 빚어진 계급 불평등 및 입시의 불공정성에 대해 고민하고 비등해진 여론에 응답한 결과이긴 하지만 무엇인가 낭패감을 감출 수가 없다.

대통령이 굳이 이런 실무정책을 얘기한 이유가 무엇일까? 우선 청와대의 참모진을 포함한 최측근의 교육문제 인식능력에 의문의 시선을 보낼 수 있다. 또는 대통령이 총선과 그 뒤를 잇는 대선, 나아가 정권변동에서 오는 이른바 정치적 후폭풍을 염려해야 하는 우리의 정치환경을 감안했을 수 있다.

대통령이 교육만 깊이 고민하기 어려운 점을 인정하면서도, 이는 결국 대통령의 교육정책 관련 신념 곧 철학의 문제로 귀결될 수 있는 문제다. 그러나 동기가 어떠하든 정치논리가 교육논리를 압도한 또 하나의 사례가 되고 말았다.

문재인 대통령과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문재인 대통령과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뉴시스

수능강화에 대한 비판

그렇다고 대통령의 발언을 뒷받침하면서 느닷없이 혹은 관망하기를 그만두고 정시를 옹호하는 일부 논객의 논리는 무엇인가 공허하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일례로 정시를 40%로 확대하여 수능으로 약 4000명을 더 뽑으면 학종(학생부종합전형)의 공정성 시비가 거의 종결될 것인가?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한국에서 아인슈타인과 같은 인물이 배출되고 학문분야의 노벨상 수상소식을 듣고 싶다면 특기와 적성을 함양하는 것이 기본적인 상식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껏 이러한 흐름에 역행해 왔다. 이미 이해찬 현 민주당 대표도 1999년 교육부 장관시절에 한 가지 특기로 대학도 진학할 수 있게 하겠다고 공언했었다.

수능체제는 거의 모든 학생들에게 돌려줘야 할 자기탐색과 자아실현의 기회를 박탈한다는 점에서 고차적 의미의 기회균등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이는 또한 넓은 의미의 공정성 곧 공공성에 위배된다. 수능환경에서는 자기발견의 기회를 갖지 못함으로써 학생들 스스로 내가 누군지 더욱더 모르게 된다는 것이 문제다. 이것이 현재의 수능이 안고 있는 치명적인 결함이다. 여기서 수능을 도입한 주역 박도순 교수가 수능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설득력을 얻는다.

한편 학종은 학생들로 하여금 스스로의 탐구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자기실현에 이를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지만 우리가 목도했듯이 돈과 인맥이 직접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이 최대의 맹점이다. 따라서 학종을 유지하되 단순하게 변화시키면서 투명성을 제고하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메리토크라시의 함정

'메리토크라시의 발흥(1958년 작)' 책 표지: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기반으로 쓰여진 것으로 알려진 이 소설은 디스토피아를 그리고 있다.
'메리토크라시의 발흥(1958년 작)' 책 표지: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기반으로 쓰여진 것으로 알려진 이 소설은 디스토피아를 그리고 있다.ⓒ사진 편집 : 필자

영국의 사회학자 마이클 영(Michael Dulop Young)이 창안한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는 흔히 능력주의로 이해되면서 실력을 갖춘 이들에게 우선적으로 지위를 배분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인식되어져 왔다. 근대 이전에는 사회적 지위가 부모의 신분에 의해 세습되다가 근대에는 주로 지능이 이를 대신하고, 이어서 지금은 성적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학교에서의 성적이 곧 실력이라고 믿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과성적과 수능을 과도하게 신뢰하는 여론층이 있다.

우리가 시험공화국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성적에 의해 대학 및 일류대학 그리고 성적에 기반하여 서열화한 대학간판으로 지위를 배분하고 있다면 우리 역시 메리토크라시에 의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교과성적, 시험성적이 학생 개인의 종합적인 사고의 결과물이 아닌 돈과 권력이라는 부모배경의 산물이라면 그에 기초한 메리토크라시는 일종의 허구다.

이런 상태에서는 학생들이 자기실현이 아니라 자기분열에 이르기 쉽다. 우리는 그 사례를 드라마 '스카이캐슬'의 등장인물인 '예서' 아빠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직업과 자녀교육에서 명성만을 쫓다가 진정한 의미의 자아를 잃었다고 뒤늦게 자책하며 울부짖지 않았던가?

미국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는 '메리토크라시의 도덕적 위험'이라는 제목하에 뉴욕타임즈 칼럼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글은 곧 출간될 자신의 책에서 그 내용을 일부 가져온 것이다. 참고로 책이름은 '두번째 산(mountain):도덕적 삶의 추구'다.

내가 존경하는 사람들은 적어도 두 개의 산을 오른다. 시람들은 흔히 첫번째 산만 넘는데 이 산은 사업가, 의사, 경찰 등 사회가 우리에게 기대하는 것을 수행하도록 한다. 동시에 집을 사고 가족을 부양하며 성공적인 삶을 추구하면서 명성을 관리한다. 이러한 유형은 개인주의적이고 메리토크라시(능력주의)에 의해 강력하게 뒷받침되는 삶이다. 여기서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는 강한 성취욕망에 의해 고무된다.

그러나 이러한 개인주의적이고 메리토크라시의 삶에 균열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어떤 계기에 의해 이들 중에는 자신의 삶에 무엇인가 더 낫고 고품격의 목적이 있다는 것을 의식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사회적으로 성공적인 삶을 살았어도 불만족하고 불행하다고 느끼며 정체성 혼란에 빠지는 사람들이 이들이다. 즉 첫번째 산에서의 승리가 가치롭지 않게 느껴지며 스스로 자기를 잃고 살았다고 탄식한다.

여기서 두번째 산의 정상을 향한 여정이 시작된다. 사회적 명예욕을 버리면서 내면적 영혼의 자기초월의 욕망, 타인들과 사랑으로 관계 맺고 희생의 가치를 실천하는 삶에 대한 갈망 등이 생긴다. 그러면 세상의 고통과 기쁨에 대해 감수성이 발휘된다.

예컨대 어느 여성이 자신의 아들이 자살한 후에 슬픔과 자의식에 빠져있었다. 하지만 내면의 성찰을 거쳐 그렇게 위기에 처한 가족을 돌보고 위로하는 일을 시작한다. 또 은행원으로 만족하지 못했던 한 남성은 감옥에서 형기를 마치고 나오는 사람들을 도우면서 자신의 참모습을 찾는다. 호주의 한 남성은 아내를 잃고 죄의식에 가까운 자책감을 느끼다 스스로를 각성한다.

첫번째 산이 사회적이고 외면적 자아를 쌓아 올리는 과정이라면, 두번째 산은 이러한 명성에 기초한 자아를 해체하는 과정을 거친다. 첫번째 산이 획득을 위한 것이라면 두번째 산은 헌신을 위한 것이다. 자유란 우리가 그 안에서 아무런 제약없이 마음대로 유영하는 '바다'라기 보다는 저편으로 가서 나의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해 건너야 할 '강'과 같다.

우리는 지난 60여년간 과도하게 개인주의적인 첫번째 산의 문화에 지배되었다. 이 문화는 사람들과의 공존의 관계를 약화시켰으며 자본주의와 메리토크라시를 제어해야 할 공적이고 도덕적인 문화를 해체시켰다. 삶에는 양적으로 가치를 매기기보다는 질적으로 추구할 대상이 있다.

타인을 바라볼 때도 그를 고정관념으로 볼 것이 아니라 총체적으로 독자성을 인정하는 눈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첫번째 산에서 내 개인의 행복을 찾고자 사회적 자아에 충실했다면, 두번째 산에서는 그 자아를 초월하고 타인과의 관계맺음에 눈을 돌리며 진정한 기쁨을 보상받는다. (2019.4.19일자 뉴욕타임즈)

다음으로 메리토크라시의 개념을 창안한 위의 마이클 D. 영(Michael Dunlop Young)이 죽기 1년 전인 2001년에 직접 영국의 가디언지에 '메리토크라시의 도덕적 위험‘이라는 제목하에 기고한 내용을 살펴본다.

사람들이 특정 능력(merit)으로 지위를 부여하는 것은 합리적이다. 하지만 타인들이 그 자리에 들어올 기회를 차단하면서 자신들의 사회적 계층을 고착화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흔히 지위의 분배장치는 교육이다. 교육은 증명서와 학위를 통해 능력을 지닌 소수를 승인하고 그렇지 않은 다수를 배제한다. 근대 이후 새 계급은 이 교육을 통해 사회계층을 재생산한다.

나는 가난한 취약계층의 자녀들이 지위획득에 있어서 불리해질 것이라고 보았는데 그것은 실제 그렇게 되어 왔다. 학교가 이 취약계층의 자녀들을 보듬지 않고 배제하면 장차 실업상태에 놓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메리토크라시의 등장과 더불어, 중하위층은 학업보다 자신들의 직업능력 및 특기로 지도자가 되는 것이 더 어렵게 되었다.

1945년 영국정부의 각료를 예로 들면, 외교장관이었던 어네스트 메빈은 11살에 학교를 나와 농장소년으로 일하다 주방보조, 식료품 배달원, 트럭 및 전차 운전, 짐마차꾼을 거친다. 이어서 29살에 브리스톨 항구에서 노조활동을 시작한다. (이 과정이 모두 정치적 역량을 축적하는 과정인 셈이다–필자.)

추밀원장이면서 부총리였던 허버트 모리슨은 노조보다는 지방정부에서 일하면서 중앙정부로 진출할 역량을 키운 경우지만 처음의 직업 역시 배달원과 상점 보조원을 거쳐 배전반 기능인으로 일했다. 이후 그는 런던시의회 의장이 되기도 한다. 그의 이전의 직업경력을 바탕으로 하여 1929년 노동당 정부하의 교통부장관으로서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한다. 그는 런던의 대중교통이 이후 3~40년간 세계 최고가 되게 했으며, 런던교통위원회의가 1945년 이후 세계적인 모델이 되게 했다.

이들과 같이 중하위층의 직업출신 인물들이 지도자로 부상한다는 것은 동류의 계층민들에게 자부심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토니 블레어 정부에 와서는 상황이 급변한다. 블레어 내각은 주로 메리토크라시를 거친 각료들로 채워졌기 때문이다.

메리토크라시의 환경에서 부와 권력을 지니게 된 계층은 전근대적인 족벌주의에서 벗어나 능력을 갖췄다는 자긍심을 갖게 되었다. 이들은 스스로 도덕성도 갖추었다고 믿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 엘리트들은 권력이나 지위를 이용하여 이익을 도모하는 데 열중한다. 급료가 치솟고 주식옵션 제도가 번창하고 높은 보너스와 고액의 퇴직금이 주어졌다. (2008년 미국 월가에서 시작된 금융위기의 주역들이 메리토크라시에 의해 배출된 인재들이라는 견해도 있다–필자)

해가 갈수록 전반적인 사회불평등이 심화되었다. 이전에 평등을 위해 목소리를 높였던 정당 지도자들의 불평도 잦아든다. 양극화된 이런 사회에서 어떤 것을 해야 하는가? 이에 정부는 이 메리토크라시로부터 거리를 두는 것이 필요하다. 그 일환으로 부자들에게 세금을 높혀 부과하고, 지역민들을 참여 및 훈련함으로써 지방자치의 기능을 강화함과 동시에 이들이 국가정치에서도 역할을 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2001.6.29일자 가디언)

즉 능력을 표현해준다고 믿은 학교성적 우수생들이 중심이 되는 관료지배 곧 메리토크라시는 자신들의 계급을 공고히 하는 수단이 된다. 그렇다면 메리토크라시는 긍정적 의미의 말뜻과는 달리 시민 개인에 대해서는 '자기성찰'의 기회를 차단하고 국가적으로는 '민주주의'를 훼방한다. 이 지점에서 대통령의 교육관련 국정방향이 어디를 향해야 할 것인가를 묻게 된다.

성열관 교수(경희대학교)는 영(Young)의 이 작품과 관련하여 '메리토크라시에서 데모크라시로:마이클 영의 논의를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이렇게 정리한다.

"메리토크라시(능력주의) 사회는 언제가 계급사회이기 때문에 계급갈등이 잠재되어 있다. 영은 메리토크라시가 데모크라시(민주주의) 체제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전복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그에 따르면 데모크라시는 카스트(신분사회)에서 메리토크라시 사회로 올 수 있게 해주었다. 그것은 1인 1표라는 평등주의에 기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카스트 사회에서는 봉건귀족이 지배자였다면, 현대사회는 계급지배에 의해 운영된다. 그러나 메리토크라시는 자기파괴적인 장치를 스스로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 영의 주장이다."(교육학 연구 제53권 제 2호, 2015).

박정근(왼쪽 네 번째부터) 전국진로진학상담교사협의회장, 유석용 전국진학지도협의회 수석대표 등이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용산역 ITX 1회의실에서 열린 전국진학지도협의회·전국진로진학상담교사협의회 공동기자회견에서 문 대통령의 정시 비중 상향을 포함한 입시제도 개편안 마련 발언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박정근(왼쪽 네 번째부터) 전국진로진학상담교사협의회장, 유석용 전국진학지도협의회 수석대표 등이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용산역 ITX 1회의실에서 열린 전국진학지도협의회·전국진로진학상담교사협의회 공동기자회견에서 문 대통령의 정시 비중 상향을 포함한 입시제도 개편안 마련 발언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사진 = 뉴시스

대안은?

그렇다면 좀 더 자명해진다. 대통령은 '입시'의 공정성을 넘어 '교육'을 통한 학생들의 자아성찰 능력과 민주주의를 가능케 할 국정철학을 고민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는 온전히 대통령 혼자만의 몫이라기보다는 대통령 보좌진 그리고 우리 국민 모두의 몫이기도 하다.

여론은 때때로 진실을 감춘다. 대학입시에는 계층의 이해관계가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표층적인 여론 자체를 그대로 국가 교육정책에 반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수능 자격고사화를 반대하는 여론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수능과 학종 공히 그 뒤에 자리한 학부모들의 대물림의 욕망이 강하게 작용하지만 수능은 학종보다 더 광범위하고 더 오랫동안 사교육에 노출시키는 문제를 안고 있다. 게다가 EBS 교재가 고3교실을 거의 완전하게 잠식시켜 문제풀이 수업에만 열중하게 만든다. 교육이 실종되고 입시만 맹위를 떨치는 것이다.

따라서 정시를 강화하는 수능체제를 무력화시키는 것이 길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정시확대를 굽히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차선책으로서의 길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즉 지금껏 간헐적으로 제기되었던 '수능 절대평가 및 자격고사화' 혹은 '수능을 논술로 치르는 방식'이 대안일 수 있다.

이때 시험은 쉽게 출제되어야 한다. 그래야 중-고교에서 발표, 토론, 탐구학습이 살아난다. 그런데 기존 대학서열화체제를 그대로 두면 상위권대학을 중심으로 본고사에 준하는 심층면접을 통해 성적 우수학생을 선점하려는 관행을 반복할 것이다. 이 역시 사교육을 부채질하는 중대요인이다.

이 때문에 반드시 대학서열체제를 허물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대학입학 추첨제'다. 곧 대입정원에 준하는 인원을 합격시켜 대입 공동추첨제로 하면서, 서울 및 지방을 가리지 말고 사실상 시설과 교수진 등을 고르게 투자하여 인근 지역대학에서 전공별로 공부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한국과 유사하면서도 사안별로는 입시비리의 규모가 더 크고 노골적으로 발생한 미국의 경우에는 왜 대입 추첨입학전형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되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적어도 그것은 미국 기업들이 대학간판 즉 소수 아비리그 출신 졸업생들을 배타적으로 선호하는 정도가 한국보다 약하다는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대학교수 채용에서 출신대학을 우선적으로 배제하는 원칙을 공유하는 것도 그 예다.

이렇게 학벌 나아가 직업차별 정도가 완화된 형태인데다, 빈부차가 심하더라도 세계 최대의 노벨상 수상자들이 포진해 있으며 가진 자들의 사회기부 등에 의해 일종의 낙수효과(trickle down effect)도 한국보다 조건이 좋다는 점이 참고할 만한 요인들이다. 부자들이 증여세를 내게 해달라고 정부에 요청하는, 한국적 관점에 보면 이상한 풍경이 벌어지는 곳이 미국이 아닌가? 미국은 그만큼 학교가 서열화되어 있어도 사회적으로 불평등을 보정하려는 장치들이 있다.

한국이 대학서열화를 용인할지라도 사회에서 보다 철저하게 학벌과 출신을 배격하고 진정한 의미의 능력(주의)에 따라 인재를 채용하면 입시과열과 입시의 공정성 문제도 상당부분 완화될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사회여건은 그리 따뜻하지 않다. 바로 이 때문에 더욱더 정책적으로 대학의 서열체제를 와해시켜야 할 것으로 보인다.

신남호 교육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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