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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보] 맞을수록 강해진다, ‘페미 OUT’ 게임업계에 노조로 반격 나선 웹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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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게임 유저들이 ‘메갈녀 사냥’에 나섰다. 사냥 방법은 간단하다. ‘이 여자가 메갈이다!’, ‘퇴폐 커뮤니티를 하는 반사회적 여자다!’ 적이 지목되면 집단으로 몰려가 공격한다. 현실판 MMORPG(대규모 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 플레잉 게임)다. 전신인 ‘김치녀 사냥’과 유사하다. 2016년 넥슨 김자연 성우 교체 사건으로 시작된 ‘메갈녀 사냥’은 최근까지 계속되고 있다.

문제는 사냥 대상이 캐릭터가 아니라 게임 업계 여성 노동자라는 것이다. 남성 유저들이 ‘게임 한 판’을 벌이면, 여성 작가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대부분 김자연 성우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표적이 됐다. 페미니즘을 옹호하는 여성 노동자를 거르기 위한 사상검증이었다. 업체들은 ‘소비자가 왕이다’라는 말 뒤에 숨어 사냥터를 제공했다.

전국여성노조 디지털콘텐츠창작노동자지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박지은 작가의 작업실
전국여성노조 디지털콘텐츠창작노동자지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박지은 작가의 작업실ⓒ박지은

전국여성노조 디지털콘텐츠창작노동자지회(이하 디콘지회)에서 활동하는 박지은 작가는 첫 번째 표적이었다. 2016년 넥슨 사건 당시 웹툰 작가 최초로 ‘넥슨 보이콧’을 선언했다. 시발점이었던 만큼 무차별적 사이버 괴롭힘에 시달렸다. 그러나 박 작가는 보란 듯이 여성 프리랜서 작가들과 함께 디콘지회를 만들어 반격에 나섰다.

공격받으면 에너지가 닳는 게임 속 캐릭터와는 달랐다. 맞을수록 전투력이 상승하는 박 작가를 지난 9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김자연 성우 이후 ‘넥슨 보이콧’ 최초 선언
한순간에 ‘메갈녀’로 낙인

트위터에 업로드한 클로저스 관련 그림은 모두 지웠습니다. 1년 동안 나름 재밌게 즐겼습니다만, 이제 클로저스를 놓아줄 때가 될 것 같군요. 이런 결정을 내린 넥슨을 보이콧 하겠습니다. #김자연성우를_지지합니다 #넥슨_보이콧

박 작가의 경력은 해당 트윗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그는 ‘잘나가는’ 웹툰 작가였다. 대학만화 최강자전에서 ‘아메리카노 엑소더스’로 3위를 수상하며 졸업과 동시에 2014년 네이버 연재를 시작했다. 함께 일하자는 회사가 끊이질 않았다. 상황은 한순간에 뒤바뀌었다. 그는 김자연 성우를 지지한다는 이유로 ‘메갈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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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itter

2016년 7월 19일 넥슨의 온라인 게임 ‘클로저스’(CLOSERS)에서 캐릭터 ‘티나’의 목소리를 담당한 김자연 성우는 SNS에 ‘GIRLS Do Not Need A PRINCE’(여자에게 왕자는 필요 없다)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은 사진을 올렸다는 이유로 교체됐다. 해당 티셔츠는 ‘메갈리아4’를 후원하고 받은 기념품이었다.

당시 박 작가는 클로저스 릴레이 웹툰 연재를 성공적으로 마친 뒤 새 캐릭터 ‘하피’ 웹툰을 공개 중이었다. 작업을 떠나서 그는 클로저스를 좋아했다. 플레이 가능한 모든 캐릭터가 ‘만렙’이었다. 업체로부터 의뢰받지 않았는데 관련 캐릭터를 그려 SNS에 홍보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사건이 발생하자 넥슨 보이콧에 주저하지 않았다.

“참담했습니다. 성우를 강판하는 원인이 페미니즘 티셔츠라니. (논란이 된 지) 24시간도 안 돼서 성우 강판이 결정됐어요. 그 과정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했어요. 이 사건을 무시하고서 (넥슨과) 일하고 싶지 않았어요”

‘페미 표적’ 찍은 악플러들, 무차별 사이버 괴롭힘
업체들 교묘하게 ‘페미’ 배제

박 작가는 표적이 됐다. 그의 선언 이후 SNS에서 해시태그 운동이 일면서, 사이버 불링은 극심해졌다. 주도했다는 ‘죄’였다. 연재하는 웹툰에 10만 개가 넘는 악플이 쏟아졌다. 각종 인신공격이 난무했고, 신상 캐기가 계속됐다. “(악플러들은) 아무리 때려도 반응할 수 없는 샌드백이라는 생각에 쾌감을 느낀 것 같아요. 그들에겐 유희더라고요. 그게 가장 충격적이었어요”

그는 악플러 7~80명을 고소했다. 법적 행동을 취하기 전 박 작가는 자진 사과하는 사람에 대해선 고소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먼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제가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악플을 달고 싶은데, 저는 마침 거리가 있는 여작가 중 한 명이었을 뿐이죠”

박지은 작가의 웹툰 '아메리카노 엑소더스'에 등장하는 한국 여성 캐릭터 '김영희'. 박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다.
박지은 작가의 웹툰 '아메리카노 엑소더스'에 등장하는 한국 여성 캐릭터 '김영희'. 박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다.ⓒ박지은

인간의 밑바닥까지 봤다는 박 작가다. 고소하니 악플러들은 사과했다. “자기 연민을 전시하기 바쁘더라고요. 자신이 얼마나 불행한지, 가정상황이 얼마나 나쁜지를 쏟아냈죠. 그러면서도 자신이 특정될까 봐 어머니 이름으로 (사과 메일을) 보낸 사람도 있었어요. 정말 구차하더라고요. 인간불신이 생길 수밖에 없죠” 잘못을 인정한 사람은 딱 한 명뿐이었다고 그는 전했다.

감정 소모로 끝나지 않았다. 논란이 일자 넥슨 측은 박 작가의 웹툰을 삭제했다. 이외에도 여러 회사가 등을 돌렸다. 작업물을 마음대로 삭제하거나 업로드하지 않는 방식이었다. 1년 동안 계약하자고 매달리던 출판사도 돌연 계약을 백지화했다. 사건 직후 6건가량의 피해가 있었다.

업체들은 교묘했다. ‘분쟁 확대 방지’라며 해당 사건 때문이라고 말한 회사도 있었지만, 대부분 변명으로 일관했다. 사상검증을 한 업체들은 합법의 테두리 안에서 여성 노동자들을 배제했다. 계약을 중도 파기하기보단, 작업물을 삭제하고 이후 계약을 맺지 않는 식이었다. 작업물 삭제는 그 자체로 오명일 뿐 아니라 자기 PR이 중요한 일러스트레이터들의 경력에도 치명적이었다.

게임업계, ‘소비자는 남성이라’ 핑계 삼지만
알고 보면 여성혐오 생산자
여캐들 무조건 벗겨라 요구

‘게임 소비자는 남자니 어쩔 수 없다’라며 소비자 뒤에 숨은 업체는 여성혐오 생산자였다. “게임 업계는 ‘여혐 범벅’이에요. 전체연령 게임이든 15세 게임이든 소아성애적인 면모들이 강하죠. 레벨이 올라갈수록 미소녀 캐릭터들이 옷을 벗는 건 당연한 법칙이에요. 이걸 거스르면 메갈 게임이라고 난리가 나요. (업체들은) 그걸 또 대부분 들어줘요”

얼굴은 앳되고 손발은 작은데, 가슴과 엉덩이는 크다. 가슴과 엉덩이가 동시에 보이는 이른바 ‘엉슴 포즈’는 기본이다. 여성 캐릭터가 움직일 때 가슴 부분만 격하게 흔들려 ‘바스트 모핑’(breast morphing)이라는 콩글리쉬가 생기기도 했다. 갑옷을 입어도 여성 캐릭터라면 갑옷째로 가슴이 흔들렸다.

전국여성노동조합 조합원들이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게임업계 사상검증과 블랙리스트 규탄 및 피해복구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날 참가자들은 "단지 여성주의적 관점으로 말하고 행동했다는 이유로 작업자에 대한 사상검증을 실시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발언과 사상의 자유 등 기본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다"라고 주장했다. 2019.12.23
전국여성노동조합 조합원들이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게임업계 사상검증과 블랙리스트 규탄 및 피해복구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날 참가자들은 "단지 여성주의적 관점으로 말하고 행동했다는 이유로 작업자에 대한 사상검증을 실시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발언과 사상의 자유 등 기본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다"라고 주장했다. 2019.12.23ⓒ뉴스1

더 벗겨달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고등학생 시절 작업을 할 때도 ‘벗은 여자 캐릭터’ 의뢰를 받았다고 박 작가는 말했다. “(여자 캐릭터에게) 반투명 잠옷을 입혀달라고 하더라고요. 어렸지만 알 수 없는 불쾌감이 들었어요. 제 선에서 가릴 건 다 가리고 보냈는데 완성작 외에 잠옷을 삭제한 그림을 따로 보내라고 했어요. 거절했더니 (개발자가) 뒷담화 글을 올리더라고요. 미성년자 작가에게 이런 요구는 성희롱 아닌가요”

“애초에 게임을 좋아한 내 잘못이지” 박 작가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갑상샘암에 걸렸다. 그는 사상검증 피해를 겪은 작가들 모두 몸과 마음의 병을 얻었다고 말했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도 많아요. 다들 국내 수주가 다 끊겨 더는 잃을 게 없는데도 익명 인터뷰를 주저했어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 자체가 두려웠던 거죠”

노조로 반격 나선 여성 프리랜서 작가들
“싸우는 여자가 이긴다”

박 작가는 그대로 주저앉지 않았다. 여성 프리랜서 작가들과 함께 디콘지회를 꾸렸다. 처음엔 법적 경험을 묻는 주변 피해 작가들을 돕는 차원이었다. “다들 굉장히 위축된 상태였어요. 저한테 묻기만 하고 변호사를 소개해줘도 찾아가질 않더라고요” 그는 피해자들 옆에서 업체 측에 항의 메일이라도 보내야 한다고 다독였다. 자신이 비용 부담까지 하며 피해자들과 변호사를 만났다. “아무것도 안 하면 억울함만 남아서 괴로운 걸 제가 제일 잘 알잖아요”

프리랜서 작가들은 파편화돼 있다는 게 문제가 됐다. 피해 양상은 비슷한데, 개인별로 대응하니 효과가 미비했다. 사상검증에 맞서 결성된 ‘여성프리랜서일러스트레이터연대’(WIFIU), 유료 웹툰 플랫폼 레진코믹스 갑질 투쟁을 벌인 ‘레진코믹스 불공정행위 규탄 연대’(레규연)으로 활동했던 여성 프리랜서 웹툰·웹소설·일러스트 작가들이 뭉쳐 만든 디콘지회 시작에 박 작가가 있었다.

피해 경험만큼 불안감도 컸다. “노조 활동하면 빨간 띠 매고 영원한 투쟁 이미지가 있잖아요. 회사에서 더 배척당할 것 같다는 걱정들도 있었죠. (사상검증 등으로) 이미 벼랑 끝에 떨어져 있는데도 공포감이 심했어요” 4년이 넘도록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니 조합원들은 여전히 두렵다. 이들은 회사에 알려질까 봐 필명도 아닌 가명으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전국여성노동조합 조합원들이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게임업계 사상검증과 블랙리스트 규탄 및 피해복구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날 참가자들은 "단지 여성주의적 관점으로 말하고 행동했다는 이유로 작업자에 대한 사상검증을 실시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발언과 사상의 자유 등 기본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다"라고 주장했다. 2019.12.23
전국여성노동조합 조합원들이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게임업계 사상검증과 블랙리스트 규탄 및 피해복구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날 참가자들은 "단지 여성주의적 관점으로 말하고 행동했다는 이유로 작업자에 대한 사상검증을 실시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발언과 사상의 자유 등 기본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다"라고 주장했다. 2019.12.23ⓒ뉴스1

프리랜서가 무슨 노조를 만드냐는 비난도 쏟아졌다. “노조를 만들고 여성, 프리랜서, 노조 중 사람들이 무엇에 더 분개할까 궁금했어요. 생각보다 프리랜서 혐오가 깊더라고요. 사람들은 ‘네가 좋아하는 일 하면서 편하게 일하잖아’, ‘좋아하는 일 하니까 돈 좀 덜 벌어도 되지’라고 하더군요. 불합리한 일을 당해도 프리랜서라는 이유로 노예처럼 일해야 하나요?”

여성 프리랜서 작가들은 업계 내 최약체다. 과도한 노동, 갑질 계약이라는 프리랜서의 고충에 성차별까지 더해졌다. “프리랜서 작가는 여성들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업체가) 필요할 때 쓰다 버리면 그만인 처지죠. 프리랜서 중에서도 경력이나 인기도와 상관없이 남성 작가 고료가 더 높다는 게 황당했죠. 프리랜서는 이런 게 없는 줄 알았는데 순진했죠”

박 작가는 게임 업계 사상검증 피해와 관련한 인권위 조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콘텐츠진흥원의 권고가 있었지만, 권고는 권고일 뿐이었다. 페널티가 없으니 게임 업계는 해결 시늉조차 안 하는 실정이다. “인권위 결과가 피해자들 멘탈에 큰 영향을 미칠 것 같아요. 사건이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가 당한 게 진짜 피해가 맞는지 인정이라도 받고 싶어요”

여성들이 검열당하지 않는 세상을 꿈꾸는 박 작가에게 정부는 어떤 대답을 내놓을까. 인권위는 1년이 넘도록 깜깜무소식이다.

강석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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