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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10대 청소년들의 노동을 돌아보게 하는 단 하나의 이야기, 연극 ‘자전거도둑헬멧을쓴소년’
연극 ‘자전거도둑헬멧을쓴소년’
연극 ‘자전거도둑헬멧을쓴소년’ⓒ국립극단

수년 전, 과외를 했을 때였다. 그 아이를 만나건 그 아이가 중학교 3학년 때였다. 엄마와 함께 온 아이는 공부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래도 예의는 바른 학생이어서 수업을 빠지게 되면 공손하게 연락을 했다. 그 아이는 배달 알바를 했다. 과외를 하니 집안 형편이 그닥 나쁜 것은 아니었을텐데 늘 알바를 했다. 아이는 과외에서 보여주는 모습과는 달리 학교에서는 문제아였다. 특히 담배를 피다 걸리거나 선생님께 대들어서 학폭위(학교폭력선도위원회) 단골 학생이기도 했다. 하루는 길에서 어른이 자신을 아미꼽게 쳐다보며 시비를 걸어 싸움을 했다며 경찰서를 가느라 수업을 못한다는 연락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어찌어찌 시간이 가고 아이는 고3이 됐다. 여전히 공부에는 관심이 없었고 공부하다 어디서 싸움이 붙었다고 가버리는 일도 잦았다. 한창 대학 수시 원서를 쓰던 때였다. 아이는 두꺼운 대학입시요강 안내서를 내밀며 자신이 갈 수 있는 2년제 대학을 골라 달라고 했다. 학교에서는 2년제 대학은 신경을 안써준다는 이유였다. 아이와 머리를 맞대고 학교를 찾았고 아이는 그날 선택한 학교 중 한 곳에 합격을 했다. 수업 마지막 날 아이는 그동안 알바하며 약간의 등록금과 학교 근처 자취방 보증금을 마련했다고 자랑을 했다. 부모님 힘 안 빌리고 학교를 빨리 졸업해서 돈을 벌겠다며 자신의 미래를 설명하기까지 했다. 3년의 시간 동안 그 아이를 하나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것이 미안한 순간이었다. 공부도 안 하고 늘 싸움만 해서 도대체 뭐가 되겠나 싶었던 어줍잖은 걱정은 그저 편견일 뿐이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늦은 밤거리에서 오토바이 배달을 하는 아이들을 보면 그 아이가 생각나곤 한다. 사실 알바를 하는 청소년들을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커피전문점에서도 분식집에서도 집 앞 편의점에서도 늘 알바를 하는 청소년을 만난다. 가끔 ‘이 아이는 왜 알바를 할까?’, ‘왜 이 시간에 공부를 하지 않고 여기에 있는 걸까?’ 따위의 궁금증이 생기곤 한다. 무대 위에서 만난 수남도 오토바이 배달 알바를 한다. 알바하기 전에는 용돈 십만원을 받았지만 알바를 하고부터는 용돈을 받지 않는다. 수남이 알바를 하는 이유는 용돈을 벌기 위해서다. 금수저 친구가 입고 있는 발렌시아가를 사는 것이 당장의 목적이다.

수남에게는 형이 있다. 형은 서울로 간 지 2년 만에 집에 돌아왔다. 엄마에게는 용돈을 주고 기남이에게는 옷을 선물해줬다. 그런데 수남이 형은 오자마자 경찰에게 잡혀갔다. 형이 돈과 물건을 훔쳐서란다. 형은 2년 만에 돌아온 집에 빈손으로 올 수 없어서 도둑질을 했다고 했다. 크리스마스가 왔다. 치킨 배달이 평소 3배 이상 늘어났고 수남의 오토바이도 덩달아 빨라졌다. 그러다가 크리스마스에 내린 눈길에 수남이는 사고를 냈다. 조금 부딪친 것 뿐인데 운전자는 수남이에게 합의금을 가져오라며 오토바이를 가져갔다. 하필 평소보다 세배나 바쁜 크리스마스에 말이다. 합의금을 가져가지 않으면 수남이는 경찰서에 잡혀갈 것이다. 수남이는 형이 있는 그곳에는 절대 가고 싶지 않다. 수남이는 합의금을 마련할 수 있을까?

무대는 정 가운데 놓여 있다. 무대를 감싸고 둥그렇게 만들어진 도로 위로 수남이는 쉼 없이 달린다. 공부 안 하고 알바나 한다며 수남이를 쫓아오는 학교 선생님들을 피해 기남이는 달린다. '양념 반 후라이드 반'을 들고 수남이는 달린다. 조금 더 빨리 달리면 조금 더 꿈을 이룰 수 있는지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달려야 한다. 무대 주위 도로 위를 달리는 수남이를 보며 오늘도 도로 위를 위태롭게 질주해야 하는 아이들을 보게 된다. 이 연극에는 박완서 원작 <자전거 도둑>에 없는 고등학생 유투버 '빈쯔'가 등장한다. 구독자가 겨우 10명인 빈쯔는 먹방이 주 컨텐츠다. 치킨 다섯마리를 먹어치우며 먹방을 하는 빈쯔에게 아버지는 "추잡스럽게 남들앞에서 쳐먹는 거 보여주고 싶냐?"며 온갖 욕설과 폭력을 행사한다. 수남이와 친구 주희, 수남이의 대화는 현실 아이들의 화법 그대로다. 얼마나 많은 모니터링과 리허설을 통했는지를 미루어 짐작하게 한다. 연극 속 아이들은 살면서 제대로 자기 목소리를 내 본 적 없는 아이들이다. 공부하는 아이들과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아이들의 병풍으로 존재했던 아이들에게 연출은 마이크를 줌으로써 목소리를 내게 만들어 준다. 세상을 향해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무대는 몇가지 독특한 요소를 갖추고 있다. 오토바이 사고를 당한 수남이 무대 벽면에 붙으며 도로에 사고로 내팽개쳐진 수남의 모습을 입체감있게 만들었다. 오토바이로 도로를 질주하는 장면을 영상과 함께 처리하여 종합예술의 묘미를 살리기도 했다. 가운데 위치한 무대가 여러 장면을 동시에 나타내지만 혼란스럽지 않은 것도 신선하다. 모든 배우가 여러 역할을 하며 의상을 벗지 않고 덧 입으며 연기를 한다. 덧입어진 옷만큼 갈등과 고민이 쌓여가다 극의 마지막에 가서야 모두 옷을 훌훌 벗고 사라진다. 아주 홀가분해진 모습으로.

연극 속 어른들의 모습은 어떨까? 물론 옹졸하고 편협하다. 공부를 해야 대접을 받는다고 믿는 학교 선생님들이 그러하고 자신도 백수이면서 딸을 향해 자신의 분노를 쏟아내는 빈쯔의 아버지가 그러하다. 수남의 배달 사고에 조금의 책임도 지려 하지 않는 치킨집 사장의 이기심이 또한 그러하다. 연극 ‘자전거도둑헬맷을쓴소년’은 일부러 문제를 제기하지도 섣불리 해답을 제시하려 하지도 않는다. 그저 보고 싶은 것만 보려했던 우리의 가려진 한쪽 눈을 뜨게 만들 뿐이다. 듣지 않고 닫았던 귀를 열고 들으라 하고 섣불리 말하려던 입은 잠시 다물게 만든다. 그게 어른인 우리가 해야 할 일의 첫 단추라고 알려 준다.

연극 ‘자전거도둑헬멧을쓴소년’

공연날짜2019년 11월 21일~12월 15일
공연장소:국립극단 소극장 판
공연시간:70분
관람연령:14세 이상
원작:박완서 <자전거 도둑>
제작진:각색 김연주/연출 윤한솔/무대 신승렬/조명 김형연/의상 이은경/음악감독 옴브레/분장 소품 장경숙/영상 윤민철/교육감독 김미정/무대감독 신승훈/조연출 정유진
출연진:김용희, 김원태, 김청순, 이세준, 이지원 박은경

이숙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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