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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자신을 찾아가는 여정, 드래그 퀸을 다룬 연극 ‘조지아 맥브라이드의 전설’
연극 ‘조지아 맥브라이드의 전설’
연극 ‘조지아 맥브라이드의 전설’ⓒ쇼노트

초등학교 스카우트 캠핑이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6학년 졸업을 앞두고 간 캠핑의 하이라이트는 장기자랑이었다. 유독 기억에 남는 것은 여장한 보이스카웃들이었다. 어디서 그런 여자 옷을 구해왔는지도 놀라웠지만 다들 너무 예뻐서 더 놀라웠다. 장기자랑을 위해 여장을 한 것이라 화려한 옷에 화장까지 해 더 그렇게 느꼈겠지만 말이다. 여장 퍼레이드의 인기는 최고였다. 평소 알던 남자친구들이 스타킹에 치마를 입고 볼 터치까지 하고 나타나서였을까? 배꼽을 잡고 구를 정도로 웃기고 재미있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 후로도 단체 야유회나 학교 여행에 여장 남자 코너는 빠지지 않고 등장했고 매번 인기도 높았다. 그리고 꼭 한두 명 정도는 여자보다 더 예쁜 남자들이 있어 여자들을 허탈하게 했다.

이후에도 ‘여장을 한 남자’는 다양한 문화 속에서 만날 수가 있었다. 우리 사회에서 남자가 여장한다는 것은 어르신들이 손주 꾸짖던 단순히 ‘고추 떨어질 일’을 넘어선다. 한마디로 집안 말아먹을 짓이며 얼굴 들고 못 돌아다닐 일로 받아들여지던 때가 있었다. 그것은 세상에 대한 반항이자 기성세대에 대한 저항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빠르고 다양하게 변화했다.

드래그 퀸은 사실 우리와 친숙하지 않은 용어다. 드래그 퀸은 ‘여장’을 의미하는 ‘드래그(drag)’와 남성 동성애자가 자신을 칭할 때 쓰는 표현인 ‘퀸(queen)’이 합쳐진 말이다. 따라서 드래그 퀸은 남성이 여장한 것을 뜻한다. 드래그 퀸은 대개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유희에 목적이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어린 시절 우리에게 친숙한 여장 남자 쇼도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드래그 쇼라 할 수 있을 듯하다.

연극 ‘조지아 맥브라이드의 전설’
연극 ‘조지아 맥브라이드의 전설’ⓒ쇼노트

이 용어가 우리와 친숙하지는 않지만 드래그 퀸에 관련된 작품은 꽤 오래전부터 무대에 올려졌다. ‘헤드윅’, ‘킹키부츠’ 등은 이 드래그 퀸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작품들이다. 물론 관객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우리나라에 초연되는 연극 ‘조지아 맥브라이드의 전설’ 역시 드래그 퀸에 대한 이야기다.

미국 플로리다의 작은 술집 클레오바에는 엘비스 프레슬리를 흉내 내는 쇼가 한창이다. 고작 7명의 관객을 앞에 놓고도 행복한 공연을 하고 나온 이는 케이시다. 케이시에게는 세상 무엇보다 사랑하는 아내가 있다. 하지만 이 둘은 집세조차 내기 힘든 경제 상황이다. 설상가상 아내 조는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 믿는 케이시는 느닷없이 바에서 해고된다. 적자에 허덕이던바 사장 에디가 드래그 퀸을 데려와 새로운 쇼를 시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당장 생계를 위해 바에서 바텐더로 일하게 된 케이시는 술에 취해 쓰러진 드레그 퀸 렉시를 대신해 무대에 서게 된다. ‘조지아 맥브라이드’란 예명으로 무대에 오른 케이시는 드래그 퀸 트레이시의 도움으로 새로운 드래그 퀸이 되어가게 된다.

연극은 케이시가 드래그 퀸으로 변모해 가는 과정에서 빛을 발한다. 2시간의 러닝타임 동안 17개의 가발, 27벌의 화려한 의상과 31번의 의상 퀵 체인지, 대략 25번의 분장체인지를 통해 케이시의 변화와 세련된 쇼를 보여준다. 남성임을 굳이 가리지 않으면서 화려한 옷과 무대 매너, 익숙한 팝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2시간 동안 드래그 퀸 쇼를 지켜보며 자연스레 마음이 녹아내리는 것은 여장 남자가 아니라 인간 케이시와 트레이시가 보여주는 진솔함 때문이다.

연극 ‘조지아 맥브라이드의 전설’
연극 ‘조지아 맥브라이드의 전설’ⓒ쇼노트

내 안에 있는 진짜 나, 인간은 평생 내가 누구인가를 찾아야 한다는 트레이시의 말처럼. 16살부터 게이라고 맞으며 놀림당하지만 쇼가 끝나도 드래그 퀸의 의상 그대로 밖을 나간다는 렉시의 당당함처럼.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가고 인정받으려는 케이시의 여정은 관객에게 잔잔한 공감을 일으킨다. 이 작품은 잘 짜인 연출의 힘으로 작은 무대지만 대극장 무대 못지않은 풍성함을 보여준다. 드래그 퀸 맞언니 역할의 트레이시를 위해 배우가 했을 노력을 상상하게 하는 연기력은 볼수록 감동이다. 무엇보다 요란하지 않게 인간애와 가족애를 전해주는 연말에 볼만한 작품이다.

연극 ‘조지아 맥브라이드의 전설’

공연날짜:2019년 11월 27일~ 2020년 2월 16일
공연장소:대학로 유니플렉스 2관
공연시간:110분
관람연령:만 13세 이상 관람가
제작진:대본 매튜 로페즈/연출 신유청
출연진:박은석, 강영석. 이상이, 성지루, 백석광, 신창주, 유주혜, 박희정, 김승용
주최:SBS

이숙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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