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보기
댓글보기
[리뷰]떠났지만, 떠날 수 없었다, 장률 감독 영화 ‘후쿠오카’
장률 감독의 영화 ‘후쿠오카’
장률 감독의 영화 ‘후쿠오카’ⓒ스틸컷

중국 출신으로 한국에서 영화 작업을 하고 있는 장률 감독은 아시아 주요 국가인 한국과 중국, 일본을 작품을 통해 돌아보곤 한다. 서울독립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영화 ‘후쿠오카’는 장률 감독의 이전 작품인 ‘경주’, ‘춘몽’, ‘군산:거위를 노래하다’와 묘하게 이어진다. 중국에서 한국으로 거쳐 한국의 군산을 거쳐 이제는 일본 후쿠오카에 도착했다. 이번 여정에서도 장률 감독의 정체성을 잘 설명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윤동주의 시 ‘자회상’과 ‘사랑의 전당’이 등장한다. 윤동주는 중국 만주에서 태어나 한국을 거쳐 일본 후쿠오카의 형무소에서 숨을 거뒀고, 동아시아 3국의 슬픈 과거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한국에서 낡은 헌책방을 운영하는 제문은 자신의 가게 단골이던 소담을 따라 후쿠오카로 여행을 떠난다. 후쿠오카엔 재문의 대학 연극반 선배인 해효가 선술집을 하고 있다. 두 사람 모두 한 여자(순이)를 사랑했다가 그 여자가 갑자기 사라지면서 헤어진 두 사람은 이렇게 28년 만에 다시 만난다. 그러면서 과거를 추억하고, 또다시 20대 초반으로 돌아간 듯 싸운다.

28년이 지났지만, 두 사람의 감정은 28년 전 그 모습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재문이 헌책방 주인으로 있는 건 그곳이 순이가 자주 찾던 책방이어서고, 해효가 후쿠오카로 떠나오게 된 건 순이가 후쿠오카 출신이었디 때문이다. 두 사람 모두 28년 전 갑자기 떠나버린 그녀를 잊지 못하는 그들에게 책방과 후쿠오카는 마치 환영과도 같은 존재일 것이다.

장률 감독 영화 ‘후쿠오카’
장률 감독 영화 ‘후쿠오카’ⓒ스틸컷

그렇게 28년 전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두 사람을 다시 이어준 소담의 존재는 무언가 신비롭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가 실제 인물인지, 가상인지 현실인지 보는 이들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처음 일본을 찾았다는 그녀를 일본의 헌책방 주인 할아버지의 손녀는 몇 년 전에 이곳을 찾은 적이 있다며 그때 두고 갔다는 인형을 건넨다. 소담은 일본어와 중국어를 알지 못하지만, 말을 알아듣는다. 사람에 대한 직관력도 뛰어나다.

신비로운 소담에게선 영화 속에선 한 번도 얼굴을 내밀지 않는 재문과 해효가 사랑했던 ‘순이’의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만든다. 소담은 두 사람이 닮았다고 말한다. 서로 닮았기에 같은 사람을 동시에 좋아했을 것이라며 소담은 과거의 순이를 연기하면서 두 사람 다 좋은데 둘 다 함께 사귀면 안 되냐고 묻는다. 한국과 일본을 부유하며 떠도는 인생들을 통해 감독은 한중일 삼각관계 역시 아름답고 평화로울 수 있을지 상상하도록 한다.

세 사람의 여정은 쓸쓸하다. 두 사람은 떠났지만, 결국 28년 전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영화 첫 장면에서 재문의 귀에 해효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마치 환청과도 같은 그 목소리는 어쩌면 재문의 내면의 소리였을 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떠나 도착한 해효의 가게엔 윤동주의 시 ‘자회상’이 걸려 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해효 가게를 10년 동안 찾았던 말이 없는 사나이는 10년만에 입을 열고 윤동주의 ‘사랑의 전당’을 낭송한다. ‘순아 너는 내 전에 언제 들어왔던 것이냐?/내사 언제 네 전에 들어갔던 것이냐?/우리들의 전당은/고풍한 풍습이 어린 사랑의 전당/순아 암사슴처럼 수정눈을 나려 감아라./난 사자처럼 엉크린 머리를 고루련다./우리들의 사랑은 한낱 벙어리였다.’
상대를 보면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그런 환상과도 같은 현실을 지나면서 영화는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허물고, 사람과 사람을 나누는 경계도 희미하게 만들어 버린다. 한중일의 지난 관계들을 떠올려보며 그곳에서 사는 이들의 사랑과 아름다움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 아름다움에 대한 상상은 한낱 꿈일까?

권종술 기자

문화와 종교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작은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이시각 주요기사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카카오스토리2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