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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하염없이 깊어 멈출 수 없는 음악
백현진 ‘가볍고 수많은’
백현진 ‘가볍고 수많은’ⓒ백현진

백현진을 신화화할 생각은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백현진이 1997년 어어부 프로젝트 1집으로 데뷔한 후 한국에서 그처럼 노래하는 사람은 그뿐이라는 사실이다. ‘훈련되지 않은 목소리’로 삶의 남루와 아이러니를 불러 제낀 그는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가장 리얼하며 가장 아방가르드한 영역을 개척했다. 혼자 힘으로 해낸 일은 아니었다. 방준석, 장영규를 비롯한 베테랑 뮤지션들과 함께 만들어낸 음반들은 백현진을 유일무이한 뮤지션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했다. 특히 2008년부터 내놓은 백현진의 솔로 음반들은 어어부프로젝트를 비롯한 팀의 백현진과 다른 개인 백현진의 시선과 사운드를 극사실적인 노랫말로 드러냈다.

하나의 세계를 만들고, 자신의 목소리로 그 세계 속 인간을 기록한 음반

2019년이 저물어 가는 11월 말에 내놓은 백현진의 새 음반 [가볍고 수많은] 역시 일견 비슷해 보인다. 2리터짜리 물, 김밥 한 줄, 이 병신아 죽긴 왜 죽냐고, 네가 빌려간 사자 티셔츠 같은 노랫말들은 삶에서 아니 생활에서 그대로 옮긴 것만 같다. 익숙한 낭만과 환상의 클리세를 반복함으로써 안정된 만족감으로 회귀하는 대개의 대중음악과 달리 백현진의 음악에는 낭만이 없고 판타지가 없다. 애틋하고 간절한 마음이 없지 않으나, 그가 노랫말로 그리는 세계는 이미 답이 정해져 있는 안전한 세계가 아니다. 불화와 파국이 예정되어 있고, 발버둥 쳐도 돌이킬 수 없는 비극 앞에서 무력한 자아가 백현진 음악의 주인공이다. 그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소리를 질러보아도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체제와 권력에 비하면 쥐똥보다 작은 우리는 운명을 거슬러 이긴 적이 없다. 다만 고통스러워하거나 견디거나 탈주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백현진은 [가볍고 수많은] 음반에서도 하나의 세계를 만들고, 자신의 목소리로 그 세계 속 인간을 기록한다. 그가 만든 세계와 그 안의 인간이 모두 백현진의 음악이 된다.

백현진의 세계는 첫 곡 ‘눈’부터 심상치 않다. 그런데 이번 음반에서도 백현진의 위치는 주체이지만, 그는 너라는 상대와의 관계에 철저히 메어 있다. 이번 음반은 자신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너와의 관계가 파생시킨 연작 드라마이다. “병원에서 너를 보고 너무 심란하여서/나는 몇 개 있던 약속 모두를 취소했지”라는 노랫말은 첫 곡부터 비극으로 내동댕이쳐버린다.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2리터짜리 물을 사서 공원으로 가고, 흩날리는 눈을 보는 수밖에. 이어지는 노래들은 모두 그 전과 후를 오가는 연작 드라마처럼 읽힌다. 김밥 한 줄을 사서 나왔으나 집으로 되돌아와서 반 줄을 먹다 바닥에 눕는 상태, 말을 하다가 안타까운 마음에 말을 잃어서 입을 다무는 상태는 모두 낙담하고 절망한 상태이다.

그러나 낙담하고 절망할 때 비로소 우리는 자신의 현실을 분명하게 깨닫고 깊이 생각한다. 비극은 기쁘고 즐거울 때 보지 못하거나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을 보게 하고 생각하게 한다. 외면할 수 없게 밀어닥친 상황은 인간이 얼마나 작고 나약한지, 그러나 세상은 얼마나 크고 비정한지 일깨운다. 백현진의 음반 [가볍고 수많은]은 제목처럼 우리가 가벼운 존재이며, 수많은 존재 중 겨우 하나임을 드러내는 서사와 대응의 드라마로 비극을 축조한다. 급기야 “간신히 가로수를 붙잡고/비틀거리며 오줌을” 누고, “이 병신아 죽긴 왜 죽냐고” 노래할 때, 우리는 이미 숱하게 보았던 비극의 절정으로 치닫는 것만 같다.

백현진
백현진ⓒ백현진

비극의 시간과 색을 바꿔버리는 백현진의 노래

그런데 백현진의 노래와 김오키, 백현진, 이태훈, 진수영의 연주는 일견 상투적일 수도 있을 상황에 남다른 아우라를 불어넣는다. [가볍고 수많은]의 사운드는 리프나 루프 같은 테마 멜로디를 강조하지 않고, 드럼으로 감정을 증폭시키지 않는다. 김오키의 색소폰을 비롯한 연주는 노래의 멜로디를 반복하거나 강화하지 않고, 때로 노래보다 더 큰 지분으로 노래에 깃든 마음과 공기를 짐짓 외면하듯 감싼다. 백현진의 보컬이 막막함으로 쩔쩔매듯 노래할 때도 이들의 연주는 몽롱해 꿈결 같다. 좀처럼 연주를 폭발시키지 않고 듬성듬성 이어지는 연주는 자주 나른하고 우울하며 부드럽다. 그 결과 노래의 결과 서사는 더 풍부한 함의로 확장한다. 노래가 절망을 맡았다면, 연주는 아름다움을 맡았다고 느낄 정도로 엇갈리는 연주가 대등하게 결합하면서 수록곡들은 견디거나 지켜볼 수 있을 힘을 얻으며 이전 음반과 다른 태도의 예술로 전화한다. 노랫말과 멜로디, 보컬이 다 말하지 못한 서사와 속내를 연주로 연장하며 드러내는 앙상블은 [가볍고 수많은] 음반이 수많고 가벼운 음악들과 다른 세계에 안착하게 한다.

그래서 이 음반을 듣는 한 가지 방법이 노랫말과 백현진의 보컬을 따라가는 방식이라면, 다른 방식은 김오키, 백현진, 이태훈, 진수영의 연주를 듣는 것이다. 둘 사이의 관계와 대응을 감각으로 느끼고 파악하는 일이다. ‘눈’에서 건반과 일렉트릭 기타 연주에 이어 뒤늦게 테너 색소폰이 개입하고, 이태훈의 기타가 어루만질 때 느껴지는 따스함은 노래를 다독이고 위로하며 거리를 떨어뜨린다. ‘반 줄’에서도 일렉트릭 기타가 고즈넉하게 연주하고, 김오키의 관악기들이 밑그림처럼 깔릴 때, “가위에 눌러 허우적대”는 상황에 집중하면서도 미학적으로 전유할 수 있다. ‘빛’에서 김오키가 주도하는 연주는 안타까운 마음을 중화시킬 뿐 아니라, “다정한 세 갈래 빛”이 흐르며 만드는 파장을 농염하고 따뜻하게 전달하다가 확장한다. 백현진의 [가볍고 수많은] 음반이 풍부해지고 특별해지는 비결이 여기에 있다. 백현진은 비극을 제시할 뿐 아니라 비극에만 머물지 않는 소리의 파장으로 비극의 시간과 색을 바꿔버린다. 실제로 일렉트릭 기타와 건반으로 미니멀하게 연주하는 ‘가로수’에서 좀처럼 노래를 따라가지 않는 연주는 진입과 탈주라는 상반된 역할을 모두 해낸다.

첫 노래 속 주인공의 무덤가에서 밤을 새우는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하는 ‘별무리’에서도 김오키의 테너 색소폰 연주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허물며 꿈꾸듯 빨려들게 한다. ‘저곳’도 마찬가지이다. ‘터널’ 역시 현재형 절망 기록으로만이 아니라 과거형의 노래이자 환상 혹은 미래의 예감으로 들린다. 그만큼 백현진의 음반은 과거와 현재의 기억과 미래의 환상에 추억과 절망과 분노가 겹쳐지고 넘나드는 시간 초월형 기록이다. 현실에 현미경을 들이댄 것 같았던 전작들과 이번 음반의 또 다른 차이는 시간의 확장성과 모호함에 있다. ‘언덕’에서도 촛불이 피워 올린 연상이 이어지면서 과거와 현재는 동시에 존재한다. 지나갔으나 지워지지 않았다. 가볍고 수많은 눈처럼 계속 돌아오며 내린다. 연주가 몽환적이고 백현진의 목소리가 절절한 이유이다. ‘사자 티셔츠’가 이제 티셔츠를 돌려줄 수 없게 되어버린 이에 대한 노래로 들리는 이유이다. ‘늦여름’과 ‘고속도로’ 역시 업보와 인연으로 이어지는, 오늘 같은 과거의 기록이다. 가볍고 수많은 삶의 결코 가볍지 않은 수많은 기억. 과거이자 현재이며 미래일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노래는 슬픔을 넘어 아득하다. 하염없이 깊어진 백현진의 음악을 멈추기가 어렵다.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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