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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엄마의 그림일기] 엄마! 오늘 밤 이야기는 준비됐겠지?

이야기 귀신 열 살 아들은 오늘도 찰거머리처럼 딱 달라붙어서 자기에게 해줄 이야기가 준비되었느냐고 묻는다. “엄마! 오늘 밤 이야기도 준비됐지? 응? 응?” 시간이 좀 될 때는 이것저것 자료도 찾아보고 책도 읽고 뉴스도 검색해서 하루에 이야기를 하나씩 준비하는데 영 마땅치 않을 때는 정말 귀찮고 곤혹스러운 일이다. 보통 우리 집 아이들은 학교 다녀와서 밖에서 신나게 놀다가 나랑 이야기 하나 나누고, 글 쓰기 하나 하고 하루를 마무리한다. 나의 소박한(!) 가정교육의 목표는 ‘모국어를 잘 듣고, 잘 말하고, 잘 쓴다’이다.

“옛날에 말이야, 미국에는 원래 살던 인디언들이 있었어. 인디언도 사실은 틀린 말이야. 서양 사람들이 아메리카에 도착했을 때 거기가 인도인 줄 알고 원래 살았던 사람들을 인디언이라고 불렀대. 그럼 뭐라고 불러야 할까? 무슨 무슨 부족 사람? 암튼 여러 부족이 살고 있었으니까 그게 맞겠다. 아, 검색해서 한번 찾아볼까? 인디언은 이렇게 생겼구나. 우리랑 좀 비슷한 것도 같고. 서양 사람들은 인디언이 살던 땅을 차지하려고 그 사람들을 한 곳으로 모아 이동을 시켰대. 한 500킬로 정도를 걸어야 해서 인디언들은 너무 힘들어서 가다가 죽기도 하고 죽으면 가족을 길에 버리고 갈 수 없으니까 죽은 가족을 업고 걸어 걸어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갔다는 거야. 너무 처참하고 힘들었을 것 같아.”

난 주로 인디언 이야기해주는 것을 좋아한다. 시애틀 추장의 편지도 읽어주고 적은 수의 서양 사람들이 가지고 온 무기 이야기, 전염병 이야기도 하고.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가지를 뻗어 밤마다 이야기 성을 쌓는다.

아궁이와 가마솥의 추억
아궁이와 가마솥의 추억ⓒ박지선

“엄마 어렸을 때는 말이야, 학교를 한 시간이나 걸어 다녔어. 할아버지가 나무를 해오면 아궁이에 장작을 때고 가마솥에다 밥을 해 먹었어. 아궁이에 불 땔 때 그 앞에 앉아 있는 걸 좋아했는데 따뜻하고 향긋하고, 나무 태우는 냄새가 너무 좋아. 이 냄새가 솔솔 나면 밥 먹을 시간이거든. 부엌은 흙바닥이었는데 가마솥에 물을 끓여서 커다란 고무 대야에 따뜻하게 물을 채워서 목욕을 했어. 우리 할머니가 거칠거칠한 손으로 얼마나 아프게 때를 밀어줬던지 지금 생각해도 아프다. 과자 같은 건 물론 없어서 외할머니가 맨날 간식을 만들어 줬어. 타래과, 술빵, 콩도 볶아서 먹고, 고구마 말려 먹고. 문을 여닫는 텔레비전이 있었는데 엄마는 거기 안에 조그만 사람이 사는 줄 알았단다. 하루에 한 시간씩만 만화를 봤어. 꼬마 자동차 붕붕, 이상한 나라의 폴, 스머프 그런 거. 그리고 9시만 되면 자라고 방송이 나왔어. 아마도 모든 대한민국 어린이들이 9시에 잠들었을걸?”
“엄마는 뭐 사달라고 떼 안 썼어?”
“안 썼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거짓말!”
“뭐 파는 데도 없고 돈 주고 물건 같은 걸 사는 건지도 몰랐어. 시골에선 그렇게 살았어. 그게 그러니까 불과 30년 전이니까 세상이 참 빨리, 너무 많이 변한 것 같아. 딱 한편만 볼 수 있었던 만화를 무한대로 볼 수 있으니 말이야”
“우왕! 타임머신이 있으면 엄마 어릴 때로 가보고 싶어!”

“김훈 작가라는 분이 계셔. 엄마는 이 분이 쓴 자전거 여행이란 책을 참 좋아하는데. 이 분이 신문에 글을 썼는데 엄마 이 글 보고 너무 슬펐어. 읽어줄까? 우리나라 건설 노동자들이 하루에도 몇 명씩 일을 하다가 떨어져 죽는다는 거야. 그런데 그 이유가 비계를 잘 설치하지 않아서 그렇대. 비계가 뭐냐면 건물을 지을 때 바깥쪽을 공사하려고 임시로 만들어 놓은 구조물인데 튼튼하게 해놓지 않아서 일하다 떨어진대. 아 엄마 너무 슬프다. 사람들이 좀 더 안전하게 일하면 좋겠는데.”

아이는 내가 신문을 보고, 책을 읽고, 여러 가지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들은 이야기를 글로 쓰는 것을 좋아한다. 다행히 글쓰기를 대단한 숙명으로 알고 매일 미치도록 고심하며 주제를 정한다. 아이의 일기 주제 잡기는 우리 가족에게 큰 괴로움을 준다. “아... 뭐 쓰지? 뭐 쓰지?” 일이 많을 땐 귀찮기도 하지만 하루에 한 가지 이야기 나누기랑 글쓰기는 꼬박꼬박 아이가 챙긴다. ‘오늘은 엄마가 우리나라가 왜 남한과 북한으로 갈라졌는지 이야기해 주셨다’ 여기 가지 써놓고 엄마!!! 하고 부르는 식이다. 이런 주제는 보통 한 시간은 검색해 가며 이야기를 해야 한다.

날마다 글쓰기에 고심하는 아이
날마다 글쓰기에 고심하는 아이ⓒ박지선

“엄마는 연필 사각거리는 소리가 그렇게 좋더라. 할아버지 어렸을 때는 연필이 없어서 지금도 굴러다니는 연필을 보면 자기 어린 시절이 생각나서 그렇게나 마음이 아프대. 연필은 뭐니 뭐니 해도 칼로 깎아야 제맛이야. 엄마는 초등학교 2학년 때도 칼로 연필을 깎을 수 있었는데 요즘 어린이들은 칼로 연필 같은 건 안 깎겠지? 연필로 글씨를 쓰면 사각사각 소리도 나고 또각또각 소리도 나고 음악 소리보다 듣기 좋아!” 슬쩍 이렇게 이야기하면 내 옆에서 그 소리를 들려주려고 나름 노력한다. 엄마의 빅 피쳐^^

슬슬 밤이 되면 오늘은 어떤 일이 있었나, 찰거머리 이야기 귀신에게 오늘은 또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뒤적뒤적 고민에 빠진다. 살면서 ‘이야기’가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위로해주고 격려해주고 돌아보게 하고 나아가게 하고. 정말 큰 힘이 되더라. 긴긴 겨울밤 재미난 이야기 많이 나누시길.

박지선 마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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