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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질병은 몸이 아니라 사회로부터 비롯된다 ‘제국과 건강’
책 ‘제국과 건강’
책 ‘제국과 건강’ⓒ나름북스

통계에 의하면 지난해 한 해 동안 10만4천여 명이 일하다가 다치거나, 질병에 걸리거나, 죽었다고 한다. 지난 30년 동안 해마다 평균 2천여 명씩이 일하다 죽었다. 우리 노동자들은 지금 일터에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숨진 김용균 씨, 김용근 씨에 앞서 30년 전인 1988년 온도계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다 16세의 나이로 수은중독에 걸려 사망한 고 문송면 군 등 한국은 죽도록 일하는 국가다.

사람이 태어나서 병들고, 죽는 건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하지만, 그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연스럽지만은 않은 많은 요소들을 발견하게 된다. 태어나서, 병들어 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사회경제적 그리고 정치적 구조에 영향을 받는다. 김용균과 문송면의 죽음과 아픔은 자연적이 아닌 사회적, 구조적 죽음이었다. 책 ‘제국과 건강’은 기본권으로 천명되는 ‘건강’이 어떤 정치경제적 역관계에 의해 결정되고 영향 받는 지 분석한 책이다. 이 책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라는 두 개의 맥락에서 보건의료의 역사적 형성 과정을 추적하고 향방을 예측한다.

보건의료의 전 지구적 동학을 정치경제적 관점에서 분석하는 저자는 보건의료와 건강이 기본권의 영역이면서도, 자본의 이윤 추구 장소라는 점을 강조한다. 예컨대, 보건의료 부문에서 특정 의료 기술이 도입돼 시행되는 과정도 의학적 효과에 대한 과학적 판단에 따른 것만은 아니다. 저자는 책에서 그 사례로 효과성이 입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관상동맥 집중치료실(CCU)’이 기업, 대학병원, 자선재단, 그리고 국가의 협력 아래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과정을 서술한다. 저자는 이 연합이 자본주의 체제 내에 새로운 이윤 창구를 만들고 유지하는 동시에 일차 의료 등 공공서비스 축소에 기여해 왔다고 주장한다.

CCU 도입 사례처럼 오늘날 효과성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값비싼 의료 장비, 수술법 등이 과도하게 판매되는 현상을 자본주의 이윤 구조의 관점에서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개인의 건강을 좌우하는 보건의료 정책, 혹은 신기술의 도입을 정치경제적 지평에서 바라볼 때 한 걸음 나아간 성찰을 얻을 수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저자가 조작적으로 정의한 ‘제국의 현재’ 국면이 시작되는 1980년대 초반부터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신자유주의가 등장했다. 저자는 이 시기에 공공 부문 민영화, 개별 국가의 주권을 제약하는 국제무역협정, 보건의료를 시장화하는 거시경제정책, 다국적기업과 국제금융자본의 개입 등을 특징으로 하는 신자유주의를 통해 보건의료 부문의 전 세계적 재편이 단행됐다고 주장한다.

특히 저자는 신자유주의의 여러 요소 중 국제무역협정이 보건의료 부문에 미친 영향을 주목한다. 저자에 따르면, 1980년 이후 등장한 무역협정들은 대중의 건강을 지키고 자국의 의료 서비스를 온전한 상태로 보호하려는 국민국가의 주권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대다수 개발도상국은 표면적으로는 세계무역기구나 무역협정에 자발적으로 참여했지만, 그들은 초국적 자본가계급이 면밀히 주도한 이 협정들에 가입하지 않을 경우 발생할 잠재적 불이익에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국제무역협정은 보건의료 서비스 자체에 대한 통제와 자국민의 건강을 보호하는 정부 역량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의료와 공중보건에 영향을 미쳤다.

책에서 저자는 앞선 사회의학의 선구자들을 따르며 논의를 이어간다. 일찍이 프리드리히 엥겔스, 루돌프 피르호, 살바도르 아옌데 등 사회의학의 선구자들도 질병의 원인을 사회구조와 모순에서 찾았다. 예컨대, 엥겔스는 19세기 초에 이미 노동자들이 질병에 시달리고 일찍 죽는 근본 원인이 경제적 생산 조직과 사회적 환경에 있다고 봤다. 그는 당시 영국 자본주의가 필연적으로 질병을 발생시킬 수밖에 없는 작업 조건과 생활 조건을 노동자들에게 강제했다고 주장했다.

‘제국과 건강’에서 웨이츠킨은 엥겔스, 피르호, 아옌데의 논의를 정리하며 “공통적으로 이들은 노동자가 반드시 겪지 않아도 되는 질병의 발생과 이른 사망을 자본주의적 생산과 제국 팽창의 고유한 결과로 개념화했다”고 평가했다.

저자는 보건의료를 진보적 방향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몇 가지 참조점을 (제국의) 과거에 진행된 쿠바와 칠레의 대조되는 경험을 통해 제시한다. “제국의 과거에 나타난 칠레와 쿠바의 상반된 역사는 사회의 발달 수준과 관계없이 적용되는 몇 가지 교훈을 제공한다. 첫째, 보건의료는 한 국가의 정치경제체계와 불가분하게 연관된다. 둘째, 보건의료 체계 내부의 문제들은 사회의 더 큰 모순들로부터 생겨나는 동시에 이를 강화한다. 셋째, 사회질서의 근본적 변화가 없다면 보건의료 체계의 점진적 개혁은 지속적 효과를 가지기 어렵다.”

권종술 기자

문화와 종교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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