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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위태로운 제주, 노래로 지키려는 안간힘
섬의노래
섬의노래ⓒ제공 = 서이다, 예람, 오재환, 이형주

제주는 아프다. 오버 투어리즘으로 밀려드는 관광객 때문에 아프다. 밀려든 관광객들이 버려대는 쓰레기 때문에 병들었고, 엄청나게 올라버린 땅값으로 허리가 휜다. 곳곳을 파헤치고 공사를 벌여 속이 문드러진데다, 오래된 풍경들이 사라져서 뼛속까지 시리다. 제주는 더 이상 바람과 바다와 오름의 땅이 아니라, 투기와 개발의 땅이다. 관이 앞장서 오래된 숲의 나무를 베고, 길을 넓힌다. 한라산과 바다가 잘 보이는 곳마다 건물이 들어서고, 제주도의 모든 것이 상품이 되었다. 물과 숲과 열매를 팔고, 풍경을 팔고, 평화로움을 판다. 더 이상 파헤치고 짓고 팔아서는 안된다고 제주의 물과 바람을 닮은 이들이 밥을 굶어 가며 반대해도 한몸이 된 제주의 관과 자본은 막무가내이다. 사실 강정 바다에 해군기지가 들어섰을 때 이미 제주는 군사기지가 되었다. 수많은 국내관광객들에게 제주는 가장 싸고 가까운 별장이다. 개발과 관광이라는 미명으로 자연을 파괴하고 일방적으로 착취해도 되는지. 지금 같은 방식으로 제주는 지속가능한지 묻지 않는 오늘은 심각하게 위험하다. 제주의 시민사회와 예술가들이 꾸준히 목소리를 내지만 제주의 불도저와 포크레인은 오늘도 멈추지 않는다.

‘섬의 노래’, 그동안 이익에 눈 먼 자들에 의해 쫓겨나야 했던 이들 편에 선 노래

서이다, 예람, 오재환, 이형주가 함께 만든 음반 ‘섬의 노래’는 바로 오늘의 제주에 대한 노래모음이다. 제주의 핫 플레이스나 근사한 풍경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네 뮤지션은 그동안 이익에 눈 먼 자들에 의해 쫓겨나야 했던 이들 편에서 노래했다. 성주 소성리에 가서 사드는 안된다고 별을 보며 노래했다. 이들은 2019년 6월 제주에서 열린 ‘미디어로 행동하라 in 제주’에 참여해 다른 예술가들과 함께 일주일동안 제주 곳곳을 둘러보고 노래를 만들었다. 주제는 바로 제주의 난개발과 막개발. 이 음반에 담은 8곡은 그 결과물인 네 곡의 노래와 미발표곡 모음이다.

네 명의 뮤지션은 자신의 노래에서 제주의 지명과 사건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노래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들은 제주 곳곳을 둘러보며 느낀 분노와 슬픔을 당사자처럼 노래한다. 이들은 객관적으로 관찰하거나 냉정하게 기록하는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이미 수많은 사회적 재난의 현장에서 보고 들으며 빼앗기고 상처받고 지워진 이들과 시선을 맞춰왔기 때문이다. 이들은 지나가는 이의 발걸음으로 노래하지 않고, 그 곳에 사는 사람의 눈으로 노래한다. 그 곳에서 살 수 없게 된 생명의 목소리로 노래한다. 서 있는 곳이 다르면 보이는 풍경도 다르다고 했던가. 이 음반의 가치와 미덕은 그 태도와 위치에서 출발한다.

서이다
서이다ⓒ제공 = 서이다

“어떤 시선으로 제주를 바라보는지 고민하지 않는다면 노래를 온전히 듣지 못한 것”

이형주가 첫 곡 ‘나무의 키만큼의 뿌리가 땅속에 있다’에서 나무의 키만큼의 뿌리가 여기 남아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밑둥만 남은 모습 속에서 숲을 찾아보려 하고, 예람이 ‘새야 울어라’에서 “말이 없이 숲속의 소리를 들어주시오”라고 노래하는 이유도 제주의 숲과 새와 나무와 바다와 해가 자신에게 타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서이다가 ‘지나가는 숲’에서 “그늘이 없어진 숲”과 “흩어진 뿌리”를 노래하면서 분노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이 음반의 노래들은 노래의 멜로디와 리듬, 사운드를 듣고 감상하면서 노래가 기록한 풍경으로 인도할 뿐 아니라, 풍경을 바라보는 시선에 배인 태도와 듣는 이의 태도를 비교하고 성찰하게 한다. 이 음반이 제주에 이런 일이 있었다고 증언하거나 고발하는 목소리로만 이해한다면 음반의 울림을 일부만 들은 것이다. 이 음반을 듣는 자신이 어떤 위치에서 노래를 듣고, 어떤 시선으로 제주를 바라보는지 고민하지 않는다면 노래를 온전히 듣지 못한 것이다.

지금 싸움을 멈추지 않는 이들 곁에서, 아직 살아있는 제주도의 자연 옆에서 노래하는 이들은 생명 대 개발의 싸움에서 이길 거라고 확신하지 않는다. 실제로 이 싸움은 멈추지 않았고, 승리를 낙관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예술은 승리를 예견하거나 창출할 때만 의미 있는 것이 아니다. 현실의 곤궁과 난처함과 대책없음을 기록하는 일만으로도 예술은 자신의 역할을 한다. 그 작품들을 만나며 우리는 현실을 온전히 만날 수 있고, 작품이 기록한 지점에서 제대로 좌절하고 반성하고 꿈꾸고 걸을 수 있다. 그래서 현실을 담은 작품은 정직하고 간절하거나 전복적이어야 한다.

예람
예람ⓒ제공 = 예람
오재환
오재환ⓒ제공 = 오재환

“이 노래는 인간과 자연을 이으려는 안간힘”
“새는 울고, 나무는 머물고, 바다도 울기를 바라는 노래”

이 음반에 담은 노래들은 대부분 정직하거나 간절하다. 그리고 창작자의 정직함과 간절함을 듣는 이들의 정직함과 간절함으로 옮길 만큼 완성도를 갖추었다. 블루스 뮤지션 이형주는 첫 곡에서 어쿠스틱 기타와 퍼커션에 보컬로 담백하게 노래하면서 “그 누구의 이익 때문에 집에서 쫓겨났던 사람들의 뿌리”를 찾으려는 의지를 표출한다. 큰 울림을 만들어내는 예람의 ‘새야 울어라’ 역시 어쿠스틱 기타로 노래하는데, 예람의 목소리에 배인 막막함과 간절함은 좋은 멜로디와 함께 제주를 외면할 수 없게 만들 뿐 아니라 제주를 지키려는 의지에 동참하게 한다. 새는 울고, 나무는 머물고, 바다도 울기를 바라는 노래. 춤을 추고 노래하자고 호소하는 노래는 인간과 자연을 이으려는 안간힘이 눈물겹다. 말하듯 노래하는 오재환은 말과 관계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서이다는 어쿠스틱 기타와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교차시켜 뭉개진 숲의 처참함과 숲에 무감한 이의 어리석음을 동시에 표현한다. 노이지한 사운드를 표출하고, 굿까지 연결하는 곡은 제주의 전통과 트렌디한 음악을 묶어 생명의 의지를 경쾌하게 표현한다. 하지만 음악에 삽입한 자동차 소음은 인간의 무심함과 무지를 잊지 않게 할만큼 거슬린다. ‘사천삼백칠십구일과 하루 더’ 역시 바람 소리와 자동차 소음을 그대로 두고 사천삼백칠십구일의 시간을 노래하는데, 서이다가 편집한 사운드는 긴 시간만큼의 여운을 자아낸다. 오재환과 람이 함께 부른 ‘나무’는 지키기 위해 싸우는 이들의 병들고 지친 마음과 교감을 차분하게 노래한다. 왈츠 리듬으로 노래하는 ‘숲으로’는 숲처럼 평화롭다. 그리고 서이다가 리믹스한 ‘새야 울어라’는 원곡에 담은 온우주와 생명의 기운을 충만하게 불어넣어 더 영롱하다.

음악이 해야 할 일 가운데 몇 가지를 짊어진 음악은 수고만큼 값지고 귀중하다. 수없이 많은 음악이 스치고 지나가는 오늘, 이 음반만큼은 잠시라도 귀 기울이자. 그 섬을 오래 오래 만나기 위해. 그 섬과 오래 오래 함께 살기 위해. 어떤 노래는 마음을 맞춰주고 손 잡을 마음이 우러나오게 한다. 연대의 시작이다.

이형주
이형주ⓒ제공 = 이형주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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