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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육비 미지급 ‘나쁜 아빠들’ 신상공개가 명예훼손? “아이 생존권이 우선”

100만 이상의 아이들이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다. 양육비 지급을 강제할 법적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양육비 문제는 사인 간 금전 거래로 취급될 뿐이다. 한부모 가정 10명 중 8명이 양육비를 못 받고 있다. 양육비 미지급 부모의 신상을 공개한 사이트까지 생겨났다. 신상이 공개된 사람들은 명예훼손으로 관계자를 고소했다. 국가의 부재 속에 피해자 측이 오히려 법정에 서게 됐다. ‘아동학대 국가’의 양육비 미지급 실태를 재조명한다.

법원 판결 비웃으며 ‘양육비 나 몰라라’ 부모에 100만 아이들 생존권 위협받는다
② 양육비 미지급 ‘나쁜 아빠들’ 신상공개가 명예훼손? “아이 생존권이 우선”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양육비제도 진정입법 부작위 헌법소원 기자회견’에서 어린이가 손팻말을 들고 있다. 이날 양육비해결모임은 헌법재판소에 ‘양육비 미지급은 아동의 생존권인 기본권 침해‘로 사상 첫 양육비 헌법소원 심판청구를 접수했다. 2019.2.14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양육비제도 진정입법 부작위 헌법소원 기자회견’에서 어린이가 손팻말을 들고 있다. 이날 양육비해결모임은 헌법재판소에 ‘양육비 미지급은 아동의 생존권인 기본권 침해‘로 사상 첫 양육비 헌법소원 심판청구를 접수했다. 2019.2.14ⓒ뉴스1

양육비를 주지 않는 무책임한 아빠들의 신상을 공개하는 사이트가 있다. ‘배드파더스’ (Bad fathers·나쁜 아빠들). 얼굴이 잘 보이는 사진부터 이름, 출생연도, 거주 지역, 직업 등 개인정보가 가득하다. 신상이 공개된 이들은 사이트 관계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신상공개가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시작한 일이다. 아이들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양육비 미지급을 강제할 수단은 없다. 한부모 가정의 양육비 미지급률은 80%에 육박한다. 배드파더스 측은 “나쁜 아빠의 명예보다 아이의 생존권이 더 우선한다”라고 강조했다.

법원 판결에도 양육비 미지급 계속돼
“법이 붕괴한 상황서 신상공개는 최후 수단”
“신상공개로 절반 넘게 해결”

수원지법은 오는 13일 배드파더스 관계자 구본창 씨의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 국민참여재판을 진행한다. 구 씨는 신상공개자 15명으로부터 고소당해 6건에 대해 벌금 300만 원을 구형받고 약식기소 됐다. 양육비 미지급 현실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그는 국민참여재판을 선택했다.

구 씨는 양육비 미지급 피해자가 아니다. 대형 입시학원에서 영어 강사로 오랜 시간 근무한 그는 필리핀에서 우연히 만난 코피노(필리핀 여성과 한국 남성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 소송을 지원하다가 양육비 문제 해결에 뛰어들었다.

필리핀 내에서 코피노 소송 지원 단체인 WLK(We Love Kopino·위 러브 코피노)를 만들어 활동하면서 구 씨는 한국인 아버지에게 양육비 지급 책임이 있다는 판결에도 양육비를 못 받는 현실이 황당했다.

구 씨는 “갑자기 사업이 망했든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만 (양육비 미지급이) 가능한 일 아니냐. 한국에선 80% 가까이가 양육비를 못 받는다고 해서 믿어지질 않았다. 법원 판결이 나왔는데도 양육비를 받지 못한다는 건 법이 붕괴한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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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육비해결총연합회

현행법상 양육비 미지급에 대해 가장 무거운 제재는 감치다. 최대 30일까지 유치소 등에 구금될 수 있다. 그러나 잠적, 위장전입만으로 손쉽게 피할 수 있다. 감치 집행이 선고일로부터 3개월 이내에 이뤄지지 않으면 무효가 되기 때문이다.

장기간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아도 사실상 강제할 방법이 하나도 없다. 한부모 가정 월평균 소득은 약 220만 원, 전체 가구 평균소득의 절반 수준이다. ‘가난한 한부모 가정 아이답게’ 자라는 비극을 막기 위해 신상공개까지 선택하게 됐다.

배드파더스 측은 양육자들로부터 제보를 받아 판결문 등 사실관계를 확인해 신상을 공개한다. 상대방 측으로부터 이의제기를 받으면 신상을 내리고 서로 합의할 수 있게 돕는다. 지급이 확인되면 즉시 삭제했다. 구 씨는 이 과정에서 고소 위험으로 신상을 비공개한 사이트 운영자를 대신해 제보 등을 받는 소통 창구로 자원봉사하고 있다.

신상공개로 해결된 사건만 절반이 넘는다고 구 씨는 전했다. 그는 “신상을 공개한 사람은 대략 400명이다. 그중 200명 여 명은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할까 봐 바로 내렸다. 끝까지 남겨둔 사람 약 200명 중 113건이 해결됐다”라고 말했다.

‘단순히 비방을 위한 신상공개 아니냐’라는 주장에 구 씨는 “사이트에 제보하는 사람 80%가 여성이다. 상당수가 가정폭력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양육비를 장기간 미지급한 사람들은 이전 결혼생활에도 폭력을 휘두른 경우가 많다. (제보자들은) 당연히 더 겁날 수밖에 없다”라고 반박했다.

이어 “실제 상담한 사람은 3천여 명이다. 그냥 (양육비 지급 판결문 등) 서류만 보내고 신상 올려달라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보통 석 달 전에 조심스럽게 여러 상황을 물어보다가 최종적으로 결심한다”라고 말했다.

맹성규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양육비해결모임 회원들이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양육비 미지급 관련 아동복지법 개정안 통과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9.3.4
맹성규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양육비해결모임 회원들이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양육비 미지급 관련 아동복지법 개정안 통과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9.3.4ⓒ뉴스1

“양육비 미지급자 신상공개는 ‘공익’ 활동”
“임금체불 사업주도 공개하는데 양육비 미지급 부모 왜 안 하나”

구 씨의 혐의는 정보통신망법 제70조 제1항으로,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해 공공연하게 사실을 드러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이다. 해당 혐의가 성립되기 위해선 ‘비방할 목적’이 있어야 한다.

구 씨 측은 양육비 미지급 문제 해결이라는 공익을 목적으로 활동했다고 강조했다. 구 씨 측 이은영 변호사는 “(미지급 피해) 당사자가 아닌 제3자가 (미지급자) 신상공개를 할 이유가 없다. 양육비 해결을 위한 제도들이 실효성 없다는 점을 알려 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사회운동의 일환이다”라고 지적했다.

공익 목적 활동이 인정되면 비방할 목적이 없었다고 판단한 대법원 판례도 있다. 여성단체가 국립대학교 교수의 성추행 사실을 인터넷 홈페이지 등에 올린 사건에서 대법원은 ▲여성단체가 해당 교수에 대한 개인적 감정 없었던 사실 ▲교수 스스로 명예훼손적 표현의 위험을 자초한 사실 ▲표현 자체에 교수에 대한 비하 등 모욕적 표현이 없고 객관적 진실 등만 적시한 사실 등을 근거로 단체의 공익성을 인정해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게다가 구 씨는 소통 역할만 했을 뿐 신상을 공개한 사이트 운영자가 아니다. 구 씨는 “운영자 처벌은 몰라도 자원봉사자를 처벌하는 건 말도 안 된다”라고 꼬집었다. 구 씨는 사이트 운영에 적극적으로 협조한 공범으로 기소됐다. 검찰은 사이트 운영자, 제보자 등의 신상을 알지 못해 기소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양육비 미지급한 부모들의 신상을 적극적으로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 변호사는 “근로기준법상 임금을 지급하지 않은 사업주를 형사처벌하고 명단을 공개하는 규정이 있다. 임금체불은 노동자의 생계를 위협하기 때문에 해당 규정이 있는 것이다. 임금보다 중요한 건 양육비다. 미성년자 아이들에겐 일할 능력조차 없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국가대지급제 등 (양육비 미지급을 해결할) 법률을 안 만들고 개인 문제로 남겨두니까 신상공개를 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국가가 할 일을 개인이 하는 중이다. 국가의 잘못으로 개인을 처벌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강석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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