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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남호 교육칼럼] 우리의 과도한 교육경쟁의 부작용은 얼마나 심각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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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사진ⓒ뉴시스 제공

요즘 중·고교는 방학을 준비하거나 방학에 들어간 학교가 많다. 그러나 우리나라 학생들에게 방학은 방학이 아닌 지 오래다.

우리의 학생들의 일상은 입시와 시험환경에 포위된 채 피로가 가시지 않은 몸으로 교복을 주섬주섬 입고, 아침밥을 거른 채 학교로 달려가 종일 한 자세로 딱딱한 책걸상을 끌어안고 있다. 종일 단편지식 암기와 공식을 적용한 문제풀이를 무한반복하고 있다. 이도 모자라 방과후에 또 아이들은 학원가를 전전하고 있다.

이는 교육이 기본적으로 지적 모험, 덕성의 배양, 그리고 예체능 경험에 의한 미적 감성의 발달을 통해 학생들로 하여금 자기성장을 기하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교육모순에 대한 취약한 인식

한국교육 관련 데이비드 S. 캘롱에(성균관대) 교수가 '한국교육은 점수에서는 랭킹이 높지만 학생들은 희생되고 있다' 제목하에 2015년 3월 31일자 더콘버세이션에서 쓴 내용을 간추리면 이렇다. 참고로 이 신문은 2011년 호주에서 창간되어 영국, 미국, 아프리카, 프랑스, 캐나다, 인도네시아, 스페인으로 발행 영역을 넓히고 있다.

스탠포드대 연구에 의하면 아시아의 학생은 부모의 기대에 따라 성취동기가 매우 크다. 오스트레일리아 또래 학생들이 9시간 공부하는데 비해 한국 학생들은 15시간 공부하며, 학생들의 약 94%가 대학진학을 염두에 둔다.

양극화의 정도가 심한 한국사회에서 교육은 계층이동의 유일한 수단으로 여겨진다. 한국의 엄마는 입시 컨설팅과 과외 학원 등 입시관련 거의 전 영역을 돌아다니며 탐색하기 때문에 일명 돼지엄마(Pig Mums)라는 말이 가능할 정도이며, 자녀의 성취를 위해 엄격한 부모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호랑이 부모(Tiger Parents)라는 표현도 어울려 보인다.

2014년 청년 행복지수 관련 OECD 통계에서 평균은 85.8%가 행복하다고 하지만 한국은 67.6%이며 이러한 낮은 비율의 주된 원인은 과도한 학습에서 오는 스트레스다. 학생들은 건강과 행복을 희생당한 채 과도한 성취압력에 놓여 있다.

한국은 OECD 국가중 가장 높은 자살률을 보이는 나라 중의 하나다. 10~30세 사이의 젊은이들 죽음의 제1원인이 자살이다. 한국은 가계부채, 스트레스, 이혼율 그리고 알코올 의존성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위치를 점한다.

한국교육은 대입시 자격취득을 위한 시험과 입시에 치우친 결과 고차적인 의미의 교육과 취업에 대처하기 위한 지식과 기술로서의 창의성과 팀웍 수행능력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국제적인 학업성취 결과에서 높다고 해도 경쟁과 성취에 집착하는 한국의 문화적 배경 그리고 이에 수반되는 엄청난 피해와 낭비요인은 다른 나라로 하여금 결코 모델로 삼을 수 없도록 만든다.

이렇게 한국교육의 모순을 지적하는 외지의 보도가 꾸준히 계속되고 있는데도 우리의 교육환경은 크게 변하지 않고 있다. 과열 교육경쟁은 구체적으로 학생들에 대해 어떤 악영향을 주고 있을까?

경쟁환경의 폐해

자본주의는 평등의 분배적 가치에 의해 제어되어야 하지만 이러한 철학이 빈곤한 문화권에서는 욕망이 무한질주를 거듭하기 쉬운 것으로 보인다. 사회주의적 이념으로서의 평등과 분배의 가치에 의해 자본주의적 욕망이 조절되어야 하지만 한국은 평등의 가치를 수용하는데 힘겹다.

경쟁위주의 교육과 관련해서 정용교(영남대)•백승교(영남대) 교수가 2011년에 쓴 '경쟁교육의 실태와 문제점 및 대안:현장 사회과교육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의 주요내용을 따옴표로 인용하면서 살피기로 한다.

'기업의 경쟁논리는 기업 밖의 영역들, 심지어 학교교육에도 핵심적 영향을 미치게 되었으며, 따라서 학교교육도 경쟁논리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이런 경쟁원리는 인격도야와 사회적 공익실현과 같은 교육본연의 덕성교육으로부터 분리되어 시장성에 입각한 독자적 논리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이제 우리의 학교는 사제관계, 학생에 대한 시선, 미래의 전망까지 가늠함으로써 점수로 환원된 상태다. 위의 연구를 위한 인터뷰에 응한 한 교사는 "학생들은 교사를 학력을 향상시켜주는 도구적 의미로 받아들여 과거와 같은 인격형성에 도움을 주는 상담자로 바라보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래서 '학교교육은 점수에 따라 등급화 및 상품화되기에 이르렀다.'

참여한 한 여고생은 통찰력을 잘 보여준다. "성적위주의 경쟁교육이 미치는 영향은 사소한 것에서 뿐만 아니라 국가의 안전과 같은 중요한 영역에도 영향을 미친다. 너무 이기적인 공부는 결국 적으로부터의 위협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문제로 우리를 자멸케 할 수 있다."

'경쟁교육은 학생들에게 위선적, 가식적 태도를 심어주며 그에 따라 학생들의 호전성도 증대된다. 나아가 폐쇄적, 자기중심적 세계관을 심어준다. ··· 지구촌화와 세계화에 걸맞는 지식 구성력을 키우는데 실패하며, 대신 지식의 답습수준에 머물게 하며 전국적 (혹은 세계적) 네크워킹에 따른 집단지성의 형성에 도움이 되지 않는 외톨이형을 키운다. 친구관계를 잘 맺지 못하고 고립적으로 살아가며 그런 과정에서 각종 게임에 빠지게 되고 또 거기에 과도하게 몰두한다.'

요즘 시험이 없는 초등학교에서 성적이 떨어질 것을 우려하는 일부 학부모들이 사설시험에 몰리고 있다고 한다. 이는 경쟁환경을 극복할 대안을 없는 정치력 부재의 환경에서 보이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시험과 경쟁이 오히려 학부모의 불안심리를 잠재우는 상황이라면 '교육'보다 '시험'이 뒤바뀐 가치전도의 현상이 아니고 무엇이랴! 이 때문에 성장과 경쟁위주의 환경이 지배하는 '한국사회는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Homo Homini Lupus)"의 물상화된 사회를 향하고 있다.'

중고생들의 연합조직체가 필요하다

한편 2017년 11월 6일자 뉴욕타임지는 미국의 상황에 대해 '경쟁이 아이들을 파괴하고 있다. 아이들이 이런 환경에 저항해야(Competition IS Ruining Childhood. The Kids Should Fight Back)'라는 제목하에 이렇게 쓰고 있다.

미국인들은 교육에서도 노력하고 있지만 그 성과는 상위 1퍼센트로만 흘러들어 간다. 많은 이들이 학생들에게 말하길, 열심히 공부하여 전문성을 키우면 더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결과는 반대다:더 많이 더 깊게 배울수록 더 적게 번다.

임금정체의 흐름은 1970년대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인구통계국 9월 자료에 의하면 2000~2016년 사이에 많은 밀레니얼 세대가 직업을 구하게 되는데, 실질적인 연 평균임금은 거의 상승하지 않았다. 같은 기간인 2000~2016년 사이에 고교 졸업 혹은 그에 상응하는 졸업장을 가진 학생들의 비율이 처음으로 90%를 넘었다.

역시 같은 기간에 2~4년제 전문대를 포함한 대학 학위 소지자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25~29세 사이의 대학원 졸업자도 5%에서 9%로 늘었다. 이 학생들은 비교과 활동이나 인턴쉽은 물론이거니와 교실수업만 힘든 것이 아니다. 이들은 학비 대출에 따른 엄청난 채무도 떠안고 있다.

넘치는 인적 자원은 고용주들로 하여금 노동자들에게 파이의 줄어든 조각만을 주고도 자신들은 더 많은 수익을 낼 수 있게 한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속고 있는 것이다. 나(뉴욕타임지 필자 Malcom Harris)도 그렇게 속았다. 인적자본 과잉공급은 저임금을 초래한다. 노동자들 사이의 경쟁은 자신들의 임금을 낮추고 기업보스에게 고수익을 안긴다. 따라서 아이들이 배울수록 더 싼 임금 조건으로 전락해간다.

과열 학습경쟁의 장에서 아이들이 그들의 노력을 보상받는가? 그렇지 않다. 승자독식의 경제에서 그들 대부분은 루저가 된다. 노동자들이 아무리 열심히 일할지라도 하버드대 신입생 수가 증가하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단지 불안, 스트레스, 편집증과 허탈감에 빠지기 쉽다.

학생들은 잠을 충분히 못잔다. 그래서 수업을 늦게 시작하는 것이 이들의 바램이다. 과다경쟁을 줄여 정신건강을 돌보는 것이 이들의 소망이다. 성적의 서열 매기기를 줄여달라고 하고 AP코스(교과 심화과정)의 수를 늘려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이들은 당사자들인 학생들이다. 자신들의 삶에서 고통과 위험을 줄이는 것 또한 학생들의 절실한 희망이다. 오직 학생들만이 뭉쳤을 때 자신들의 현재의 조건을 증진시키면서 무기경쟁 같은 교육경쟁을 끝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경우 단위학교 학생회장을 학교운영위원의 공식 구성원으로 참여시키면 학생회와 학급회의가 살아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국가 교육정책 논의와 결정의 자리에 학생대표를 배치하면 지역 및 전국단위 학생조직이 활성화될 것이다.

학생들의 연대와 참여를 보장하면 학생들은 비로소 주인의식을 갖고 현실문제를 다루면서 미래에 대한 대응능력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입시의 공정성'이라는 덫에 걸려 교육목적에 대한 진술 즉 바람직한 인간상에 대한 비젼을 상실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정부는 사적욕망이 무제약적으로 활개치는 사립유치원의 회계부정을 바로잡고 자사고·특목고 등을 일반고로 전환함으로써 교육불평등을 해소하는 첫걸음은 떼었다. 이어서 사립학교 전반에 대한 인사와 회계의 불투명을 바로잡아 공공성을 강화하는 안도 내고 있다. 그러나 경쟁환경의 근본적인 문제의식은 있으나 그 이상의 진전이 기대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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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사진ⓒ김철수 기자

민주시민의 형성은 가능한가?

과열된 점수경쟁은 학생들로 하여금 '사회탐구'와 '가치탐구'를 할 수 없도록 만든다. 그 때문에 노동과 자본의 논리 및 속성, 나의 행복과 고통이 사회구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개인'과 '사회'의 유기적 연관성, 정치와 시민생활의 긴밀한 연관관계 등에 대하여 거의 백지상태로 사회에 나간다.

즉 민주시민으로 훈련되지 않는 상태에서 성년이 되고 투표권을 얻는 것이다. 이는 '태극기 부대'와 '자유한국당'에 동조하는 흐름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것을 예상케 한다. 여기서 좀 더 악화되면 독재자가 다시 출현할 것이다. 결국 우리교육의 경쟁환경은 독재자를 배출하는 시스템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위의 정용교•백승교 교수의 글을 좀 더 보면, '정유성의 연구(1993년)에 의하면, 다른 어떤 교과보다 사회교과는 그 특성상 현행 학교교육의 바탕에 내재된 파괴성을 찾아 비판할 수 있는 개방성을 지녀야 한다. 그것은 도구적 이성에 바탕한 과학기술주의, 물질지상주의에 물든 혼탁한 가치관, 그리고 편협한 현대인의 지나친 현세중심주의 사상 등에 대해 비판적이어야 한다.'

'Beyer의 연구(1971)와 한면희의 연구(1988)에 의하면 사회과는 개인적, 사회적 현상이나 문제, 관심 등에 대한 분석적 사고과정과 기능을 가르칠 수 있어야 하며, 이런 목적에 가장 효율적으로 도달하기 위해서는 탐구수업이 필요하다.'

최근 서울시 교육청 주관으로 교원 100여명이 원탁토론회를 열어 사회적으로 주요현안이 되는 의제를 논의하여 공통으로 정하고 이를 학교에서도 다루기로 했다. 이는 삶과 앎이 유리된 채 학생들을 고립시키는 상황을 극복하고 민주시민의 자질을 배양토록 한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교실수업 뿐만 아니라 실제로 학생들의 판단을 실천할 기회를 주는 것 역시 지혜롭고도 마땅한 일이다. 일례로 청소년의 선거연령을 16~18세로 낮추는 것이 그것이다. 학생들에게 참정권을 보장할 때 학생들의 정치-시민의식은 비로소 현실감각을 바탕으로 하여 효과적으로 성숙해질 것이다.

학생들의 자해

경쟁환경은 학생들의 신체까지 손상케 할 수 있다. 2018년 교육부 통계에 의하면 전국의 중학생 51만여명 중 7.9%인 4만여명, 고교생 45만여명 중 6.4%인 2만 9천여명이 자해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업에 대한 부모의 기대와 책망, 이로 인한 마음의 상처와 미래에 대한 막연하고도 깊은 두려움이 자해의 주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관련 매체:2월 22일자 KBS 추적 60분).

이와 관련하여 김미영 (가야대)·유정옥(동아대) 교수가 한 광역시의 중학생 717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자해비율이 증가하고 있다(논문제목:Fatctors Contributing to Non-suicidal Self-Injury in Korean Adolescents, 2017).

여기서 청소년의 8.8% 즉 여학생 9.7%, 남학생 8.0%가 비자살적 자해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서 학업성적을 상·중·하로 나눠 볼 때 각기 11.1%:7.5%:11.3%로 나타났으며, 스트레스를 강하게 받고 있는 그룹에서 9.8%, 담배피우는 학생들에게서 22.2%, 비흡연 학생들에게서는 7.1%이었다. 또 음주하지 않는 학생들과 하는 학생들의 자해 발생율이 각기 7.1%:34.1%로 차이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2019.11.11일자 뉴욕타임지의 기사에 의하면 청소년 자해는 서구에서도 다소 늦은 1990년대에 들어와 본격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기사제목:자해의 대응방안(Getting a Handle on Self-Harm)]

자해라는 말과 그 이면에 자리한 심리적 왜곡상황이 일반에게 부각되기 시작한 계기는 서거한 다이애나 왕비, 배우 조니 뎁, 안젤리나 졸리 등이 이를 언급하면서부터다. 이후 인터넷 소셜 미디어가 때로 자해를 미화시켜 더 부추기는 경향도 있다.

심리치료에서 자해(self-injury)는 하나의 독립된 질병이라기 보다는 우울증, 주의력 결핍장애, 외상후 스트레스, 경계선 성격자, 조울증 또는 이런 증상들이 조합된 결과로 나타나는 증상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환자가 잠재된 우울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이 느끼는 방식과 반대의 입장으로 바뀌어 심리를 치료하는 변증적 행동요법(D.B.T.), 습관적으로 자해를 하는 사람을 도우며 치료하는 인지행동치료(C.B.T.) 등이 연구, 시행되고 있다.

한국에서 청소년의 자해는 가정배경 및 교우관계와 더불어 학업성적에 대한 주변의 무언의 압력과 이것이 스스로 내면화된 강박증에서 비롯되는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자해는 자살과 함께, 학생들의 올곧은 성장이 전면적으로 제약받는 자아상실의 한계상황에서 선택하는 최후의 수단이다.

결국 우리의 과잉경쟁 구조는 학생들로 하여금 정신 및 사회적 가치의 미발달 상태를 초래할 뿐만 아니라 신체적인 자해의 주원인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다분히 파괴적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약자에 대한 배려 그 연장선에서 고민해야 할 학생들의 인권과 행복에 대해 둔감한 상태로 남아 있으려 하는가?

마지막으로, 지금도 김누리(중앙대)교수가 꾸준히 68혁명을 계기로 우리와 유사했던 경쟁환경을 전면적으로 역전시킨 독일의 사례를 들면서 경쟁의 야만성을 극복하자고 절박한 심경으로 역설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교육운동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제작한 김누리 교수와의 인터뷰 동영상을 하나 첨부한다. (독일은 대학 서열이 없다? - 독일 변화의 근본, 68혁명).

신남호 교육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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