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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나의 한 사람 이야기] 팔자 때문이 아니라고

올해도 생애사쓰기 수업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주로 공공기관에서 오전에 수업을 열고 노인대상으로 수강생을 모집한다. 어떤 기관은 65세 이상으로 한정하기도 하고 다른 프로그램에 참여한 노인이용자들에게 모집공고를 주로 알리기도 한다. 굳이 노인으로 한정할 것은 없지만 여러 기관에서 선호하는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대체로 한 사람이 살아온 이야기는 감동이 있다. 특히 자기 삶을 글로 정리하겠다고 모이는 사람들의 특성이기도 하다. 떳떳하고 정직하게 살아온 사람이라야 자기 삶을 글로 써보겠다는 욕심을 갖게 된다. 글도 쓰고 발표도 하고 나중에 책자로도 묶어낸다는 프로그램 설명이 있으니 대부분 공개할 자신이 있는 사람들만 모이게 되는 것이다.

어떤 기관에서는 글로 쓸 여력이 안 되는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모아놓기도 한다. 그런 경우엔 수업시간에 편하게 서로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게 하고 그걸 받아 적어 글로 변환해주기도 한다. 교육프로그램에 구술사기록의 원칙을 철저하게 적용하지는 않는다. 내가 목적하는 바는 자기 목소리가 담긴 이야기를 책자에 넣고 그 과정을 사람들이 기억하고 결과물을 보존하는 것이다.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기관이 모두 이들의 이야기를 소중하게 다루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경험했던 사람들은 자기 이야기가 종이에 새겨진 것을 보며 귀하게 여긴다.

서울 중구 정동길에서 한 어르신이 폐지 담은 리어카 끌고 이동하는 길에 은행나무 낙엽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
서울 중구 정동길에서 한 어르신이 폐지 담은 리어카 끌고 이동하는 길에 은행나무 낙엽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김철수 기자

길게는 석 달 정도 자기 삶을 계속 반추해가며 기록해 나가는 작업은 쉽지 않다. 중간에 연락도 없이 안 나오는 경우가 대다수다. 초반에 모집한 사람들에 비해 30%정도가 남으면 성공인 셈이다. 서른 명 넘게 모집해도 많이 남으면 열 명 남짓이고, 대부분 그보다 더 적은 숫자가 마지막까지 원고를 써서 제출한다. 60대를 노인이라 말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적어도 70대가 넘어야 노인이라 할 수 있는데, 직접 글을 쓰고 자기 글을 고쳐오고 사람들 앞에서 낭독을 할 수 있는 80대들이 많이 늘었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전쟁을 겪고 가난을 헤쳐온 사람들은 어린 시절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억울하게 죽은 가족을 잊고 있다가 다시 떠올리기도 하면서 자기 삶의 ‘기구한 운명’을 탓하기도 한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자기가 살아온 이야기가 얼마나 구구절절한지 한숨을 쉬면서 스스로의 ‘팔자가 기구해서’, 또는 자기 부모의 ‘팔자가 사나워서’라고 서술한다. 자기 삶을 되새길 때는 대한민국의 연대표에 자기 삶을 채워나가는 숙제를 낸다. 해방, 전쟁, 1.4후퇴, 4.19혁명, 이승만하야, 5.16 군사쿠데타를 말하다 보면 한 개인이 역사적 사건으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알아차리게 된다. 사회적 사건 옆에 가족과 개인의 서사를 보태 적다 보면 팔자 때문이라기보다 나도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는 걸 느끼면서, 정치적 사회적 사건이 나의 사생활을 뒤틀기도 한다는 걸 깨닫는다. 나는 의도적인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여러 사안들에 대해서 묻는다.

일제강점기를 거친 사람들이 기억하는 해방은 학교에서 배운 것과 달랐다. 태어났을 때 이미 일제가 지배하고 있었고, 집안에 딱히 민족과 일제를 설명할 사람이 없으면 당연히 일본식 교육을 받았다. 그들에게 해방은 ‘국가의 패망’이었다. 어린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에는 일본의 패전을 슬퍼하며 울던 사람들과 두 팔을 번쩍 치켜들며 만세를 부르던 사람들이 공존했다. 그때는 그게 무엇인지 몰랐을 뿐이다.


박복한 팔자 때문이라고 말하면 이야기는 쉬워질 것이다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개인의 잘못이 아니고 당신이 노력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여성들의 경우 바람난 아버지의 이야기를 꺼내는 경우가 항상 있었다. 어떤 수업을 들어가도 한 명 이상 같고도 다른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멀쩡히 살아있는 자기 어머니를 두고 새어머니를 얻어 식까지 올린 아버지도 있고 오랫동안 두 집 살림을 하거나, 아예 집을 나가버리는 경우도 있다.

박복한 팔자 때문이라고 말하면 이야기는 쉬워질 것이다. 인과관계를 찾을 필요도 없고 그저 그런 운명에 의해 아무리 노력해도 이룰 수 없던 일들을 설명하기 쉬워진다. 박복한 팔자는 한 사람에게 귀착되고 그 사람을 원망하게 된다. 이유는 없다. 팔자때문이니까.

서울 용산구 쪽방촌에서 한 노인이 폐지를 수집하고 있다.
서울 용산구 쪽방촌에서 한 노인이 폐지를 수집하고 있다.ⓒ뉴시스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신들이 겪어왔던 일들은 우리가 같은 땅에서 같은 제도 아래 같은 역사를 겪었기에 파생된 일들이다. 한 나라에서 같이 사는 건 운명공동체일 수밖에 없다. 같은 시험을 보고 같은 교육을 받고 같은 재난을 겪어서 공감할 수 있는 것들이 있듯이, 같이 보고 겪은 것들 때문에 인생이 뒤집어지기도 한다. 내가 저지른 게 아닌데 내가 피해를 본 일들이 있다면 그건 개인의 잘못이 아니고 당신이 노력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제 욕심을 채우는데 눈이 먼 권력자들의 성급한 결정때문은 아니었는지 돌아보자고 말하고 싶었다. 어쩌면 이 말은 나 자신에게 하고 싶은 오래된 말인지도 모르겠다. 그 모든 일들이 다 나 때문은 아니라고.

올해 만난 당신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나에게 나눠주면서, 들어줘서 고맙다고 해준 덕에 나 역시도 잘 버텼다. 건강이 허락될 때 살아온 이야기를 정리하고 싶다던 당신들이 조금만 더 건강하면 좋겠다. 노인이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야 할 때마다 서글펐다. 당신들의 삶은 충분히 반짝이고, 이미 넘치도록 아름답다고 다시 한 번 말하고 싶다. 모두 고마웠다고.

이하나 집필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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