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하청노동자로 일하다 사망한 고 김용균 씨의 1주기를 사흘 앞두고 추모집회가 열렸다. 김 씨가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숨진 지 1년이 지났지만 위험의 외주화가 여전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고 김용균 1주기 추모위원회는 7일 오후 서울 종각역 사거리에서 ‘일하다 죽지 않게! 차별받지 않게!’라는 주제로 추모대회를 열었다. 또한 민주노총은 추모대회에 앞서 같은 장소에서 사전결의대회를 진행하고 추모대회에 합류했다.
이날 추모대회에는 주최 측 추산 약 2천여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우리가 김용균이다”라고 외치면서 위험의 외주화 금지와 비정규직 철폐를 촉구했다. 사고의 재발을 막기 위한 요구사항으로 ‘김용균 특별조사위원회’ 권고안 이행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했다. 현장에서는 “더이상 죽이지 마라”, “우리는 살고 싶다”, “하청산재는 원청책임이다” 등 구호가 울려 퍼졌다.
가장 먼저 마이크를 잡은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김용균 씨가 목숨을 잃은 뒤에도 산업재해 방지를 위한 대책이 이행되지 않는 현실을 비판했다. 그는 “새 양복을 입고 설레어 웃던 청년 노동자, 비정규직 설움을 알리기 위해 대통령과 만나겠다던 패기 넘치는 노동자 김용균을 떠나보낸 지 1년이 됐다”며 “1년 전 그날처럼 김용균이 점검하던 벨트는 석탄을 실어 나르고 있지만, 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는 아직 직접 고용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한 “위험의 외주화를 금지하는 산업안전보건법은 정부 손에서 하위법령과 지침으로 누더기가 된 채 또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 죽음을 묵인하고 있다”며 “비정규직 철폐와 위험의 위주화 금지, 비정규직 직접고용, 중대재해 사용자와 살인 기업 엄중 처벌 등 김용균이 꾸었던 꿈을 함께 현실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김용균 죽음 이후 1년, 달라진 우리와 달라지지 않은 저들 사이에 절벽이 있다”
최민 김용균재단 이사도 죽음의 외주화를 철폐하자는 시민사회 목소리를 대변하지 못하는 정부를 비판했다. 그는 이러한 현실에 대해 “달라진 우리와 달라지지 않은 저들 사이에 절벽 같은, 낭떠러지 같은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최 이사는 먼저 “김용균 씨를 떠나보내고 1년, 대한민국이 하나도 바뀌지 않은 건 아니다”라며 “김용균 씨의 죽음이 죽음의 외주화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하는 노동자와 시민들은 정부로부터 노동자의 죽음을 막겠다는 대답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또한 “투쟁으로 만들어진 특조위가 비정규직과 정규직으로 갈라진 일터에서 어떻게 위험이 생기는지 분명히 밝혔다”며 “김용균 노동자 죽음 이후 언론과 시민은 노동자 죽음을 더 자세히 기록하기 시작했고, 지난 10월에는 비정규직을 철폐하고 안전한 일터 만들겠다는 의지가 모여 재단이 출범했다”고 덧붙였다.
최 이사는 이어 “노동자와 시민이 한 걸음 나아갈 때 제자리에서 꼼짝 않는 사람들이 있다”며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나서 특조위 권고를 무조건 이행하겠다고 하더니 정부는 100일이 지나도록 대답이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지난 4일 평택의 한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우즈베키스탄인 이주노동자가 압착기에 깔려 사망한 사고를 언급하며 “사업장이 안전 조치를 제대로 이행했는지 확인조사가 이뤄지기도 전에 동료가 과실치사로 입건됐다”며 “노동자 목숨 앗아가는 산업재해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는 경찰과 검찰도 변한 게 없다”고 지적했다.
최 이사는 “달라진 우리는 노동자가 일터에서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지키고, 노동자가 힘을 모을 수 있는 노조가 있고, 노동자가 위험하다고 생각하면 작업 중지를 요구할 권리가 있어야 산재 막을 수 있다고 얘기한다”며 “노조를 탄압하고 노동자 권리를 무시하면서 산업재해를 줄일 방법은 없다”고 강조했다.
황교안 ‘노동시간 부족’ 발언에 “노동자 죽어 나가는데 더 쥐어짜라는 거냐”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노동시간 부족’ 발언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최준식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은 “황교안 대표가 최근 노동자가 더 많이 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며 “노동자는 아우성치는 데 도대체 나라의 발전 위해 얼마나 일하라는 거냐. 죽어 나가는데 얼마나 더 쥐어짜라는 거냐”라고 말했다.
최 위원장은 산업재해에 대한 원청 책임을 강화해야 할 필요성도 제기했다. 그는 “산업재해가 빈번 하는 현실이 바뀌지 않는 이유는 원청 사용자 책임이 약하기 때문”이라며 “지난 10년간 6천건의 사망사고 있었지만, 원청 사용자는 벌금을 평균 432만원만 내면 모든 게 끝났다. 상황이 이런데 뭐가 변하겠나”라고 설명했다.
김호규 금속노조 위원장은 노동자 안전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노동자 스스로가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내년 4월 오직 노동자 안전과 생명 문제를 주요 쟁점으로 삼는 전국 노동자 대회를 열고 이를 통해 노동자 스스로 안전 문제를 보듬을 수 있도록 투쟁을 조직하길 바란다”고 제언했다.
김용균 씨 어머니 “아직 할 일이 많다…다른 사람 삶 파괴되는 것 막을 것”
결의대회 이후 이어진 추모대회는 7명의 추모대회 제안자의 개회선언으로 시작했다. 김명환 위원장을 비롯해 이성태 발전비정규직 연대회의 간사와 청년건설노동자 고 김태규 씨의 누나 김도현 씨, 박승렬 NCCK인권센터 소장, 도명화 톨게이트 수납노동자 등이 무대에 올랐다.
특히 이성민 간디학교 학생은 산업재해에 대한 청소년의 목소리를 전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죽음을 피할 수 없는 노동 환경은 바뀌어야 한다”며 “청소년이 사회로 나갔을 때 노동 현장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위험의 외주화와 비정규직이라는 말도 안 되는 제도가 없어지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김현주 직업환경의학전문의는 노동자를 위험에 몰아넣고 이윤을 취하는 기업 형태를 비판했다. 그는 “노동자들의 위험을 대가로 이윤을 추구하는 데 대해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하청업체에서 일한다고 파견노동자라고 비정규직이라고 해서 생명이 덜 소중한 게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조위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는 정부에 대한 비판은 추모집회에서도 이어졌다. 특조위 조사위원으로 참여한 권영국 변호사는 “깜깜한 발전소를 처음 방문했을 때, 암흑 같은 현장을 뚫고 진상을 조사하면 노동자 삶이 바뀔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권 변호사는 먼저 ‘갈라진 일터’의 실상을 전했다. 그는 “다단계 하도급이 책임과 고용을 분리하고 책임의 공백 속에 위험은 노출된 채 방치됐다”며 “권한과 이윤은 위로 쌓이고 책임과 위험은 내려가 하청 노동자 몸에 전가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래서 우리(특조위)는 다단계 하도급과 외주화를 멈추라고 권고했다”며 “희망은 거기까지였다”고 말했다.
그는 “진상 결과가 휴지통에 처박혀야 하는 아픔을 목격하고 있다”며 “갈라진 일터를 다시 봉합하기 위해 차별 없는 노동으로 손잡고 나아가자”고 했다.
김용균 씨 어머니 김미숙 씨도 무대에 올랐다. 김 씨는 아들에게 쓴 편지에서 “엄마는 이곳에서 할 일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과 정부 여당이 유가족 앞에서 약속한 것 지켜지지 않았다”며 “특조위 권고안이 현장에서 이행되는지도 지켜봐야 하고 너를 죽게 만든 책임자들이 엄한 처벌 받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너를 살릴 수는 없지만 다른 사람들의 삶이 파괴되는 걸 막고 싶다”며 “너와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걸어갈 것”이라고 했다.
이날 집회는 청와대로 향하는 행진으로 이어졌다.
한편, 추모위는 김용균재단과 민주노총 등 100여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됐다. 추모위는 지난 2일 ‘청년비정규직 고 김용균 1주기 추모주간 선포’하고 산재 관련 토론회와 추모행사 등을 진행하고 있다. 오는 8일에는 마석 모란공원에서 김용균 1주기 추도식을 가진 뒤 같은 날 저녁 분향소 앞에서 문화제를 개최한다. 기일인 10일엔 김 씨가 사망한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추도식을 연다.
조한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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