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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일터로 나가 아무도 모르게 일하다 죽어간 또 다른 고3들 ‘열여덟 일터로 나가다’
책 ‘열여덟 일터로 나가다’
책 ‘열여덟 일터로 나가다’ⓒ후마니타스

1988년 7월이었다. 어린 노동자가 수은 중독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이름은 문송면. 나이는 열 일곱이었다. 그는 1971년 생이었고, 호적상으로 1973년 생이었다. 나와 같은 또래였던 노동자의 죽음은 내게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당시까지 내 스스로 일을 해 돈을 벌어야하는 이유도, 의지도 없이 학교에 다니며 대학을 꿈꿨던 나에게 문송면의 죽음은 또 다른 현실을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

지난달 전태일 열사 기일에 마석 모란공원 묘지를 찾았다. 태안화력발전소 사고로로 목숨을 잃은 한국발전기술 소속의 24세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 씨의 묘소와 문송면의 묘소를 함께 둘러보았다. 30년 넘는 세월이 지났지만 청년들은 여전히 죽어가고 있었다.

2008년 한국의 대학 진학률은 80퍼센트를 넘겼을 정도로 많은 이들이 대학에 가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아니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현장실습생’이란 이름으로 노동현장에 뛰어드는 청년들이 있다.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도 못한 사이에 이들은 불평등한 현실에 내몰려 다치고, 죽임을 당하고 있다. 프레시안 허환주 기자가 쓴 ‘열 여덟에 일터로 나가다’는 이렇게 보이지 않는 또 다른 고3들에 주목한다. 남들보다 3년 빨리 전공을 선택하고, 열여덟이 되면 ‘사회인’이 되어 일터로 나가는 직업계 고등학생들이 그들이다. 노트북과 텀블러가 아니라 컵라면과 업무수첩을 들고 일터로 나가 아무도 모르게 일하다 죽고 만 열여덟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이 책엔 그들의 절박한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특성화고 졸업을 앞둔 전주 LG유플러스 협력회사 콜센터 현장실습생인 은주씨(가명)는 지난 2017년 1월 저수지에 몸을 던졌다. 3년 전 상담팀장이 자살 이후 두 번째 죽음이었다. 고등학교 졸업도 하지 않은 현장실습생이었던 은주씨는 해지를 요청하는 고객을 담당하는 부서에서 일했다. 해지 고객을 설득해 막아내는게 은주씨를 비롯한 해당 부서의 업무였다.

수습을 마치고 정식 직원이 된 이후 콜수를 채우지 못해 야군도 잦아졌고, 회사의 압박과 고객의 욕설에 시달리던 은주씨는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것이다. 은주씨에 앞서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상담팀장의 아버지는 “아들이 회사에 다닐 때, 입버릇처럼 매일 그만두고 싶다고 했어요. 하지만 내가 ‘어느 직장 가면 다른 게 있느냐’며 ‘견뎌야 한다’고 매일 타일렀어요. 그러면 아들이 ‘속 편한 소리 한다’면서 빈정거리기도 했는데 ……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런 선택을 했을까. 그 생각을 하면 아직도 눈물이 나요. 난 아들이 그런 줄도 모르고 계속 회사에 다니라고만 했어요. 이런 못난 아빠가 어디 있나요. 그런 사실을 알았더라면 진작 그만두라고 했을 텐데……. 그것만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져요”라고 고백을 한다.

직업에 귀천이 없고, 실업계 학교를 나온 뒤에 장인으로 대접받으며 성공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정부는 그동안 끝없이 홍보해왔다. 하지만, 현실은 별다른 교육과 노동 안전에 대한 장치도 없이 어른 노동자들을 실습이라는 이름으로 현장으로 내몰고 있었다. 아울러 그렇게 시작한 노동 현장은 불평등한 현실의 시작이었고, 시간이 지나도 땀흘린 대가는커녕 목숨마저 위협받는 상황을 겪어야 한다. 허 기자는 반복되는 현장 실습생들의 산재 문제를 취재하면서 한국 사회 교육 문제와 불평등의 근원을 추적한다.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이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그날”까지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던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 아이들이 일터에서 쏟는 이것이 노력이 아니라면 무엇인가?

허 기자는 이렇게 말한다. “전주에서 은주를 만나고 오던 날, 서울 집에 도착하니 자정 무렵이었다. 두 딸은 잠들어 있었다. 아내에게 그날 만난 은주의 아버지와 친구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그날을 시작으로 우리는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에 대해 자주 대화를 나눴다. 끝은 대개 한숨이었다. 한숨이 반복되면서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그 한숨에서 시작됐다. 또 다른 은주들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기록해 갈 수 있었던 건, 기자로서의 어떤 확신보다는 부모로서의 기원에 가까웠다. 열여덟 살, 일터로 향하는 아이들의 환경이 바뀌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도 없다.”

권종술 기자

문화와 종교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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