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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보] “자본으로 자본주의 사회 바꾸기, 근본대책 아니지만 현실 변화 가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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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책임투자는 새로운 방식으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나왔다. 게임의 룰이 변하는 것이다. 노동자와 고객, 지역, 공급망 등 이해관계자 목소리를 반영하지 않는 기업은 지속할 수 없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이런 인식은 양극화 심화에 대한 위기감의 발로다.”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은 돈만 따라가는 기업은 지속할 수 없고, 돈만 잘 버는 기업에 투자해서는 돈을 벌 수 없다고 말한다. 그가 매출과 영업이익 등 재무적 지표뿐 아니라 환경·사회·의사결정 구조(ESG) 요소를 평가해 기업에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환경(Environment)은 탄소 배출량과 폐기물 관리 절차 등, 사회(Social)에는 사업장 내 노동자의 인권과 관련된 내용 등이 포함된다. 의사결정 구조(Governance)는 이사회 독립성 등을 의미한다.

사회책임투자는 연기금, 증권사, 개인이 투자 대상 기업과 투자 규모를 결정할 때 기업의 환경 사회 의사결정구조에 대한 평가를 고려한다는 투자 원칙이다. 나아가 투자한 기업에서 ESG 이슈가 발생하면 적극적으로 개입해 책임을 묻는다. 사업장에서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원인 규명과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총수일가가 횡령·배임 등 불법을 저지르면 해당 경영자를 이사회에서 퇴출하도록 압박한다. 한국에서는 지난 3월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 국민연금이 조양호 회장의 이사 연임에 반대표를 던진 게 대표적이다.

이미 투자한 기업이 문제를 일으켰을 때, 지속해서 개선을 요구해도 나아지지 않으면 아예 투자를 철회할 수도 있다. 투자자가 빠지면 기업가치가 하락한다. 경영진은 안정적으로 사업을 운영하기 위해서라도 주주의 요구에 맞도록 사회적 가치를 신경 쓰게 된다.

혹자는 기업이 매출이나 영역이익뿐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고려하는 것, 그리고 투자자가 기업의 ESG를 투자 지표로 삼는 게 양측의 수익성에 도움이 되느냐고 지적한다. 경영과 투자의 최우선 목적은 수익 창출이며 사회적 가치 실현이 수익 창출을 저해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이 사무국장은 “ESG가 재무성과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세계적으로 여러 건 제시되고 있다”며 “사회적 가치를 외면한 채 돈만 좇는 기업과 투자자는 수익성 제고 측면에서 한계가 있다는 건 단순히 당위성이나 믿음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2014년 옥스퍼드 연구진은 190여 건의 연구결과를 분석한 결과 ESG 성과가 우수할수록 더 높은 재무성과를 달성했다는 연구가 88%에 달했다고 밝혔다. 또한 하버드 연구진은 투자 포트폴리오에 ESG 우수 기업이 많을수록 투자자 수익률이 높다고 발표했다.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이 22일오후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사회책임투자와 관련해  민중의소리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9.11.22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이 22일오후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사회책임투자와 관련해 민중의소리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9.11.22ⓒ김철수 기자

포럼, 운동보다 연구에 집중…법 개정 성과 이뤄

이 사무국장은 대학시절 사회 문제와 더불어 문학에 관심이 많았다. 대학 졸업 후 경제 기자로 활동하다가 직장을 옮겨 한국문화진흥이 발행하는 영화 관련 잡지에 기사를 실었다. 이후 프리랜서로 일하던 중 지인을 통해 잡지사에서 잡지 기획을 제의받아 사회책임경영을 중심으로 한 CEO인물 잡지를 구상했다. 사회책임경영을 주제로 취재하고 글을 쓰던 그는 자연스럽게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이 설립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88학번이다. 권위적인 사회였다. 사회문제에 관심이 직업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사회를 1mm라도 바꿀 수 있지 않을까하는 심정으로 언론사에 취직했지만, 도로의 가로등 하나 바꾸기 쉽지 않다는 생각에 무기력해지곤 했다. 글쓰기를 좋아해 문화진흥 쪽으로 갔는데 그것도 일로 하니까 힘들더라. 포럼을 알게 되고 양가적인 감정이 들었다. 자본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를 바꾼다는 게 기만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절박함을 느꼈다.”

이 사무국장은 2006년 11월 창립준비위원회에 합류해 실무 업무를 도맡아 하면서 설립에 추진력을 불어넣었다. 포럼은 2007년 4월 설립됐다. 정식 명칭은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영어로는 ‘Korea Sustainability Investing Forum’이다. 이 사무국장은 “포럼이 만들어지기 전에 사회책임투자는 사회주의 구호로 오인받았다. 특히나 금융권은 보수적 성향이 강해 거부감을 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며 “금융권을 설득하기 위해 ‘사회(Social)’를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으로 표기했다”고 말했다. 금융권이 사회책임투자를 이해하고 도입할 수 있도록 포럼 내부적으로 타협을 한 것이다.

포럼은 금융권과의 관계를 고려해야 하는 입장이다. 활동도 시민단체로서의 운동보다 연구기관의 연구와 정책개발에 집중한다. 경영주체인 기업과 투자주체인 금융기관, 이해관계자인 시민사회, 국회 등과 협력해 법제도 개선을 이끌어낸다.

그 결과 2015년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던 이목희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과 함께 국민연금법을 개정해 국민연금의 사회책임투자 도입 근거를 마련했다. 국민연금이 투자 기업의 ESG를 고려하고 관련 내용을 공시하도록 하는 조항을 신설한 것이다. 이 사무국장은 “보수진영 반대로 의무조항으로 규정하지는 못했지만, 첫 단추를 꿴다는 의미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2016년 조달사업법 1조(목적)에 ‘공공성’을 추가하고 조달청이 조달과정에서 기업의 사회책임을 고려할 수 있도록 했다. 이듬해 12월에는 산업안전법 개정으로 정부가 5년마다 기업 지속가능경영 종합시책을 수립하도록 의무화했다. 이 사무국장에 따르면 현재 정부는 종합시책 수립 마무리 단계에 있다.

최근에는 탈석탄 투자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석탄발전소 건설에 투자하지 않고 재생에너지 투자를 늘리자는 것이다. 사학연금과 공무원연금 측을 지속적으로 설득한 끝에 지난해 탈석탄 선언을 이끌어냈다. 다음달에는 금융기관들이 탈석탄 선언을 앞두고 있다고 이 사무국장은 설명했다.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이 22일오후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사회책임투자와 관련해  민중의소리 기자와 인텨뷰를 하고 있다. 2019.11.22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이 22일오후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사회책임투자와 관련해 민중의소리 기자와 인텨뷰를 하고 있다. 2019.11.22ⓒ김철수 기자

“국민연금, 기업 잘못에 적극 책임 물어야…사회·환경 공시 강화해야

이 사무국장은 사회책임투자 확산을 위해 국민연금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국민연금은 세계 3위 규모 연기금으로 국민연금의 결정은 투자시장에서 중요한 신호가 된다”며 “국민연금이 움직여야 다른 연기금과 금융사가 따라간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이 운용하는 기금 규모는 기금이 700조원이 넘고 이 중 한국 주식시장에만 120조가량을 투자하고 있다. 대부분의 주요 기업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는 얘기다. 주식시장 ‘큰 손’이 지분을 처분하면 다른 주주도 이를 위험 신호로 인지하고 주식을 팔아넘기게 된다.

또한 국민연금은 한국 주식시장 투자 기금 중 약 55조원을 운용사에 위탁하고 있어 이들 운영사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운용사는 국민연금의 ESG 투자 운용사 모집에 지원하기 위해 ESG 투자 실적을 쌓아야 한다. 운용사가 ESG 투자 경험을 늘리고 성과를 낼 동력을 국민연금이 제공하는 것이다.

다만, 이 사무국장은 국민연금의 투자철회 방식에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이미 투자한 기업에서 ESG 문제가 발생했다고 지분을 팔면 그만큼 기업에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힘이 빠진다는 설명이다.

“가급적 투자철회는 신중해야 한다. 지분이 있어야 할 말을 할 수 있다. 투자철회는 최후의 보루로 고려할 수는 있지만, 그보다 먼저 경영 개선 위한 최대의 활동을 펼쳐야 한다. 투자한 기업이 말썽을 일으켜 불안해지면 뒤도 안 돌아보고 파는 걸 ‘월스트리트 룰’이라고 한다. 여기서 금융위기가 발생했다. 투자자가 책임 의식을 갖고 기업 경영에 적극 개입해 수익률을 높여야 한국 경제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다.”

국민연금의 경영 개입은 단계적으로 이행된다. 경영진에 문제 원인을 묻고 대책을 요구하고 평가하는 등 대화부터 시작해 점차 압박 강도를 높이는 것이다. 대화로 안 되면 주주총회에서 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다. 대책 수립을 공개적으로 주주제안할 수 있다. 안건이 통과되면 기업은 답을 내놔야 한다. 이사해임이나 정관변경을 건의할 수도 있다.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이 22일오후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사회책임투자와 관련해  민중의소리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9.11.22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이 22일오후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사회책임투자와 관련해 민중의소리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9.11.22ⓒ김철수 기자

이 사무국장은 한국의 사회책임투자가 의사결정 구조에 집중돼있다고 지적했다. 산업재해나 과도한 탄소배출 등 문제에 대해 투자자가 기업에 책임을 묻는 사례가 드물다는 설명이다.

사회책임투자가 발달한 외국에서는 주주가 기업의 인권과 노동 관련 정책에 많은 관심을 갖는다. 이 사무국장은 2010년 폭스콘 사태를 예로 들었다. 애플 제품을 생산하는 제조업체인 폭스콘 노동자 14명이 과로를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어 ‘자살 공장’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당시 애플 주주들은 주주총회에서 하청사 작업 환경에 대한 개선책과 공급망 관리에 대한 대안을 요구했다. 아직 한국에서는 흔치 않은 광경이다.

이 사무국장은 사회와 환경 문제 측면에서의 사회책임투자를 강화하기 위해 정보공개가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재무적인 정보의 공시는 많이 법제화됐다”면서도 “환경은 에너지 사용량과 온실가스 배출량만 의무화돼있다. 노동 관련 정보도 비정규직 비율 정도뿐”이라고 비판했다.

유럽연합(EU)의 ‘비재무정보 의무공시 가이드라인’을 보면,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이행 사항과 노동자의 나이·성별·성적 취향·종교·장애·인종 분포 등을 공시하도록 돼 있다. 인권 관련 사내 불만 접수와 해결 절차 항목도 있다.

포럼은 한국에서 이러한 정보가 공시될 수 있도록 입법을 추진 중이다. 현재 국회에는 상장기업 사업보고서에 ESG 요소를 공시하도록 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이 사무국장은 사회책임투자가 자본주의의 폐해를 해결할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사회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은 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사회책임투자가 자본주의의 화장술이라는 비판도 있다. 기업의 잘못을 가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진보 운동이라기보다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해결책을 찾는 보수적인 운동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극복이라는 거대 담론만 외치다가는 현실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노력이 굉장히 더디게 성과를 볼 우려가 있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해야 한다. 사회책임투자를 통해 제도권 금융의 힘으로 미쳐 날뛰는 자본에 책임이라는 고삐를 채울 수 있다. 아스팔트 위 노동자와 시민사회의 외침을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해결할 수 있다.”

지난 1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금융투자협회 불스홀에서 열린 '국민연금 책임투자 활성화 방안(안) 및 경영참여 목적 주주권행사 가이드라인(안) 공청회'에서 패널토론이 진행되고 있다. 곽관훈(왼쪽부터) 선문대 교수, 김우찬 고려대 교수,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박재홍 김앤장법률사무소 전문위원, 박경서 고료대학교 교수, 이동구 변호사, 이종오 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 홍원표 민주노총 정책국장, 최경일 보건복지부 연금재정과장. 2019.11.13.
지난 1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금융투자협회 불스홀에서 열린 '국민연금 책임투자 활성화 방안(안) 및 경영참여 목적 주주권행사 가이드라인(안) 공청회'에서 패널토론이 진행되고 있다. 곽관훈(왼쪽부터) 선문대 교수, 김우찬 고려대 교수,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박재홍 김앤장법률사무소 전문위원, 박경서 고료대학교 교수, 이동구 변호사, 이종오 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 홍원표 민주노총 정책국장, 최경일 보건복지부 연금재정과장. 2019.11.13.ⓒ뉴시스

조한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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