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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화 칼럼] 책장을 보면서 송구영신

책, 버거운 짐들

이사를 할 때마다 버릴 것, 정리할 것의 목록을 만든다. 옷, 신발, 그릇 등 그간 쓰지 않고 가지고 있었던 것들이 목록에 포함된다. 정리할 품목 작성에 고민되는 것 중 하나가 책이다. 책 대부분은 가장 단기간, 단 한번 사용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옷, 그릇 등과 같은 물건처럼 쉽게 버리기 힘들다. 책이 늘어나면 책장의 크기도 늘어난다. 이사할 때 책장의 무게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원목이 아닌 싼 재질로 된 책장은 더욱 무겁다. 또 다시 오늘 책장을 본다. 이사를 준비해야하기 때문이다.

책이 쌓이는 이유는 대충 두 가지이다. 우선, 다시 읽겠다는 희망 때문이다. 책에 대한 감동을 다시 확인하려는 것이지만, 일반 독서인으로서 같은 책을 두 번 읽는 경우는 드물다. 책을 보관하는 또 다른 이유는 자신에 대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사진첩과 같다. 예전 사진을 다시 보는 일은 드물지만 버리면 다시 복구할 수 없기 때문에 가지고 있다. 요즘은 사진을 디지털 방식으로 변환하여 보관하는 경우도 있지만 나의 경우는 그 기술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저 원형대로 갖고 있다. 책장에 세워진 책을 보면, 어떤 책들은 구입한 때, 구입한 이유, 또는 책 구입 장소까지 떠오른다. 연필로 줄이 그어져 있고, 가끔 책 페이지 언저리에 적어놓은 메모들이 있다. 책은 사진처럼 나의 인생의 한 페이지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남의 집에 가면 책장을 유심히 보는 습관이 있다. 대부분 그 집 주인의 역사와 관심이 배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서울 종로구 청계천에서 열린 행사에서 시민이 책장에 놓여진 책들을 살펴보고 있다.
서울 종로구 청계천에서 열린 행사에서 시민이 책장에 놓여진 책들을 살펴보고 있다.ⓒ제공 : 뉴시스

인생 기록인 책에 대한 애착도 이사할 때의 번거로움 때문에 버리게 되었다. 책에 대한 감상 기록은 책에 남기지 않고 즉시 컴퓨터에 저장하는 것으로 대체하여 책을 정리할 수 있는 이유를 찾았다. 무엇보다 책을 정리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내가 책을 두 번 읽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책을 두 번 읽는 경우는 독서모임이나 글을 쓰기 위해서인데, 그런 경우에도 그 목적이 끝나면 그 책을 더 이상 펼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목적을 위해서도 꼭 책을 내 소유로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책장을 비우는 방법은 책을 많이 읽는 지인에게 원하는 책을 주는 것이다. 이사를 거의 2년마다 가다보니 책의 정리가 빨라졌다. 책이 쌓이고 없어지는 패턴이 반복되었다. 최근에는 아예 책을 구입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종이책에서 전자책으로 건너뛰기를 한 것은 아니다. 아직 나는 모니터를 통한 책읽기가 익숙하지 않을 뿐더러 시력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전자책은 적극 피한다. 장거리 여행을 갈 때에도 종이 책을 챙겨가는 편이다. 글 쓰는 작가들과 출판 관련자에게는 미안하지만, 근 2년 동안 구입한 책은 시집뿐이다. 시를 특별히 좋아해서 구입한 것이 아니다. 시가 나에게는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시 한편을 여러 번 읽을 필요가 있어서이다. 책을 구입하는 대신 도서관에서 도서 신청을 많이 하고 있다. 지역 도서관에서 희망도서 신청을 제일 많이 하는 이용자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지난번 이사할 때보다 책장에 책이 많지 않다.

나와 함께 하는 책들

올해를 보내면서, 봄에 있을 이사를 준비하면서 내 책장을 본다. 책들 하나하나를 주의 깊게 보는 시간이다. 무슨 책이 무슨 이유로 정리되지 못했는지 생각한다. 정리할 때 대부분 지인이 원하는 책은 흔쾌히 모두 주었다. 그런데 지인이 희망했으나 내가 주지 않았던 책들도 있다. 그 중 하나가 열린책들에서 나온 ‘돈키호테 1.2’이다. 돈키호테의 최신판이고, 삽화도 좋아서 아직은 내가 품고 싶었다. 또한 내가 가장 애정을 갖고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돈키호테 옆으로 소위 말하는 고전들이 있다. 주로 민음사의 세계명작 시리즈와 펭귄클래식시리즈에 속하는 몇 권의 고전이 있다. 이들은 지인들이 원하지 않아서 남아 있다. 그런 책을 보면서 이 책을 이번에는 지인들이 원할까 상상해본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는 줄 수 있을까 물어본다. 이 책을 읽을 만한 사람이라면 선물로 줄 것 같다. 그런데 언젠가 읽겠지 하는 기대로 가지려는 사람에게는 글쎄다. 비록 올해도 펼쳐보지 못해 미안하지만, 책장의 책들은 나와 함께 있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내 손에서 다시 펼쳐진 몇 권의 책이 있다. 이청준, 로맹 가리, 조지 오웰의 책이다. 현재 살고 있는 곳으로 이사를 온 후 내가 만든 작은 독서모임 덕분에 이 책들은 다시 햇빛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책들이 이번 이사에는 다른 주인에게 갈까. 이것들은 호불호가 강해서 독서 모임 회원들이 소유하고 싶은 책이 아닐 수 있고, 내가 가지고 있는 책들이 오래되고 낡았으니 그렇게 탐이 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어쩌면 이들은 나와 함께 또 다른 거주지로 옮겨질지 모른다. 그렇다고 버릴 수는 없다. 책을 막연히 귀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버릴 수 없는 것은 아니다. 20여년 이상 동안 차곡차곡 사연을 가지고 쌓여졌던 사회과학 서적들을 한꺼번에 재활용품으로 넘긴 적도 있다. 사회과학 책은 나에게 교과서 또는 참고서와 같았다. 학교를 졸업하면 버리는 그런 책이 되어버렸다. 그 책 자체의 유용성이 사라졌다기보다는 내가 개인적으로 더 이상 선호하는 종류가 아니며, 다시 읽을 필요가 생기지 않을 것이란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책장에 남겨진 책을 보면 나의 현주소, 내가 어떤 것에 쏠려있는지 알게 된다.

책장(자료사진)
책장(자료사진)ⓒpixabay

책장에는 없지만, 나의 구매욕을 자극했던 책들이 많았다. 대표적인 것이 황현산, 정희진, 김원영 작가 등의 산문집이다. 산문집에는 소설과 달리 포스트잇 플래그가 많이 붙여진다. 세상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인식하고, 그 속의 내 좌표를 되짚어보게 하는 책이었다. 그런데 책을 읽고 나면 기억에 남는 것이 별로 없다. 그 책들이 의미가 없어서가 아니다. 소설류도 기억 속에 가물가물하지만, 산문 독서 결과는 너무 심하다. 아마도 산문집의 특성 때문인 것 같다. 즉 많은 단문이 실리고, 소재와 주제도 다양하니, 내 뇌리에 기둥이 되는 내용이 잘 잡히지 않았기 때문인 듯하다. 따라서 내가 필요한 주제별로, 또는 사건별로 재구성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런데 책을 읽은 후 그 내용이 쉽게 사라지는 중요한 이유는 내 기억력이 새로운 정보, 구체적 정보를 오래 담아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산문을 읽으면서 나는 내 기억력의 문제를 실감했다. 독서가 더 이상 나의 내부에 차곡차곡 쌓이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흘러가는 것이 될 수 있겠다는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올해의 독서 특징은 예전에는 보지 않았던 주제의 책을 접했다는 점이다. 건강, 병, 노화에 대한 책을 읽은 것이다. 건강 지침서나 자기 치유서와 같은 것은 아니다. 몸과 관련한 담론, 사회적 관계, 제도와 건강을 다루는 책들이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 아픈 몸 더 아픈 차별,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건강의 배신 등이 그것이다. 이런 종류의 책을 접하게 된 이유는 나 자신의 현실적 조건과 관련이 있다. 불안한 사회 속에서 건강치 못한 몸을 가진 주체가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탐색하는 자리였다. 이후 나의 독서 목록 중에는 이런 종류의 책이 늘어날 것 같다.

정리할 책 목록을 만들기 위해 책장을 보다가, 문득 책을 통하여 지난 시간 동안의 내 몸과 감정을 훑어볼 수 있는 송년의 시간을 보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책장뿐만 아니라 블로그 안에 쌓여진 도서 목록과 감상 메모를 보면서 나의 희망 사항을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도 좋다. 새해 희망 중에 많은 것이 건강, 부, 가족의 화목이다. 독서를 할 수 있는 개인적 시간과 여유도 그 속에 포함하면 어떨까. 2020년 내 독서일기에 무엇이 담길까.

김애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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