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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엄마의 그림일기] 어쩌다 나는 나를 ‘마을활동가’라 부르게 됐나

홍천에 이사 오고 나서는 특정한 마을의 소속감이 없는 채로 외지인 시절을 보내고 있다. 가끔 나의 정체성을 물어오는 분들에게 글쎄요... 뭐라고 할까요... 마을활동가? 라는 말이 첫 번째로 나오는 것이다. 지난 몇 년간 몇 가지 직책 중에 나를 지칭하기 가장 마음 편한 말이었다고 할까. 4개월이 된 둘째 아이를 데리고 성남의 작은 도서관에서 책모임을 했던 게 마을을 만나는 시작이었다. 큰아이 낳고는 몇 개월도 안 되어 바로 일터에 복귀했지만 작은 아이는 9개월 정도 데리고 실업급여 받아 가며 집에서 키웠다. 그 전엔 집-학교, 집-직장의 개념만 있었는데 아이를 낳으니 그 동네 아이들, 그 동네 엄마들이 눈에 보인다.

몇 개월이에요? 어디서 낳았어요? 00병원? 나도 그 병원 다녔는데. 하며 저절로 알게 되는 이웃 엄마들이 있다. 도서관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하면서 그림책의 아름다운 세계에 매료되어 엄마들과 책 읽는 모임을 시작했다. 어떤 사람은 책모임을 하자니까 나를 책 외판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자비를 들여, 자기 시간을 내어 봉사를 하며 모임을 꾸리는 것은 자본주의 한국사회에서 매우 기이한 일이다. 종교단체냐, 책을 팔려고 그러냐 등등의 오해를 조금씩 풀어가며 그때 시작한 동화 읽는 엄마모임을 7년간 매주 진행했다. 정말이지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그림책의 세계를 함께 나누고 싶었다. 엄마들이 감동하고 아이와 함께하길 바랐다.

날마다 책 탐험을 다니던 아이들
날마다 책 탐험을 다니던 아이들ⓒ박지선

아이 어린이집 친구 엄마들, 역사동아리 언니들과도 같이 여성회로 묶어 모임을 하게 되면서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과 엄마들이 모인 품앗이 육아가 자연스럽게 시작되었다. “내가 애들 다 찾아올 테니 네가 밥을 먹여줘.” “언니! 제가 애들 보고 있을 테니 회의 다녀오세요!” 우리는 전쟁터의 전사들처럼 동지애로 똘똘 뭉쳐 결연한 자세로 분업하며 서로의 아이들을 함께 키우기 시작했다. 아이를 맡기고 다녀와서 “힘들었지?” 하면 “아이랑 둘이만 있는 것보다 자기들끼리 노니까 훨씬 좋다”고 했다. 마을에서 “우리 다 같이 동요수업 한번 만들어 볼까요?” 하며 금방 모임 하나를 만들었고 근사하게 무대를 빌려 발표회도 가져보았다. 아이들이 조금씩 크면서는 기행, 숲놀이, 농촌체험, 방학 때는 도서관 아침독서, 영어, 역사 수업까지. 함께 모이니 생각만 가지면 뚝딱뚝딱 못할 것이 없었다.

아... 정말 그렇게 살았구나. 참 복 받았구나. 지금 생각해도 그런 과정에 함께 했던 분들에게 너무도 감사해서 눈물이 나온다.

아는 사이 너머 안은 사이를 꿈꿔봅니다
아는 사이 너머 안은 사이를 꿈꿔봅니다ⓒ박지선

홍천으로 이사 오면서 뒤를 돌아보지 말자고 다짐했다. 그때가 참 좋았지, 이런 말이 다 무슨 소용인가. 난 항상 지금이 내 인생에서 가장 좋은 시기라고 생각하고 산다. 이십대보다, 삼십대보다 단단해진 지금의 내가 훨씬 맘에 든다.

이렇게나 긍정적인, 과거의 마을 활동가는 새로운 시골 동네에서도 여전히 마을 활동가가 될 수 있을까? 시골 마을을 바라보면서, 그 안에 무수히 많은 갈등을 접하면서 우리가 생각했던(혹은 상상하는) 그 시골은 이제 없구나, 싶을 때가 있다. 마음을 열고 다가갔다가 상처를 입은 귀농 귀촌인들을 한두 번 만나는 것이 아니다. “그냥 엮이지 않고 조용히 있는 듯 없는 듯 살려고요. 누가 내 흉을 보든 말든 조용히 인사 잘하면서 다니면 돼요”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서글프기까지 하다. 왜 이렇게 각박해졌을까. 상처받지 않으려고 잔뜩 움츠린 채.

엄마는 마을이 필요하다. 아이들은 안심되는 이웃의 돌봄을 받아야 하고 함께 모여 놀아야 한다. 엄마들은 만나 서로 이해하고 의지해야 한다. 마을은 세상의 가장 작은 단위에서 평범한 사람들을 지켜주는 울타리가 되어야 한다.

아직 그런 마음이 유효하니 나를 그냥 마을활동가로 부르기로 하자. 나는 마을에서 이웃과 함께 맥주를 마시고 아이들을 키우고 이전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함께 만들어 갈 수 있을까? 홀연히 날아와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마침내 꽃을 피우는 민들레 홀씨처럼.

박지선 마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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