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말>
지난 23일, 지난해부터 암 투병 중인 김진숙(59)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부산에서 대구까지 100km가 넘는 거리를 걷는다는 소식이 트위터를 통해 전해졌다. 그는 ‘노조 파괴 진상규명과 원직 복직’을 위해 170일 넘게 대구 영남대의료원 옥상에서 고공농성 중인 동지 박문진(59) 보건의료노조 지도위원을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선다고 밝혔다.
박 지도위원은 2006년 영남대의료원 주5일제 시행 등을 요구하며 사흘간 파업했다 이듬해 해고됐다. 함께 해고된 이들 중 7명이 법원 판결에 의해 복직됐지만, 박 지도위원을 포함한 3명은 구제받지 못했다. 그 사이 1000명에 육박했던 영남대의료원 지부 조합원은 70명으로 급감했다. 이들은 노조 원상회복, 해고자 복직을 위해 13년째 싸우고 있다.
김 지도위원이 걷는다는 소식이 퍼지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김 지도위원을 아끼는 노동자 시민들, 박 지도위원의 투쟁 승리와 고공농성 종료를 기원하는 이들이 함께 걷기로 한 것이다. <민중의소리>도 크리스마스 하루 이들과 동행하기로 했다. 도보행진 참석자들은 25일 정오부터 네시간 반 동안 17km가 넘는 거리를 걸었다.
햇살이 쏟아지는 경부선 삼랑진역 앞에 마흔 명 남짓한 이들이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다섯 살 아이부터 정년퇴직한 6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었다. 간단한 준비운동을 하고 기념사진을 찍은 이들은 “영남원 해고자 원직복직”, “영남대의료원 노조탈퇴 원천무효” 문구가 쓰인 형광노랑빛 조끼를 입은 채, 걷기 시작했다.
행렬의 맨 앞엔 김진숙 지도위원과 심진호 금속노조 한진중공업 지회장이 있었다. 뒤 따르는 사람들은 제각각 편한 속도대로 걸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행렬엔 서울, 부산에서 온 노동자들과 대구에서 온 시민들이 뒤섞여 있었다. 휴일에 쉬고 싶은 마음을 이기고 나온 이들은 “김 지도위원이 걷는다기에 마음에 걸려서 나왔다”. “박 지도위원의 고공농성을 끝낼 수 있도록 힘을 보태고 싶었다”고 입을 모았다.
대구에서 시민단체 활동을 한다는 장명숙 씨는 친구와 함께 왔다. 그는 “박 지도위원하고는 알고 지내는 사이다. 고공농성이 벌써 178일째인데 해줄 게 없어서 걷기라도 같이 하려고 나왔다”고 말했다. 가톨릭 신자라는 그는 “오늘날 예수님께서 살아계셨다면 어찌하셨을까 생각했다. 크리스마스에 이 땅에 살아있는 예수인 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고 밝혔다.
철도노조 부산본부 조합원 8명도 이날 도보행진에 참여했다. 이들은 ‘영남대의료원 노조 원직복직’ ‘박문진 동지 힘내소’라는 문구가 쓰인 피켓을 만들어왔다. 문구 사이사이엔 손으로 그린 ♡마크가 오밀조밀하게 들어차 있어 미소를 자아냈다.
이명위 부산본부 조직국장은 “박 지도위원이 한여름에 올라갔는데 한겨울이 됐다. 며칠 후엔 해가 바뀐다”라며 “정치가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진 않지만, 마음만 먹으면 해결 위해 나설 수도 있지 않냐.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정부가 좀 귀기울여 줬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차헌호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지회 지회장은 “아침에 눈을 뜨니 와야겠단 생각에 그냥 달려왔다”면서 “도보행진으로 연대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우리 노조도 많은 연대를 받고 있다. 그 연대를 돌려드리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 지도위원이 참 훌륭하다. 유명한 분이지만 출세길을 찾지 않고 노동자들 곁에 계신다. 그를 따라 걷는다는 의미도 있는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차해도 한진중공업지회 조합원은 “김 지도위원이 걷는다길래 나왔다. 수십년 함께 해왔다. 이 도보행진도 끝나는 날까지 함께 할 것”이라며 “김 지도위원이 투병 중에 이 정도라도 기력을 차리고 사람도 만나고 활동한다니 다행스럽다. 이번을 기회로 툭툭털고 나와서 활동도 하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도보행진 참가자들은 차분히 걸어 삼랑진읍 송지시장을 지나고, 미전천변을 걸었다. 한 시간에 한 번 쯤은 걸음을 멈추고 지친 다리를 쉬었다. 준비해 온 물을 마시고 삶은 계란, 떡과 과일을 나누었다. 피곤하기도 할테지만 얼굴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이날 만난 김 지도위원은 조금 창백했지만 강건한 모습이었다. 그는 도보행진 동안 지치지 않고 사람들 사이를 누비며 뚜벅뚜벅 걸었다. 지인들과 수다도 떨고 웃기도 했다. 쉴 때는 여러 사람과 함께 사진도 찍고, 자신이 만든 ‘박문진 힘내라’ 부채를 손에 든 채 촬영을 부탁하기도 했다. 완쾌된 것은 아니어 보였지만, 우리들 마음속 ‘소금꽃나무’는 여전한 모습이었다.
근황을 묻자 그는 “아팠다”고 말했다. 항암치료 이후 체력이 떨어지고 머리카락도 빠지고, 최근에는 황달에 관절염까지 겪었다고 했다. 그런데도 왜 부산부터 대구까지 걷기로 했는지 묻자, “박문진을 너무 잘 아니까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고 답했다.
투쟁하는 여성 노동자로서, 친구로서 두 사람은 20여 년의 세월을 함께 지내왔다.
김 지도위원에 따르면, 두 사람은 1996년 부산 병원노조 투쟁현장에서 마주쳐 알게 됐고 동년배라 친해졌다고 한다. 1997년~1998년엔 함께 45일간 인도, 네팔 여행을 다니며 무척 싸웠지만 여전히 친구라고 했다. 김 지도위원은 우스갯소리를 섞어 “친구가 없으니 아쉽더라고. 현장 돌아다니다 보면 또 만나게 되니 그렇게 싸웠던 걸 잊고 다시 ‘산티아고 순례길이나 가자’고 했지”라고 말했다
두 사람 모두 해고의 아픔, 고공농성의 아픔을 안다.
김 지도위원은 “제가 해고자니 해고자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안다. 저는 영남대의료원 민주노조의 과거를 아는 사람이다. 1천명이 넘는 조합원이 있었고 투쟁의 열기가 대단했었는데, 지금은 조합원이 100명도 안 되게 줄었다. 13년 간 그걸 모두 지켜본 박문진은 어떤 마음이었겠나. 저도 2011년 이후 한진중공업에 복수노조 만들어져서 그런 과정들을 겪어봤다. 이심전심으로 시작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지난 2011년 김 지도위원이 한진중공업 정리해고를 막기 위해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 올라 309일 고공농성하는 동안 박 지도위원은 수 차례 현장을 찾았다고 한다. 박 지도위원은 왔다는 말도 없이 크레인 밑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켰고, 김 지도위원은 사진에서 친구의 모습을 확인하고 왔다는 걸 알 정도였다고 한다. 참으로 ‘COOL’하지만 ‘질긴’ 사이다.
김 지도위원에게 이번 도보 행진으로 ‘친구에게 마음의 빚을 갚는 것이냐’고 묻자, “그런 셈이 됐다”고 답했다. 그는 박 지도위원의 고공농성이 100일을 넘은 두 달 전쯤부터 싸움이 길어지겠다는 생각에 도보행진 준비를 해왔다고 한다. 걷는 구간을 조금씩 늘리며 연습을 했고, 다리 근육을 키우기 위해 운동도 했다고 말했다. 출발 며칠 전쯤엔 ‘이젠 걸을 수 있겠다’ 싶었고, 그래서 길을 나섰다고 밝혔다.
‘박 지도위원을 응원하는 많은 방법 중, 왜 걷는 일을 선택했냐’고 묻자, 김 지도위원은 “쌍용차 동지들을 보고 그런 것”이라고 답했다.
지난 2011년 7월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조합원들은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사태 해결을 촉구하며, 경기도 평택에서 출발해 부산까지 총 400Km에 달하는 도보행진을 했다. 한진중공업 보다 먼저 정리해고의 고통을 겪은 이들이,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길을 나선 것이다. 당시 쌍용차 노동자들이 대구를 지나 부산으로 갈 때 박 지도위원도 동참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김 지도위원은 당시 그 일이 “제일 감동이었다”라며, 크레인 위에서 트위터를 통해 물집 잡힌 발 사진, 비맞으며 걷는 사진을 보면서 “쌍용차 동지들의 마음이 어땠는지 알겠더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 나도 그런 마음이다. 사실 지금의 제가 할 수 있는 것도 별로 없다. 그래서 천천히 친구를 향해 걸어가보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24일, 쌍용차 사측은 마지막으로 복직해야 하는 무급휴직자 47명에게 ‘기한없이 휴직을 연장한다’고 통보했다. 이 소식을 들은 김 지도위원은 “너무 열이 받는다. 내가 원래 욕 안하고 정말 점잖은 사람인데 참을 수 없다. 그 자본가들은 개새끼들이다”라고 일갈했다. 그는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더 버텨야 되는 시간이다. 우리 몸도 마음도 망가지지 말고. 잘 버티자. 파이팅!”이라며 응원의 마음을 보냈다.
김 지도위원은 도보행진을 통한 ‘연대’가 박 지도위원에게 힘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연대보다 큰 힘이 어디 있겠냐?”라며 “2011년 저도 농성 158일차에 희망버스가 오기 전엔 거의 보도가 안 됐었다. 투쟁하는 조합원들끼리 말라죽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김여진과 날라리 외부세력이 오고 희망버스가 왔다 가니 정치권도 관심을 가지고 청문회, 국정감사를 거치며 문제가 해결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도보행진을 하다 보면 사회와 언론에서 영남대의료원 고공농성 문제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고, 그러면 중단돼 있는 사측과의 협상도 진척이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긴 도보행진 끝에 영남대의료원에서 박 지도위원을 만나면 무슨 말을 하고 싶냐고 물었더니, 김 지도위원은 “하긴 무슨 말을 해, 건물 밑에서 얼굴이나 보고 ‘나 간다’하고 와야지”하더니, “아! 신발도 한 켤레 사달라고 할 것이다”라며 빙그레 웃었다. 그는 “우리가 막상 만나면 그렇게 친하지는 않아. 문규현 신부님하고 문정현 신부님이 같이 앉으셔서 ‘우리 별로 안 친해’ 하시는 거랑 비슷하다”고 해 기자의 웃음을 터뜨리게 했다.
참가자들은 밀양강변을 따라 밀양시내까지 긴 강둑길을 두 시간 넘게 걸었다. 오후 3시 40분쯤 강둑길에 멈춰선 이들은 다시 휴식을 취했다. 신발과 양말을 벗고 맨발이 되더니 원형으로 둘러서서 몸풀기 운동에 나섰다. 진행자는 ‘이런 만남 처음이야’란 구호를 외치며, “걸으면서 느낀 느낌을 몸으로 표현하자”고 제안했다. 참가자들은 손을 높이 올리고 발을 차고 회전을 하는 등 각자 방식으로 마음을 드러냈다. 김 지도위원도 흥겨워하며 동참하는 모습이었다.
정오에 시작한 도보 행진은 4시간 30분이 지난 해저물녘 밀양역 광장에서 끝났다. 김 지도위원은 3일차 도보를 완주한 소감을 묻자 “참, 멀다. 영남대의료원이 밀양쯤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행진 참가자들은 기념사진을 찍으며 성취감과 연대의 기쁨을 나눴다. 끝으로 “박문진 동지, 힘내소!”, “영남대의료원노조, 힘내소!”를 광장에 울려퍼지도록 크게 외쳤다.
이소희 기자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작은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