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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보] “당신에겐, 안부 묻는 자식이 있소?” 유서에 담긴 진짜 의미

2010년, 이명박 정부는 “예산을 효율적으로 쓰겠다”며 통합전산망을 도입해 기초생활수급자에 대한 전수조사를 착수했다. 그리고 2011년부터 정부는 “연락이 닿지 않는다던 당신 아들은 잘살고 있더라”라며, 수많은 기초생활수급자들을 수급에서 탈락시켰다. 이때부터였다. ‘자녀의 소득으로 수급 탈락 통보를 받고 요양병원에서 창문으로 몸을 던진 노인’, ‘장애를 갖게 된 아들을 위해 자살을 선택한 아버지’, ‘의료급여를 받지 못한 채 병원을 오가다 거리에서 객사한 노인’ 등에 대한 사연이 연일 전파를 탔다.

가난한 이의 가족 또한 가난하기 마련이건만. 국가는 가난 때문에 가족관계가 해체된 이들에게 “가족에게 부양받는 게 맞다”는 도덕적 잣대를 들이밀며, 죽음으로 내몰았다.

연락할 수 없는 부양의무자가 이 세상 어딘가에 있다는 이유로, 일방의 수급 탈락 통보를 받은 이들은 아무런 목소리도 내지 못하고 조용히 죽음을 택했다. 가끔 언론을 통해 유서의 내용이 소개될 뿐, 죽음으로 비로소 되찾은 자신의 목소리는 안타까운 사연으로 소비될 뿐이었다. 이런 죽음의 반복이 부당하다고 느낀 장애인·빈곤 단체들은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광화문공동행동’이란 이름으로, 2012년 8월부터 광화문 지하도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이곳을 거점으로 장애인과 빈민들은 수급에 탈락했다고 비관하지 않고, 부당함에 맞서 싸웠다.

그렇게 싸운 지 5년. 정권이 바뀌고, 보건복지부 장관이 농성장을 찾아와 약속했다. “2020년까지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위한 로드맵을 마련하겠다”고. 2017년 9월 5일 광화문공동행동이 1842일 만에 농성을 해제한 이유였다.

하지만 빈곤시민사회 단체들은 최근 다시 청와대 앞에 농성장을 꾸렸다. 정부의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10월 17일 청와대농성 돌입 선포 기자회견에서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외쳤다.

“5년간 농성했습니다. 이 정부 들어선 뒤로도 2년을 기다렸습니다. 그사이에도 많은 사람이 다시 죽어갔습니다. 관악구 봉천동 모자가 아사했고, 강서구에선 부양의무자에 의해 장애인과 치매노인이 살해당했습니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합니까. 기자회견, 청원운동, 서명운동 안 해본 게 없는데, 뭘 더 해야 합니까. 다시 농성을 시작합니다. 빈곤 문제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정부에 매달리고 싶은 마음으로 농성장을 칩니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이 서울 용산구 빈곤사회연대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하고 있다. 2019.11.29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이 서울 용산구 빈곤사회연대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하고 있다. 2019.11.29ⓒ정의철 기자
반빈곤 운동 및 홈리스 야학 공간
반빈곤 운동 및 홈리스 야학 공간ⓒ민중의소리

반빈곤 단체들의 모임 ‘아랫마을’

서울 용산경찰서 인근 주택가 골목길. 차도 다닐 수 없이 비좁고 꾸불꾸불한 골목으로 5~10분 정도 걸어서 들어가다 보면, ‘아랫마을’ 간판이 달린 허름한 2층 주택 하나가 나온다. 빈곤사회연대와 홈리스행동, 금융피해자연대 해오름,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 등이 함께 사용하고 있는 사무실이다.

지난달 29일 이곳에서 김윤영(35)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을 만났다.

이 집의 방은 모두 이들 빈곤시민사회 단체들의 사무실로 쓰이고 있었다. 70년대 집이 지어질 때 방공호 용도로 마련된 지하실은 음악교실로, 집주인이 화초를 키우기 위해 만든 온실은 컴퓨터실로 사용하고 있었다. 김 사무국장과 인터뷰를 한 곳은 햇빛이 비교적 환하게 들어오는 2층이었다. 방 중간에 쳐진 커튼을 열면 넓은 ‘홈리스 야학 교실’이 되는 구조였다. 또 책상을 치우면 ‘몸살림 교실’이 됐다.

빈곤사회연대와 홈리스행동 등이 이곳을 사무실로 사용하기 시작한 시기는 2012년부터다. 행사가 있을 때마다 하루씩 사무실을 빌려서 운영을 해 오다가, 사무실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함께 이곳을 얻었다고 한다.

“홈리스 야학이 주말배움터를 운영했어요. 사무실이 없어서 주말마다 아무 사무실이나 빌려 세팅했다가 그걸 다시 치워야만 했어요. 매번 굉장히 큰일이었죠. 더불어 저희가 만나는 분들에겐 언제든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어요. 또 함께 쓸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면, 여러 단체가 협력을 모으기도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저희도 메뚜기처럼 계속 사무실을 옮겨 다니던 상황이었고요.”

물색한 결과, 어렵사리 괜찮은 곳을 발견했다. 차를 타고 들어오는 건 불가능했지만, 지하철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돈 없는 빈곤시민사회단체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으면 가능한 곳이었다. 이렇게 얻은 주택은 허름했지만, 손을 댔더니 나름 괜찮은 공간으로 바뀌었다. 뜯긴 바닥을 수리하고, 페인트를 칠하고, 전선도 모두 새로 깔았다. 이게 빈곤시민사회 단체들이 함께 밥을 나눠 먹고, 문제가 있을 때마다 힘을 모으는 ‘아랫마을’로 거듭나게 된 배경이었다.

올해 5월 7일 울산대교에서 투신하려던 모녀가 마음을 돌려 구조됐다.
올해 5월 7일 울산대교에서 투신하려던 모녀가 마음을 돌려 구조됐다.ⓒ뉴시스 / 독자제공

죽음으로 목소리를 찾은 사람들
“사람이 만든 법이 어떻게 이럴 수 있나…”
“당신에겐, 연락 오는 자식이 있소?”

김윤영 사무국장이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로 일을 시작한 것은 2010년부터다. 10년가량 빈곤철폐 운동을 벌여온 것이다.

그가 활동가로 지내면서 참여한 빈곤철폐 운동은 셀 수 없이 많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그에게 가장 절실한 주제는 ‘부양의무자제 폐지’였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내내 이어져 온 죽음의 행진을 조금이라도 멈춰 세울 방법은 ‘부양의무자제 폐지’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그는 지난 10년의 활동 중 절반 이상을 바쳤다고 했다.

부양의무자란, 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 수급권자를 부양할 의무가 있는 사람을 말한다. 부양의무자는 수급자를 선정하는 기준으로, 통상 수급권자의 직계혈족(부모, 아들·딸), 그 배우자(며느리, 사위 등)를 가리킨다. 만약 부양의무자가 수급권자를 부양할 능력이 된다면, 수급권자는 기초생활보장제도 대상자에서 제외된다.

문제는 ‘가난 때문에 이미 가족관계가 해체된 사람들’, ‘가족에게 연락할 수 없는 사연을 가진 사람들’에겐 이 부양의무제가 죽음으로 떠미는 제도였다. 이명박 정부는 통합전산망을 도입하면서 수급자들에게 이런 부양의무자 기준을 더욱 엄격하게 들이밀었다.

이 제도의 문제점이 본격적으로 세상에 드러나기 시작한 건 2012년경이다. 그해 7월 이 모(78) 할머니가 경남 거제시청 화단 앞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한다. 현장에선 할머니가 마신 농약병과 유서가 든 가방이 발견됐다. 유서엔 “기초생활 수급 대상에서 제외돼 더는 살 수가 없다…(법은) 사람이 만들진 데, (어떻게) 이럴 수 있나”라는 한탄이 적혀 있었다. 조사 결과, 할머니는 거제시청으로부터 약 30만원의 보조금을 받으며 생계를 유지해오다가 부양의무자인 사위가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수급 대상에서 제외된 것으로 확인됐다.

“할머니가 왜 그렇게 유서를 남겼을까 생각해 봤어요. 아마 할머니는 담당 공무원에게 찾아가서 말했을 거예요. ‘나는 가족에게 기댈 수 없다, 딸과 사위도 모두 살기 어렵다’고요. 그럼 담당 공무원은 ‘법이 그래서 어쩔 수 없다’고 했을 거예요. 그래서 그런 유서를 남기지 않았을까 생각돼요. 실제로, 나중에 국정감사에서 소득조사를 다시 했더니, 당시 사위가 결핵으로 입원 중이어서 소득이 없었던 게 맞았어요. 그런데 공무원은 통합전산망 상 전년도 소득 자료를 토대로 수급에서 할머니를 탈락시킨 거죠.”

이명박 정부가 통합전산망을 도입한 2010년 12월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강북에 살던 ‘어느 노부부의 이야기’다. 60대 노부부는 모두가 새해를 맞는 설렘에 들떠 있던 그해 12월 31일, 동반자살을 택했다. 유서엔 “(당신에겐) 5개월이 넘도록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물어보는 자식이 있소?”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이 부부는 한 달에 43만원이 채 안 되는 돈으로 월세 30만원을 내며 살고 있었다.

당시, 빈곤사회연대는 성명을 통해 “이 뉴스를 접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자녀의 불효와 도덕성을 이야기할 것”이라며, “하지만, 이 부부와 같은 처지에 놓여있는 사람이 한국사회에 100만명이 넘는다면, 과연 그 부양의무를 하지 않는 부모와 자녀들이 모두 기본적인 예의와 도덕성이 없는 것일까? 이들이 부모와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다하고 도덕성을 갖춘다면 한국사회의 빈곤은 해결되는 것일까?”라고 물음을 던졌다.

“죽음을 겪으면서, 부당하다고 느껴졌어요. (부양의무제 때문에) 사람들은 계속 어딘가에서 죽어가는데, 그걸 아무도 모르는 게. 비로소 죽어서 그 사람의 사연이 알려졌을 때, 불쌍하다하고 끝나버리는 것이. 그리고 ‘열심히 살지 왜 그랬대’, ‘에잇 더러운 놈의 세상’ 이러고 끝나버려요. 이제 겨우 이 세계에서 자기 목소리를 찾았는데…너무 부당하잖아요.”

그가, 빈곤시민사회 단체 활동가들이 2012년부터 5년간 광화문농성을 진행한 이유였다.

청와대로 들어가는 입구에 농성장을 설치하고 있는 1017빈곤철폐의날조직위원회.
청와대로 들어가는 입구에 농성장을 설치하고 있는 1017빈곤철폐의날조직위원회.ⓒ민중의소리

다시 농성장이 세워진 이유
“처지 비관 말고 모여 싸울 수 있어야”

1843일간의 농성을 멈춘 이유는 문재인 정부의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국정농단 사태로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새롭게 취임한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광화문 농성장을 찾았다. 김윤영 사무국장에 따르면, 이 자리에서 박 장관은 크게 2가지를 약속했다. 하나는 ‘부양의무제 폐지를 논의하는 민간협의체를 만들자’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2020년도 2차 기초생활보장제도 종합계획안에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에 대한 로드맵을 넣자’는 것이었다.

“빈곤은 미룰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에요. ‘배고픈데 참았다가 내년에 먹자’ 이럴 수 있는 문제가 아니잖아요. 그래서 우리 입장에선 당장 폐지를 해야 할 문제였죠. 하지만 여기엔 예산이 필요하고, 사전 조사 및 인원 충원 등이 있어야 하니까. 2020년 계획에 로드맵이 들어간다면, 당신들의 정권이 끝나고 나서도 이행해야 할 과제가 되는 것이니, 공약이행이라고 볼 수 있겠다 생각하고 농성을 중단했어요.”

하지만 지금까지 정부의 ‘민간협의체 운영 과정’과 ‘부양의무제 폐지 관련 발표내용’을 보자면, 이행할 수 있을지 불안감이 커진다. 김윤영 사무국장은 “민간협의체는, 올해 2번은 열렸나 모르겠다”라고 한탄했다. 또 “올해 9월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바에 의하면, 2020년에 마련될 로드맵이 반쪽짜리가 됐다”고 말했다. 2020년 계획에 ‘부양의무제 완전 폐지’에 대한 로드맵이 담겨야 하는데, ‘의료급여’는 빠지고 ‘생계급여’에 대한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만 담겼다는 지적이다.

부양의무자 기준이 적용되는 기초생활급여의 종류는 ‘생계급여’, ‘의료급여’, ‘주거급여’, ‘교육급여’ 이렇게 4가지가 있다. 이중 교육급여는 박근혜 정부 때 폐지됐고, 주거급여는 문재인 정부 들어서 폐지됐다. 그런데 가장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생계급여와 의료급여는 아직 폐지가 안 된 상태다. 당초 약속대로라면, 두 가지 모두 폐지한다는 내용이 2020년 계획안에 담겨야 하는데, 정부는 생계급여에 대해서만 폐지할 계획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정부는 계속해서 폐지는 안 했지만 지속적으로 완화해 가고 있다고 해요. 그런데 정부가 완화하는 수준이 ‘부양의무자 가구가 중증 장애인인 경우’, ‘부양의무자가 노인인 경우’ 등의 수준이에요. 또 사고가 있을 때마다 이것저것 발표를 해요. 하지만 작년에 주거급여 부양의무자 기준이 폐지된 이후 이렇다 할 성과는 보이지 않아요.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의 수는 변하지 않고 있어요.”

“수많은 말과 복잡한 제도 속에 갇힌 기분이에요. 복잡한 제도 속에서 정부는 뭔가 하고 있다고 하고, 사람들은 그런가 보다 하고 생각하죠. 그런데 가난한 사람 중에선 예전처럼 수급에서 탈락하거나 수급비가 깎이는, 수급 신청조차 못 하는 이들이 반복해서 생겨나고 있어요. 그래서 저희가 다시 농성을 시작했어요.”

농성을 다시 시작했어야만 하는 이유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농성장에 있으면, 수급에서 탈락했다는 분들이 찾아오세요. 저는 이분들이 모여서 싸울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나와서 말을 걸 수 있는 사람도 굉장히 소수겠지만요. 복지를 받을 수도, 부양의무자에게 손을 벌릴 수도 없는 상황을 비관하는 게 아니라, 제도가 잘못됐고, 정부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난 8월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초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 장애인과가난한이들의3대적폐폐지공동행동, 한국한부모연합 관계자들이 ‘가난 때문에 세상을 떠난 관악구 탈북 모자의 추모제’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지난 8월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초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 장애인과가난한이들의3대적폐폐지공동행동, 한국한부모연합 관계자들이 ‘가난 때문에 세상을 떠난 관악구 탈북 모자의 추모제’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김철수 기자

가난을 증명해야 하는 사회

인터뷰에서 김 사무국장은 ‘복잡·까다로운 수급신청 절차’에 대해서도 짚었다.

“제도로만 보면, 수급 시청 시 내야 할 서류는 몇 개 없어요. 신청서, 금융정보제공동의서, 신분증 사본, 본인이 입금 받을 통장 사본. 이 정도만 내면 된다고 해요. 그런데 실제로 신청할 땐 제출해야 할 서류는 훨씬 많아요. 임대차계약서, 본인 명의로 된 모든 통장의 1년 치 거래명세서, 부양의무자 소득증명서, 본인의 한 달 치 지출명세서, 가족관계 단절을 주장할 경우엔 가족관계 해체 사유서 등등.”

“제가 같이 수급신청을 하자고 했던 어머니 A(40대) 씨가 있었어요. 아픈 남편 보살피고, 아이 셋 키우려고, 옷감 재봉하는 곳을 다니고 있었어요. 이분이 정말 어렵게 시간을 내서 함께 신청하러 갔었어요. 그런데 주민센터는 어머니에게 수많은 서류목록을 주고 그냥 돌려보냈어요. 어머니가 포기하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여러 번 설득했지만, 도저히 할 수가 없다고 했어요. 본인의 부모, 남편, 남편의 부모 등 모든 부양의무자의 금융정보제공 동의서를 받아야 하는데, 전국 각지에 떨어져서 살고, 가서 가난해서 이게 필요하다고 말해야 하는 거고…”

그는 이 행위가 얼마나 답답하고 수치스러운 일인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본인의 부모, 아니면 남편의 부모에게 가서 이렇게 말하는 게 돼요. ‘내가 빈곤층이라서, 수급신청을 해야 하는데, 당신이 내 부양의무자이니 사인을 좀 해줘야 한다’, ‘만약 당신에게 소득재산이 많아서 내가 수급에서 떨어지면 당신이 날 부양해야 한다’”

가족관계 해체 사유서
가족관계 해체 사유서ⓒ빈곤사회연대 제공

올해 7월 숨진 채 발견된 한 모(42) 씨 모·자(母子)의 경우도 비슷했다. 빈곤사회연대에 따르면, ‘아사’(餓死·추정사인)로 숨진 한 씨 모·자의 담당 관청은 그간 기초생활수급 신청자들에게 “국민기초생활보장을 받으려면 제3자의 인증을 받아 가족이 해체됐다는 사실을 증명하라”고 요구해 왔다. 김 사무국장은 “한 씨 모자의 경우에도 아동수당 신청하러 갔다가 이혼관계에 대한 보증인을 두 명 세우라는 요구를 받고, 신청을 포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관청만의 잘못은 아니었다. 측정된 예산이 남김없이 잘 사용됐는지에 대해선 관심 없고, 잘못 사용된 수급비는 없는지에 대해서만 감사하는 감사제도도 문제라고 그는 지적했다. 그렇다 보니 매년 불용액이 수천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진다. 급한 사람들에게 제때 지급했어야 할 수급비가 매해 무의미하게 창고에서 썩고 있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최저생계비만큼의 생활을 할 권리를 갖고 있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이 권리를 보장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게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핵심이에요. 돌아가신 故 김대중 대통령이 자기가 국정운영 하면서 가장 잘한 일로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을 꼽는 이유도, 그 의미가 남다르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실제 운영되는 상황이나, 여전히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 규모가 60~90만 명으로 추정된다는 점에서 법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다고 보긴 어렵죠.”

지난 2017년 12월 18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홈리스 추모제에서 세상을 떠난 홈리스 및 무연고 사망자들의 위패가 놓여져 있다. 올해 거리에서 사망한 '홈리스'(노숙인)는 150명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7년 12월 18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홈리스 추모제에서 세상을 떠난 홈리스 및 무연고 사망자들의 위패가 놓여져 있다. 올해 거리에서 사망한 '홈리스'(노숙인)는 150명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뉴스1

가난과 함께 동반되는 것
“너무나 뼈아픈 일들”

경기도 파주 용미리에 가면 ‘무연고 사망자 추모의 집’이라는 작은 시설이 하나 있다. 연고가 없거나, 있어도 장례비용 등의 이유로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아, 고인을 화장한 뒤 10년간 유해를 보관하는 곳이다. 10년이 되도록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고인은 서울시립승화원 유택동산에 산골(散骨)된다. 이곳에 잠들어 있는 이만 해도 3천명이 넘는다. 하지만 평상시 이곳은 항상 문이 굳게 닫혀 있다.

올해엔 지난 10월 16일 문이 열렸다. 빈곤사회연대와 대한불교조계종사회노동위원회, 홈리스행동, 나눔과나눔 등이 무연고 사망자를 위한 합동위령제를 지내면서다.

“빈곤 때문에 가족이 헤어지거나 소원해져서 시신을 수습하지 않는 일도 있지만, 장례비용이 너무 비싸서 못하는 경우도 있어요. 시신을 인수 받으려면 병원 영안실 안치 비용이나, 돌아가시기 전 계셨던 병원의 치료비용 등을 모두 지불해야만 인수 받을 수 있거든요. 그래서 포기하는 가족이 있어요. 가난 때문에 생긴 나의 수치로 생각하고, 가슴에 평생 상처로 남게 되는 거죠.”

“같이 활동하는 분 중 얼마 전까지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수급 신청을 못 한 분이 계세요. 이분이 사업 실패하면서 한 10년간 노숙을 했는데, 부모님과 연락을 못 했어요. 어디선가 그냥 잘살고 있겠거늘 생각하는 게 낫지, 이렇게 바닥에서 자는 걸 알면 부모 마음이 너무 아플 거라고 생각한 거죠. 나중에 부양의무제 폐지되면 수급신청해서 깔끔한 모습으로 찾아뵙겠단 마음이었다고 해요. 그런데 이분이 지난해 겨울인가 수급자가 됐어요. 어느 날 갑자기 가족관계 증명서를 떼어 보니,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자기밖에 없었던 거죠. 그래서 수급신청을 하게 됐지만, 평생의 한으로 남는 거죠. 이렇게 가난하면 겪게 되는 일은 너무 뼈아픈 일이에요…”

이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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