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보기
댓글보기
“입시 공정성이 문제가 아니라, 입시 그 자체가 문제”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2019 대입수능시험일 맞이 공정한 입시제도란 가능한가?’ 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다.   2019.11.14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2019 대입수능시험일 맞이 공정한 입시제도란 가능한가?’ 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다. 2019.11.14ⓒ김철수 기자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14일 교육·청소년·시민사회 단체들이 모여 "공정한 입시제도란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사회에 던졌다. 이들은 '공정한 입시제도' 마련에 골몰하기 이전에 '차별과 경쟁 없는 교육'을 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오후 대학입시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이하, 투명가방끈),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서울지부, 참교육을위한 전국학부모회 공동 주최로 '공정한 입시제도란 가능한가?:대입수능시험일 맞이 토론회'가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개최됐다.

'필요한 것은 공정한 경쟁이 아니다'
"수시냐 정시냐? 입시 그자체가 문제"

지난해 대학입시를 거부한 윤서 투명가방끈 활동가는 '필요한 것은 공정한 경쟁이 아니다'라는 주제의 발제를 통해 차별을 만드는 과정이 된 한국 교육 현실을 지적했다.

윤 활동가는 "아무리 입시 제도의 공정성을 추구해도 근본적인 문제들은 바뀌지 않는다"며 "그보다 먼저 바로 잡아야 할 건, 경쟁을 공정하게 만들 수 있다는 신화"라고 꼬집어 말했다. 그는 "고소득층, 상위층의 출발선이 어디서부터 다른지 상기시켜 줬을 뿐"이라며 "애초에 모두가 납득하는 경쟁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윤 활동가는 "경쟁은 교육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상혁 일하는청소년연대(준) 활동가는 '입시제도의 근본적 변화의 필요성과 방향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입시의 공정성과 수시·정시 논쟁 속에서 "청소년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위한 자리는 없었다"면서 "수시냐, 정시냐, 그것이 문제가 아니고 입시 그 자체, 그것이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 활동가는 "현행 교육과정과 정책은 교육부가 단독으로 결정해 통보하는 방식"이라며 "그 교육과정과 정책의 대상인 청소년 당사자들의 목소리는 정작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는 "비청소년들이 만든 교육과정과 교육정책은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데에 실패해 왔다"며 교육 정책 결정 과정에 청소년들이 참여하고,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담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날 토론회엔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도 참여했다. 이들은 입시제도에 대해 묻지 않고, 우리 교육이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1. "처음 시작하는 고교학점제여서 뭐가 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갑자기 정시 확대한다고해서 너무 정신이 없다. 3학년 2학기가 되자 (저는) 정말 학교에서 하는 것이 없었다. (학교에서는) 제가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애들을 도와주는 거라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교실) 그 속에서 저절로 '투명인간'이 된다는 말이 공감이 됐다. 계속 바뀌는 정책 속에서 고통받고 있는 청소년들을 위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게 필요하다."- 조 모 학생

#2. 3학년 2학기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포기를 하는 학생들이 되게 많은 것 같다. 수업시간에 보면 1교시부터 7교시까지 자습을 하는데 , 많은 애들이 하루 종일 잔다. 그런걸 보면서 되게 안타깝고 이런 저런 생각들이 든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무력감, 체념에 빠지는 거 같다. 우리들이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경계선을 쳐놓고 거기를 넘어오는 사람들을 방어하려는 것 뿐이란 느낌을 많이 받았다. 점점 개별화 되는 것을 느꼈다." - 고등학교 3학년인 서 모 학생

서울지역 고교 교사인 조영선 전교조 조합원은 "용이 될 필요가 없는 나라는 꿈이냐?"라고 질문을 던졌다.

조 교사는 "'불공정'에 대한 분노 역시 입시를 준비할 능력과 집안 배경이 있는 사람들끼리의 분노였다"며 "'출발선에서의 평등' 논리에는, 출발선까지 가지도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평등은 삭제되어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정부가 전국민을 위한 정부라면 대학입시를 견딜 수 있는 여력이 있는 국민들을 위한 제도가 아니라 전체 국민을 위한 제도를 설계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라고 비판했다.

"정시냐 수시냐? 패자부활전 없는 입시냐 희망고문 입시냐?"

시민단체 '대학입시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이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19 대학입시거부선언을 발표하고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19.11.14
시민단체 '대학입시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이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19 대학입시거부선언을 발표하고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19.11.14ⓒ김철수 기자

조 교사는 "수능 시험이 시행된 지 25년, 표준점수를 통한 상대평가화, EBS 연계 등을 거쳐 암기 식은 아닌 듯 하지만 암기하면 더 빨리 풀 수 있고, 반복해 문제를 풀고 익숙해져야 실력에 걸맞는 성적을 얻을 수 있는 시험이 됐다"며 "수능형 문제풀이에 익숙해질 시간을 벌기 위해, 적어도 고2 여름방학 때부터는 대부분 수능 과목의 지식 습득을 위해 사교육에 몰입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학교에서 수능 준비를 해 주려면, 선행학습을 한 학생들의 수준을 기준으로 수업이 진행되어야 한다. 실제 몇몇 과목은 '건질' 학생들만 건지기 모양새로 진행되기도 한다"면서 "고등학교세선 대다수의 학생들이 콘크리트처럼 자고, 몇몇의 학생들만 수업을 듣는 장면이 연출된다"고 토로했다.

조 교사는 수시에 대해 "고 1부터 매번 보는 중간고사와 기말고사가 학생들의 미래를 결정하는 구조는 학생들에게 단 한순간도 뒤돌아보면 안 된다는 메시지를 준다"며 "내신 공부에 최선을 다했지만 원하는 성적을 얻을 수 없었던 학생들에게 수시는 패자부활전이 없는 입시"라고 평가했다.

이어 "일부 학생들이 정시 확대를 환영하는 것도 이러한 일상적 경쟁과 패자부활전 없는 입시에 대한 반감 때문"이라며 "경쟁자를 매일 눈앞에서 마주하며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는 것보다는, 보이지 않는 수십만명의 경쟁자들 사이에서 수능 바로 전까지 성적을 올릴 수 있다는 희망고문을 견디는 것이 더 쉬울지 모른다"고 말했다.

"대학서열화 해소 공론화, 출신학교 차별금지법 제정해야"

김태훈 사교육걱정없는 세상 정책위원회 부위원장은 입시 경쟁의 근본원인을 '대학 서열화'와 '고용에서의 학력차별'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대학서열 문제부터 우선 공론화부터 하자고 촉구했다. 또 고용에서의 학력차별을 극복하기 위해 '출신학교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 부위원장은 지금의 입시 현실에 대해 "앉아서 영화를 볼 수 있는데, 다들 일어서서 영화를 보고 있는 것"이라며 "앉아 있으면 나만 못보게 되니까, 결국은 같이 앉자고 얘기를 해야 한다"고 빗대어 말했다.

그는 "이 사회에는 일어선 사람들이 기득권을 가지고 가치관을 형성하며, 그래서 그들의 목소리가 더 크다"며 "예를 들면 자사고 문제가 있을 때 자사고 학부모들이 수천명 씩 나온다"고 짚었다. 이어 "그들에게 '특권 학교를 만들어 교육을 망치고, 이기적인 욕심을 챙기는 것 아니냐'고 일반고 학부모들이 말하고 더 나와야 한다. 그런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윤경 참교육학부모회 서울지부장은 '상하만 있고 중간은 없는 나라, 판을 뒤집을 때다'라는 주제로 발제했다.

이 서울지부장은 "최근 각 고교에 수능 이후 자살예방 교육 강화 내용이 담긴 '수능 관련 학생사안 발생 대처 공문'이 내려왔다"라며 "수능 성적을 비관해 극단적인 선택을 할 것 같은 학생들을 조기에 발견하고 학부모님과 함께 철저히 관리하라는 지침"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대학입시에는 절대로 공정을 기대할 수 없다"며 "게다가 우리에겐 사다리도 없고 헬기도 허용되지 않는다"고 꼬집어 말했다. 이어 "고교서열화를 없애고, 내신과 수능을 절대평가로 전환하고, 대학서열화를 철폐하는 것의 순서를 한번 바꿔보자"고 제안했다.

양아라 기자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작은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이시각 주요기사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카카오스토리2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