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보기
댓글보기
[인터뷰]민중가요 소환콘서트를 기다리는 채희태 작가 “지난 나의 청춘의 모습으로 오늘의 청춘들을 만나자”
‘민중가요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는 채희태 작가
‘민중가요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는 채희태 작가ⓒ기타

“기성세대가 되어 변절을 하더라도 대학생 때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역사가 발전한다는 리영희 교수의 말을 교조적으로 따르기 위해 대학 땐 학생운동 언저리를 서성이다 졸업 후 별 쪽팔림 없이 다양한 직종을 전전하며 소시민으로 생존해 왔다.”

채희태 작가는 온라인에 연재하는 ‘민중가요 이야기’에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CD-ROM 타이틀 기획과 온라인 콘텐츠 기획, 프리랜서 작곡가, 친구의 권유로 어쩌다 공무원이 되어 구청과 교육청에서 활동도 했다. 사회를 제대로 알고 싶어 뒤늦게 대학원에 입학해 자칭 ‘박사급 석사 논문’을 써 사회학 석사가 되었고, 지금은 앞으로 생을 ‘작가’로 살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했다. 하지만, 작가에게 무슨 자격증이 있는 것은 아니다. 작가가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쓰는 사람이 곧 작가다. 도전하는 것에 두려움 없이 살아온 그는 ‘민중가요 이야기’(https://m.post.naver.com/my/series/detail.nhn?seriesNo=561820&memberNo=47693254&prevVolumeNo=27061806)를 연재하며 자신의 삶에 작가라는 이력을 이미 새기고 있다.

[the 청춘 콘서트] 민중의소리 후원인 및/독자 30% 할인 예매(웹 접속용)

[the 청춘 콘서트] 민중의소리 후원인 및/독자 30% 할인 예매(모바일 접속용)

“기회가 되면 아카펠라 등
다양한 편곡의 ‘그날이 오면’을
가지고 앨범도 내고, 공연도 하고 싶다.”

그가 ‘민중가요 이야기’ 연재를 시작한 것은 2월 1일 올림픽공원 체조 경기장에서 열리는 민중가요 소환콘서트 ‘The 청춘’ 때문이다. 이번 공연을 알려달라는 후배 윤미영 감독(The 청춘 공연 제작 총괄, 스튜디오 21 대표)의 부탁을 받았다. 지난해 11월 말 ‘영원히 끝나지 않는 노래 그날이 오면’으로 시작한 연재는 이제 열세 번을 넘게 이어지고 있다. 공연까지 스물네 편 정도 연재할 예정이다. 부탁으로 시작한 연재이지만, 그동안 잊고 있던 아니, 가슴 한켠에서 여전히 숨쉬고 있었고, 지금도 숨 쉬고 있는 그 시절 그 열정을 다시 상기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지난 6일 채희태 작가를 만나 민중가요 소환콘서트 ‘The 청춘’을 기다리는 이유와 뜨거웠던 청춘의 노래 ‘민중가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민중가요를 만나게 된 사연을 그에게 물었다. 그의 사연은 ‘캠퍼스의 낭만’으로부터 시작됐다. “재수를 해서 대학엘 갔다. 꼭 대학에 가고 싶었다. 부모님을 실망시키지 않고 싶었던 이유도 있었지만, 낭만 가득한 대학 캠퍼스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당시 TV에 나오던 ‘캠퍼스 드라마’에선 대학 잔비밭에 여자친구 다리를 베고 누워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또 대학가요제에 꼭 나가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1988년 대학에 들어갔다. 그리고, 실제로 밴드에도 들어갔다. 근데 내가 꿈꾸던 대학의 삶과 너무나 달랐다. 대학 잔디밭은 최루탄 냄새가 가득해 누울 수 없고, 친구들은 모두 데모 현장으로 달려나갔다. 이런 걸 보면서 1학년 1학기에 밴드에서 나오고, 그 당시에 좋아하던 선배를 찾아가서 그렇게 말했다. ‘선배님 제가 가진 재능을 조국을 위해 쓰고 싶어요.’ 그렇게 국문과 노래패 ‘꼴굿떼’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민중가요와 인연이 시작됐다.”

당시는 민중가요의 전성기였다. 1988년 국문과 노래패로 시작된 민중가요와의 인연은 다른과 노래패와 함께 성균관대 노래패협의회를 만들어 의장을 하고, 총학생회 산하에 과노래패를 지원해주는 노래연구회를 결성해 단장을 맞는 등 민중가요 가수가 되진 못했지만, 민중가요를 들고 열심히 달려온 그였다.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민중가요로 ‘그날이 오면’을 꼽았다. ‘민중가요 이야기’ 연재도 ‘그날이 오면’으로 시작했다.

1990년대 펄쳐졌던 통일노래 한마당 악보집
1990년대 펄쳐졌던 통일노래 한마당 악보집ⓒ기타

“기회가 되면 아카펠라 등 다양한 편곡의 ‘그날이 오면’을 가지고 앨범도 내고, 공연도 하고 싶다. 군대에 갔다 온 뒤에 국문과 ‘꼴굿떼’ 후배들의 요청으로 ‘그날이 오면’ 아카펠라 버전을 마석행 기차 안에서 만들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글에서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일지는 모르나 '그날이 오면'은 민중가요를 예술의 반열에 올려놓은 곡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렇게 꼽은 이유로 ‘서정적이면서도 비장한 가사’와 ‘곡이 가지고 있는 음악적 완성도’와 함께 ‘마치 철학과 예술을 결합해 놓은 듯한 곡의 엔딩’을 꼽았다.

“내가 ‘그날이 오면’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이유도 바로 이 엔딩 때문이다. 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노래의 99.9%는 모두 으뜸음(도)으로 끝이 난다. 하지만 ‘그날이 오면’은 으뜸음인 ‘도’가 아니라 가온음인 ‘미’로 끝난다. (……) 그래서 ‘그날이 오면’에서 노래하는 그날은 아직 오지 않았고, 우리는 여전히 그날을 향해 나아가고 있으며, 그래서 ‘그날이 오면’은 어쩌면 영원히 끝나지 않는 노래이다. 작곡가 문승현은 마치 끊임없이 무언가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 미숙한 인간의 숙명을 ‘그날이 오면’이라는 노래를 빌어 철학적으로 표현한 것은 아닐까?”

“개강 모꼬지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후배가 부르는 노래를 듣고
가슴을 망치로 쎄게 얻어맞은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그때 후배가 불렀던 노래가
바로 ‘열사가 전사에게’예요.”

그는 자신의 인생을 바꾼 ‘민중가요’로는 ‘열사가 전사에게’를 꼽았다. 그는 이 곡을 ‘민중가요 이야기’ 세 번째 글을 통해 ‘도서관으로 향하는 내 발목을 잡은’ 노래로 꼽았다. 그는 2학년이던 1989년 말에 과학생화장에 출마했다 후보단일화 과정에서 사퇴하고, 부모님의 압력 등으로 군대에 갔다. 다시 돌아와 학생운동을 하겠다는 각오로 군대에 갔고, 1993년 군대에서 제대를 했다. 그는 그때를 이렇게 회상했다.

“난 애국적으로 군 생활을 하고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잊은 채 졸업 후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동안 받은 학점을 계산해 평점 3.0을 받으려면 얼마나 공부를 해야 하는지 따져 보았다. 남은 과목 올 A+을 받으면 어찌어찌 반올림까지 해서 겨우 3.0은 넘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당시는 평점 3.0을 넘어야 취직을 할 수 있다는 미신 같은 것이 있었다. 그렇게 내 마음은 동지들이 우글거리는 학생회실이 아니라 도서관을 향하고 있었다.”

그렇게 마음이 도서관으로 향하고 있던 그는 93학번 개강 모꼬지에 우연히 따라갔다고 한다. “개강 모꼬지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후배가 부르는 노래를 듣고 가슴을 망치로 쎄게 얻어맞은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그때 후배가 불렀던 노래가 바로 ‘열사가 전사에게’예요. 나의 발걸음을 도서관이 아닌 학생회실로 다시 돌려준 노래에요.”

‘민중가요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는 채희태 작가
‘민중가요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는 채희태 작가ⓒ기타

“동지여 그대가 보낸 오늘 하루가 어제 내가 그토록 살고 싶었던 내일, 동지여 그대가 보낸 오늘 하루가 내가 그토록 투쟁하고 싶었던 내일”이라는 이 노래의 가사는 지금도 그의 마음을 울리며 그가 살아가는 오늘을 돌아보고 또 돌아보게 한다. “열사가 그토록 살고 싶었던 오늘, 우리는 비겁한 ‘꼰대’가 되어 이 시대를 활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를 걱정했던 부모님의 그 눈으로 자신의 아이만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애써 마련한 아파트 값이 떨어질까 노심초사하며 가짜뉴스의 생산자가 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

“노래 그 자체가 민중적인 것인데,
노래라는 녀석이 자꾸 민중을 떠나
존재하는 것처럼 행세를 하니
강제로 민중이라는 단어를 앞에 붙여 놓은 것이다.
가요는 다 민중가요다.”

그가 생각하는 민중가요는 이렇게 늘 시대와 함께 살아있는 노래다. 민중가요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는 노래는 원래 민중과 함께 있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민중가요 이야기 연재 네 번째 글에서 이렇게 썼다. “노래 그 자체가 민중적인 것인데, 노래라는 녀석이 자꾸 민중을 떠나 존재하는 것처럼 행세를 하니 강제로 민중이라는 단어를 앞에 붙여 놓은 것이다. 가요는 다 민중가요다. 그러므로 민중의 삶과 무관한 노래에만 ‘대중(을 혹세무민 하는)’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이 맞다고 주장한다면 지나친 어거지일까?”

이런 생각으로 이번 민중가요 소환콘서트 ‘The 청춘’도 기대하고 있다. ‘민중가요’이기 이전에 민중의 삶과 맞닿은 노래로 시대를 넘어 소통할 수 있는 자리였으면 하고 그는 기대한다. “이번 공연이 586을 추억하는 방식이 아니었으면 한다. 과거 1994년에 ‘넥타이 부대의 대합창’이라는 공연이 한양대에서 열린적이 있었다. 당시는 시대의 간극이 크지 않으니 말 그대로 회상만으로도 공연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번 공연은 성찰적인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본다. 그 시절 청춘으로 돌아가 오늘의 청춘과 연대하고, 성찰했으면 한다. ”

그는 ‘후손들은 1도 관심 없는 애국의 길’이란 글에서 “식민지, 조국, 민족, 미국놈, 해방, 전사... 지금은 일상생활 속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생소한 단어들이지만, 내가 대학을 다니던 1980년대 후반에는 이 단어들을 빼면 나눌 수 있는 대화가 거의 없었다. 정말 시대가 변하긴 한 것 같다. 변해도 정말 너무 변했다”면서 “우리의 부모 세대들이 청춘 시절에 겪었던 전쟁의 공포를 평생 안고 살아왔듯, 혹시 우리들도 청춘 시절 누렸던 그 자부심을 지금껏 부여잡으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우리들이 부모 세대로부터 ‘너희들이 전쟁을 알아?’라는 말을 듣고 자랐듯이, 우리들은 우리의 ‘후손’들에게 ‘너희들이 반독재 민주화 투쟁을 알아?’라는 말을 하고 싶지만, 그 말을 억지로 삼키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고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서 “나도 의도와 무관하게 누군가에게 적이 될 수 있는 상황 속에서 부르짖는 정의라는 것은 또 얼마나 헛헛한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우리의 사랑스런 후손들은 전설처럼 우리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전설의 고향처럼 우리가 사그러지길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우리가 반독재 민주화를 외쳤던 것 이상의 절박함을 담아 기성세대가 된 우리에게 이렇게 외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제발 가르치지 말고 너나 잘하세요~’”

“요즘은 남자라서 여자에게 미안하고,
인간이라서 자연에게 미안하고,
어른이라서 아이들에게 미안한 시대를 살고 있는 것 같다.
살아온 날들이 권력이 돼서, 살아갈 날들을 방해한다.
우리가 살아왔던 대로 내리누르는 것이 아니라,
더 청춘 콘서트를 통해
과거의 자기를 만나고, 과거의 자기의 모습으로
지금의 청춘들을 만났으면 한다.”

오늘의 청춘들에게 “너희들이 반독재 민주화 투쟁을 알아?”라고 질문을 던지는게 아니라 그들의 감성을 안으며 소통하는 게 필요하다고 그는 강조한다. “요즘은 남자라서 여자에게 미안하고, 인간이라서 자연에게 미안하고, 어른이라서 아이들에게 미안한 시대를 살고 있는 것 같다. 살아온 날들이 권력이 돼서, 살아갈 날들을 방해한다. 우리가 살아왔던 대로 내리누르는 것이 아니라, 더 청춘 콘서트를 통해 과거의 자기를 만나고, 과거의 자기의 모습으로 지금의 청춘들을 만났으면 한다.”

아울러 그는 엑소의 디오(도경수)가 영화 카트에 출연하면서 노동엔 관심조차 없던 그의 딸이 노동영화 ‘카트’를 보게 되고, ‘제국의 아이들’ 임시완이 영화 ‘변호인’에 출연해 관심을 높인 것처럼 이번 공연이 아주 좋은 매개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번 공연의 가장 최악은 586들만 모여서 그시대 노래를 들으며 팔뚝질하는 거다. 강제든, 회유든 다양한 사람들이 와서 즐겼으면 한다. 우리가 힘들어하는 세대 간의 갈등, 다양한 갈등을 풀 수 있는 시작이 되었으면 한다. 이번 공연 관련해서도 제 주변에서 연락이 많이 온다. 이번 공연을 회상이 아니라 성찰로 만나려는 이들이 조금씩 늘어나는 것 같다. 그날 그 무대에서 함께 만났으면 한다.”

민중가요 콘서트 ‘the 청춘’
민중가요 콘서트 ‘the 청춘’ⓒ기타

권종술 기자

문화와 종교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작은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이시각 주요기사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카카오스토리2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