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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고전 ‘하녀들’을 SNS 세상으로 불러 내 부조리한 현실을 그려 낸, 연극 ‘메이드 인 스타그램’
연극 ‘메이드 인 스타그램’
연극 ‘메이드 인 스타그램’ⓒ극단 성북동 비둘기

성수동은 독특한 곳이다. 공장과 고층건물, 연식이 된 주택가와 고층아파트, 밥집과 커피전문점이 뒤섞여 있다. 일부러 그렇게 조성을 한 것 같지는 않지만 마치 의도를 갖고 그 모든 것들을 뒤섞어 놓은 듯하다. 예전 공장을 그대로 사용한 다양한 문화공간은 성수동을 더욱 특색있게 만들어 놓았다. 극단 ‘성북동 비둘기’가 다시 둥지를 튼 곳도 공장 건물 2층이다. 골목을 세심하게 돌아 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 이 특별한 공연장은 공작소, 아니 이 극단의 생산현장에 가까웠다. 관객은 이 생산현장에서 만들어지는 연극을 지켜보는 생경한 경험을 하게 된다.

무대에는 두 배우의 ‘역할놀이’가 한창이다. 한 사람은 마담이고 한 사람은 그녀의 시중을 들고 있는 하녀 클레르다. 사실 마담 역할과 하녀 역할을 하고 있는 클레르와 솔랑쥬이다. 이 연극은 1940년 프랑스가 배경인 원작 ‘하녀들’을 오늘날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공간으로 옮겨 놓았다. 원작의 하녀들은 자신들을 미천하게 취급하는 마담에 대한 적대감을 갖고 있다. 이들은 마담이 자리를 비우면 마담의 방에 들어가 마담 역할을 하며 연극을 펼친다. 연극에서 이들은 SNS 속에서 실제 자신들과 전혀 다른 사람들이 되어 역할놀이를 한다.

현실에 SNS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모습은 모두 이상적이다. 맛집에서 독특하고 새로운 음식을 즐기며 이국적인 카페에서 한가로운 여유를 즐긴다. 핫플레이스를 거닐며 사랑스런 미소를 카메라에 담는다. 때론 지식의 굶주림을 몇 권의 책으로 달래기도 하고, 떨어지는 낙엽을 밟으며 사색에 빠지기도 한다. 새로 산 옷을 입고 맵시를 뽐내기도 하고, 선물받은 명품들을 무심하게 자랑하기도 한다. 그곳에선 찬사와 위로가 봇물터지듯 쏟아진다. 우리가 익히 알고 경험하고 있는 세상이다. 특별한 촬영기술이 없어도 간편한 앱 하나로 평범한 일상도 특별한 순간으로 기록된다. 처음엔 누구나 호기심과 쑥스러움으로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더 좋은 자신을 보여주기 위해 삶이 바뀌어 간다. 더 예쁜 사진을 올리기 위해 장소를 물색하고 남들과 다름을 보여주기 위해 읽지도 않을 책들을 사기도 한다. 어느새 현실의 자신은 사라지고 SNS속 타인만 남게 되기도 한다. 무대가 시작되자마자 ‘좋아요’를 눌러 달라며 간곡하게 매달리던 클레르처럼.

연극 ‘메이드 인 스타그램’
연극 ‘메이드 인 스타그램’ⓒ극단 성북동 비둘기

마담을 경멸하면서도 동경해서 마담 역할을 하며 연극을 하는 두 하녀들은 SNS를 벗어나면 보잘 것 없는 현실로 돌아온다. 다시 SNS 속으로 들어가면 분주하게 상황을 만들고 배경을 설정하여 역할놀이에 빠진다. 이 연극은 모든 소품이 지나치게 허술하고 빈약하다. 비닐을 겹쳐 만든 슬리퍼, 가위를 매단 안경, 펜치를 달아 만든 마담의 실내용 슬리퍼, 구찌 로고를 그려 맨 스케치북 가방. 모두 일부러 작심하고 그렇게 만든 소품들이다. 어린 시절 왕자와 공주 역할놀이를 하는 아이들이 보자기를 둘러 메고, 빈통만 있는 엄마 립스틱을 입술에 바르는 척을 하며, 종이에 색칠해 만든 가방을 메고, 신문지를 말아 칼처럼 휘두르며 놀듯 연극의 모든 소품들은 유치하다. SNS 속 우리가 만들어 내는 가공의 그것들처럼.

클레르와 솔랑쥬는 클레르의 밀고로 마담의 연인 무슈가 체포된 것을 마담이 알게 되기 전에 마담을 살해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계획은 실패로 돌아간다. 대신 연극 속 마담역을 한 솔랑쥬가 독주를 마시게 된다. 이들이 죽이고 싶었던 것이 보잘 것 없는 현실에 자신이었을 수도 있고, SNS 속 가공의 자신이었을 수도 있다. 그게 무엇이었건 소외된 하녀들의 현실은 달라질 것이 없다. 현실의 자신은 달라지지 않는 현실을 살아야 한다.

연극 ‘메이드 인 스타그램’은 공장의 뼈대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 작업 공간에 사진작업실을 닮은 SNS 공간을 만들어 놓았다. 무대 가장자리에는 작업장을 연상시키는 각종 공구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심지어 분장실과 소품실이 모두 무대에 놓여 있다. 무대와 객석이 가지런히 분리되어 있고 무대가 고급스럽게 꾸며진 일반적인 공연장과 이곳은 많이 다르다. 이 대책없는 자연스러움은 김현탁 연출의 자유로운 시선과 닮아있다. 아무렇게나 툭 만들어서 던져놓은 것만 같은 이 연극이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오는 것은 ‘다름’과 ‘신선함’때문만은 아니다. 유치한 우리들의 모습을 대놓고 있는 그대로 유치하게 보여줘서이다.

연극 ‘메이드 인 스타그램’
연극 ‘메이드 인 스타그램’ⓒ극단 성북동 비둘기

연극 ‘메이드 인 스타그램’


공연날짜:2019년 12월 6일-12월 29일
공연장소:성북동 비둘기 창작공간 뚝섬 플레이스(성수동 1가 656-376)
공연시간:70분(평일 8시/토일 성탄절3시/월요일 쉼)
관람연령:16세(고등학생 이상 관람가)
원작:장 주네
연출:김현탁
출연진:곽영현, 박보현

이숙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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