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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화 칼럼] 불공정·불평등의 원인을 찾는 또 하나의 길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20여 년 전으로 기억한다.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라는 책이 출판되었을 때 인기가 선풍적이었다. 이 책은 동기유발, 자기 계발을 위한 것이다. 치즈가 있는 미로를 찾아가는 우화를 통하여, 현재의 상태에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를 감지하고 목표를 찾아 노력하라고 말하고 있다. 이 단순한 우화가 성인들에게 인기를 얻은 이유가 무엇일까. 자신이 속한 사회가 능력제 사회라는 강한 믿음 하에, 노력하면 자신의 목표가 성취될 수 있다는 위로를 찾고자 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화는 현실을 극히 단순화한다. 작가는 의도를 분명하게 보이기 위해서 서사의 인물과 갈등은 단순히 처리한다. 특히나 이 책이 그렇다. 빨리 움직이는 자가 빨리 치즈를 찾는다. 치즈를 못 찾았다면 그것은 열정이 없기 때문이고,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왜 치즈는 미로 곳곳에 있지 않고, 한 곳에 몰려있는가. 누가 그곳에 치즈를 놓았을까. 만약 치즈가 있는 곳으로 가는 미로가 진짜 끝없는 미로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꼬마 인간들은 열심히 미로를 헤쳐 나가는데, 쥐들이 치즈들을 모두 숨기고, 그 경로를 혼란하게 한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사람보다 냄새에 더 민감한 쥐들과 경쟁하는 것이 공정한가.

미로 사회에서 경쟁은 당연한 것이라고 믿고, 경쟁이 결국 공정한 결과를 낳을 것이란 믿음이 지켜지는 것이 능력주의 사회다. 그러나 능력주의 사회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지 오래다. 그런데 능력주의 사회를 무너뜨린 책임이 누구에게 있으며, 그 희생자는 누구인가. 올해는 한국사회에서 불평등, 불공정에 대한 격한 분노가 표출되었던 때였다. 분노하는 사람은 외친다. 내 몫은 어디로 갔는가. 우화집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내 노력 부족, 내 능력 부족인가.

20 vs 80의 사회

사회의 불평등, 불공정을 일으키는 공공의 적은 상위 1%라는 것이 오래된 믿음이었다. 그런데 1 vs 99 사회에서 20 vs 80 사회로 틀을 바꾸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리처드 리브스가 쓴 ‘20 vs 80의 사회’가 이런 주장을 본격적으로 하고 있다. 그는 각종 통계와 자료를 열거하면서 미국 사회를 20 vs 80의 사회라고 증거하고 있다.

우선 소득격차가 상위 1 퍼센트와 상위 19퍼센트의 격차보다 20퍼센트와 나머지 계층에서 뚜렷하게 분리되고 있으며 깊어지고 있다. 또한 상위 1퍼센트는 고정적 집단이 아니며, 19퍼센트와 상호 이동하고 있다. 그리고 사회의 영향력이 상위 19퍼센트가 상위 1퍼센트보다 더 크다고 말한다.

리처드 리브스의 ‘20 vs 80의 사회’
리처드 리브스의 ‘20 vs 80의 사회’ⓒ자료사진

“최상위에서 심화되고 있는 불평등을 간과해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하지만 중상류층의 정치권력 또한 비대하게 커졌다. 최상류층의 억만장자 개개인은 개별 정치인들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상류층의 규모와 그들이 집합적으로 가진 권력은 도시의 형태를 바꾸고 교육제도를 장악하고 노동시장을 변형시킬 수 있다. 또 공공담론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기자, 싱크탱크 연구자, TV프로듀서, 교수, 논객이 대부분 중상류층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리브스는 이들이 능력제 사회를 파괴하는 장본인이라고 말한다. 책은 능력주의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평등’과 ‘이동성’이 보장되어야 하고, 기회의 평등은 결과의 계층 이동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미국사회의 20퍼센트에게는 상향이동성만 있을 뿐 하향이동성은 없다. 중상류층이 스스로의 하향이동성을 막기 위해서 장치를 만들기 때문이다. 80퍼센트에게 돌아갈 기회를 사재기(opportunity hoarding)하여 유리바닥을 만든다. 유리바닥을 자신들의 밑으로 깔아서 그들뿐 아니라 자녀들이 하향이동하는 것을 막는다. 다른 계층에게는 단단한 유리천장이 된다. 이런 속에서 능력제 사회라는 믿음은 허구이며, 현재 세상은 디스토피아라는 것이 리브스의 주장이다.

출생과 동시에 발생하는 양육 격차가 좋은 대학, 좋은 일자리로 연결되어 계급 격차를 만든다. 기회사재기는 교육과 노동시장에서 이루어진다. 특히 교육에서 중상류층이 유리하게 사재기한다. 인턴쉽, 부모동문 입학우대, 장학금 제도, 각종 세금보조 등이 그것이다.

리브스는 민주당에 가차 없는 비판을 쏟는다.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가 승리한 것은 바로 민주당 엘리트의 위선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20퍼센트의 위선이다. “진보주의자들은 슈퍼리치가 미국을 좌지우지하는 게 문제라고 말한다. 이런 논의 구도에서는 우리의 정치성향이 어느 쪽이든 우리는 스스로를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안심시키는 전략은 한계에 봉착했다.” 이제는 이러한 전략이 대중에게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한국의 20퍼센트와 80퍼센트

한국의 진보세력은 최상위 1퍼센트, 재벌이 만드는 불평등을 이야기해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연설에서 ‘재벌개혁’을 약속했다. 한국의 재벌은 미국의 상위 1퍼센트와 다르다. 따라서 우리에게 재벌 개혁은 핵심적 과제 중 하나이다. 그런데 이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것, 사회 대다수는 현재의 불평등의 화살을 다른 계층까지 확대하고 있다.

서울 송파구 일대에 위치한 아파트 단지
서울 송파구 일대에 위치한 아파트 단지ⓒ김슬찬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또한 이렇게 말했다.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 정부에서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을 볼 때, 정부가 약속한 사회는 요원해 보인다. 더구나 문재인 정부는 노동과 농업 등 서민과 직결될 정책에서 역주행하고 있다. 이러한 역주행은 문재인 정부의 인적 구성과 그 기반이 무엇인지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미국에서 20퍼센트가 만드는 불평등, 불공정의 예들이 전혀 낯설지 않다. 한국 사회에서 현재 진행 중인 기회의 불평등, 기회의 사재기가 상위 1퍼센트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국민 대다수는 다양하게 똑똑히 목격하고 있다. 기회를 사재기하는 엘리트층, 관료층, 중상류층에 대한 저항 정서가 높아지고 있다. 따라서 리브스의 책은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데 시사점을 주고 있다.

리브스는 스스로를 중상류층이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자신이 속한 집단의 문제점을 파헤친다. 그는 자신을 공정사회를 무위로 만드는 기득권층으로 보고 있다. 한국의 중상류층은 스스로의 안전을 위해서 유리바닥을 만들고 더 공고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나. 리브스는 마지막으로 정책적 제안을 제시하는데, 이는 자신이 속한 중상류층의 윤리적 각성과 책임감이 수반될 때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미국뿐 아니라 한국의 20퍼센트가 자기 개혁을 할 수 있을까. 한국의 80퍼센트는 유리천장을 부수기 위해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리브스의 책은 그 점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김애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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