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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황교안 대표는 왜 그렇게 불안했을까?

단식을 시작한지 장장 8일(응?)만에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단식을 중단했다. 명분도, 절박함도 없었던 제1 야당 대표의 단식은 역대급 해프닝으로 기억될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자유한국당의 ‘단식 투쟁 천막 근무자 배정표’ 이야기다. 일정표에 당 소속 직원들이 매일 주야간 2교대 보초를 섰단다. 매일 12시간의 강도 높은 노동인데 이들 중에는 임산부 세 명도 포함됐다. 표 하단에는 굵은 글씨로 ‘당 대표님 지시사항임’이라는 문구가 선명히 적혔다.

이들은 매 30분마다 황 대표의 건강상태를 점검하고 황 대표가 잠이 들면 방해를 받지 않도록 주변 소음을 제어했다. 황 대표가 일어날 시간인 새벽 3시30분쯤에는 근무를 한층 강화했다. 자유당 측은 “배정표와 수칙에 맞게 일을 하지 않는 직원에게 불이익을 주겠다”는 위협도 날렸다고 한다.

이 긴 이야기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황 대표는 불안하다”는 것이다. 얼마나 불안하면 매 30분마다 자기 건강을 체크하고, 얼마나 불안하면 새벽에 일어날 때 누군가가 꼭 옆에서 수발을 들어야 할까? 평생 의전을 옆에 끼고 살았던 황 대표는 누군가 자신을 돌봐주지 않으면 극도로 불안하다. 근무표에 ‘당 대표님 지시사항임’이라는 글자가 선명히 적혀 있는 이유다.

돌봄 노동이 제공되지 않을 때 불안을 느끼는 심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구조적인 문제다. 누구나 조금씩 그 불안을 느낀다. 왜냐하면 인간은 동물과 달리 생존에 필요한 대부분의 일을 분업에 맡기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나는 글을 쓰는 일을 주로 하지만, 밥은 주로 식당에서 먹고, 이동은 주로 남이 운전해주는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문제는 분업에 너무 많이 의지하는 바람에 인간이 생존에 필요한 대부분의 노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살아간다는 점에 있다. 나만 해도 누군가가 배설물이 쌓인 우리집 정화조를 정기적으로 치워준다는 사실을 20대가 돼서야 알았다.

별 생각 없이 누군가가 지어준 집에서 살다보니 집을 짓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도 몰랐다. 매년 건설 현장에서 수 백 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는다는 사실을 안 것도 20대 후반의 일이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급식을 먹는 것을 너무나 당연히 생각하지만, 그 급식에 하루 200인분의 밥을 지어야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이 묻어있다는 사실은 잘 알지 못한다.

생존에 필요한 일을 다른 이들에게 맡기면 이처럼 사람의 완성도가 떨어진다. 살아가는 데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소중한지에 대한 인식 자체가 부족해지는 것이다. 칼 마르크스는 분업으로 인해 인간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현상을 ‘인간소외’라고 불렀다. 주류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애덤 스미스도 『국부론』에 이런 말을 남겼다.

“분업을 하면 노동으로 생활하는 국민 대부분의 직업이 매우 단순한 작업에 한정된다. 그래서 그는 자연히 그런 노력의 습관을 잃어버리고, 인간으로서 최대한 어리석고 무식해진다. 정신의 활력을 잃음으로써 너그러움, 고귀함, 또는 부드러운 감정도 가질 수 없고, 사생활의 일반적인 의무에 대해 아무것도 정당한 판단을 내릴 수 없다. 교육받은 일 외에는 어떤 일에도 정신적으로 참을성 있게 자신의 체력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황교안 대표의 불안이 바로 이런 것이다. 분업화된 사회에서 다른 노동의 습관을 잃어버린 자, 그는 스미스의 표현처럼 최대한 어리석고 무식해진다. “사생활의 일반적인 의무에 대해 아무것도 정당한 판단을 내릴 수 없어서” 극도로 불안하고 초조한 것이다. “교육받은 일 외에는 어떤 일에도 정신적으로 참을성 있게 자신의 체력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가 된 황 대표는 사법고시 공부 외에 다른 어떤 일에도 인내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래서 30분마다 누군가 자기의 건강을 체크해주지 않으면 불안과 걱정으로 인내력이 고갈된다.

어떻게 이런 일을 막을 수 있을까? 가장 기초적인 방법은 상대의 노동을 존중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비록 내가 직접 그 일을 하지는 않지만 누군가가 나를 위해 물건을 배달해주면 그것에 감사하고, 누군가가 나를 병실에서 돌봐주면 그것에 고마워한다. 이런 사람들은 타인의 노동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인간적 완성도도 자연히 높아진다.

반면 돌봄 노동을 ‘돈만 내면 얼마든지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자들은 황교안 대표처럼 누가 옆에서 돌봐주지 않으면 30분마다 불안해진다. 혼자서는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은 무인도에 떨어지면 굶어죽는 게 아니라 불안해서 죽는다.

그래서 이런 사람은 정치를 하면 안 된다. 정치는 분업화된 한 가지 일을 하는 직업이 아니라 수백 만 가지 다양한 일에 종사하는 민중들을 종합적으로 대변하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30분마다 돌봐주지 않으면 8일짜리 단식도 못 견디는 사람이, 자기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임산부 노동자까지 포함해 12시간 주야 맞교대 근무표를 짜는 사람이, 어떻게 수백 만 가지 노동을 이해한다는 말인가?

부디 노동의 의미를 이해하고 인간으로서 완성도가 좀 더 높은 사람들이 정치를 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돌봄 노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 정치를 할 자격이 없다는 이야기다.

이완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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