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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판결 비웃으며 ‘양육비 나 몰라라’ 부모에 100만 아이들 생존권 위협받는다

100만명 이상의 아이들이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다. 양육비 지급을 강제할 법적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양육비 문제는 사인 간 금전 거래로 취급될 뿐이다. 한부모 가정 10명 중 8명이 양육비를 못 받고 있다. 양육비 미지급 부모의 신상을 공개한 사이트까지 생겨났다. 신상이 공개된 사람들은 명예훼손으로 관계자를 고소했다. 국가의 부재 속에 피해자 측이 오히려 법정에 서게 됐다. ‘아동학대 국가’의 양육비 미지급 실태를 조명한다.

① 법원 판결 비웃으며 ‘양육비 나 몰라라’ 부모에 100만 아이들 생존권 위협받는다
② 양육비 미지급 ‘나쁜 아빠들’ 신상공개가 명예훼손? “아이 생존권이 우선”

없음
ⓒ양육비해결총연합회

“아이 낳았다고 다 부모인가요” 김지영(가명) 씨가 8년 동안 혼자 아이를 키우며 전 남편 A 씨에게 받은 양육비는 단돈 60만 원. 이마저도 A 씨 집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인 끝에 받은 돈이다. 이혼 당시 법원은 A 씨에게 양육비로 매월 60만 원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법을 비웃기라도 하듯 A 씨는 한 차례도 주지 않았다. 4년 동안 8번의 재판에서 승소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안 주면 그만이다. 현행법상 양육비 미지급을 강제할 방법은 없다. 개인 간 채무 관계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국가의 방치 아래 100만 이상의 아동들이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다.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18년 한부모가족 실태조사’에 따르면, 78.8%가 양육비를 못 받고 있다. 심지어 단 한 차례도 받은 적이 없는 경우는 73.1%에 달한다. 이들의 월평균 소득은 약 220만 원, 전체 가구 평균소득의 절반이다.

지난해 9월 우리나라 출산율은 0.88명. 저출산 대책 마련에 나선 정부를 향해 김 씨는 묻는다. “태어난 아이들을 책임지지 않는 국가가 출산을 말할 자격이 있나요? 이런 상황에서 출산을 요구하는 국가는 아동학대 범죄자입니다”

법원 판결문 있어도 무시하면 그만
“법은 허수아비였어요”

김 씨는 가정폭력을 일삼던 A 씨와 2015년 소송 이혼했다. 법원은 A 씨에게 위자료와 함께 양육비로 매달 6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A 씨는 이를 무시했다. 혼자 4살 아이를 키우며 생활비가 빠듯했지만 김 씨는 양육비를 요구할 엄두조차 못 냈다. 가정폭력 피해자였기 때문이다.

이혼 한부모 가정 중 가정폭력 피해자가 많다고 손민희 양육비해결총연합회 부대표는 전했다. 그는 “폭력에서 벗어나려고 이혼했는데 상대방을 찾아가서 양육비를 요구한다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칼 맞을 각오까지 해야 한다”라며 “(가정폭력 피해자는) 오히려 숨어 지낸다. 자신의 연락처가 노출되면 상대방이 찾아올까 봐 두려워한다”라고 말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양육비 요구를 미룰 수 없었다. 교육비를 생각하니 앞이 캄캄했다. 아이를 위해서라도 나서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김 씨는 이혼 판결문을 바탕으로 4년 동안 8번의 재판을 했다. 법원은 모두 김 씨의 손을 들어줬지만, 양육비 미지급은 계속됐다.

일반적으로 양육비 관련 소송은 여덟 종류가 있다. 먼저 양육비 청구 소송을 통해 양육비 채권에 대한 집행권원을 확보하고, 미지급 시 이행 명령 소송, 감치 및 과태료 소송 순으로 진행한다. 담보제공 명령, 직접 지급 명령 등도 청구할 수 있다. 일반 채무처럼 강제집행 절차를 밟을 수도 있다. 부동산·유체동산·자동차 강제경매, 채권압류 및 추심 명령, 재산명시 및 재산 조회, 채무 불이행자 명부 등재 등이다.

맹성규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양육비해결모임 회원들이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양육비 미지급 관련 아동복지법 개정안 통과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9.3.4
맹성규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양육비해결모임 회원들이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양육비 미지급 관련 아동복지법 개정안 통과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9.3.4ⓒ뉴스1

“법은 허수아비였어요” 김 씨는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양육비 미지급에 대한 가장 무거운 제재는 감치다. 법원의 지급 이행 명령을 어기면 유치소 등에 최대 30일 구금될 수 있다. 그러나 위장 전입하거나 잠적하면 끝이다. 감치 집행은 선고일로부터 3개월 이내에 이뤄지지 않으면 무효다.

미지급 부모를 찾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감치 집행 주체인 경찰의 의무사항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간 날 때 주소지로 한 번 찾아가는 정도가 대다수다. 집 안에 있어도 문을 안 열어주면 경찰도 어쩔 수 없다. 손민희 부대표는 “미지급 부모들은 대놓고 감치 결정을 비웃고 있다. 감치 집행일에 파출소 앞 호프집에서 인증사진을 찍어 올리는 사례도 있다”라고 전했다.

감치돼도 한 달 몸으로 때우면 그만이다. 이후에도 미지급 상태는 유지될 수 있다. 법원 관행상 감치 결정 이후 곧바로 감치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개인에게 너무 가혹하다는 것이다. 지난해 감치 집행 기간이 6개월로 늘어도 소용없는 이유다. 소송마다 6개월~2년이라는 시간을 걸쳐 받은 감치 결정은 희망이 될 수 없었다. 아이는 하루가 멀게 크고 있는데, 시간만 속절없이 흘렀다.

“양육비 미지급은 아동학대”

김 씨의 타는 속은 아랑곳하지 않고 전 남편 A 씨는 일상을 즐기고 있었다. 위장전입으로 감치를 피하고, 새 가정의 배우자에게 재산을 돌려 일반 채무 강제집행도 면했다. A 씨는 자신의 SNS에 명품 쇼핑한 사진을 올렸다. 그는 지역 모범상을 받고 상인회 총무를 맡으며 불우이웃을 돕는 등 ‘좋은 사람’이었다.

양육비이행관리원(이행원)을 찾아도 소용없었다. 이행원은 양육비 이행확보를 위해 2015년 여성가족부 산하에 설립됐다. 하지만 권한 없이 세워져 ‘전시행정’이라는 비판만 나오는 상황이다. 재산·소득 등 기초적인 정보도 확인할 수 없다. 감치 집행도 경찰의 보조원일 뿐이다. 총 71명의 직원이 전국구를 맡고 있다.

이영 양해연 대표는 “(이행원은) 행정 지원 서비스에 불과한 상태다. 권한 부족, 인력 부족, 예산 부족이다”라며 “양육비 불이행 시 강제할 수 있는 국가의 미비한 법 제도로 현재는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인력이 확충되고 집행 권한을 갖을 수 있도록 개선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김 씨는 결국 1인 시위에 나섰다. 위장전입을 알아낸 것도 그였다. 집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니 그제 서야 월 10만 원씩 총 60만 원을 줬다. 법원에서 명령한 한 달 치 양육비에 불과한 돈이었다.

양육비를 지급받지 못해 고통을 받고 있는 양육피해 부모 모임인 양육비 해결 모임(양해모) 대표자들이 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양육비 미지급자들에 대해 아동학대로 고소장을 제출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2018.11.30
양육비를 지급받지 못해 고통을 받고 있는 양육피해 부모 모임인 양육비 해결 모임(양해모) 대표자들이 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양육비 미지급자들에 대해 아동학대로 고소장을 제출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2018.11.30ⓒ뉴스1

김 씨는 아동학대 혐의로 A 씨를 고소했다. 아동복지법에 따르면, 아동학대는 신체적 폭력 등 외에도 아동의 보호자가 아동을 유기하거나 방임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특히 현행법은 “자신의 보호·감독을 받는 아동을 유기하거나 의식주를 포함한 기본적 보호·양육·교육 등을 소홀히 하는 방임행위”를 금지하고, 위반 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그러나 고소도 제대로 못 하는 실정이다. 양육비 미지급을 아동학대로 처벌한 판례가 없다는 이유다. 경찰 측으로부터 미지급 부모는 양육자가 아니어서 해당 혐의를 적용할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김 씨는 전했다. “유치원 선생님이 아이를 방임·방치 해도 아동학대로 처벌받는데, 더 큰 책임이 있는 부모는 왜 처벌하지 않나요?”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아이를 조사하겠다는 경찰도 있었다. 부모에겐 고소를 취하하라는 협박으로 들릴 수밖에 없다.

양육비가 개인 간 채무?
“국가가 대신 양육비 지급하는 ‘대지급제’로 나아가야”

법적 강제성이 없는 이유는 양육비 미지급을 개인 간 채무 관계로 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양육비는 개인 간의 일이 아니다”라며 “국가는 아동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아동의 생존권과 긴밀히 연결된 양육비 문제에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영 대표는 “세금 낼 때 즐거워서 내는 사람이 어디 있냐. 미납되면 불편하니까 내는 거다. 양육비 미지급자 80%는 남성이다. 양육비 한두 번 밀려도 윽박지르면 (양육자가) 나가떨어진다. 꾸준히 지급하던 사람도 사정에 따라 안 줘도 되는 구조다”라고 지적했다.

해외에서 양육비 미지급을 해결하는 방향은 크게 두 가지다. 미국 등은 미지급 부모를 아동학대 혐의로 형사처벌하고, 유럽 등은 국가가 양육자에게 양육비를 먼저 지급하고 비양육자로부터 회수하는 대지급제를 시행하는 추세다. 아동의 생존권 관점에서 본다면 대지급제를 시행하자는 의견에 힘이 실리고 있지만, 재정 부담 목소리부터 나오는 게 현실이다.

이은영 변호사(법무법인 숭인)는 “어린 자녀를 키우면 양육자가 적극적으로 일할 수 없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살 수밖에 없다. 원래 부담해야 할 사람은 따로 있는데 국가가 책임지는 상황이다. 개인이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으면 재정지출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미국의 형사처벌 근거이기도 하다. 대지급제는 오히려 재정을 아끼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강석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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