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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올해 가장 처연하고 정직한 노래
이주영의 첫 정규음반
이주영의 첫 정규음반ⓒ(주)맴맴뮤직무브먼트

그의 노래를 처음 들었던 때가 2010년 즈음이었으니 참 오래 걸렸다. 그즈음 라이브 클럽 빵에서 함께 활동하던 뮤지션들 가운데 적지 않은 이들이 여러 장의 음반을 내놓았을 만큼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싱어송라이터 이주영은 2015년, 2016년, 2019년 드문드문 싱글을 선보였을 따름이다. 어떻게 지내나 싶고, 정규음반은 영영 못 듣게 되나 싶었던 10월의 마지막 날, 반송되었다 돌아온 편지처럼 이주영의 첫 정규음반이 도착했다. 셀프타이틀로 정한 음반 타이틀이 당연하게 느껴지는 이주영의 뒤늦은 음반이다.
음반에 담은 곡은 아홉 곡. 예전부터 부르던 노래들은 빼고, 최근에 만든 노래들을 주로 담았다. 음반 수록곡은 모두 이주영이 썼다. 거의 모든 편곡을 직접 했고, 프로듀서도 자신이 맡았다. 코러스 역시 자신이 했고, 피아노와 신시사이저, 프로그래밍도 이주영이 해냈다. 기타와 베이스, 드럼 연주, 스트링 편곡만 동료 뮤지션들이 담당했다.

팝과 포크 사이에 걸쳐진 음악은 악기를 많이 사용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노래는 이주영이 직접 친 건반과 자신의 목소리로 채워진다. 그런데 부족하다거나 과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주영은 뛰어난 송라이터이며, 훌륭한 보컬리스트일 뿐 아니라 빼어난 건반 연주자로서 모든 작업을 완성도 있게 마감했다. 대체 이렇게 순도 높은 음악을 왜 이제야 내놓았는지 그것이 아쉬울 뿐이다.

모든 작업을 완성도 있게 마감한 이주영의 첫 음반

음반에 담은 노래들 중 어떤 노래도 쉽거나 편안한 상황은 없다. 이주영이 쓴 노랫말 속의 누군가는 계속 후회하고 아파하고 그리워한다. 이주영은 그 쓸쓸한 이야기를 일인칭 화자의 목소리를 통해 드러내는데, 구체적인 상황을 통해 눈앞에 그릴 듯 보여주며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만일 그날 내가 너를 안아줬더라면”하고 노래하는 타이틀곡 ‘나도’, “뿌연 버스 창문 위에 입김을 불어/네 이름 세 글자 또박또박 적다가/눈물이 났어”라고 노래하는 ‘집에 가는 버스’ 뿐만 아니다. “살짝 찡그린 미간/여전한지/장난스런 표정/그대론지” 묻다가, “고마워/이렇게 기억하게 해줘서/내 삶에 스쳐 지나가 줘서/나에게 이렇게 아름다운 봄을 주어서/당신의 시간에 머물게 해줘서”로 이어지는 두 번째 타이틀 곡 ‘조금 늦은 이야기’를 들으면 지나갔으나 지워지지 않은 옛사랑으로 돌아가지 않을 도리가 없다. “무릎을 꿇고/눈을 감고/소리에 집중한/네 등 뒤로/해는 지고/어스름한 노을은 우리를 감싸던/그 오후에”라는 노랫말로 오롯이 둘만의 시간을 기록할 때, 먹먹함으로 떨리지 않을 이 역시 드물다.

“그렇게 힘들면서 왜 네 안의 새를 날아보냈어 난 몰랐어/아무것도 몰랐던 내가 바보였어”라고 노래한 ‘새’, “난 바람에 맞서/걸어갑니다/바람은 나에게 맞서/멈춰섭니다”라고 노래한 ‘바람’, “난 표정이 없어/농담도 진담 같대/난 표현에 서툴러/반가워도 모른 척해”라고 노래하는 ‘보고 싶다고’까지 이주영의 노래는 노랫말을 읽는 것만으로 쉽게 말하기 어려웠던 실패와 좌절, 상실과 침묵의 고통어린 무게를 되살려 압박한다.

자신이 좋은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좋은 사람이 아니더라도 삶은 누구에게나 어렵다. 관계 역시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상처받아 아파하면서도 다시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면서 어긋난다. 세상에 자신은 오직 하나이고, 다른 이들은 모두 타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이기적이기 때문이며, 지금 아는 것을 그때는 절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실패하고 날마다 실패하며 살아간다. 이주영은 혼자 감당하는 실패와 상실의 순간을 주로 노래하면서 상처가 기록한 자신의 실체를 대면하도록 이끈다. 그러나 이주영은 시시비비를 가리고 조언하지 않는다. 다만 그 순간 얼마나 외롭고 고통스러웠는지 노래하고, 그 고통이 지금도 다 아물지 않았다고 고백할 뿐이다. 그러나 그 순간으로 돌아가 피하지 않고 마주하는 일만으로도 고통스러운 이들에게 이주영의 노래는 정직한 슬픔과 절망으로 자신을 마주하며 복기해 자신을 제대로 이해하고 껴안을 수 있게 한다.

경험을 모두 끌어낼 만큼 보편적이며 특별한 이주영의 노래

이주영
이주영ⓒ(주)맴맴뮤직무브먼트

멀거나 가깝거나 후회하거나 후회하지 않거나 노래 속의 상황과 감정으로 이끄는 힘은 그만큼 강력하다. 그 힘은 이주영이 쓴 노랫말에서 나오고, 이주영이 쓴 멜로디에서 나온다. 이주영이 구사한 보컬의 음색과 악기의 합인 사운드에서 나온다. 대체로 슬로우 템포이거나 미디엄 템포인 노래들은 건반을 중심으로 한 어쿠스틱 사운드 안에서 흘러감에도 듣는 이들을 잡아 끌어 헤어 나올 수 없게 만든다. 보컬에 배어 있는 간절함과 그 간절함을 밀도 높게 재현하는 멜로디 때문이다. 서정성을 담지한 건반의 투명하고 섬세한 울림 때문이다. 능력 혹은 실력이라고 불러야 할 음악의 밀도는 ‘조금 늦은 이야기’, ‘오후에’, ‘새’로 이어지는 세 곡에서 듣는 이들을 넉다운 시킬 정도로 아릿하다. 좋은 음악이 되기 위해 많은 장치, 화려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시키는 곡들은 반드시 같은 경험을 하지 않았더라도 다르지 않은 경험까지 모두 끌어낼 만큼 보편적이며 특별하다.

특히 차츰 오후의 시간으로 빨려 들어가듯 노래하는 ‘오후에’는 “눈물이 나/널 보고 있으면/난 자꾸 내가 아닌 것만 같아”라고 혼잣말하는 이의 슬픔에서 헤어 나올 수 없게 만들어버린다. “심장을 안고 있는 듯“한 간절함을 건반 연주와 노래만으로 밀어붙이는 노래는 잠시 노래를 멈추지 않고는 더 들을 수 없게 만들 정도이다. 요동치는 마음을 건반 연주와 보컬로 재현하는 ‘새’ 역시 동일하다. 실제의 통증에 근접하는 노래는 세상 어떤 음악은 감상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안전하게 감상하고 즐김으로써 마무리할 수 없게 하는 노래는 결국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한다. 그 간절함을 기억하는지, 자신이 얼마나 최선이었는지, 자신이 얼마나 자신을 깊게 파고 들어갔는지 되묻는 노래는 ”다음에 봐요/기약 없는 다음에/못봐도 돼요/그럴 수도 있는 거죠“라는 말 속에 배인 깊은 상실감을 놓치지 않는다.

“난 한때 별이었던 것 같다”고 노래하는 과거형 표현에 담은 패배감을 노래하는 ‘별이었던’이나, “길을 잃은 날/손을 대는 모든 것이 재가 되어 툭 떨어지는 날”을 노래하는 ‘새가 재처럼 날고’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가장 몽환적이며 세련된 곡 ‘별이었던’은 싱어송라이터 이주영의 음반을 끝까지 집중하게 한다. 누군가는 여성의 이야기로 듣고, 누군가는 자신의 이야기로 들을 노래는 올해의 어떤 노래보다 처연하고 정직함으로써 자신을 온전히 이해하고 다독여 사랑할 수 있게 하는 노래이다. 이 노래 앞에서 들을 노래가 없다 말하는 일은 무례하다. 2019년 가을은 이주영의 노래를 듣지 않고 통과할 수 없다.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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