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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혐오표현’은 공존할 권리를 부정하는 폭력, 이정희 전 의원의 ‘혐오표현을 거절할 자유’
책 ‘혐오표현을 거절할 자유’
책 ‘혐오표현을 거절할 자유’ⓒ들녘

지난 11월 21일 안상수 자유한국당 의원이 ‘국가인권위법 일부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법안엔 “우리 사회의 전통과 건전한 성도덕 보전” 등을 위해 국가인귄위법 평등권 보장 조항 가운데 ‘성적 지향’을 삭제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앞서 19일 보수개신교 단체들과 기자회견을 연 자리에서 안 의원은 개정 이유를 묻는 개신교 교계 매체의 질문에 “이 조항을 삭제하지 않으면 나중에 이것(동성애)을 법적으로 비난하지 못하게 된다. 비판할 자유가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답했다.

보수개신교 세력을 중심으로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하고, 국가인권위법을 개정하려 시도하는 논리의 배경은 모두 ‘비판할 자유’, 혹은 ‘표현의 자유’다. 예수교장로회 합동 부총회장인 소강석 목사는 지난 12월5일자 ‘국민일보’와 인터뷰에서 “절대 동성애자를 차별하거나 핍박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시각에선 성 정체성에 장애를 겪는 사람들이다. 그런 동성애를 반대할 자유도 있지 않을까”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보수개신교의 이런 주장에 대해 “한국사회에서 혐오표현의 자유는 넘쳐난다”며 “한국 사회는 혐오표현의 피해자에게 혐오표현을 거절할 자유를 보장해주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인 이가 있다. 바로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다. 그 역시 ‘종북’, ‘빨갱이’ 등의 혐오표현의 피해자로서, 혐오의 대상으로 낙인찍혀 소속됐던 정당마저 해산된 그가 한국사회에서 혐오표현이 가진 문제를 짚어내고, 무슨 근거와 어떤 방식으로 혐오펴현을 규제할 수 있을지 화두를 던지는 책 ‘혐오 표현을 거절할 자유’를 출간했다.

19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주최로 열린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2019 평등행진 ‘우리가 간다’에서 참석자들이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여성, 청소년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를 근절하기 위한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며 손피켓을 들고 있다.    2019.10.19
19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주최로 열린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2019 평등행진 ‘우리가 간다’에서 참석자들이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여성, 청소년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를 근절하기 위한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며 손피켓을 들고 있다. 2019.10.19ⓒ김철수 기자

이 책은 ‘혐오표현’이 과연 무엇인지 여러 사례와 연구 결과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혐오표현은 다수집단이 소수집단에게 가해온 역사적・사회적 배제의 논리와 배타적 감정을 다시 불러일으킨다. 이 사회는 다수집단의 노력으로 발전시킨 것이니 소수집단과 그 구성원에 대한 차별이 온당하다고 주장한다. 소수집단이 다수집단의 몫을 공정하지 못한 방법으로 점점 더 많이 차지하고 있다며 반감을 퍼뜨린다. 주류 사회로부터 소수집단 구성원을 몰아낸다. 주류 사회에서 그가 ‘정상적’인 구성원으로서 공존할 공간 자체를 없앤다. 그리하여 혐오표현은 과거 그와 그의 동료들이 겪었던 차별과 배제의 경험이 다시 현실의 것이 될 위험을 높인다. 그가 하루빨리 벗어나기를 갈망하는 차별과 배제가 앞으로도 계속될지 모른다는 절망을 무기한 연장시킨다.

역사적・구조적 연원에 의해 소수집단과 그 구성원들에 대한 배제 또는 축출을 주장하거나 정당화하며 차별하거나 적대하는 표현을 ‘혐오표현’으로 정의하면, ‘혐오표현’의 핵심 문제는 소수집단과 그 구성원들의 ‘공존할 권리’를 부정하는 것으로 집약할 수 있다. 한 사람의 평판이나 평가를 떨어뜨리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 공동체에서 그와 그가 속한 집단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배제함으로써 그가 그곳에서 타인과 공존할 수 없게 하고, 이로써 그의 ‘인간의 존엄’을 침해하는 것이다.

2017년 3월 1일 오후 서울 세종로에서 열린 제 15차 3.1절 탄핵기각 총궐기 국민대회에서 육사 구국동지회 회원이 '종북좌파 척결' 깃발을 들고 있다.
2017년 3월 1일 오후 서울 세종로에서 열린 제 15차 3.1절 탄핵기각 총궐기 국민대회에서 육사 구국동지회 회원이 '종북좌파 척결' 깃발을 들고 있다.ⓒ양지웅 기자

이 전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혐오표현도 표현의 자유로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의 주된 근거 가운데 하나는, 어떤 사상이나 의견도 제한 없이 표출될 수 있는 ‘사상의 자유시장’이 보장되어야 하고, 혐오표현도 제외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한국 사회에 사상의 자유시장이 필요하다면, 그곳에서 보호되어야 할 것은 ‘혐오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혐오표현을 거절하고 비판할 표현의 자유’다.”

이 전 대표는 이 책에서 피해자의 역할과 책임도 강조하고 있다. 혐오표현을 함께 막아낼 사람들과 손잡기 위해, 혐오표현 피해자는 먼저, 다수의 경미한 가담자들과 방관자들에 대해 던져온 “왜 내 피해를 인정해주지 않는가”, “왜 나에게 와서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지 않는가”는 질문을 넘어서야 한다. 혐오표현 피해자의 피해가 되풀이되지 않는 길은 혐오표현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뿐이고, 그러려면 다수 사람들이 피해자와 함께해야 하는데, 이 질문들은 다수의 경미한 가담자와 방관자들을 피해자로부터 다시 저만큼 밀어낸다.

혐오표현을 퍼뜨리고 소수자들을 배제 축출하려 한 공직자나 정치인, 언론인에게는 법적・정치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혐오표현에 동조하거나 경미하게 가담하거나 방관한 많은 사람들에 대해서까지 법적 또는 정치적 책임을 물으려 하는 것은 무리다. 혐오표현이 나온 역사적・구조적 연원이 있고,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드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들까지 비난하고 책임을 물으려 해서는, 이들을 ‘공존할 권리’가 인정되는 사회로 함께 가는 동반자로 만들 수 없다. 새로운 사회로 함께 갈 사람을 모으지 못하면, 새로운 사회를 만들 수 없다고 강조한다.

지금을 사는 사람들의 손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한다면, 피해자 스스로 다수의 사람들과 사이에서 마음의 거리를 좁히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사람들 사이의 거리가 바로 혐오표현의 피해다. 피해자가 그 피해를 극복하게 하는 것은 바로 피해자 자신의 마음의 변화다. 당신의 피해가 이만큼 컸다고 공감하고 위로하는 주변의 노력은 피해자를 지탱해줄 수는 있어도, 피해를 극복해줄 수는 없다.

자신을 변화시키려는 피해자들의 노력이 충분히 차오른 뒤에야, 그리하여 혐오표현을 막아낼 사람들이 가까이 함께 설 수 있어야, 세상은 마침내 변할 것이라고 이 전대표는 강조한다. 이것이 이 전 대표가 책을 쓴 이유이기도 하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첫 번째 이유는 내가 겪은 '종북' 혐오표현에 대한 소송에서 이기고 싶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글을 쓰면서 확인한 것은, 내가 혐오표현의 대상이 되었던 것에서 법률적으로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제대로 벗어나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다.”

권종술 기자

문화와 종교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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