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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남호 교육칼럼] 학생의 교사폭행,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가?

2019년 10월 24일 대구의 한 중학교에서 남학생이 잠을 깨운다고 여교사를 주먹으로 무차별 폭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학생은 분을 참지 못하고 쓰러진 교사를 올라타 주먹으로 더 때려 얼굴 뼈가 함몰되었다고 한다(관련 보도:2019.11.16일자 파이낸셜뉴스).

지난 해 2018년 8월 24일 인천 서구의 한 고교에서 남학생이 60대 교사를 폭행하는 사건도 있었다. 중고생들이 잠을 깨우는 교사에게 폭언을 하는 것은 이미 더 일상화되어 있다. 부모와 더불어 교사는 학생들의 성장과 발달에 가장 직접적이고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는 소중하고 의미깊은 존재 아닌가?

그런 점에서 부모 및 교사에 대한 폭력은 더 충격적이다. 그러나 넓게 보면 교권과 더불어 학생인권이 모두 인권의 영역에서 중시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교사의 학생폭력도 동일한 비중으로 경계할 대상임은 분명하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근대 이전의 교훈적 언명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이 사건은 우리 교육의 병리적 상황을 나타내는 징후라는 점에서 심각한 고려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이 학생은 마땅히 중한 처벌의 대상이다. 즉 민주당 박찬대 의원이 발의하여 개정되고 10월 17일부터 발효되는 교원지위법에 의해 특별교육, 심리치료, 봉사, 출석정지, 학급교체, 전학 또는 퇴학 등의 형태로 처벌을 받을 것이다.

교사와 학교의 교육과정 운영의 자율성은 있는가?

교사가 잠자는 학생을 깨우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가능성을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교사가 교과공부 이외에 달리 미래전망을 할 수 없는 옹색한 현실이다. 한국의 교사 일반이 그러하듯이 "적어도 내가 맡은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 제대로 된 직업을 구하지 못하고 비정규직을 전전하거나 무직자로 남게 하고 싶지 않다!"라는 생각을 거의 공유하고 있다. 이 때 교사들이 학생들보다 다급해진다.

여기서 교과성적에 의해 취득하게 되는 직업이 아닌 기능 및 기술계통 관련 직업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 교사의 의식에 투영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태로 교육과정을 배열하여 학생들의 흥미와 특기를 키울 기회가 차단되어 있음도 파악할 수 있다.

예컨대 사회적으로 유용하고도 흥미로운 목공수업, 화분재배, 자동차 분해 및 간단한 수리 실습, 용돈으로 주식투자 하는 방법, 조별 유튜브 제작 수업 등을 한다면 아이가 잠을 잘 수 있을까? 혹은 교사와 함께 하는 축구, 농구 등 각종 스포츠 활동을 하며 땀을 씻어준다면 아이가 교사에게 그렇게 반항적일 수 있을까?

여기서 교육과정 운영의 자율성이 교사 및 학교에 부여되어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학교는 불필요하게 바쁘다. 미국의 경우에는 적어도 면학분위기 해치는 경우 거의 용납되지 않는다. 미국에서 잡담이나 장난하며 면학분위기를 흐리면 이내 교장에게 인계되어 스쿨폴리스와 함께 대응조치를 취한다.

대신 미국의 초중등 교육투자가 상황에 따라 편차가 심하여 교사들이 상담교사와 보건교사를 배치하도록 파업을 하는 경우가 있긴 하다. 2018년 10월에 미국 시카고에서 교사들이 이러한 교육복지 차원에서 투자가 열악하다고 파업을 했다. 연구에 따르면 미국 학교의 39%만이 전일제 보건교사를 두고 있다. 상담교사의 경우 2015~2016년 미국 학교상담협회에서는 250명을 추천하고 있지만, 현실은 교사 1명이 평균 464명을 담당하고 있다.

파업에 참가한 한 학교 카운셀러 '베카레짜 이슬라' 여교사는 650명을 책임지고 있는데, 맡은 학생을 줄이면 자신은 학생 폭력이나 비행을 바로잡아 훌륭한 시민을 만드는데 그 효과를 더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2019.10.24일자 뉴욕타임즈. 기사제목:Striking Teachers Demand Counselors and Nurses).

승진제 교장제도가 학교에 주는 악영향은?

둘째, 지금도 교장들이 뒷짐을 지고 복도를 순회하며 교사들의 수업장면을 엿보는 경우가 있다. 교장들은 이를 자신의 본분을 다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교사들의 입장에서는 감시와 통제로 받아들이기 쉽다. 교사가 진도에 맞추어 수업하기도 버거운데 잠자는 아이, 떠드는 아이까지 지도하기를 바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기대가 과한 것이다.

만일 그대로 수업을 진행하면 나중에 교장으로부터 자는 아이나 잡담하는 아이를 방치하는 것은 교사의 도리가 아니라는 판에 박힌 말과 함께 질책을 받기 쉽다. 초임 교사 시절에 교장의 교내 순회를 경험하였다면 이후 잠재의식 속에 자리 잡아 늘 수업시간이면 자기검열에 익숙해진다. 그러면 잠자는 아이는 그대로 둘 수가 없다.

수업분위기를 만들 책임이 전적으로 교사 개인에게 짐 지워져 있는 것은 현재의 교장승진제가 만들어내는 통제적 분위기하에서 가능한 일이다. 지금도 승진대열에 합류하는 교사들이 적지 않다. 교장승진제는 교사들이 부장교사 경력, 형식적인 현장연구, 교실수업과 직접 관련이 없는 각종 행정업무 처리경험으로 점수를 챙겨 승진하는 것이다.

교장으로 승진하고자 욕망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교육과 상담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것을 단념하고자 결심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것이 일반 회사의 승진과 교직사회의 승진간의 단적인 차이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평교사로 남을수록 학생 이해력과 수업능력이 더 앞선다고 말할 수 있다.
교육 선진국에서 교장이 권위는 적고 전입생에 대해 학교를 안내하는 것 등 실무적인 일이 많아 교장이 공석인 경우가 드물지 않다. 그러나 한국은 교장이 되려고 줄을 서 있다. 그리고 이 승진욕망을 만들어내는 주요 원인이 바로 과도한 수업부담과 업무 그리고 교육과정 운영의 타율성에 있다.
역으로 우리의 경우 '내부형 교장공모제'가 대세로 자리 잡아 평교사들이 교육 선진국과 같이 기존 교장자격증 없이도 교장이 되어 주당 10시간 전공별 수업을 하고, 학생상담을 우선적으로 맡는다면 교장이 복도를 순회하며 교실상황을 볼수록 좋다. 교장이 부적응 학생들을 맡아주면 교사들은 한결 안도하는 분위기 속에서 교실수업에 전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내부형 교장공모제 확대를 촉구하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열었다.(자료사진)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내부형 교장공모제 확대를 촉구하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열었다.(자료사진)ⓒ민중의소리

교장승진제는 오래도록 한국의 교직풍토를 비교육적인 환경으로 만들면서 교육경쟁력을 내부에서 갉아먹고 있다. 이것이 교장승진제를 전면 폐기할 이유가 된다. 하지만 교총과 자유한국당이 지속적으로 무자격 교장논란을 증폭 시켜 방해했다. 그래서 2018년에 자율학교(혁신학교)의 50%만이 일반 교사들이 응모할 수 있도록 되었다. 그래도 이 비율이 희망이 되고 있다(참고 기사:2019.5.24일자 민중의 소리).

또 하나의 승진루트인 장학사 제도에도 교직사회에 만연된 권력욕망이 내재되어 있다. 장학사 제도가 오랫동안 지역 교육행정에 대한 진실된 봉사보다는 지배욕망을 키우는 수단으로 전락해 있다. 이들에 이해 조성하는 권위주의가 현장 교사들에 대해 자율성을 더욱 저해하고 있다.

약 20여년 전에 알려진 사례로서 일본 도쿄도 미나토 구에 있는 아자부[麻布(あざぶ)] 고교에서 교사가 수업기자재가 필요하여 교육청에 연락했다. 이에 장학사는 트럭에 기자재를 실어 직접 운전해서 학교에 갖다 주었다. 한국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는 소식을 들어본 적은 없다. 반면 장학사가 학교에 오면 대청소를 실시하며 상전 모시듯이 했었다. 우리는 아직도 민주적 교육행정에 취약하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서울지부는 서울 종로구 신문로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스승의 날 밎이 서울교사 학교생활 만족도 설문결과 발표 기자회견을 열었다.(자료사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서울지부는 서울 종로구 신문로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스승의 날 밎이 서울교사 학교생활 만족도 설문결과 발표 기자회견을 열었다.(자료사진)ⓒ이승빈 기자

제도의 모순이 교육문제의 뿌리

결국 학생문제는 교육 안팎에 자리한 모순의 산물이다. 해당 교사가 학생폭력의 희생자라면 가해 학생은 모순된 제도의 피해자로 규정된다. 학생들은 무력하기에 제도의 모순에 몸으로 도피하거나 저항을 할 수밖에 없다.

최근 전교조와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가 2871명을 대상으로 공동조사한 바에 의하면, 중고생 60%가 학교수업이 '지루하다', 55%는 '힘들다'고 답했다고 한다. 아울러 이들 단체는 학생인권을 법제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2019.11.1일자 뉴시스).

그렇다. 우리는 위기를 위기로 인지하는데 둔감한 지 오래다. '과밀학급, 입시나 성적 위주의 교육으로 인해 학교 내 소외현상이 두드러진다. 이로 인해 학습장애나 부적응 증세를 보이며 등교를 거부하거나 비행행동을 한다. 현재의 과다 경쟁체제는 학생의 인권과 인간성이 말살되는 상황까지도 초래된다. 발달적 관점에서 보자면 청소년기는 학교공부 이외에도 사랑, 겸손, 창의성, 독립성, 자유 그리고 다양한 사회적 활동이나 자연과의 접축에 흥미를 관심을 가지는 나이다. 마지막으로 문화활동이나 특별활동이 너무 적다'[손승영(동덕여대 교수) 외, 학업중퇴자 현실과 대안 중에서].

교과성적만이 우대받는 직업으로 통하는 유일한 사다리로 고착된 것이 우리의 교육환경의 참모습이다. 이는 병리현상을 야기하고 있다. 성적이 아닌 기술과 기예로도 차별받지 않게 살 수 있도록 변혁시킴과 동시에, 대증요법이 아닌 보다 근본적인 처방으로서 교육과정 운영과 교장임용제도의 민주화를 가속화시키지 않으면 안될 시점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현 정부가 여전히 습성상 직업정치인으로서의 관료적 행정이 지닌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적어도 교육문제에 있어서 이 한계를 넘으려면 교원노조를 부인할 수 없으며 부인해서도 안된다.

이렇게 현장에서 불행한 사건들이 발생할수록 현장감을 잃지 않는 대안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이지 않은가? 이와 관련 현실적 대안 세력의 하나이면서 최대의 교사조직인 전교조에 법적 지위를 다시 부여하는 것은 다름 아닌 이 상식에 충실하기 위해서다. 이는 교사들의 바램이면서도 가해학생의 무의식적 바램이기도 하다. 따라서 노조에 대해 이념적 잣대로 재단하거나 법원 판결을 기다려야 한다는 주장은 '회피전략'의 하나일 뿐이다.

전교조는 대통령의 임기 절반이 넘고 있는데도 여전히 문 밖에서 서성이고 있다. 학교 및 정부와의 협상테이블이 아니라 거리의 광장에 더 친숙해져 가고 있는 것이다. 위의 시카고 교사들의 파업에 견주면 학생폭력, 자퇴, 자해, 자살률로 볼 때 한국 교사들이 파업해야 할 이유가 더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이제 곧 또 다른 학교내 폭력사태를 지켜봐야 할 것을 상상하려니 다시금 고통이 밀려온다.

신남호 교육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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