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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세 여성의 삶으로 그려낸 이태원의 초상, 강유가람 감독의 영화 ‘이태원’
영화 ‘이태원’
영화 ‘이태원’ⓒ스틸컷

내가 살고 생활했던 공간을 다시 찾으면 그 시절의 추억과 시간이 생각난다. 애써 기억하지 않아도 지난 추억과 시간은 나를 찾아온다. 때론 내가 그곳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이 함께한 나를 기억하는 것 같다.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그곳이 나를 잊지 못하는 건 내가 함께한 시간이 그곳에 아로새겨지며 역사가 되고 의미가 되었기 때문이리라. 강유가람 감독의 영화 ‘이태원’도 바로 그런 공간과 시간에 대한 이야기다. 이태원이 기억하고 있는 삼숙, 니키, 영화 세 여성의 삶을 통해 이태원이 걸어온 시간과 역사, 그리고 이태원 곳곳에 박혀있는 그들의 삶의 의미를 되짚는다.

영화는 미군 달러가 지배하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이태원에서 살아온 세 여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미군 대상 음악 클럽을 40년간 운영해 온 삼숙. 이혼 후 미군클럽에서 일해 온 나키. 미군과 결혼해 미국으로 갔지만 다시 돌아온 영화. 재개발의 여파로 슬럼화된 우사단길에는 젊은 청년들이 모여들면서 새롭게 변화의 바람이 불지만, 그들은 이런 변화에 무심한 듯 일상을 살아간다. 해방 후 미군기지가 들어선 뒤 이 공간에 수많은 낙인이 찍혔다. 그 낙인의 기록을 그들의 삶을 통해 고스란히 만나게 된다.

‘이태원’은 내게 익숙하면서도 낯설은 공간이다. 젊음의 공간으로 조금씩 탈바꿈하고 있지만, 그곳은 마치 상처처럼 기억되는 공간이다. 우리의 슬픈 역사를 상징이라도 하듯 불편한 공간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고, 그런 사람들의 시간이 모여 이태원의 역사와 의미를 이루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곳에 있던 미군 부대의 철수를 바랐지만, 그곳이 담고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엔 무관심했다. 이 영화는 우리가 잊고 있던, 또는 지워버리고 싶었던 시간과 얼굴들을 만나게 한다.

‘이태원’이라는 제목과 여성을 보고서 떠올린 건 암울한 시간과 생채기들이었다. 극중 주인공들이 말하듯 이태원에 가자는 말에 택시기사조차 이상한 시선을 보내고, 미국인 남편과 걸어가다 욕을 들어야 했던 ‘낙인’의 공간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런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방식으로 이태원을 조명하지 않는다. 함께 김치를 담궈 나누어 먹는 이웃이 있고, 미국으로 떠나 연락이 두절된 동생을 그리워하는 삶이 있고, “할 짓은 다해봤잖아. 후회는 없어”라며 자신의 시간을 긍정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이태원에도 사람이 있고, 삶이 있고, 시간이 있고, 그런 것이 모여 역사가 되고 있음을 이 영화는 잘 보여준다.

영화 ‘이태원’
영화 ‘이태원’ⓒ스틸컷
영화 ‘이태원’
영화 ‘이태원’ⓒ스틸컷

이 영화는 이태원의 골목과 골목이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의 향기를 전해준다. 이제는 재개발의 광풍 속에 이태원이 기억하는 그들의 시간도 이제는 지워질 수밖에 없을 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이태원의 시간과 역사를 여성의 삶을 통해 기억하게 이끈다. 강유가람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한국 사회에서 이태원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기지촌 이태원의 모습을 잘 모르는 사람은 많은 것 같다. 이태원은 처음 내게 미군 범죄로 한때 무서웠던 이미지가 남아 있는 공포의 공간이었다가, 맛집과 힙플레이스 같은 동경의 공간이 되었다. 이태원이라는 혼종적인 공간의 확장과 변화의 과정에는 사실 여성들의 큰 역할이 있었지만, 한국 사회는 그 여성들을 배척하거나 낙인찍어 왔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태원의 역사 속에서 여성의 삶을 기록한다는 것을 넘어서 어떻게 기억해야 할 것인지를 이야기 나누고 싶었다.”

권종술 기자

문화와 종교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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