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14일, 청소년·청년들이 학벌주의 사회의 병폐를 지적하며 대학 입시 거부 선언을 했다.
이날 오후 '대학입시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 주최로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2019 대학입시 거부 선언'이 진행됐다. 고등학교 3학년 학생, 17~18세 청소년, 20대 청년 등 총 6명이 선언에 나섰다. 가족의 반대와 일정 등의 이유로 현장에는 3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정시든 수시든 입시경쟁 반대한다”, “학력·학벌 차별, 입시경쟁·고교서열 뿌셔뿌셔”, “무한경쟁은 교육이 아니다” 등 구호를 외치며 자신들의 뜻을 알렸다.
청소년·청년들은 각각 준비해 온 선언문을 읽었다. 이들은 선언문을 통해 자신이 대학입시거부에 나선 이유를 밝혔다.
참석하지 못한 이들 중 한 사람은 영상을, 두 사람은 작성한 선언문을 주최측에 보내왔다. 참석한 이들이 선언문을 대독하며 마음을 전했다.
경남 밀양에 사는 박경석(19)씨는 가족의 반대 등으로 이날 거부선언에 참여하지 못했다. 그는 영상을 통해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대학입시와 경쟁사회를 거부한다"고 밝혔다.
박 씨는 "제가 태어나고 자라온 고향은 경남 밀양인데, 수십년을 살아온 시골 마을에서 벌어진 폭력적 송전탑 건설에 저항하는 고령의 주민들을 만났다. 정리해고과 비정규직으로 내몰려 공장에서, 거리에서 싸우는 노동자들도 만났다. 학교와 세상에서 억압당하고 자신의 권리를 빼앗기고 사는 청소년들도 만났다"라고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놨다.
이어 "도대체 이토록 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불러오는 근원이 무엇인지 궁금했다"면서, 자신이 찾은 해답은 "경쟁체제였다"고 밝혔다.
박 씨는 "세상의 모든 것을 여과없이 직시하고 스스로 경험하고 판단해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교육과 어떤 선택도 무시받지 않고 존중받을 권리를 요구하기 위해 대학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고등학생 3학년 해별(18) 씨는 작년 영어 수업시간에 있었던 일을 말했다.
그는 앞자리에 앉은 친구 둘 중 한 명이 수업을 듣다가 졸자, 선생님이 몹시 혼을 냈다고 전했다. 당시 선생님은 '중하위권이면 더 올라갈라고 열심히 수업을 들어야지, 왜 졸아서 상위권 친구한테 폐를 끼치냐? 짝이 자면 같이 잠 오는 거 모르냐? 민폐 주지 말고 그럴거면 뒤로 가서 앉아'라고 말했다고 한다. 선생님의 말을 들은 친구는 눈물까지 흘렸다고 했다.
해별 씨는 "그 학생의 교육받을 권리는 어디로 간 거냐? 공부잘하는 친구를 좋은 대학 보내려면 이 정도의 차별은 눈 감아줘야 하는 거냐? 이렇게 철저히 대학 가는 사람과 안 가는 사람, 좋은 대학 가는 사람과 안 좋은 대학 가는 사람을 분리하고 차별하는 게 고등학교의 목적인 거냐"고 비판했다.
그는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폭력과 차별들이 입시 경쟁 때문에 정당화 되고 있다는 것을 전하고 싶었다"며 "더 이상 학교 안에서 학생들이 대학 때문에 차별받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눈재(17) 씨는 "나의 가치는 점수화할 수 없다"며 "평가당하는 삶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그는 일례로 "시험이 끝난 날, 시험 결과를 확인할 때 우는 학생들이 많다"라며 "그건 그 학생들이 성숙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그것이 자신의 가치가 되기 때문"이라며 사회 분위기를 비판했다.
그는 "제가 스스로 생각해 표현한 언어들은 '말대꾸'가 되었고, 차별적 발언에 문제제기를 하면 '유난스러운 아이'가 됐다"면서 "저에 대한 존중은 기대할 수 없었고, '권력에 굴복하라'는 말은 예의로 포장돼 귀에 박히도록 들어야 했다"고 토로했다.
눈재 씨는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건 학생들의 생각엔 관심이 없고 성적에만 중심을 두는 입시제도 때문"이라며 "이 구조에 조금이라도 균열을 내고자, 또 스스로의 가치를 쓸모에 두지 않고 살아가고자 입시 거부 선언을 한다"고 밝혔다.
수능을 4번 봤다고 밝힌 윅비(20) 씨는 "나를 괴롭히는 것들을 내가 노력을 안해서 극복하지 못한 것이고, 노력하면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라며, "그래서 수능 만점을 받는 게 저에겐 성공의 징표이자 생존의 방식이었다. 그렇지만 4번의 시험 동안 한 번도 만점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는 "대학 안 가도 좀 살만해졌으면 좋겠다"며 "이제 명문대와 수능 만점이라는 환상을 거부한다"고 말했다. 이어 "애초에 좋은 대학을 가야만 빈곤이나 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게 이상하다"며 "대학을 거부해도 살아갈 수 있길 바라며, 나는 대학을 거부한다"고 선언했다.
비인가 대안학교를 졸업한 청년 현수(20)씨는 "서울에 있는 대학을 다니고 있는 형에 비해 저는 부모님의 눈엣가시였다. 부모님의 압력에 견디지 못하는 순간들도 종종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최종학력이 중졸이라 어디 지원서를 넣어도 거들떠 보지 않았다"라며 "이러다간 굶어 죽겠다 싶어 고졸로 학력을 속이고 겨우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그런데 거기서도 사장님한테 대학생이 아니란 이유로 온갖 차별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현수 씨는 "이게 제가 대학을 가지 않은 탓이냐"면서, "왜 우리나라에서는 학력이 낮다는 이유로 차별이 행해지고, 나는 그런 시선을 두려워 해야 하냐"고 따져 물었다. 이어 "이 학벌주의 사회의 교육 시스템은 분명히 잘못됐다. 이제는 바뀌어야 할 시간이 왔다"며 "저는 저를 위해, 그리고 입시로 고통받는 모두를 위해, 대학입시 거부를 선언한다"고 밝혔다.
청소년·청년들은 선언 이후, '줄세우기 교육 반대'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대한민국 정부'라고 적힌 종이를 든 사람이 '수시 비율을 늘리겠다', '정시 비율을 늘리겠다'는 취지로 말했다. 그러자 가면을 쓴 사람들이 각각 수시, 정시라고 적힌 종이 앞에 줄을 섰다. 정부의 말 한마디에 따라 입시 경쟁에 내몰리고 줄세우기 당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 순간 가면을 쓴 이들 중 한 명이 "줄 세우기 이제 그만!"을 외치며 뿅망치로 정부를 때렸다. 이어 "이제 우리 등급을 벗자"라고 말했다. 가면을 쓴 이들은 다함께 가면을 벗었다. 이어 퍼포먼스에 참여한 이들은 다함께 "경쟁 아닌 교육을 원한다"고 외쳤다.

양아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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