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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경의 삶과 문학] ‘남포를 입에 물고’
-황석영 작가의 소설 ‘객지’
-황석영 작가의 소설 ‘객지’ⓒ기타

노사위원회의 노측 대표를 선출하던 날이었나. 월요일 오후였다. 서류인지 도장인지를 두고 갔다는 연락을 받고 나는 처음으로 그가 일하는 공장을 찾았다. 서툰 운전으로 내비게이션 지도를 따라 도착한 곳은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산자락의 공터였다. 공터 앞 가파른 비포장도로로 대형 트럭들이 오르내렸다. 앞선 트럭이 일으키는 흙바람이 미처 잦아들 틈도 없이 뒤따르는 트럭이 회오리먼지를 일으켰다. 건너편 공장 정문 앞에 담배를 물고 있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공터에 차를 세워두고 도로를 건넜다. 회색 연기가 피어오르는 높은 굴뚝 아래 그가 개미처럼 서 있었다. 나는 가져간 서류봉투를 그에게 건넸다. 그는 담배를 다 피우지도 못하고 서둘러 담벼락에 비벼 껐다. 그 사이 트럭 몇 대가 공장을 드나들었다. 담배를 끄고 봉투를 건네고 트럭이 지나가던 잠깐 동안 우리는 흙먼지를 뒤집어썼다. 그러고는 그가 먼저 공장 안으로 들어갔고 나는 뒤돌아 길을 건넜다.

너는 그렇게 더렵혀진 앞치마와 팔 토시를 하고 매일 열 시간씩 기계 앞에 서서 일했던 거구나. 아침에 가져간 흰 작업화는 반나절 사이에 다른 빛깔이 되어 너의 것인지 알아보지도 못하겠구나. 네가 집으로 오기 전에 맨 처음 할 일은 기름때가 묻은 손을 몇 번이고 씻어내는 것이겠구나. 어린 네 동료들, 너와 같은 동료들이 죽어나온다는 그곳에 너를 열 시간씩 보내고, 나는 네가 가져온 시급 8350원, 월 1,745,150원을 받아왔구나. 우리에게 어떤 문제와 불운이 닥쳐도 나는 너의 그 손을 놓지는 못하겠구나.

도로를 건너오며 ‘그’를 생각했다.

1971년에 발표된 황석영 작가의 소설 <객지>는 서해안 ‘운지 간척 공사장’ 일용직 노동자들의 노동과 삶에 관한 이야기이다. 혹자는 이 소설을 ‘한국 현대 노동소설이 선구’라고도 하고, ‘민중의 삶을 한국문학의 중심부로 진입하게 한 문학사적 사건/류보선 평론가’이라고도 평한다.

‘우리가 못 받으면, 뒤에 오는 사람 중 누군가 개선된 노동조건의 혜택을 받게 될 거요.’
- <객지> 중

사회에서 떠밀리고 떠밀려 마지막으로 흘러들어간 간척 공사장의 날품팔이 일용직 노동자들은 돌덩이를 짊어져 살이 벗겨지고 다리가 꺾이는 강도 높은 노동으로 저마다 피폐해진 삶을 버텨나가지만, 공사장 소장, 십장, 감독조, 개인에게 소유권을 주어 운영하게 하는 함바에서까지, 몰락이 불가피한 구조 속에서 착취된다. 형편없는 노임은 결국 빚으로 남아, 그들은 공사장을 떠날 수조차 없다.

‘꼭 내일이 아니라도 좋다.’
- <객지> 중

인간다운 삶은 고사하고 생존마저 불분명한 공사장에서 그들은 ‘개체보존을 위한 실천’에 나선다. 누군가는 자신만의 생존을 위해 구조 속으로 들어가 같은 운명에 처한 사람들에게서 등을 돌리는 것으로, 또 누군가는 꼭 내일이 아니라도, 뒤에 오는 사람 중 누군가를 위해 뒤틀린 현실을 바로잡겠다고 권력과 맞서는 ‘동혁’과 ‘대위’ 같은 각성된 인물들을 따라, 각자의 삶을 선택한다.

동혁과 대위와 함께 파업에 참여한 인부들은 사측의 속임수와 회유에 흔들리며 산꼭대기까지 밀려났다가 결국 산을 내려간다. 테러로 부상을 당한 대위마저 내려 보내고 마지막까지 혼자 남은 동혁은 그들 노동의 근원이자 등을 짓누르는 돌덩이를 얻기 위해 바위산을 폭파하던, 그 붉은 포장의 남포를 입에 문다.
‘꼭 내일이 아니라도 좋다.’
동혁은 알 수 없는 강렬한 희망으로 다짐한다. 산꼭대기에 홀로 앉아.

날이 어두워지고 그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가 돌아왔을 때 나는 낮에 보았던 그의 모습을 잊는다. 얼룩진 앞치마와 빛바랜 작업화를 잊고, 검은 기름때도 잊고, 열 시간 동안 그가 일하던 곳이 매일 누군가 죽어나온다는 그 ‘공장’이라는 것도 잊는다. 그날 밤 그는 노사위원회의 노측 대표로 선출되었다고, 하지만 사측은 150여명의 정규직 노동자들을 전원 해고할 거라고 나에게 전했다. 어쩌면 그들은 산을 오를지도 모르겠고, 그들 중 누군가는 산을 내려오고, 누군가는 홀로 남을 것이다. 다음에 올 누군가를 위해 남포를 입에 물고. 소설 <객지>의 바닷가는 멀고 춥고 아득하다.

이수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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