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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보] ‘하준이법’ 통과 뒤, “걔 때문에 불편해” 비난에 상처받을까 엄마는 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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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행복의 기억이었던 놀이공원, 엄마는 추억이 서린 옛 장소에서 나의 아이에게도 같은 기억을 남겨주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2017년 10월, 추석 연휴를 맞아 온 가족은 경기도 과천에 있는 서울랜드에 갔다. 그날의 외출이 평생을 악몽으로 얼룩지게 할 줄은 조금도 상상하지 못했다. 엄마는 “사고로 나의 어린 시절부터 모든 것이 다 박탈됐다”고 표현했다. 이제는 사고를 떠올리게 하는 모든 곳에 발걸음을 내딛는 것이 힘겹다.

사람 없는 빈 차량이 경사 2도의 내리막길에서 홀로 굴러 내려왔다. 변속기가 자동 주행상태(D)에 머물러 운전자도 없는 차가 혼자 움직였다.

셋째를 임신한 엄마가 편히 차에서 내릴 수 있어야 했고, 어린 두 아이도 안전히 차에서 내려야 했고, 트렁크에서 짐도 꺼내야 했던 부모는 서울랜드 주차장 안에서도 일부러 한적한 공간을 찾아 차를 댔다. 하지만 저 멀리 뒤편에서 경사도를 타고 온 차량은 속수무책으로 가족을 덮쳤다.

차량이 내려오는 길목에 차를 멈춰 세울 작은 주차 블록 하나 보이지 않았다. 주차장 어디에도 ‘위험하다’ ‘비키라’고 알려주는 직원이 없었다.

셋째를 임신 중이던 엄마는 허리를 다쳤고, 아빠는 양 무릎에 피멍이 들었다. 머리를 크게 다친 다섯 살배기 첫째 하준이는 그렇게 하늘나라로 떠났다.

고(故) 최하준 군 어머니 고유미 씨가 27일 경기도 한 주택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9.12.27
고(故) 최하준 군 어머니 고유미 씨가 27일 경기도 한 주택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9.12.27ⓒ김철수 기자

하준이를 안치한 봉안당에서
하준이와 같은 이유로 목숨을 잃은 아이를 만난 날

최근 경기도의 한 주택에서 고(故) 최하준 군의 어머니 고유미 씨를 만났다. 유미 씨는 어린이 생명안전을 위한 법안에 이름을 남긴 하준, 민식, 해인, 태호, 유찬, 한음의 부모 중 세 번째로 아이를 떠나보낸 엄마다.

“사고를 겪기 전에는 경남 창원에서 살았다. 창원은 우리에게 하준이 그 자체라 지금은 그곳을 떠나왔다. 하루 종일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게 나의 일상이었다. 애를 키우며 나만 잘 지키고 그렇게 살면 되는 줄 알았다. 근데 사고를 겪고 나니 나만 잘 지키고, 나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유미 씨가 사고를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지 않고 행동에 나서게 된 계기는 하준이보다 앞서 세상을 떠난 해인이 때문이다. 유미 씨는 하준이를 안치한 곳에서 해인이를 만났다. 지난 2016년 어린이집 하원길 중 제동 장치를 제대로 하지 않은 차량에 덮쳐 목숨을 잃은 해인이는 하준이와 같은 봉안당에 있다.

유미 씨는 또 다른 같은 사고를 막기 위해 세상에 아이의 죽음을 알려야 했다. 서울랜드 측으로부터 사과나 유감 표명 한 번 받지 못했고, 누구 하나 ‘책임지겠다’ 말한 이 없었지만 그저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반복되는 아이들의 죽음은 단순히 개인의 잘못이 아니었다. 사고를 막을 장치와 제도가 마련돼 있었더라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다.

2017년 11월 유미 씨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글을 올렸다. 사고의 반복을 막을 법 개정을 호소했다. 14만 6천 명이 그의 글에 동의했다. ‘우리 가족도 똑같이 다쳤다’ ‘내가 당했다’는 메시지가 줄지어 달렸다.

유미 씨는 14만 6천 명의 몫을 안고 정부에 매주 편지를 붙였다. 국민 청원의 답변을 들은 2018년 4월까지 매주 자필 편지를 보냈다. 편지는 국토교통부와 경찰청에 민원서로 돌아갔다. 유미 씨의 국민 청원은 정부 측 답변 조건인 20만 명의 동의를 얻지 못했지만 국토부로부터 ‘주차장 교통안전 개선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약속을 이끌어 냈다.

사람들은 이제 경사진 곳에 설치된 주차장에 차량 버팀목(고임목) 등 안전설비를 갖추도록 하는 ‘주차장법 일부 개정안’과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시설의 통행로를 도로에 포함하고 시설의 소유자·관리자가 교통안전 시설 관리를 하도록 하는 ‘도로교통법 일부 개정안’을 ‘하준이법’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국회의원들이 추진하지 않으면 법은 그냥 ‘말’에 불과했다. 유미 씨는 국회에서 하준이법과 관련된 상임위원회 회의가 열릴 때마다 편지를 쓰고 또 썼다. 20~30명 되는 의원들에게 매번 편지를 써 전했다.

해인, 하준, 태호, 민식 가족 등과 정치하는 엄마들이 21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회의장 앞에서 어린이 생명안전 법안 통과를 촉구하며 피켓을 들고 있다. 2019.11.21
해인, 하준, 태호, 민식 가족 등과 정치하는 엄마들이 21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회의장 앞에서 어린이 생명안전 법안 통과를 촉구하며 피켓을 들고 있다. 2019.11.21ⓒ정의철 기자

아이를 잃고 눈물짓는 부모는 곁에 더 늘어갔다

애석하게도 여기까지 오는 동안 유미 씨 곁엔 아이를 잃고 눈물짓는 부모가 더 늘어났다. 지난해 태호가 떠났고, 유찬이가 떠났고, 민식이가 떠났다. 해인이 부모와 함께 다섯 아이의 부모가 처음 한자리에 모인 그날을 유미 씨는 잊지 못한다. “지난 10월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할 때 처음 다 모였다. 그렇게 모이면 안 되는 건데 모여서 하소연을 한다는 게 정말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사고 이후 아무것도 해결되는 게 없어 유가족이고 피해자인 이들이 같이 나서야 했다. 부모들은 함께 국회를 찾았고 모든 의원실을 돌며 ‘올해 회기 안에 법안을 통과해 달라’는 동의서를 돌렸다. 모든 의원실이 동의서를 받을 때 ‘알겠다’고 끄덕였지만 정작 회수율은 30%에 그쳤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어린이 생명안전 법안으로 자신들이 수세에 몰렸다며 억울해하는데 사실 부모들은 특정 정당을 지지하지도 비난하지도 않았다. 부모의 속을 터뜨린 행동을 그들이 자처했을 뿐이다. 원내에서 108석을 가진 제1야당의 동의서 회수율이 6%에 그친 것도 이를 방증했다.

의원들 사이에서 어린이 생명안전 법안에 대한 반응이 일기 시작한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대통령이 국민과의 대화에서 민식이법을 거론하고, 여론의 주목이 따르기 시작하니 그제야 의원들이 하나둘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여곡절을 겪어 지난해 12월 하준이법 중 주차장법 개정안이 민식이법과 함께 통과됐다. 하준이법의 일부인 도로교통법 개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제2소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고(故) 최하준 군 어머니 고유미 씨가 27일 경기도 한 주택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9.12.27
고(故) 최하준 군 어머니 고유미 씨가 27일 경기도 한 주택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9.12.27ⓒ김철수 기자

법이 시행될 6개월 뒤가 두려운 엄마
“걔 때문에 너무 불편해”라는 말을 들을까 겁이 난다

유미 씨는 그를 지지하는 목소리만큼 많은 이들에게 ‘개인의 사고를 갖고 왜 법안을 만들려 하냐’ ‘감성팔이 하고 있다’ 등 모진 말도 많이 들었다. 생업을 놓고 법안을 알리기 위해 모든 노력을 하고 있는 부모에게 ‘자식이 죽었는데 인터뷰를 하냐’고 비난하는 이도 다수였다.

유미 씨는 “하준이법은 민식이에게 묻혀 은근슬쩍 넘어갔다. 저는 묻혀 넘어간 것에 섭섭하거나 아쉬운 마음이 전혀 없다”고 담담히 말했다.

“오히려 공론화됐으면 힘들었을 것이다. 민식이 엄마가 얼마나 힘든지 옆에서 봤기 때문에 대중의 비난이 얼마나 힘든지 안다. 많이 알려진 민식이 부모는 주변 사람들이 다가와 뭘 주고만 가도 깜짝깜짝 놀란다. 본인들은 상대방을 전혀 모르는데 그들이 ‘나와 내 아이’를 알고 있다는 사실은 공포스럽기 때문이다.”

유미 씨는 아직 남아있는 아이들 법이 있는데도 사람들이 ‘모두 해결됐다’고 생각하는 게 두렵다고 했다. 6개월 뒤 법이 시행된 모습을 그려봐도 두려운 감정이 앞선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여론에 떠밀려서 통과됐을 테지만 법이 시행되고 나면 그때서야 정신이 들어서 사람들은 말할 거다. ‘그래서 경사도가 몇 도여야 고임목이 필요하냐’ ‘고임목을 왜 가지고 다녀야 하냐’고 물을 것이다. 법안을 통과시켰음에도 희망을 갖기가 어려운 이유이다.”

누군가 ‘이건 왜 이렇게 불편한데, 걔 때문이야’라고 말할까 봐 유미 씨는 겁이 난다고 했다. 그는 “법안 통과 전 사람들이 ‘(고임목이 없으면) 나 범죄자 되는 거냐’ ‘가해자 되는 거냐’라는 이야기만 하는 것이 너무 속상했다. 저희는 ‘당신의 아이가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라고 말했다.

고(故) 최하준 군 어머니 고유미 씨가 27일 경기도 한 주택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9.12.27
고(故) 최하준 군 어머니 고유미 씨가 27일 경기도 한 주택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9.12.27ⓒ김철수 기자

3년째 재생산하는 기억은 아프지만
남은 아이들의 법안이 통과될 때까지 멈출 수 없는 부모

유미 씨는 인터뷰를 하던 날 익숙하게 취재진을 맞이했다. 3년간 수도 없이 인터뷰를 했을 그다. 하지만 아이를 잃은 기억을 재생산하는 것은 여전히 큰 고통이었다. 유미 씨는 인터뷰를 하는 내내 수차례 눈물을 삼켰다. ‘하준이’ 이름만 말해도 목소리가 울컥했고 떨리는 감정을 잠재우려 여러 번 힘겹게 식은 물을 삼켰다.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에서 먹먹하고 새까맣게 탄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손가락을 떨지 않으려 어찌나 힘을 꽉 주었던지 손가락 마디마디가 새하얗게 질려 창백했다 빨개지다가를 반복했다.

유미 씨는 현재 서울랜드와 민사소송을 진행 중이다. 사고에 대한 일말의 죄책감도 없는 사측, 5천 평 남짓 주차장에 플래카드 7개를 걸어두고 후속 조치를 했다고 말하는 이들과 지난한 싸움을 이어가야 한다.

유미 씨 뱃속에는 작은 생명이 있다. 그는 다섯 달 전 넷째 아이를 임신했다. 지난 12월 하준이법 통과를 바라며 국회를 오가던 중 아이의 상태가 좋지 않아졌다. 그토록 기다렸던 하준이법 통과 날 국회에 가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오빠가 살아서 하늘나라에 간 줄 아는 둘째와 사고 당시 뱃속에 있었던 셋째도 그의 곁에 있다.

유미 씨는 부모들과 함께 아직 처리되지 않은 어린이 생명안전 법안의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그는 “남은 아이들을 두고 나올 수가 없다”고 말했다. 정신력과 체력, 생활 전부를 모두 쏟은 부모는 이번 20대 국회가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있다.

“죽은 아이가 여섯이 나와도 안 되는 일이 앞으로는 어떻게 되겠나. 그전에도 이렇게 바뀐 적이 없고 앞으로도 나설 사람이 없다. 저희는 이번에 끝내야 한다. 마음이 조급하다.”

법안 명칭에 하준이 이름을 붙이도록 허락한 이유도 하나였다. 어딘가 있을 또 다른 하준이와 그 아이의 부모는 다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사고가 났을 때 임신 6개월이었는데 그때는 걸을 수가 없었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때에 비하면 걸을 수 있고 말할 수 있어 이렇게라도 할 수 있는 게 다행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하겠다’고 하준이에게 약속했다. 남은 아이들이 안전히 살아갈 세상, 당연한 세상,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세상을 위해 남은 법안이 통과될 때까지 제가 할 수 있는 부분은 다 해놓고 싶다.”

김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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