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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솔의 사람살려] ‘존버’ 안 해도 잘 살 수 있는 2020년대를 바라며

‘존버’는 견디고 또 견딘다는 은어이다. 주식시장에서 가끔 사용되던 이 단어는 암호화폐 이슈 등장 이후에 일상용어로까지 확장되었다. 직장인 10명 중 7명이 ‘존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지난 10월 구인구직 매칭플랫폼 사람인이 직장인 127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이다. ‘퇴사하지 않고 직장에서 존버’, ‘종강까지 존버한다’ , ‘존버는 승리한다’, ‘존버정신’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2010년에 고등학교를 입학해서 2019년에 대학을 졸업했다. 입시경쟁을 하고, 학점 경쟁을 하고, 서울 살이를 시작했다. 20대의 절반을 2010년대와 함께 보냈다. 주변의 20대는 모두 안정된 일자리 찾기, 취업경쟁에 뛰어들어 시험이나 면접을 준비하고 있다. 10년을 스쳐간 매 순간이 버티기의 연속이었고 경쟁에 살아남기 위해 아등바등한 시간이었다. ‘존버’라는 말은 2018년 이후 회자되기 시작했지만, 생각해보면 모든 시간이 ‘존버’였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존버’ 중이다. 말 그대로 청년들은 ‘존버’한 10년이었다.

29일 오전 서울 동대문 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금융권 공동 채용박람회를 찾은 구직자들이 현장면접을 보고 있다.
29일 오전 서울 동대문 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금융권 공동 채용박람회를 찾은 구직자들이 현장면접을 보고 있다.ⓒ김슬찬 기자

우리에게는 ‘버틴다’라는 선택지밖에 없다. 입시경쟁, 취업경쟁을 거부할 수도 없다. 거부하는 순간, 하나의 선택을 한 것이 아닌 탈락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버틴다’라는 것은 현상유지밖에 답이 없다는 뜻이다. ‘버티고 또 버틴다’는 것은 현상유지에 최선을 다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존의 감각이 담겨있다.

버티고 또 버틴다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일단

‘버틴다’라는 단어 앞에는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일단’이라는 말이 생략되어있다. 불만스러운 상황이 전제인 표현이다. 사회가 청년들에게 강요하는 룰, 가령 일단 계약직으로 일을 시작하라거나, 젊을 때 고생은 사서한다거나, 성별임금격차가 당연하게 있다거나 하는 것들이 부당하고 불합리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룰을 바꿀만한 여지가 없고 적응하지 않으면 최소한의 생활도 보장되지 않기에 일단 참고 있는 것이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빈곤청년 인권상황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돈 때문에 사람을 만나는 것이 꺼려짐’, ‘생활비문제로 식사를 거르거나 양을 줄인 경험이 있다’에 빈곤경험을 묻는 질문에 절반가량의 청년들이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청년 우울 평균은 9.76점으로 우울증세 판정기준 10점에 가깝다. 주거 독립을 했더라도 경제적인 자립을 하지 못한 청년들이 다수라는 것도 확인됐다. 지금 청년은 빈곤하고 우울하고 독립은 가능하지 않다. 우리는 이 상황에서 어떤 해결책도 얻지 못한 채 그저 버티고 있다.

청년이 불쌍하거나 힘들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최대의 경쟁, 최소한의 생존만을 보장하는 룰이 청년들을 이렇게까지 내몰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청년들의 특수한 성질이 있다거나 잠깐 지나갈 위기라는 게 아니라 엉망진창인 룰의 문제이기 때문에 지금 청년들이 중장년이 되어도 지속될 위기이다. 이 지속가능하지 못한 사회는 상위 10등은 살고 나머지 90등은 죽음과 빈곤의 근처에 살도록 방치한다. ‘나중에 괜찮아질 거야 일단 참아’라는 식으로 위기를 유예하는 폭탄 돌리기를 반복하고 있다. 지금은 버티고 있지만 나중은 더 처참해질 것을 알기 때문에 10년의 미래는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청년들이 한시적으로 겪을 일로 치부하면서 꼰대관점으로 나약한 청년을 탓한다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한 대학 학위수여식에서 졸업생들이 취업 게시판을 지나고 있다.(자료사진)
한 대학 학위수여식에서 졸업생들이 취업 게시판을 지나고 있다.(자료사진)ⓒ김철수 기자

노동이 불안정해지니 빈곤해지고, 경쟁과 차별이 계속되어 우울하고, 자산, 소득의 불평등이 독립을 가로막는다. 빈곤하다고 수당을 주고, 우울하다고 상담센터를 만들고, 독립이 어려우니 대출을 해주는 것은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지 못한다. 청년들이 겪는 문제의 결과현상에만 주목하고 원인을 방치하니 진단도 해법도 틀린 정책들만 공허하게 제시되고 있다. ‘청년’이라는 개별화된 개념 뒤에 숨어있는 구조적인 문제에 집중해야 문제풀이의 시작이 가능해진다. 결국 청년이 겪는 문제들은 ‘청년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인 것이다.

구조를 바꾸기 위해 낡은 룰을 버리고 새로운 룰을 짜야한다. 우리에게는 이제 ‘새로운 평등의 규칙’이 필요하다. ‘존버’의 10년을 뒤로하고 버티지 않아도 되는 10년이 2020년대에는 가능했으면 한다. ‘존버’ 안 해도 잘 살자!

손솔 민중당 인권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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