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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보] 정치에 냉소적이었던 정치학도가 ‘정치 보드게임’을 만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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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가는 사람을 붙잡고 '혹시 정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라는 질문을 던져보자. 아마 10의 8은 "그놈들 싸우는 모습 좀 그만 보고 싶다"라는 답변이 돌아올 것이다. 사람들에게 각인된 정치는 대개 국회의원들끼리 고성으로 싸우는 모습으로 각인돼 있기 때문이다.

'정치'하면 떠오르는 부정적인 이미지들을 조금이나마 개선하고, 시민들의 정치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나선 이가 있다. 정치소셜벤처 칠리펀트 박신수진(34) 대표다. 박신 대표는 '어떻게 하면 정치를 쉽고 재미있게 가르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정치를 게임으로 배우는 정치수업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주로 뉴스를 통해 정치를 배우게 되잖아요. 그러면 일부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사건·사고들 위주로 정치를 접하게 될 수밖에 없고, 이게 과연 정치를 교육하는 올바른 채널인가 라는 문제 의식을 느꼈어요. 정치를 조금 긍정적이고 건강한 이미지로 바꾸는 방법은 없나 고민하다 정치도 게임으로 만들면 즐겁게 시작할 수 있겠다 싶어서 시작하게 됐습니다."

CHILLI PHANT 박신수진 대표가 서울 성동구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하고 있다.
CHILLI PHANT 박신수진 대표가 서울 성동구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하고 있다.ⓒ정의철 기자

칠리펀트에서는 정치교육과 함께 정치참여, 정치지원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정치의 전 과정을 게임으로 배울 수 있도록 만든 보드게임. 이 보드게임은 ▲국가원수 ▲공직사회 ▲의회정치 ▲사법체계 등 4종류가 있는데, 게임 참가자들은 각각 대통령과 공무원, 국회의원, 법조기자가 되어 해당 영역에서 실제로 어떤 일들이 이뤄지는지 체험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예를 들어 '의회정치' 게임의 참가자들은 직접 국회의원이 되어 각 상임위원회 회의를 개의하고, 법안을 발의하고, 예산안을 심사하면서 국회의 역할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된다.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실제 국회에서 볼 수 있는 모습처럼 다른 당과 협치도 해야 하고, 날카로운 질의로 법안 통과를 저지할 수도 있다.

"보통 뉴스에서 볼 수 있는 국회의원의 모습은 맨날 싸우기만 하고, 방해하는 단편적인 모습들이잖아요. 그러다 보니 정치가 '막장드라마'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이런 모습들 때문에 정치를 싫어하게 되고, 정치를 단순히 피곤한 것이라고 더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실제 보드게임을 하면 국회의원들이 의정활동을 어떻게 하는지 체험하게 되니까 나중에 뉴스에서 (단편적인 모습만) 봤을 때도 현재 어떤 상황인지 그 맥락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거죠."

정치 보드게임(의회정치 편)을 하는 모습.
정치 보드게임(의회정치 편)을 하는 모습.ⓒ칠리펀트 제공

물론, 처음부터 쉬웠던 것은 아니다. '정치를 수업한다'는 설명에 "우리는 정치수업은 하지 않는다"는 거절도 숱하게 들었다고 한다. "진보 성향의 수업이냐, 보수 성향의 수업이냐"는 질문도 빠지지 않았다.

"저희가 정치수업을 하면서 조심하는 것들은 어떠한 이념이나 진영 논리를 절대 넣지 말자는 것이었어요. 아직까지는 정치라는 말만 들어도 부담스러워하는 인식들이 꽤 견고한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사람들이 자기 자신만의 비판의식을 가지려면 기본적인 시스템은 알아야 하잖아요. 그래서 정치라는 시스템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알려주는 민주시민 교육의 일환이라는 부연 설명을 자주 한답니다."

보드게임에는 실제 정치에서 사용하는 용어들이 그대로 쓰인다. '국가원수' 게임에서는 헌법 내용까지 들어가 있을 정도다. 특정 연령층을 겨냥하고 만든 것은 아니지만 중·고등학생 등 주로 청소년들이 수업의 대상이 된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이해하기 어렵지 않을까 우려도 들었지만, 박신 대표는 "당연하다"면서도 "그게 저희가 (보드게임을) 교구로 만든 이유"라고 설명했다.

"사실 일반적인 게임을 생각하면 아무리 용어들이 어려워도 한두 번 하다 보면 그 단어들이 익숙해지잖아요. 사실 어려운 단어라기보다 일상에서 자주 접하지 않아 익숙하지 않을 뿐인 거죠. 우리가 어려워한다고 해서 (실제 사용하는) 그 단어들이 바뀌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요, 우리가 그 단어를 알아야만 정치인들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게임의 방법은 쉽게 하되 단어들은 풀어서 설명하지 않고 그대로 가져왔어요."

정치 싫어했던 정치학도의 인생을 바꿨던
세월호 참사와 촛불혁명

CHILLI PHANT 박신수진 대표가 서울 성동구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하고 있다. 2019.11.12
CHILLI PHANT 박신수진 대표가 서울 성동구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하고 있다. 2019.11.12ⓒ민중의소리

박신 대표는 정치와 가까우면서도 멀었던 삶을 살아왔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정치를 전공했던 정치학도였지만, 그 역시 정치에 냉소적인 사람 중 하나였다. "나는 정치 싫어해", "나는 당색이 없는 사람이야"라는 말을 자랑스럽게 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를 거치면서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무엇을 해야 하긴 할 텐데, 현실에 관심을 두지 않아 왔던 터라 무엇을 어떻게 비판해야 할지도 몰랐던 시간이었다.

"원래 저는 정치혐오가 되게 심했어요. 정당들 나눠서 국회의원들 싸우는 게 너무 싫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현실에 나와보니 정치에 대해 모르니, 무엇을 어떻게 비판해야 할지도 모르겠더라고요. 세월호 사건을 겪고 나서는 '나라가 이렇게까지 되면 안 되는데, 내가 뭐라도 해야 하는 데'라는 생각이 더 커졌고, 그 시점에 많이 바뀐 것 같아요."

결정적인 계기는 20대 총선이었다. 박신 대표는 총선 결과에 대해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실망스러웠다고 콕 집어서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민심과 괴리된 선거 결과였었다고 회상했다. 이때의 실망감은 결국 박신 대표가 정치교육 사업을 하도록 이끌었다.

"정확히 말하면 20대 총선이 끝나고 난 다음에 굉장히 많이 실망을 했어요. 기대했던 것보다 민심이 반영되지 않은 결과여서 굉장히 많이 놀라기도 했고요. 스스로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되짚어보기도 했었죠. 당시 제 결론은 유권자들이 조금 더 제대로 정치 시스템과 제도를 알았더라면 그걸 이용하려는 정치인들에 맞서서 전략적인 행동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었죠."

CHILLI PHANT 박신수진 대표가 서울 성동구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하고 있다.
CHILLI PHANT 박신수진 대표가 서울 성동구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하고 있다.ⓒ정의철 기자

하지만 촛불혁명과 장미대선을 거치면서 사회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었다. 시민들의 정치참여 욕구도 점점 더 커졌고, 정치가 나와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점점 줄어가는 추세다. 시민들 누구나 광장에 나와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시대로 변하고 있다.

"시민들의 정치교육에 대한 욕구도 점점 커지고 있다고 느껴요. 예전에는 '정치는 정치인만 배우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정치는 일상생활에서도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더 많이 하는 하는 것 같거든요. 이제는 (정치인이 아닌) 일반 시민도 '정치를 배워야지'라는 분위기가 더 커졌다고 느껴요."

박신 대표가 앞으로 이루고자 하는 꿈은 무엇일까.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뗀 그는 칠리펀트의 슬로건이기도 한 "대한민국 정치교육의 놀이화"라고 자신 있게 답했다.

"수학 공부나 영어 공부도 중요하죠. 그런데 참여형 정치 수업도 정규교육과정에 포함돼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 모두가 시민이니까, 시민으로서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서도 배워야 하지 않을까요. 시민들이 정치에 참여하는 방법이 투표 외에도 다양한 방법들이 있다는 것을 널리 알릴 때까지 다방면으로 활동해보겠습니다."

남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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