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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비례자유한국당과 친박연대

2000년대 한국 정치사에 가장 기괴했던 장면으로 꼽히는 친박연대는 2008년 총선에서 정당득표 13%를 득표하고 의원 14명을 배출하는 놀라운 결과를 내놓으며 비웃었던 이들을 머쓱하게 했다. ‘꼭 살아서 돌아오라’던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말은 길게 남았다. ‘선거의 여왕’이라는 칭호를 갖고 있던 박근혜는 ‘두 개의 정당까지 승리하게 만드는 능력을 가졌다’고 평가됐다.

12년이 흘렀다. 한국정치는 또다시 기괴한 장면을 목도하고 있다. 제1야당이 위성정당 만들기에 들어갔다. 비례자유한국당 창당준비위가 선관위에 정식으로 등록했다. 자유한국당이 노골적으로 ‘새끼정당’을 만든 것이다. 심지어 비례자유한국당 창준위의 주소는 자유한국당사 3층이다. 이 황당한 작업이 진행되는 이유는 단순하다. ‘의석수를 더 얻을 수 있다.’ 총선에서 의석을 더 얻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친박연대는 친박계 의원들이 공천에서 배제되자 탈당해 ‘만든 정당’이라고 알려져 있다. 아니다. 정확하게는 정당을 훔쳤다. 직전 대선에서 후보까지 냈던 ‘미래한국당’이라는 정당에 집단적으로 입당해 정당명을 갈아치워 버렸다. 심지어 미래한국당은 열린우리당 출신 정치인들이 만든 당이었다. 그러니까 반대의 정치적 지향을 가진 정당을 훔친 셈이다. 이들에게 정당은 우리가 배우고 알고 있는 정당이 아니다. 그저 선거법에 정당이 규정돼 있으니 아무렇게나 해도 되는 도구 이외에 그 어떤 것도 아니다. 한국 조폭영화에 등장하는 ‘나이트클럽’ 수준이다.

이런 사고방식이면 비례자유한국당을 만드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행위다. 진보성향의 작은 정당을 훔쳐 극우적 성향으로 바꾸는 것도 서슴지 않는데 위성정당을 하나 만들었다가 총선 끝나고 버리는 정도를 못할까. ‘눈 가리고 아웅’ 하지도 않는다. 하다 못해 사무실이라도 따로 낼 줄 알았더니 두 당이 주소가 같았다. 어떤 정당이 다른 정당 사무실에 세 들어 사는가. 아니, 월세는 내는 것일까.

민주주의나 정치, 정당의 본래 의미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 이런 배짱은 ‘콘크리트 지지율’이라는 믿음에서 나온다. 친박연대의 성공(?)은 ‘박근혜’라는 이름이 가진 파괴력 덕분이었다. 박근혜와 찍은 사진과 박근혜가 던져준 단 한 마디 ‘꼭 살아서 돌아오시라’로 선거운동을 했다.

비례자유한국당은 ‘나라를 팔아먹어도 30%는 준다’는 보수층의 확고한 지지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한다. 30% 중 20%만 받아도, 아니 10%만 받아도 비례의원을 더 많이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에서 추진되고 있다. 실제 현재 제도에서 비례자유한국당이 10%를 받게 되면, 자유한국당으로 비례후보를 내고 30%를 얻는 것보다 더 많은 비례의석이 주어진다.

구체적인 방법도 나왔다. 약 20여 명의 의원을 비례자유한국당으로 보내면 원내 3당이 된다. 바른미래당이 의원 20명으로 3번째 정당인데, 비례자유한국당 소속 의원이 20명을 넘으면 기호가 3번이 된다. 대신 자유한국당은 비례대표를 내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정당투표용지에는 기호 2번이 없다. 후보가 없으니 인쇄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역구투표에서는 기호 2번을, 정당투표에서는 기호3번을 찍게 하겠다는 전략이다.

구체적인 탈당 시기도 나왔다. 2월 15일 이후에 의원들을 탈당시킨다고 한다. 2월 15일이 정당보조금 지급 기준일이다. 만약 2월 15일 이전에 비례자유한국당이 만들어지고 의원이 20명을 넘으면 상당액이 지급될 것이다. 이건 차단하고 돈은 자유한국당이 챙긴다는 거다. 참 꼼꼼하다.

일련의 계획은 그럴싸하다. 하지만 누구를 새끼정당으로 보낼 것인지도 문제고 영입한 인물들을 탈당시키는 것도 문제고 비례공천 과정도 문제고 선거운동은 어떻게 할 것인지도 문제고 선거 이후에 합당에 태클을 걸 사람이 나올 가능성도 문제다. 각종 문제가 산적해 있다. 이 모든 문제들을 어찌어찌 풀 수 있다고 하자. 그럼 문제가 없는 것인가.

비례자유한국당 전략은 친박연대보다 훨씬 후진적이다. 정당을 훔치는 범죄적 행위를 했지만 적어도 친박연대는 자신들의 의지에 기반해 오롯이 자신들이 책임지는 정치행위였다. 비례자유한국당 전략은 일단 선거에 돌입하는 시점까지 다른 정당의 기호마저 확실치 않게 한다. 선거 전체를 휘젓는 행위다. 지역구에 출마할 의원들을 비례자유한국당에 보냈다가 복당시키는 방법도 검토한다는데, 그건 위법 논란까지 있다. 그리고 정당을 왔다갔다하는 의원들과 후보들은 자신의 정치적 선택에 의한 것도 아니다. 힘이 없는 초재선 의원들에게는 ‘공천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각서까지 받았다. 일련의 흐름은 정치가 아니다. 사람을 도구로 쓰는 도박이다. 도대체 21세기에 벌어지는 정치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결정적으로 이건 지지자들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무슨 짓을 해도 너희는 우리를 찍을 거 아니냐’라는, 지지자들을 표찍는 기계 수준으로 전락시키는 행태다.

그러면서 자유한국당은 보수통합을 주창한다. 이쯤되면 보수통합을 말하는 다른 정당들은 판단해 봐야 한다. 한국 정치를 몇 단계는 저질로 만들어버리는 이 전략을 허용할 것인지 아닌지.

친박연대의 성공에는 박근혜라는 인물만 있었던 건 아니다. 당시 선거는 야권이 지리멸렬한 상태였다. 대선 패배 이후 회생이 목표였던 선거였다. 게다가 여권의 공천문제와 친박연대의 출현까지 목도하면서 정치혐오가 극에 달했다. 정치혐오는 진보층, 특히 젊은층의 투표이탈로 나타났고 당시 투표율은 사상최저를 기록했다. 보통 투표율은 대선, 총선, 지방선거 순으로 나타나는데 직전 지방선거보다도 낮은 투표율을 기록해 뉴스가 되기도 했다. 진보층의 투표이탈은 지역구에서 여권의 압승으로 나타났다.

12년이 흘렀다. 세상은 바뀌었다. 투표율은 계속 상승했다. 진보층의 투표의지는 꺾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비례자유한국당 같은 혐오적 정치가 지속되면 진보층의 투표의지는 더욱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적어도 저들은 없는 정치를 만들자’는 의지가 커질 가능성이다. 그래서 비례자유한국당 전략은 자유한국당의 무덤이 될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만약 비례자유한국당이 창당준비위가 아니라 창당 수순으로 들어가면 진보든 보수든 합리적 정치를 지향한다면, 선거슬로건은 단순해질 수 있다. ‘지역구에서 자유한국당 제로의석’

김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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