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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양승태 사법부의 추잡한 거래… 정의는 거래됐고, 누군가의 삶은 파괴됐다
책 ‘거래된 정의 – 양승태 사법부가 바꾼 인생들’
책 ‘거래된 정의 – 양승태 사법부가 바꾼 인생들’ⓒ후마니타스

그들은 법치(法治)를 외쳤다. 민주주의를 외치는 시민에게도, 노동권 보장을 외치며 파업에 나선 노동자에게도, 억울하게 죽은 이들의 진실을 밝혀달라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요구도 모두 법치주의라는 이름으로 외면하거나, 오히려 처벌하곤 했다.

법치는 사람이나 폭력이 아닌 법이 지배하는 국가원리를 말한다. 공포되고 명확하게 규정된 법으로 국가권력을 제한하고 통제함으로써 자의적인 지배, 소수에 의한 패도정치를 배격하는 것이 핵심이다. 법치주의는 권력자가 법을 좌지우지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자조차 법에 복종하는 정치를 말한다. 하지만 과거 수구보수세력은 입만 열면 법치주의를 강조했지만, 사실은 법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법을 좌지우지하며 법을 지배해 왔다.

박근혜 정권 시절 벌어진 양승태 사법부의 사법농단은 그들이 입만 열면 강조하던 ‘법치’가 얼마나 기만적이었는지 잘 보여준다. 아울러 사법 시스템이 법치라는 이름으로 권력과 거래를 벌인 추잡한 과거가 그곳에 숨어있다. 그렇게 진실은 거래됐고, 거래된 진실에 의해 누군가의 삶은 송두리째 파괴되고 말았다. 기자들과 변호사로 구성된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지난 3년간의 취재를 통해 사법 농단의 궤적과 민낯을 기록했다. ‘재판 거래’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목소리를 책 ‘거래된 정의 – 양승태 사법부가 바꾼 인생들’에 담았다.

제주 간첩 조작 사건, 재일 교포 간첩 조작 사건, 인혁당 재건위 사건, 대구 10월 사건, 춘천 강간·살인 조작 사건, 긴급조치 위반 사건, 전범기업 강제징용 손해배상에서 쌍용차 정리해고, 전교조 교사 빨치산 추모제 사건, 전교조 법외 노조화, 통진당 정당 해산 심판과 이를 불러온 내란 조작 사건, KTX 승무원 해고에 이르기까지 이 책에 담겨 있다.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구속기소된 ‘사법농단의 정점’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 5월 2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리고 있다. 2019.05.29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구속기소된 ‘사법농단의 정점’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 5월 2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리고 있다. 2019.05.29ⓒ김철수 기자

이 책 1부인 ‘양승태의 법관 시절 1975~2004’에는 청년 법관 양승태가 일찌감치 정권에 협조하는 판결을 내리며 법관으로서 승승장구하게 된 과정을,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들의 목소리와 함께 담았다. 2부 ‘양승태의 대법관·대법원장 시절 2005~2017’에는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서 KTX 승무원 해고까지, 사법부 특조단의 공개 문건을 통해 폭넓게 드러난 ‘재판 거래’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각 부 도입에는 ‘취재 노트’를, 글 말미에는 해당 사건의 ‘일지’를 보태, 독자들이 취재의 흐름과 사건의 흐름을 이해하기 쉽게 했다. 중간에 변호사 박성철의 글을 배치해 특히 ‘국가 범죄’와 ‘소멸시효’ 등에 대한 법리적 해석을 보탰고, 말미에는 저자 박성철 변호사와 이명선 기자, 박상규 기자와 이명선 기자 간의 대담을 실어, 저널리즘과 법이 어떻게 함께 훼손된 사법 정의를 정립해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각자의 고민과 앞으로의 전망을 담았다.

우리는 항상 눈에 보이는 것에만 분노한다. ‘정권의 몽둥이’로 일한 말단의 고문 수사관에겐 크게 분노하지만, 죄 없는 사람을 때려잡는 판결로 정권에 협조한 고위직 법관은 잘 모른다. 그들에게 법적 책임을 물은 적이 없다. 아직도 이 일로 종종 밤잠을 설친다는 제주 간첩 조작사건 피해자인 강희철 씨에게 1심 판사인 양승태를 용서할 수 있냐고 묻자 이렇게 말한다.

“가해자가 잘못했다고 말을 해야 용서를 하든가 말든가 하죠. 저한테 그런 말 하지도 마세요!”

저자들은 말한다. 이렇게 당한 이들은 거의 도와줄 이 하나 없는 한 마디로 법이 지켜주지 않으면 안 되는 절실한 이들이었다고. “판사가 호구 조사를 하면서 재판했을 리 없는데도, 내가 만난 재판 거래 피해자들은 모두 과일 가게와 먼 곳에 산다. 빵빵한 부모님은커녕 든든한 배경이 없어, 이 땅에 믿을 사람이라곤 저 높은 법대 위의 판사들밖에 없어, 순정한 믿음을 바치고 또 바쳤던 사람들. 양승태 사법부는 이런 사람들만 족집게로 골라낸 것처럼 거래했다. 양승태 이전, 모든 시절에 걸친 한국의 사법부 또한 마찬가지다. 수사기관에서처럼 법정에서도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라는 솔직한 질문이라도 받고 거래됐다면 덜 서러웠을까. 우리들의 가난한 믿음,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그 순진한 마음은, 언제쯤 배신당하지 않을까.”

언제쯤 법원이, 사법부가 ‘인권 최후의 보루’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법이 어려운 이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러한 개혁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사법 피해자들의 절절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들의 아픔과 탄식이 우리 사법 시스템이 바로 서는 계기가 되려면 이제 우리의 관심과 노력이 절실하다.

권종술 기자

문화와 종교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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