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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경의 삶과 문학]‘사라지는 삶들’
경찰특공대가 2009년 1월 20일 새벽 용산구 한강로2가 한강대로변 재개발지역 4층짜리 건물에서 강제진압 작전을 하던 중 시너가 폭발해 철거민 5명이 사망한 가운데 불에 휘싸인 망루를 지켜보고 있는 농성자들과 강제진압에 동원된 컨테이너와 경찰 2009.01.21
경찰특공대가 2009년 1월 20일 새벽 용산구 한강로2가 한강대로변 재개발지역 4층짜리 건물에서 강제진압 작전을 하던 중 시너가 폭발해 철거민 5명이 사망한 가운데 불에 휘싸인 망루를 지켜보고 있는 농성자들과 강제진압에 동원된 컨테이너와 경찰 2009.01.21ⓒ김철수 기자

용산구 한강로2가, 용산 4구역 재개발지역의 남일당 상가건물 옥상, 불타는 망루에서 추락한 국숫집 세입자 ‘한기 씨’가 세상에서 사라졌다. 이만교 작가의 신작소설 <예순여섯 명의 한기 씨>는 그를 기억하는 예순여섯 명의 목소리를 통해 ’사라진 한기 씨‘를 증언한다.

그들의 증언에 의하면,

임한기, 그는 험한 공사장에서 서툴지만 열심히 배우고 일하는 대학생이었고, 등록금을 벌기 위해 새벽부터 밤까지 노동에 몸을 파는 도시의 빈민이었다. 일 년을 꼬박 일해 모은 복학자금을 할머니의 수술비로 내놓은 착한 손자였고, 도박장으로 꾀어내 돈을 모두 잃게 속임수를 쓴 동료를 끝까지 믿는 순진하고 어리숙한 청년이었으며, 사랑에 심장이 뛰는 청춘이었다. 일당이 많은 알바자리를 따라 노조 농성장의 용역깡패 짓까지 하게 되지만 다친 친구를 보고 노조와 충돌하여 큰 부상을 당하기도 하는 ‘의리’있는 사람이었다. 그 부상의 대가로 경비업체의 도움을 받아 재개발 소문이 도는 곳에 국숫집을 개업하여 그는 그 도시, 재개발 예정지역인 용산 4구역의 ‘세입자’가 된다.

‘재개발이 일 년만 늦춰졌어도 돈 좀 만졌을지도 모를’만큼 그는 최선을 다해 정직하게 일했다. 그때까지의 소설 속 임한기는 우리가 알고 있는, 어쩌면 살 만한 미래가 올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기대어 고된 노동의 삶을 하루하루 일으켜 세우는 평범한 서민의 모습이었다. 적어도 도시개발이라는 명분으로 국가가 그의 삶을 훼손하고 약탈하지 않는다면, 위임받은 시공회사가 상가 세입자에게 보상해야 할 돈으로 용역을 써서 그들의 삶을 위협하고 이 도시 밖으로 내몰지 않았더라면, 그들을 보호할 법이 있었다면, 공권력이 국민을 죽이는 폭력에 동조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오늘 아침의 ‘우리’였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용산 참사와 관련된 기사, 뉴스, 영상물, 인터뷰 등을 바탕으로 구성되었다.’
-<예순여섯 명의 한기 씨> ‘일러두기’ 중

작가 이만교는 2009년, 국가폭력에 의해 진압경찰 1인, 철거지역 세입자 5명이 불에 타 숨지고 24명의 주민들이 부상당한 ‘용산 참사’의 현장에서 ‘젊은 작가 69회의’의 활동에 참여한다.

소설에서와 같이 그해 용산 4구역 철거지역의 세입자들은 적절한 이주보상대책을 요구하며 오랜 시간 용역직원들에게 시달리다가 기어이 망루로 오른다. 농성을 시작한지 단 하루 만에 공권력은 ‘경찰특공대’를 투입해 잔인하게 진압한다. 인화성 물질이 가득한 옥상 망루 위의 사람들을 향해 왜 그토록 위험하고 신속한 진압이 필요했는지, 화재 발생의 원인은 무엇인지, 죽음의 원인은 무엇인지, 철거지역 세입자들에 대한 대책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참사의 책임자는 누구인지, 그 어떤 진실도 밝혀지지 않은 채, 집을 잃고 가족을 잃은 철거민과 그 구조의 사슬 가장 밑바닥에 있던 용역업체 직원만이 기소되어 재판에 넘겨진다.

이만교 작가의 소설 <예순여섯 명의 한기 씨>
이만교 작가의 소설 <예순여섯 명의 한기 씨>ⓒ기타

참사의 진실을 요구하고 희생자와 유가족을 위로하는 ‘젊은 작가 69회의’ 행사에서 작가는 당시 사건과 관련해 감옥에서 4년을 보낸 철거민 대책위 위원장의 아버지이자 망루의 화재와 진압 속에서 숨진 ‘이상림 할아버지’를 추모하는 서간시를 낭독했다.

‘이 나라가
할아버지의 진실을 감추는 바람에,
저는 그만 제가 사는 이 나라의 진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상림 할아버지께/이만교 작가의 서간시 중>

진실은 그날의 불길 속에 묻히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은 용산의 참사는 10년이 흘렀다. 그리하여 그조차 잊었을 것 같았던 어느 날, 작가는 그가 만난 예순여섯 명의 목소리를 빌려 우리가 알거나 알지 못하는 우리 시대의 삶에 대해, 그리고 우리가 알거나 알지 못하거나 알려고 하지 않는, 이 도시에서 벌어지는 참사에 대해 묻고 기억하고 증언한다.

‘대부분 작가적 상상력에 의한 허구’라고 책의 앞머리에 밝히고 있지만, 소설적 허구가 보여줄 수 있는 진실의 힘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된다면, 이 무겁고 부담스러웠을 글쓰기에 대한 작가의 태도와 노고가 무엇이었을지 가늠할 수 있으리라. 적어도 작가가 직면하여 보여준 참사의 기록에서 우리는 재개발지역 사람들이 누구이며 왜 스러져가는 땅에서 목숨을 걸어야 하는지, 그들에게 가해지는 구조적 폭력이 무엇인지 낱낱이 알게 되리라.

다시, 불타는 망루에서 사라진 ‘허구의 인물’ 임한기에 대한 예순여섯 명의 추측으로 보자면,

그는 ‘순수한’ 철거민이었는지, 보상금을 올리기 위해 과격한 행동을 일삼은 불순분자였는지, 그로 인해 철거민들이 위기에 빠진 것인지, 용역 복장으로 망루에 숨어들어 스스로 투신, 혹은 추락해 경찰의 잔인한 진압에 빌미를 준 과격한 데모꾼이었는지, 애초에 진압을 유도한 프락치였는지, 열사였는지, 그도 아니면 ‘처음엔 정당한 보상비를 받으려고 싸우지만, 나중엔 화가 나서 싸우고, 끝내는 억울해서 싸울 수밖에 없는’ 한 철거민이었는지, 그에 관한 진실은 드러나지 않는다.

그리하여 ‘한기 씨’는 진실이 묻힌 채 수많은 소문과 의혹과 오해와 누명으로 덮인 ‘용산 참사’의 실체, 그 주인공이 되어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작가에게 참사는 계속되어야 할 질문으로 남아있었던 것일까. 소설 속 사라진 한기 씨는 끝내 시신으로도 살아서도 나타나지 않는다.

‘앞으로도 계속 임한기 씨를 아는 분이 있다면 찾아가 만날 생각입니다.
그러다 보면 알게 되길 바랍니다.
그때 그가 우리에게 하려고 했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예순여섯 명의 한기 씨>

누군가 우리 중 어떤 삶은 ‘어차피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던가. 하지만 불법과 폭력으로 우리의 삶을 세상 밖으로 내몰아 끝내 사라지게 한다면 또 다른 이만교가 나타날 거라고, 변방의 힘없는 문학의 이름으로라도 우리는 저항할 거라고 이 책은 경고하고 있는 것일까.

이만교 작가

1998년 문학동네 신인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저서로 장편소설 <결혼은, 미친 짓이다>, <아이들은 웃음을 참지 못한다> 등이 있고, 제24회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이수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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