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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엄마의 그림일기] 엄마의 도전! 필리핀 열흘살기
사람이 다 타야 출발하는 버스
사람이 다 타야 출발하는 버스ⓒ박지선

우리는 필리핀에 가기로 했다. 지난 일년 동안 다이어리에 며칠 만에 한번씩 넘어야 할 산들을 만들어 놓고 형광펜으로 그어가며 허들을 넘듯 참 열심히 살았으니 조금은 쉬어가도 되지 않을까. 항상 그렇듯 필리핀에 가기 전날까지도 정산서류 세 개를 각각 다른 기관에 넣고 가야 해서 날밤을 새웠다. 비행기에서 쓰러져야지... 그러고도 모자라서 해야 할 일 두 세개를 싸들고 노트북을 신주단지처럼 모시고 우리는 길을 떠났다. 목적지는 필리핀 네그로스 섬의 두마게티 간디국제학교. 마침 간디학교 아이들이 졸업이라 기숙사도 비워지고 앞으로 한달 짜리 홈스쿨링을 진행해 보고 싶다고 하셔서 시범 케이스도 해 볼겸 여러모로 서로에게 좋은 조건이었다.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에 도착해서 국내선으로 한번 더 갈아타고 간신히 도착한 두마게티. 도착하자마자 아이들의 표정이 썩 좋지 않다. 평생에 한번 기대하고 기대했던 해외여행의 꿈이 살짝 무너지는(?) 순간이다. 학교까지 가는 지프니에서 바라본 필리핀은 너무 덥고, 주변의 집들은 곧 쓰러질 듯 쇠락해 보였다. 아~ 우리가 여기서 열흘을 살 수 있을까 싶을 만큼 가슴이 답답해진다. 화려한 리조트를 기대하고 온 것은 아니었지만 필리핀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없었다. 우리를 안내해주신 창건샘이 필리핀은 에너지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나라라 8시에 자고 5시에 일어나서 생활하는 나라라고 알려주셨다. 학교는 그나마 에너지 상황이 나았지만 전기는 가끔 나가고 하고 수돗물도 안 나오는 시간대가 있다고 한다.

“야자나무 잎으로 만든 지붕아래 가만히 앉아 있으면 한참 후 시원해져요. 이 시원함을 좀 느껴봐야 하는데... 사람 몸이 자연환경에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좀 걸리는데 채 익숙해 질 틈이 없이 에어컨을 틀어 버려서 적응 자체가 안 되는 거죠”

그러니까 편함에서 불편함으로 되돌아가기에 우리 몸의 저항은 너무 거셌다. 돌아오는 날까지 침침한 방안의 불빛은 답답했고 따뜻한 물이 나오는 샤워기가 너무 그리웠으니까. 아이들은 집에 가자마자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다. 필리핀의 풍성한 자연에 눈을 뜬 건 며칠이 지나서였다. 한 오일쯤 지나서는 밤하늘의 별이 보였다.

“와~ 별이 쏟아질 것 같아요”

“하늘의 별이 보이는 거 보니까 여기 좀 적응이 되었네요” 하신다. 별은 항상 그곳에 있었는데도 먼지가 잔뜩 낀 흐린 하늘아래 밝게 전등을 켜고 에너지를 펑펑 쓰며 사는 인간들에게는 잘 안 보이는 법이다. 왜 이상하게도 쏟아질 것 같은 별을 보면 눈물이 핑 도는 것일까? 일곱 살, 은하수 흐르던 외갓집 마당으로 순간이동 한 것 같은 기분이다.

필리핀에서 하루 세번씩 수영하는 아이들
필리핀에서 하루 세번씩 수영하는 아이들ⓒ박지선

일년 열두 달 비슷한 온도의 필리핀은 내내 꽃이 피고, 달콤한 열매가 열리고, 하늘은 파랗고, 바다는 에메랄드빛이다. 우리는 하루에 수영을 두세 번씩 하고, 두마게티 한가운데 우뚝 솟은 화산 아래 유황온천에도 놀러가고, 간디 학교에서 한 시간 거리의 바이스라는 지역에 돌고래도 보러갔다. 바이스에서는 배를 한척 빌려 1시간 정도 세부와 맞닿은 해협으로 돌고래를 보러 나갔다. 선장님이 돌고래가 5천 마리 산다고 큰소리를 치셨는데. 못보고 돌아가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직접 바다 한가운데로 나가보니 이 망망한 바다에 돌고래 5천마리쯤은 한줌 같다는 생각이 든다. 못 보게 되더라도 당연한 일이다. 다행이 돌고래들은 저 멀리서 등을 반짝이며 우리를 반겨주었다. 돌고래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는 샌드바에서 밥도 먹고, 수영을 하면서 노는데 썰물이 되면 신기하게도 바다 한가운데가 허리만큼으로 물이 빠지는 곳이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차오르기 때문에 놀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어 물이 차오르면 배를 철수한다. 끝없이 펼쳐진 잔잔한 에메랄드빛 바다가 천국이 있다면 이런 모습일까 싶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필리핀에 와서 몇몇 일을 마감해 보내놓고 긴장이 풀렸는지 밤새 땀을 흘리고 앓았다. 자면서도 연신 줄줄 흐르는 땀을 닦으며 잤는데 그렇게 이틀을 보내니 온몸이 개운하고 시원하다. 잔뜩 힘을 주고 긴장하며 살다가 힘을 빼기가 그렇게도 어려웠다. 따뜻한 태양이, 넘실거리는 물결이, 환하게 피어난 꽃들이 사람을 무장해제 시킨다. 하늘의 별이 보이고 마음에 주워 담아올 시간, 열흘이어서 행복했다.

박지선 마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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