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당신들 마음대로 언제든 살 수 있는, 일 년을 쓰고 버려도 되는 기계가 아니에요. 우리를 불법으로 공장에 들여놓고 당신들의 입이 기쁨으로 찢어질 때 우리의 손과 발은 부르트고 우리의 가랑이는 찢어집니다. 우리는 싸디싼 비정규 기계가 아니라, 인간으로 존중받기를 원합니다"(전태일 열사 정신 계승 전국 노동자 대회에서 진행된 '전태일이 말한다' 연극 공연 대사 중 일부)
1970년 11월 13일 봉제 노동자 전태일 열사가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자신의 몸을 불살랐다. 49년 전 전태일 열사가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피운 불꽃이, 2019년 다시 노동자들의 가슴 속에서 타올랐다.
전태일 열사 49주기를 앞두고, 서울 여의도에 모인 노동자들은 "나는 전태일이다"라고 목소리 높였다. 100만명의 조합원이 가입한 민주노총은 '100만의 전태일'이라고 빗대어 표현했다.
9일 오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은 서울 여의도 마포대교 남단에서 '전태일 열사 정신계승 전국노동자대회'를 개최했다. 10만여 명(주최 측 추산)의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전태일의 염원이다, 근로기준법 준수하라", "우리가 민주노총이다. 노동개악 박살 내자"라고 외쳤다.
민주노총은 이날 대회를 통해 ▲노동개악 분쇄 ▲노동기본권 쟁취 ▲비정규직 철폐 ▲사회공공성 강화 ▲재벌체제 개혁 등을 다시 한번 촉구했다. 대회에 참석한 노동자들은 전태일 열사 등 230여 명의 노동자 열사를 기리며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함께 불렀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대회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정확히 오늘부터 임기 절반을 지나 집권 후반기를 시작했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은 "'노동존중 사회' 어찌 돼가고 있냐. 정부는 노동시간 단축 외침에 탄력근로제(이하, 탄근제) 개악안을 던지고, ILO 핵심협약 비준 요구에 노조파괴법을 던졌다"며 "정부가 노동개악 운을 띄우면 국회가 더 많은 개악을 요구하는 '노동절망 사회'의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김 위원장은 "민주노총은 정부와 자본이 탄근제 개악과 노조법 개악으로 우리 100만 조합원과 2천만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짓밟는다면 즉각적이고 전면적인 총파업 투쟁으로 반격에 나서겠다"며 "정부와 정치권과 가진 자들이 절망적 세상을 만들어 왔다면, 전태일의 후손인 우리만큼은 한국 노동자와 민중, 세계 노동운동의 희망을 만들자"고 강조했다.
'우리는 투쟁하고 있다'... 직접 고용, 노동기본권 쟁취 촉구하는 노동자들
우리 사회 곳곳에는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한국도로공사에 1500명 직접고용을 촉구하며, 김천 도로공사 본사와 청와대 등에서 투쟁하고 있는 톨게이트 요금수납 노동자들도 이날 대회를 찾았다.
자회사를 반대했다는 이유로 해고돼, 4개월 간 고공과 거리에서 투쟁했던 톨게이트 요금수납원인 도명화 민주일반연맹 부위원장이 무대 위에 올랐다. 도 위원장은 "근로기준법이 있어도 무용지물이던 49년 전 전태일 열사는 얼마나 이 나라를 원망했겠냐"면서 "대법 판결이 났음에도 법을 지키지 않는 이 나라가 49년 전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도 지부장은 "어제 청와대 앞에서 저희 동지 13명이 연행됐다.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러 가는 길이 이렇게 멀고 험난한 지 몰랐다"고 "이제는 정말 청와대가 이 사태 해결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전교조 법외노조 즉각 취소와 해고자 원직 복직 등을 요구하고 있는 교사 노동자도 목소리를 냈다. 2013년 10월 24일 박근혜 정부 시절, 고용노동부가 보낸 팩스 한 통으로 '노조 아님' 통보를 받았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은 6년 째 법의 테두리에 밀려나 '법외노조'로 살고 있다. '법외노조' 통보에 저항하며 학교로 복귀하지 않은 노조 전임자 34명은 2016년 교단 밖으로 내쫓겨 해직교사가 됐다.
이용기 전교조 경북지부장은 "지난해 청와대는 올해 상반기 까지 (전교조 법외노조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했다"며 "그러나 아직 전교조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경북지부장은 "전교조 법외노조는 박근혜의 국정농단이고, 양승태의 사법농단임이 드러났다"며 "그러나 정부는 아직까지 판단을 못하고 박근혜 정권의 적폐를 계승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총파업을 준비하고 있는 철도 노동자들도 이날 무대에서 투쟁의 결의를 다졌다. 전창훈 공공운수노조 전국철도노동조합 사무처장은 철도 안전을 위해 2020년 시행하기로 한 4조 2교대 근무형태 변경을 위한 안전인력 충원, 생명안전업무 정규직화와 자회사 처우개선 등 노사전문가협의체 합의 이행, 철도 공공성 강화를 위한 철도 통합 등을 촉구했다. 특히 올해 안 KTX-SRT 고속철도 통합을 요구했다. 전 사무처장은 정부가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철도노조는 11월 20일 무기한 전면 파업을 결의할 것임을 엄중히 경고한다"고 밝혔다.
농민들도 이날 대회에 참석해 연대의 뜻을 밝혔다. 전국농민회총연맹 박행덕 의장은 "노동자, 농민, 빈민들이 맨 앞에서 모든 민중과 함께 어깨걸고 다시 한판 싸움을 전개하자"며 "더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민중대회에 모이자"고 말했다.
탄력근로제 확대 등 정부와 국회가 추진하는 노동법 개정에 반대하는 시민사회 단체들은 오는 30일 서울 광화문에서 전국민중대회를 개최한다.
이날 대회에는 필리핀,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태국, 호주, 캐나다 등 해외의 노동자들도 참가해 한국어로 "투쟁"이라고 외치며 국제적인 연대의 뜻을 표했다.
안전모를 쓰고 등장한 람슈메이(Lam, Siu Mei) 홍콩노총 건설노조 활동가는 "한국의 노동운동이 매우 강력하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한국 노동자들이 어떻게 노동자들의 권리를 쟁취하고자 투쟁하는지 어떻게 힘을 발휘하는지 배우려고 이 자리에 왔다"며 "한국에서 노동자의 태도로 사회를 변화시켰다는 사실은 홍콩 노동자들에게도 큰 영감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송환법을 반대하는 대대적인 투쟁 속에서 새로운 노조 건설의 물결이 형성되고 있다"며 "노동권, 자유와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함께 투쟁하자"고 외쳤다. 이에 화답하는 박수가 쏟아졌다.
와타나베 히로시(渡辺 洋) 일본 전노협 의장은 "노동자를 착취하는 기업들, 재벌들, 그리고 정치인들이 우리의 공통의 적"이라며 "나라 간의 관계가 어떻든지 간에 우리 한국 일본 노동자들의 동지애는 깰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단결한 노동자는 패배하지 않는다" 총파업 결의한 노동자들
이날 대회에서는 '전태일이 말한다'는 제목의 연극 공연이 진행됐다.
"50년이 되었습니다. 그땐 맞잡은 손이 없었지만 이제 우리가 이렇게 커졌습니다. 하나가 백만이 되었습니다. 피와 땀으로 투쟁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제 더 낮은 곳에서 더 많은 노동자들과 함께 해야지요. 하나가 되세요. 백만이 하나되면 못할 것이 뭐가 있겠습니다. 투쟁하는 노동자가 이깁니다! 단결한 노동자가 승리합니다!" ('전태일이 말한다' 연극 공연 대사 중 일부)
연극 배우들은 무대에서 내려가 노동자들 사이에 섰다. 이어 이들은 "나는 전태일이다"라고 외쳤다. 이들은 '단결한 노동자는 패배하지 않는다'는 제목의 노래를 부르며 대회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대회에 참석한 노동자들은 "총파업으로 가자"고 외치며 파업가를 함께 불렀다.
대회 이후, 노동자들은 "이런 국회는 필요 없다"며 국회 의사당 앞까지 행진을 펼쳤다.
양아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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